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3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39화(39/300)
39화 물소 던전 (3)
강검마와 일행들이 버팔로 던전에 입장한 지 한 시간 남짓.
버팔로 던전의 검문소 직원은 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혹여 누군가 들을라, 눈치를 살피며 핸드폰을 귀에 바짝 밀착시키는 직원.
뚜-뚜.
수신음이 짧게 이어지고.
딸칵.
이내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직원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는 소리 없이 목청을 가다듬고는 겸양 섞인 말투로 말을 뗐다.
“아, 교관님. 한 시간 전 즈음에 강검마와 그의 일행이 도착해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준비는 해 놨죠?
무언가를 우물우물 씹는 소리로 무심하게 대꾸하는 여인의 목소리.
“네네, 물론입니다. 지금 즈음 녀석들은 마석(魔石)에 의해 광폭화된 버팔로들과 마주했을 겁니다. 개체 수도 대략 오십 마리 정도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생도라 해도 결국은 핏덩이들 아닙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소 발굽에 치여서 곤죽이 되어 있을 겁니다.”
―뭐, 그래요. 믿음은 안 가지만.
여인은 가소롭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다른 것도 해 놨어요?
“아, 예. 시키신 대로 하긴 했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직원. 그는 눈앞에 있지도 않은 전화 상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광폭화된 버팔로들 선에서 정리될 듯합니다.”
―저기요.
서리가 낀 듯한 싸늘한 음성. 목소리에 짙게 깔린 살기에 직원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는 애써 욕지기를 마른침과 같이 삼켰다.
―실패하면 알죠?
“…….”
딱딱 부딪치는 이빨 소리로 대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
전화 상대인 여인의 흐릿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곧이어 그녀는 장난기가 다분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뭐, 잘하셨을 거라 믿어요. 결과 나오면 어떻게 됐는지 바로 전화 주세여- 수고!
“넵, 알겠습니다.”
―뚝.
통화가 끝나고도 핸드폰의 액정을 재차 확인하는 직원. 방해 금지 모드까지 걸어 두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크게 내뱉는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옷깃.
직원은 소매로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 낸 뒤, 눈을 돌려 망연한 시선으로 던전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쓰게 중얼거렸다.
“이리 죽나, 저리 죽나…….”
며칠 전, 여인에게 넘겨받은 마석을 통해 수십 마리의 버팔로를 광폭화시켰다. 평소에는 온순한 마수지만, 집단으로 광폭화된 버팔로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차나 다름없으리라.
성인들로 구성된 파티조차 그것들에 치이면 곤죽이 될 것이다. 세계 최고 명문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들일지라도 아직은 경험 미숙한 십 대들.
게다가 만일을 대비해 ‘그곳’의 문까지 강제적으로 열어 놨으니 저들이 던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리라.
‘…근데.’
하지만 속이 답답할 정도로 몰려오는 불안감. 직원은 불현듯, 강검마와 눈이 마주쳤던 찰나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 여 교관이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나 싶었지만, 강검마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회백색으로 염색한 것처럼 끝부분이 세어 있는 검은 머리칼, 공포심을 유발하는 칠흑빛 눈동자의 광채.
마치 자신의 저변을 꿰뚫어 보는 듯 응시하는 그 눈빛에 반사적으로 몸이 떨렸다.
직원은 생각을 그만두려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었다. 여인의 분부대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두었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그는 눈을 돌려 시선을 던전 입구 쪽에 두었다. 어째서인지 지워지지 않는 불안감. 직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가를 쓸고선 생각을 굳혔다.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
직원은 같이 서 있던 동료에게 언질을 줘 두고선, 무장을 챙겨 던전 입구로 들어섰다.
만에 하나라도 실패의 경우의 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반면, 무장을 꼬나 쥔 그의 손가락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 * *
정신이 팔린 채 넋 잃은 얼굴로 우뚝 서 있는 사키 료조. 그녀의 입술이 뇌를 거치지 않고 움직였다.
