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1화(41/300)
41화 물소 던전 (5)
무라사메를 감고 있는 노끈이 거의 벗겨질수록 첨예한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표정으로 입술을 꽉 오므려 리코더의 끝동을 물고 있는 웨폰.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좀 더 앞으로 나갔다. 노끈이 거의 다 벗겨진 무라사메를 내려다보았다.
‘실전에서는 처음이네.’
사실 무장도 무장이지만, 그보다는 무통의 가호에 의지하지 않고서 적을 상대한다는 게 내게는 가장 큰 도박 수였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E급이긴 해도 다이쏘 사시미보다는 그 격이 아득히 높은 무라사메라는 것과 웨폰의 서포팅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면이 구겨질 정도로 고통스럽긴 하겠지. 나를 덮칠 격통을 생각하니 부르르 몸이 떨렸다.
나는 시선을 살짝 올려 정면을 쳐다봤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다가오는 반인반우의 마수. 나를 노려보는 위풍당당한 시선은 전사의 그것과도 같았다. 마치 호적수를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그 모습에 찌푸려졌던 이맛살이 펴지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요란스럽게 이 히든 던전에 삼켜졌을 때조차 저 녀석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미노타우로스가 눈을 뜬 건 내가 문을 베기 위해 무라사메를 뽑아 들었을 때. 그리고 흐릿한 쇳소리를 감지한듯 씰룩거리던 녀석의 귀.
뿐만 아니라 녀석 입장에선 기습할 타이밍이 차고 넘쳤었다. 그러나 녀석은 굳이 공동의 시야를 밝히고선, 내가 준비를 마치길 기다렸다.
‘…….’
사방이 막힌 히든 던전 안, 미노타우로스와 마수 쌍둥이. 저 녀석들은 얼마나 긴 세월을 이곳에 있었던 걸까.
미노타우로스의 시선을 마주했다. 오롯이 나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는 녀석. 쌍둥이 마수들도 그와 거리를 벌려 산개했다. 앞으로 벌어질 격전을 방해치 않겠다는 듯.
그 모습이 마수들치고는 꽤나 경건했다. 한낱 짐승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녀석들은 그저 시련. 정사대로라면 주인공 레온을 보다 단단하게 담금질해 줄 시련이었다.
나는 무라사메의 칼자루를 결의를 담아 단단히 잡았다.
며칠 전, 검제 양반과 치렀던 심상 대련이 생각났다. 칼날이 겹칠 때 튀어 대는 불똥. 칼잡이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평시에는 차갑게 온도를 유지하던 가슴도 칼을 휘두른다는 생각에 벌겋게 익은 금속처럼 달궈졌다.
‘마수에게 정이라도 들겠군.’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선 앞을 바라봤다. 인류의 적임에도 미노타우로스와 사력을 다해 무기를 맞대고 싶었다.
“음메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미노타우로스는 내 마음가짐에 응하듯 턱을 들어 크게 포효했다. 콧구멍에선 열 띈 콧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쌍둥이 마수들도 각자 창날을 꼬나 쥐었다. 움직임은 느릿했으나 지면은 깊게 파였다.
스르륵.
“그간 지루했을 테니, 평소보단 길게 놀아 주마.”
뾰족한 사시미의 칼날. 횃불에 빛무리 진 칼날의 빛이 불티처럼 터져 나온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서 호흡을 짧게 가다듬었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귓가에 이지적인 여성의 음성이 맴돌고 게슴츠레 떠지는 두 눈.
++++++++++++++++++++++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뒤이어 스피드 웨폰의 선율이 바늘처럼 고막을 찔러 댔다.
* * *
강검마의 얼굴이 고통으로 와락 일그러졌다. 폐부가 관통당한 듯한 격통. 목에서 피가래가 몰려오는 걸 삼켜 냈다.
고통의 몸부림을 토해 내고 싶었지만, 그는 입술을 떠는 것에서 그쳤다.
한순간의 빈틈이 생과 사를 결정짓는다. 강검마는 안력에 힘을 줘 눈을 크게 떴다.
“…하아.”
그의 잇새로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와 마주한 미노타우로스도 코뚜레를 비집고 콧김을 내뿜었다.
인간과 마수가 발산하는 열기가 공동을 가득 메워 간다. 지성과 야성이 혼재된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갔다.
삐리릴리리릭!
스피드 웨폰의 리코더 소리가 결투의 시작을 알리며 울렸다.
고통 경감의 가호가 발현됨에도 속을 긁는 통증. 하지만 강검마는 고개를 들어 씨익 웃어 보인다. 오히려 전신을 후비는 격통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
“음메에에에에에에에에에!”
