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화(4/300)
4화 반 배정 시험 (2)
첫 스승님은 전직 건달이었다.
본인 말로는 동네 양아치 깡패가 아니라 칼 솜씨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사람이라는데…….
머리가 다 벗겨진 배불뚝이 양반이 주름잡을 정도였으면, 나는 한 세기를 평정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믿기진 않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
비록 피로 얼룩진 과거를 가진 양반이었지만.
칼로 여러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것에 대한 속죄로 스스로 손목 하나를 자르고, 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일식집을 차렸다고 내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입버릇이 안 좋다는 거 빼고, 실력만큼은 ‘진짜’여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정말 미워하고 싶은데 미워하기가 힘든 그런 사람.
‘사장님, 왜 조폭들은 사시미를 써요?’
‘그게 왜 궁금한데?’
‘아니, 그냥요. 영화 보면 개나 소나 사시미 들고 설치잖아요. 실제로도 그런가 궁금해서요. 검은 양복 가랑이에 하나씩 차고 담가! 이러면 와아아! 하면서 달려 나가고.’
‘하여간 요새 미디어가 젊은 놈들 망친다니까, 쯧쯧. 깡패 새끼들 태반이 양복은 고사하고 티셔츠 한 장 못 산다, 새끼야.’
그러면서도 사장님은 검지와 중지의 틈새를 5센티 정도로 벌리고서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몸이 날붙이가 피부를 파고들 때 수축한다는 건 너도 칼 밥 먹는 놈이니까 알고 있겠지? 생각을 해 봐, 넙데데한 식칼로 살을 찌르면 그게 잘 빠지겠냐, 안 빠지겠냐? 사시미는 폭이 좁으니까 상대방을 여러 번 찌르고 뺄 수가 있는 거지.’
‘근데 왜 찔러요? 생선은 베면서. 사람은 안 되나?’
‘야, 이놈아. 이딴 젓가락만 한 칼에 그이면 퍽이나 잘 잘리겠다. 생선은 누워 있으니까 베는 거고, 서 있으면 식빵도 한 방에 안 잘려, 새꺄!’
‘만화 같은데 보면, 쓱- 하면 삭- 하고 베이던데……. 그냥 사장님의 능력 부족 아닌가요……?’
‘칼의 신이 와도 그건 안 되니까, 헛소리 말고 저리로 가서 칼이나 갈아!‘
18년이 지났지만, 기가 찬 표정으로 등짝 스매시를 때리던 스승님의 얼얼한 손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 * *
서걱―
미끈한 칼날의 궤적이 은빛 살을 그렸다. 건틀릿을 낀 팔 하나가 공중에 붕 뜨더니 툭 바닥에 떨어졌다.
“어?”
팔이 잘린 마오 슌 본인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절단면이 어찌나 깔끔한지 몇 초 지나서야 피 분수가 솟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씨-바아아알! 챠오! 챠오 니-마!”
곧 이은 후끈함에 그제야 마오 슌은 비명을 질렀다. 강검마는 재빠르게 사시미를 손바닥 위에서 굴려 역수로 고쳐 잡고 마오 슌의 목을 때렸다.
휘두르는 강검마의 어깨가 순간 흐릿해졌다.
그것이 마오 슌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의 목에 붉은 선이 생겼다. 곧이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던 머리가 떨어졌다. 데구르르 구른 머리가 뒤에 서 있던 마오 진의 발끝에 부딪혔다.
“슈, 슌!?”
서늘하게 비어 버린 마오 슌의 눈동자.
의기양양하던 표정이 점차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 마오 진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분명 똑똑히 봤는데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앞의 녀석이 칼로 슥- 하고 선을 그리자 삭- 하고 살덩이가 버터처럼 잘려 나갔다.
검에 대해 잘은 몰라도, 상식적으로 사람의 몸이 이토록 쉽게 토막 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심지어 뼈와 뼈마디를 정확히 가르며 파고든 듯 뼈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마저 없었다.
저런 묘기가 인간에게 가당키나 한 건가. 그것도 저딴 싸구려 회칼로.
두-근.
심장의 고동이 안에서 밖을 두드린다.
두-근.
녀석의 전투태세는 사람에게 처음 칼을 겨누듯 어설펐고, 5~6m 눈앞에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칼자루는 손바닥에 착 감겨 붙어 있었다. 신체 일부처럼.
씨발, 저 새끼는 뭐야?
마오 진은 생각했다. 철왕가(家)의 천재 쌍둥이라 불리는 그였기에, 재빠르게 두뇌를 굴렸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은 지쳤다.’
그렇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비록 쌍둥이 동생을 단칼에 벤 건 충격을 넘어선 퍼포먼스였지만, 직접적인 패인은 방심이었다.