“…미친.”
입에 물고 있던 양갱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서늘한 공기에 비릿한 습기가 더해져 감돌았다. 불쾌하게 비강을 찌르는 끈적한 악취. 던전을 흔들 듯 메아리치던 굉음도 멎어 있었다.
꿈이라도 꾸는 걸까 싶어 눈꺼풀을 비빈 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앞쪽을 바라보는 사키 료조.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변함이 없었다.
마수들의 사체로 쌓인 육편(肉片)의 산. 그 아래로는 새빨간 핏물이 웅덩이 져 흘렀다.
던전의 벽면에는 현대 미술의 그림처럼 흩뿌려진 선혈이 차츰차츰 식어 가며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다.
멍하니 바라보던 사키의 눈이 조금 위로 올라갔다. 한껏 확장되는 연청색 동공.
열기가 사위어 가는 버팔로 산의 정상을 한 발로 지르밟으며 서 있는 강검마.
그는 양손에서 질척한 피가 얇게 펴 발려진 사시미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빛났다. 음영 진 안면에는 안광만 희게 번들거렸다.
일그러진 광경의 색상은 검정과 빨강. 끔찍하면서도 조화롭게 섞여 참상을 빚어낸다. 시선은 그곳에 고정된 채로, 그녀의 뺨이 씰룩거렸다.
사키 료조의 얼굴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번져 간다. 힘이 풀려 후들거리는 무릎에 애써 힘을 주어 몸을 곧추세운다. 그리고 눈꺼풀에 힘을 줘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무슨.’
시간. 아니, 순간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일 분도 안 되는 찰나.
수십 마리에 달했던 버팔로 무리는 열을 잃어 가는 고기 조각으로 일변해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강검마가 손가락에 낀 칼날을 부채처럼 휘저으면 마수의 몸체가 미끄러지듯 어슷하게 잘려 나갔다.
물론, 엄청난 속도로 좌우로 버팔로의 시선을 분산시킨 클로이나 열심히 리코더를 불어 버프를 걸어 준 스피드 웨폰, 화살을 쏘아 적들의 대열을 무너뜨린 사키 료조 자신을 포함해.
맡은 바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긴 했어도, 결국에 적 대부분을 도륙낸 건 다름 아닌 강검마였다.
그가 힘껏 어깨와 팔을 흔들면 다중의 칼날이 번개처럼 적들을 베어 나갔다. 무차별적으로 베어 넘기는 것 같으면서도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물소들.
날의 결림조차 없는지, 반으로 갈라져 죽은 버팔로들은 매끈거리는 절단면을 내보인다.
‘…….’
강검마의 남다름이야 아공간 대련이나 무성한 소문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목도한 그의 퍼포먼스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두부처럼 뭉텅뭉텅 떨어지는 살점들 속에서 검무를 추듯 유려한 몸놀림. 그 모습에 시위에 화살을 걸던 도중에 사키 료조는 쏘아야 한다는 걸 망각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손속. 고개를 살짝 돌리자 웨폰도 그녀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말했지? 놀라지 말라고.”
“…저걸 보고 어떻게 놀라지 말라는 거야, 멍청아.”
“푸하하. 하긴 나도 처음 봤을 땐 말이 안 나오더라. 뭐 지금도 어이가 없긴 해. 강검마, 저 자식은 볼 때마다 그간의 상식들을 날려 버리거든.”
사키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미미하게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강검마, 쟤 정체가 뭐야.”
“나도 몰라.”
웨폰이 고개를 내저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근데.”
말을 하다만 웨폰은 문득 시선을 옮겨 올려다본다. 사키의 눈도 따라 움직였다.
군림하듯 서 있는 강검마는 팔을 흔들어 칼을 털었다. 그러자 사시미의 칼날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희게 번뜩거렸다.
키이이잉―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듯, 서글프게 흩날리는 흉흉한 검명. 강검마는 무심하게 검집에 집어넣고선 손을 탁탁 턴다.