우렁찬 임전의 함성을 터뜨리는 소의 왕. 창대의 끝동으로 바닥을 크게 찍더니 강검마에게 달려들었다. 짐승의 움직임이었다. 발굽 소리에 맞춰 벽에 걸린 횃불들이 크게 흔들렸다.
팟-밧!
강검마도 팔을 늘어뜨린 채로 뛰어 나갔다.
속도가 평소 같진 않았다. 그러나 몸놀림은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무통의 가호를 거둬 내니 잠자고 있던 전투의 감각이 촉각을 깨워 낸다. 칼자루가 손바닥에 감겼다. 강검마의 입꼬리가 좀 더 올라갔다.
콰드드득!
카우 킹의 도끼가 거세게 내리찍혔다. 강검마는 상체만 옆으로 살짝 틀어 피해 낸다. 풍압에 잘린 검은 머리카락 한 줌만이 느릿하게 흩날렸다.
강검마는 틀어진 상체의 관성을 실은 팔을 휘둘렀다. 섬월(纖月)의 호선이 마수의 팔을 노렸다.
까드득!
카우 킹은 창대의 각도를 세워 칼날을 막아 내고서 날을 세워 강검마를 공격했다. 사나운 도끼날이 뒤늦게 지나갔다.
마수의 동체 시력이 인간을 쫓았다. 허공에서 넘실거리는 인간의 그림자. 떠오른 강검마는 몸을 말며 추진력을 더해 달려들었다.
쇠가 서로를 갉아 먹는 사나운 소음. 기이한 각도로 흘러 들어오는 인간의 검극.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강검마의 그림자만 밟을 뿐이다.
깡!
검격을 막아 내는 둔중한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의 절반만 한 덩치의 인간이 내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묵직함. 짐승의 팔에 굵은 핏발이 맺혔다.
“음메에!”
카우 킹은 짧게 투레질하곤 창대를 휘둘러 강검마를 밀어냈다.
넝쿨처럼 뒤엉켜 있던 칼날이 떨어지며 날아갔다. 낙법을 치는 강검마의 움직임은 짐승이 보기에도 곡예와도 같았다.
카우 킹은 도끼를 멀리 뻗었다. 무기와 체격에서 비롯된 리치 차이를 이용한 일격. 전투에 목말라 있던 마수의 야성에 지성이 더해져 간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도끼날이 바닥을 깊게 찍었다. 짐승의 근육이 꿈틀거리면 땅이 흔들렸다.
콰강!
충격의 여파로 흙먼지가 일었다. 카우 킹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시야를 확보했다.
“음, 음무?!”
똬리를 튼 뱀처럼 살포시 창대를 지르밟으며 삐딱하게 서 있는 강검마. 똘망똘망한 소의 눈망울이 크게 뜨였다. 지켜보고 있던 동공도 크게 열렸다.
“세상에.”
사키 료조가 강검마의 격전을 스치듯 보고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일순 그 틈을 타 좌우정의 창날이 초승달의 궤적을 그리며 날라왔다. 그녀는 허리를 꺾어 일격을 피한 뒤, 적 시야의 사각을 노리며 시위에 화살을 쏘아 냈다.
피융―, 피융―
열풍으로 인한 기류, 공기의 하중, 빛에 의한 굴절을 한순간에 계산해 내어 움직임으로 치환해 냈다.
틈틈이 시위에 메겨지는 활들은 낭비 없이 정확하게 적의 급소를 공격했다.
만만한 마수는 아니었지만, 치밀한 계산과 S급 무장 적궁백시가 어우러지니 적은 맥을 추리지 못했다. 마수는 금세 고슴도치처럼 전신에 화살이 박혀 버렸다.
“휴우, 여기는 얼추 끝났네.”
한 차례 여유가 찾아오자, 사키는 땀을 훔치며 강검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그녀의 홍채가 동그랗게 열렸다.
분명, 강검마는 그 초인적인 신속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속도를 늦추고 일신의 힘으로 마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당연히 인간의 완력은 마수의 발톱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강검마의 힘에 마수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하는가. 겹겹이 늘어진 궁수의 눈은 빠르게 이유를 찾아냈다.
극에 달한 기술의 정교함.
근육의 쓰임, 자세와 보폭, 위치 에너지를 활용한 검극은 허점만을 집요하게 노려 적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마수라 할지라도 적은 포유류. 관절이 비틀리는 방향으로는 제힘을 발휘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에 대한 방증으로 강검마의 공격을 받아 내는 미노타우르스의 거구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다만, 위의 것들은 이론상의 이야기다. 이론과 실전의 괴리는 천지 차이다.
