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0화(40/300)
40화 물소 던전 (4)
“뭐야!”
참상을 훑는 검문소 직원의 눈에 경악이 만연했다. 안개가 일 정도로 낭자한 핏물. 폭이 족히 50M는 되는 통로에 가림막처럼 솟아 있는 마수의 산.
직원은 몇 번인가 입을 뻐끔거리고선 풀린 동공을 다잡았다. 한 박자 늦게 깨워진 정신은 이제야 서서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이, 씨발. 잘못하면 좆되게 생겼네.”
파리한 안색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직원. 가득 차오르는 두려움에 전신의 뼈가 튀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 상념만이 머릿속에 가득 들이 채운다. 일개 생도들이라 생각했던 애새끼들이었는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조금 치켜떠지고, 시름이 깊어져 갔다. 수 분 만에 개구리 같은 얼굴에 팔자 주름이 좀 더 파였다.
“좆됐다.”
여 교관에게 호언장담한 것이 무색하게, 마석을 사용해 광폭화시킨 버팔로 수십 마리가 전부 다 전멸 상태다.
버팔로 던전 직원 경력만 10년. 그보다 이곳에 대해 빠삭한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확신했었는데…….
직원은 표정을 사정없이 구기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힘이 많이 들어가 머리카락 한 움큼이 손아귀에 끌려 나왔다.
“씨이바알!”
안 그래도 유전적 탈모가 진행 중인데, 과도한 스트레스가 겹치니 이마 선과 정수리가 상봉하기 일전이다.
대한민국 최대 카지노인 철원랜드에서 카드를 만져 쌓인 채무 빚 20억.
전 재산을 날린 지는 오래였으며, 툭하면 집으로 찾아와 살인 협박을 가하는 채권자들까지 있었다.
그렇게 빚더미의 무저갱 자신을 호아킨 아카데미의 교관이라 칭하는 여인이 찾아와 제안했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빚을 갚아 줄게요.’
짙은 남빛을 띤 머리칼에 모델 같은 기럭지의 여인. 옅은 건조함이 스며든 자색 눈동자는 마주치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거스를 경우 목이 제자리를 잃을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그녀의 제안 또한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석(魔石)을 건네고는 버팔로들을 광폭화시킨 후. 테이밍해 ‘강검마’라는 생도를 콕 집어 그가 들를 때 일제히 풀 것.
또 하나는 그 마석을 이용해 던전 심충부에 굳게 닫혀 있는 석문을 열어 둘 것.
암살 사주나 다름없는 제안이었지만, 인생의 밑바닥을 기고 있던 그에겐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20억이라는 빚 변제와 함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면 마석을 가져도 좋다는 조건. 암시장의 경매에 올리면 현찰을 짭짤하게 챙길 수 있으리라. 그만큼 희소하고 가치 있는 물건이니까.
“…그러면… 한 탕 더 노릴 수 있어, 히히.”
아직 비빌 만한 상황이었다. 직원의 비열한 낯에는 여전히 수심이 깊게 서려 있었지만, 그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애써 조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도장처럼 찍힌 피 묻은 발자국들. 어느 지점부터 무언가에 질질 끌려가듯 줄처럼 석문 쪽을 향해 뻗어 나가 있었다.
“어린놈의 새끼들, 확실하게 조져 주마.”
직원은 두 손에 침을 뱉고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식은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방울과 함께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외날 도끼형 대인 무장을 탁 틀어쥔 뒤, 비척거리며 던전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발걸음의 기저에는 삐딱한 간절함 따위가 담겨 있었다.
* * *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다.
‘…씨발.’
휘몰아치는 마력의 기류에 삼켜지듯 이끌려 온 곳이 히든 던전 안이라니. 이쯤 되니 상황이 놀랍기는커녕 짜증이 날 지경이다.
아니, 애당초 설정상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던전의 석문은 왜 열려 있던 것이며, 왜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나와 조원들이 문지방을 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닫혀 버리는 석문.
던전에 입장하기 전부터 검문소 직원의 수상쩍은 눈초리에 약간의 불안감이 일긴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 누가 알았으랴. 내가 신도 아니고.
‘그 직원 새끼…….’
모르긴 몰라도 곁눈질로 나를 흘깃하던 직원의 눈빛으로 대충 짐작은 됐다. 플레이 당시와는 판이한 버팔로의 성정도 그렇고. 이 빌어먹을 히든 던전의 문을 열어 놓은 것도 그 새끼리라.
하지만 불현듯 의문이 여렸다.
이 히든 던전의 석문은 중반부 즈음의 퀘스트 보상인 ‘기간트의 마석(魔石, Mana Stone)’을 통해서만 열 수 있을 터였다.