마오 진은 좀먹고 들어오는 공포를 애써 억누르며 엉거주춤하게 마오 슌의 잘린 팔을 주워 들었다.
아직 녀석은 아까부터 뭔가를 중얼거릴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24… 23… 22…….”
…숫자를 왜 세는 거지? 마오 진은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상념을 떨치고 동생의 건틀릿을 자기 오른팔에 장착했다.
철컥.
“흐읍!”
둔중한 무게감과 압박감에 양팔의 근육들이 팽창한다.
가문의 비보이자 S급 무장.
‘시큐리티 건틀릿.’
쌍둥이에게 한쪽씩 계승되어 힘이 양분되었지만, 이 무장은 한 쌍을 이뤘을 때 비로소 사용자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낸다. 기골이 한없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지자 마오 슌의 입가에 비릿한 호선이 그려졌다.
“뭔 잔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뒤져라, 파오차이 새끼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미 몸에 스며든 공포는 쉬이 떨치지 못했다. 그럴수록 겁을 지워야 한다. 마오 진은 양손을 틀어쥐고 가호 3개를 동시에 발현시켰다.
방어력을 증폭시켜 주는 ‘결연의 가호’, 적에게 순식간에 도약하는 ‘개입의 가호’와 권의 위력을 높여 주는 ‘기개의 가호’. 특진반의 천한 핏줄들은 꿈도 못 꿀 계위의 가호들.
“머리통을 터트려 주마!”
마오 진이 쩍- 하는 발 구름과 함께 순식간에 지근거리에 다가간 순간,
녀석의 그림자가 시야에 길게 늘어지며 사라졌다.
휙⎯
공기가 썰리는 짧은 소리.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파열음.
푹―
푹―
콱―
푹―
콱―
푹―
푹―
푹―
콰득―
동시에 서늘한 화끈함이 전신을 찔렀다.
목이 돌처럼 굳어 고개가 꼼짝하지 않았다.
곧이어 입안에서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며 붉은 액체가 거미줄처럼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오 진은 간신히 눈알을 굴려 몸을 살폈다.
명치와 목에 하나, 손목과 발등에 네 개, 양쪽 갈비뼈와 하복부에 세 개.
총 9개의 칼이 손잡이까지 틀어박혔다.
어― 으아― 억―
성대가 잘려 나가 비명이 목 아래에서 삼켜졌다.
서서히 시야가 아득해져 간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혼자서 숫자를 중얼거린다.
“…4… 3… 2… 1.”
그 순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점점 흐릿해져 가는 눈동자로, 마오 진은 그 장면을 똑똑이 담아냈다.
사람의 형상을 한 귀신이.
검을 든 채 하늘에 통곡하고 있었다.
* *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몸을 조금 움직여 보자 사륵- 하는 익숙지 않은 이불의 촉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흰색 커튼이 삼면으로 나를 가리며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고, 익숙한 약 냄새가 내부를 메웠다. 병원인가?
“으응…….”
살짝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입에서 콧소리 섞인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숨 쉬는 게 갑갑해 코에 힘을 주니 돌돌 말린 피 묻은 거즈가 뽕, 하고 빠졌다.
촤르륵―
때마침 누군가 오른쪽 커튼을 열어젖혔다.
“학원장님, 학생이 눈을 떴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크게 소리치자 다가오는 발소리들.
“어머, 정신이 들었나 보네.”
“…….”
검은 로브를 입은 녹발의 미녀와 그 뒤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백발의 노인. 미녀가 가볍게 손짓하자 의사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이 사람들이 왜?’
처음 보지만 알고 있는 얼굴들이다.
반세기 전, 마왕의 6군단장을 토벌한 칠성 영웅 중 두 명.
그중에서도 인류 최강이라는 검제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과 아카데미의 학원장인 현자 메디아 포이즌. 리빙 레전드들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신수가 훤하다, 얘. 몸은 좀 괜찮아?”
“아, 예. 뭐…….”
학원장이 침대 귀퉁이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옷 사이로 보이는 살색. 눈길이 안 가려야 안 갈 수가 없다.
그런 내 모습을 봤는지 그녀는 로브를 살짝 걷고선 바싹 몸을 붙여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얘 좀 봐. 아직 미열이 좀 남은 것 같은데?”
메디아는 가져다 댄 손을 자기 사타구니 쪽으로 옮겨 열을 비교하는 시늉을 했다. 보통 이마에 가져다 대지 않나?
몽롱한 목소리와 요염한 미소의 합은 건강한 사춘기 소년인 내겐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메디아는 외모만 저렇지, 알맹이는 일흔 줄일 터.
나는 속으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이젠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프면 말만 해. 이 누나가 옆에서 간호해 줄 테니까. 단. 둘. 이.”
메디아의 손가락이 로브의 첫 단추로 향했다. 애국가 4절이 끝나 가던 찰나, 검제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메디아, 장난은 그쯤 하지.”