게다가 실전 경험이 빠삭한 고수여도 목숨이 촌각에 달하는 상황에선 냉정을 잃기 마련. 그 심상의 동요를 무디게 하는 것이 경험이라는 것이리라.
그나마 그에 가장 근접한 자는 사키 료조가 알고 있는 한 한 명밖에 없을 터였다.
“…검제 지크프리트.”
사키 료조는 작게 중얼거렸다. 며칠 전, 강검마가 검제와 대련했다는 소문. 들리는 말로는 검제가 생도를 상대로 오라를 피워 냈다지. 그녀의 두뇌가 재빠르게 굴렀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뇌리에 떠돌던 의념들이 조금씩 조립되어 나간다.
‘설마……?’
강검마를 바라보는 사키 료조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강검마는 칼자루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창대를 밟은 그의 발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간다.
마수는 생각했다.
인간은 만만치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 온 호적수, 아니 그 이상이었다. 카우 킹은 입을 크게 벌렸다. 초식 동물처럼 고른 치열이 희게 번들거렸다.
카우 킹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강검마의 모습이 거울처럼 반사됐다. 길게 늘어지는 붉은 안광.
검을 잡은 귀신의 모습에 본능이 마수의 거체를 일순 경직시켰다.
궁지에 몰린 카우 킹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발톱은 없었지만, 그 위력은 웬만한 생물은 스치기만 해도 바람구멍이 날 만한 것이었다.
강검마는 손목을 움직여 칼날을 곧추세운다. 그는 날아 들어오는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첨예한 칼날이 살벌한 정권을 향해 나아갔다.
―서걱!
쭉 세로로 통과하는 서늘한 날. 둔중한 주먹을 지난 붉은 생채기가 마수의 어깨까지 생겼다.
곧이어 강검마가 살에 틀어박힌 칼날을 뽑아내자 카우 킹의 팔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열렸다.
“음모오오!”
카우 킹이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는 원초적인 감정. 공포가 마수의 몸에 스며들었다.
강검마는 살짝 뒤를 돌아 전황을 훑어보았다.
리코더를 삑삑 불어 대는 스피드 웨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눈에 띄게 파리해진 낯빛. 오므려진 입술 색이 새파랬다.
그리고 우우정의 목에 카타나를 틀어박은 클로이. 우우정은 짧게 투레질하며 피를 토해 냈다. 그녀가 칼날을 뽑아내자, 마수의 목에서 핏줄기가 화려하게 솟구쳤다.
“…검마 군.”
강검마를 쳐다보는 클로이.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몸을 혹사해 가며 적을 상대하는 강검마의 모습. 그녀의 뺨을 타고 따뜻한 물줄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클로이의 옆모습을 쳐다보던 사키 료조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피어오른다.
강검마가 슬쩍 뒤를 보더니 옅게 웃었다. 그 모습에 사키 료조는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미노타우로스가 한 손으로 지면에 틀어박힌 도끼를 거세게 뽑아 들었다. 이다음 공격이 마지막 일격이라는 듯이.
“음메에에에에에에에에에!”
기세를 다잡는 포효를 뱉어 낸 뒤, 관자놀이에 돋은 흉흉한 뿔을 치켜세운다. 독기가 바짝 오른 모습.
“강검마! 해치워 버려!”
달싹거리던 사키 료조의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평상시 나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강검마는 눈을 질끈 감더니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던 불길들이 일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하아.”
강검마가 더운 숨을 내뱉어 더운 입김을 흘렸다. 리코더를 열심히 불어 대던 웨폰은 일변한 강검마의 분위기에 하마터면 선율을 놓칠 뻔했다.
‘기존과는 다르다.’
상체를 억누르는 예의 준비 자세와 달리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칼자루를 단단히 말아 쥐는 모습.
기세 좋게 타오르던 벽면의 불길은 어느새 공동에 휘모는 찬 바람에 일순 꺼졌다.
순식간에 찾아온 암전막. 서늘한 침묵이 감돈 순간에도 강검마는 무라사메를 똑바로 잡고서 숨을 고른다.
바람이 역류한다. 장내를 내리누르는 인위적인 압력. 어깨가 무거웠다.
이어서 망연한 눈들을 비추는 새파란 불길이 피어올랐다.
화르륵!
이어서 검게 물든 시야를 배경으로 넘실거리는 초현실적인 기운.
오라가 휘감긴 사시미에서 소슬한 검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