기적의 가호 M에서 플레이어 시점으로는 처음 드롭되는 마석.
스토리의 초반부에서 중반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기간트(Gigant) 던전’의 최종 몹을 토벌하면 드롭되는 광석 아이템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스토리의 중반부에 입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기간트의 마석을 획득한 이들은 곧 어이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일곱 단계의 희귀도 중 두 번째인 7성급 아이템인 주제에 정보창에 별다른 설명도 없었기에, 공략 글을 보지 않은 유저들은 강화 소재로 돌려 버렸더랬지.
하지만 그 쓸모 없어 보이던 마석이 히든 던전의 열쇠라는 걸, 유저들은 뒤늦게 깨달았었다.
심지어 ‘기간트의 마석’은 몇 안 되는 일회성 드롭이었기에, 유저들의 뒤통수가 꽤나 얼얼했을 것이다.
게다가 별 볼 일 없는 히든 던전이었으면 덜 억울했을 테지만, 이 던전의 보상은 무려 고유 가호인 ‘전이(轉移)의 가호’.
소유자의 가호 중 하나를 무장이나 사물 따위에 전이시켜 입히는 가호. 단일 가호로는 성능이 없다시피 하지만, 그 시너지가 어마어마했다.
전이의 가호를 운용해서 추후 레온의 무장이 될 ‘발뭉’에 상황에 맞게 가호를 입히면 적들을 그야말로 썰어 넘길 수 있었다.
음과 양의 성향이 공존하는 발뭉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자, 검에 내재된 힘을 증폭시키게끔 하는 것도 전이의 가호 없이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가호를 히든 던전에 꼭꼭 숨겨 놨으니, 기간트의 마석을 강화 소재로 갈아 버린 유저들의 원성은 안 봐도 눈에 훤했다.
당연히 우리 기적의 가호 M의 게임사께서는 무시로 일관. 가슴이 웅장해지는 K-운영의 모범을 솔선해서 보이셨다.
천만다행으로 당시의 나는 본업으로 바빴던 시기였던지라, 인벤토리에 박아 두고 까먹었었기에 이런 불상사를 피해 갈 수 있었지만.
“하.”
허탈한 한숨을 내쉬니 입에서 김이 피어 올랐다.
동굴형의 던전이라 온도가 낮은 건 이해가 갔지만, 이곳의 공기는 유독 뼈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분위기 또한 무겁다. 기분 탓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전신을 바늘처럼 찔러 대는 마기(魔氣)에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메스꺼운 속을 달래며 이마를 감싸는 조원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킨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이곳까지 끌려오는 동안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
사키 료조만 교복 치마가 맨바닥에 쓸려 치마 옆이 트이듯 허벅지 위치까지 쭉 찢어져 있었다. 치마의 기장이 긴 편이라 그런 듯했다.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치마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냈다.
모양새가 어째 옆 나라의 옷인 치파오를 연상시킨다. 찢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곧게 뻗은 맨다리. 유심히 보니 치마만 찢어졌지, 생채기는 없었다.
‘운이 좋군.’
조원들의 상태가 양호한 것을 확인한 후, 현황을 살폈다.
돔 양식의, 높이만 족히 30M는 될 법한 반구형의 천장. 아카데미의 연무장만 한 널찍한 면적의 공동. 벽면엔 띠처럼 줄지어진 횃불들이 나직하게 일렁였다.
그 와중에 공동의 정중앙은 그림자가 드리워 캄캄했다. 안력을 돋우어 그곳을 쳐다봤다. 검신의 가호 덕인지 어느 순간부터 밤눈이 좋아졌다.
눈을 게슴츠레 좁히자, 천천히 암전막에 싸인 형상이 망막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큰 바위를 옥좌 삼아 상체를 굽힌 채 앉아 있는 거체.
버팔로 던전의 히든 보스. A급 마수, 미노타우로스(Minotauros).
유저들 사이에선 옆집 게임에서 따온 이름을 붙여 친숙하게 ‘카우 킹’이라 불리던 마수였다.
친근한 별칭과는 별개로 실물은 그다지 친근하지 않았다.
머리는 마수 버팔로와 같지만, 어깨 아래는 인간의 몸체와 비슷하다. 한 손에 틀어쥔 긴 양날 도끼를 지팡이처럼 짚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히든 보스라는 특성상 일개 필드 몹에 불과한 쩌리 마수들과는 달리 일신의 무력이 마인에 버금간다지.
사실상 마법만 못 다룬다 뿐이지, 작중에서는 마인 취급인 매우 강력한 마수였다.