“어휴, 틀딱 새끼. 그래그래.”
메디아는 금방이라도 훌렁 흘러내릴 것 같던 옷매무시를 다듬으며 그를 쏘아본다.
살았다.
‘젠장, 검제 님! 믿고 있었다고!’
욕구에 휘둘려 몸이 반응했다면, 진짜 좆됐겠지.
퇴학도 퇴학이지만 사유가 만에 하나 ‘내일모레 칠순인 학원장에게 꼴려 버린 변태 신입생인 건에 관하여.’라고 기재될 경우…….
자살하고 세 번째 생을 준비하는 게 나을지도?
“…정말 그렇게 부를 건가? 학생도 앞에 있는데?”
“네가 그렇게 고집하는 기사도가 ‘한 번 뱉은 말은 지킨다.’ 아니야? 설마 한 입으로 두 말? 천하의 검제 양반이?”
검제는 메디아의 비아냥을 한 귀로 흘리고선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형형한 금안은 나를 가늠해 보려는 듯이 투기를 살짝 뿌렸다.
청명할 정도로 따가운 눈빛에 저절로 갈비뼈가 오므려진다.
“자네, 이름이 뭔가.”
“강검마입니다.”
“본론부터 말하지. 강검마, 자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
솔직히 어떻게 됐는지 드문드문 기억은 났다. 사시미를 들고 쓰레기 쌍둥이를 싹둑싹둑 베던 장면이 잽싸게 뇌리를 스쳤다. 그 이후론 안구에 스며들던 푸르스름한 풍경이 마지막.
‘…….’
그때의 감각은 내 것이 아니었지만, 분명히 나였다. 생각하는 동안 대답이 지체되자 검제의 허리께에서 들썩거리는 시퍼런 검.
‘여기서 저 괴물한테 찍혀 봤자 좋을 게 없어.’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해야만 한다.
그가 어떤 성향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부류. 하지만 나는 저런 상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이미 몸에 배어 있다.
요식업만 20년, 다른 말로 하면 손님만 20년 가까이 접대했다는 소리.
인류 최강에게 한국의 서비스 정신을 보일 차례다.
설명은 명확히, 변명은 간결히.
“아무리 반 배정 시험이라고는 해도 그 둘의 행동은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 처사는 분명 과했다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벌이라면 달게 받고, 어떠한 처우라도 군말 없이 따르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지그시 나를 응시하는 검제.
솔직히 괜찮은 답변이었던 것 같은데, 표정을 보아하니 원하던 대답이 아닌지 반응이 별로 좋지 못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계속 저자세로 일관하다간 저 꼰대 돈키호테 기사님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만다. 남자는 상황에 따라 허세도 부려야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상남자의 블러핑(Bluffing).
한국에선 그것을 ‘가오’라고 불렀다.
나는 담담한 얼굴로 일렁이는 금빛 눈을 마주 봤다.
“…….”
“…….”
어색한 침묵이 가라앉던 중.
둘 사이에서 번갈아 보던 메디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틀딱아. 젊은 애 상대를 그렇게 못해서야 쓰겠니?”
메디아가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찌푸린 표정을 반색하고 나를 향해 헤실거린다.
“말은 저렇게 해도, 네가 기절해 있을 때 막힌 혈들을 뚫어 준 것도 지크야. 나이를 먹으면 고집만 는다잖아? 내 얼굴을 봐서라도 봐줘, 헷.”
“그건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메디아. 흠, 흠.”
“새끼, 쑥스러워하기는.”
‘검제가? 왜?’
어쩐지 쑤셔 오는 삭신과는 달리, 몸이 깃털처럼… 은 좀 오버고 물에 젖은 깃털처럼 축축하게 가벼운 느낌이다.
“검마 네가 기절해 있던 동안, 아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상을 뽑아서 교직원들이랑 같이 봤어. 가련한 여학생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왕자님! 아니, 영웅 그 자체였다니까!”
한쪽 눈을 끈적하게 찡긋하는 메디아. 저 눈빛, 검제와는 다른 의미로 나를 먹잇감으로 보는 듯하다. 침… 도 좀 흘리는 거 같은데?
“그리고 시험 중의 네 행동을 문제 삼겠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솔직히 걔네는 가문에서 아카데미 원로들을 구워삶아서 입학 처리가 된 건데, 그 밥맛 쌍둥이 둘이 알아서 동시에 자퇴하더라? 어찌나 고소하던지!”
분명 그 새끼들과 클래스는 달랐겠지만, 같이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 생각하면 치가 떨렸는데. 자퇴했다는 말에 일순간 안도감이 몰려왔다.
“우리는 캐묻자고 온 게 아니라, 알려 주러 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예? 뭐를요?”
그녀의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걸렸다.
“검마, 네가 수석이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