곧이어 실톱을 꺼내 버팔로의 뿔을 톱질하기 시작하는 강검마. 클로이가 옆에서 갈무리 행위를 거들고 있었다.
조용히 강검마를 응시하던 웨폰은 사키에게 낮게 한마디를 툭 뱉어 낸다.
“전설.”
“……?”
“뭐, 대충 그런 거 아니겠어?”
웨폰이 사키를 향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콧잔등을 문지른다. 그는 강검마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우두커니 홀로 남아 서 있는 사키.
“하.”
이윽고 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 * *
“이 정도면 되겠네.”
버팔로의 소재로 꽉 들어찬 천 보따리. 나는 턱을 쓸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토벌 수는 반백 마리 이상이지만, 챙길 수 있는 수량은 스무 마리 분 정도.
수고에 비하면 아쉽긴 해도 아공간 주머니 같은 아이템이 없으니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챙기기로 했다.
사실 이 정도여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이기도 하고.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마 군, 오늘도 너무 멋졌어요!”
배시시 웃으며 살랑살랑 보이지 않는 꼬리를 흔드는 클로이. 쾌속으로 버팔로의 시선을 끈 그녀의 머리는 바람에 휘날려 산발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운 인상과 어울리니 퍽 복슬복슬한 강아지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눈웃음을 보였다.
“클로이, 너도 수고했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수월하게 토벌했네.”
“헤, 감사합니다.”
홍조 띤 얼굴로 시선을 떨구는 클로이. 나는 그녀를 지긋이 내려 보았다.
나를 위해 한껏 힘을 내 준 클로이와 조원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준 덕에 생채기 하나 없이 그 많던 적을 전부 처치할 수 있었다.
감상에 젖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내 목적을 위해 움직여 준 그들에게 답례성 멘트를 아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도박 수도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갔고.’
이 사태에서 가장 큰 성과는 다대일 전투에 대한 대안이었다. 앞으로도 무장 강화를 위해 던전을 돌 일이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던전에는 마수들이 무리를 지어 기거하고, 그때마다 조원들의 손을 빌릴 수는 없는 노릇.
다대일 전투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위급 시 던전 안에서 객사할 위험이 컸다. 그렇기에 밤새 방법을 강구해 봤는데 나름 잘 먹혀들었다.
물론, 아직 발효 시간은 일 분이 안 되지만, 무통의 가호 지속 시간도 사용 빈도에 맞춰 차츰차츰 늘어갈 것이다. 게다가 ‘무장의 격’을 높일수록 격통도 줄어들 테니 전망이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던전 클리어 조건이 버팔로 스무 마리 토벌인데, 어쩌다가 두 배 이상을 토벌했네. 뭐, 사실상 강검마 너 혼자 전부 해치워서 염치가 없긴 한데…….”
스피드 웨폰은 멋쩍게 콧등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중간고사 때 머맨 무리 토벌 때 내가 아무것도 안 했잖아. 그냥 이걸로 퉁친다고 생각해.”
“야, 그때 너 혼자 머메…….”
녀석은 슬쩍 사키 료조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뭐, 그래. 아무튼 고맙다. 솔직히 던전 클리어를 떠나서 다 비명횡사할 뻔했잖아. 그건 그렇고, 이 물소 새끼들 오늘 상태가 왜 이랬지?”
웨폰은 미간을 짚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 말에 사키 료조가 버팔로의 시체를 슥 둘러보고서 입을 떼려던 순간.
스스스스스스―
던전의 중심부 쪽에서부터 일순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시감. 바람이 몰고 오는 한기와 동시에 조원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인위적인 기류에 몸에 기억된 감각이 확장되었고, 내 미간이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마력의 공명. 중간고사 때 머메이드가 뿜던 기운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살벌한 기운. 팔뚝에 돋은 소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사태 파악은 둘째 치고, 일단 도망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스산한 마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의 몸을 휘감는다.
“씨발, 이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