게다가 양옆에는 신하가 왕을 보좌하듯, 미노타우로스의 열화 버전 느낌의 쌍둥이 마수 한 쌍도 보였다.
플레이 당시에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각각 좌우정(左牛政), 우우정(右牛政)이라 불리던 B급 마수들.
특히 마수 쌍둥이는 각 개체의 무력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지만, 두 힘이 합쳐지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혼자서 저 셋 전부를 상대하는 건 무리다.’
양 눈을 감고 있음에도 바닥에 스며드는 기운에 마른침이 삼켜졌다.
“…검마 군, 저건 대체.”
옆에 다가온 클로이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척 감지에 특화된 그녀도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검지를 클로이의 입술에 갖다 대어 조용히 시켰다. 그녀는 알겠다는 듯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웨폰과 사키는 아직 눈이 어둠에 적응이 덜 됐는지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둘은 내가 말없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에 입을 다물어 주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석문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날붙이 따위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것 같은 경도.
굳게 닫힌 단단한 석재 문에 사선으로 새겨진 붉은 선 한 줄. 상태창에 적혀 있던 ‘【???】의 선’이 분명했다.
‘조용히 나가자.’
무통의 가호 40초는 물소들 잡는 데 전부 써 버렸다. 그렇기에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저 녀석의 소재라면 무장 강화는 수월하겠지만, 내게는 목숨이 더 소중했다.
다이쏘 사시미를 잡고 검신의 가호를 발현하면 문을 베기는커녕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겠지. 그나마 무라사메를 사용한다면 죽을 만큼 아프겠지만, 버틸 순 있으리라.
잠시 고민을 마친 나는 다이쏘 사시미 한 자루를 입에 물었다. 무기로서의 용도가 아닌 고통을 참기 위한 재갈이었다.
이어서 품 안에 고이 아껴 둔 무라사메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뒤편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감각. 반사적으로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미노타우로스의 한쪽 귀가 쫑긋거렸다. 그리고 굳게 다물어져 있던 두 눈이 서서히 열리는가 싶더니 곧 부릅떠진다. 그리고는 앉고 있던 바위에서 천천히 엉덩이를 떼기 시작했다.
쿵!
미노타우로스는 양날 도끼의 밑동으로 바닥을 세차게 찍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마수들도 광포한 기세로 카우 킹에게 경배하듯 포효했다.
““음무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뭐야?!”
애써 입을 틀어막고 있던 웨폰이 헛숨을 삼켰다.
쿵!
미노타우로스가 바닥을 한 번 더 찍자 횃불들의 일렁거림이 거세졌다. 이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공동의 내부를 전부 비추었다.
그제야 미노타우로스와 마수 둘을 눈에 담은 조원들. 우악스러운 양날 도끼를 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그들의 등줄기엔 식은땀이 맺혔다.
이미 저 녀석이 깨어난 시점에서 사지 멀쩡하게 도망치기는 글렀다.
문을 썰어 버리고, 밖으로 향한다 한들 조원들 전부의 목숨을 장담할 순 없었다.
‘결국은.’
나는 이를 악물며 방향을 꺾었다. 차갑게 식은 이성과 지각력이 빠르게 해법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중간고사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마인 머메이드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지만, 미노타우로스는 잡아 본 적이 있었다.
만전이라면 혼자서 저 세 마리를 충분히 잡을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무통의 가호 제한 시간을 초과해 무리였다.
그렇기에 활용할 수 있는 건 전부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다소 도박 수에 가까울지라도 말이다. 나는 입에 물린 다이쏘 사시미를 뱉고서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웨폰, 나한테 고통 경감 계열의 버프 줄 수 있어?”
“어, 가능해.”
내 얼굴을 보더니 새하얘진 낯빛이 어느 정도 돌아온 웨폰.
와중에 미노타우로스는 천천히 우리 쪽을 향해 전진한다. 나는 표정에서 다급함을 지우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몇 분 정도 가능해?”
“최대가 2분 정도야.”
“충분하네. 대신 내가 저놈과 싸우는 동안 쉬지 않고, 넣어 줘. 1초라도 흐트러지면 아마 난…….”
나는 손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웨폰은 당황한 기색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옅게 웃으며 녀석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아이씨. 알았어. 강검마, 네가 하는 말이니까.”
“사키랑 클로이는 옆에 잔바리들 좀 부탁할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사키는, 끄덕였다. 활을 꽉 틀어잡은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나는 설핏 웃음을 짓고선 다가오는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사키는 나를 보며 눈만 깜빡였다. 그녀의 얼굴에 들어찬 격정이 일순 녹아내렸다.
조원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 결의가 눈동자에 깃들어 있다.
“아까처럼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