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2화(42/300)
42화 물소 던전 (6)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스피드 웨폰은 너무 놀란 나머지 힘겹게 이어 가던 선율을 멈출 뻔했다.
그는 머리를 탈탈 털면서 정신을 부여잡고 리코더를 애써 세차게 불었다. 하지만 시선은 강검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미친.”
사키 료조가 웨폰을 대신해 기가 막힌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강검마를 향해 연신 응원사를 보내던 클로이의 입도 쩍 벌어졌다. 많이 당황한 얼굴들이었다.
웨폰은 도로 고개를 돌려 강검마와 마수를 쳐다봤다.
손가락 마디부터 일은 무언가 오른손에 쥔 사시미를 휘감았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새파란 검강.
지금 눈앞에서 강검마가 피워 낸 것은 분명히 오라(Aura)가 맞았다. 그것도 일순 암전이 찾아온 이 넓은 공동을 전부 밝혀 낼 정도로 심후한 오라.
‘……강검마, 너는 볼 때마다 상식을 박살 내 주는구나.’
폐부에서 끌어 올린 공기를 리코더에 밀어 넣는 웨폰은 시선을 강검마에게 고정했다. 목젖에서는 피가래가 끓는 게 느껴졌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경외와 존경이 담긴 눈동자. 전설의 현장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화르르륵.
사시미를 휘감은 오라가 더 사납게 타올랐다. 오라가 거세지자 칼날에 거미줄처럼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현재의 무라사메로는 강검마의 오라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
결의를 다잡은 강검마는 표정을 단단히 굳히더니 이내 사시미를 똑바로 잡는다.
“음메에에에에에에에에!”
카우 킹은 울부짖었다. 임전무퇴를 결의한 전사의 함성과도 같은 외침.
마수는 크게 투레질하며 발굽으로 땅을 긁었다. 하나 남은 팔은 꼿꼿한 양날 도끼를 치켜세웠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동시에 양날 도끼에 요사스러운 핏빛이 입혀졌다.
타다닥!
“““!”””
장내에 경악이 만연했다. 강검마만이 흥미롭다는 듯 옅은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피부에 따끔따끔하게 닿는 불쾌한 감각. 마력임이 분명했다.
“말도 안 돼. 마수가 어떻게 마법을……!”
사키 료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슬쩍 시선을 돌린 클로이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은 불변의 순리였다. 마족은 전유물인 마법으로 하여금 마수를 그들의 종속으로써 부렸다.
하지만 눈앞의 카우 킹의 양날 도끼를 휘감은 요기(妖氣)는 마력임이 분명하다. 칼날에서 시작된 요사스러운 빛이 창대를 타고 흘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찰나의 의문은 금세 해결됐다. 카우 킹은 자신의 생명력을 대가로 마력을 태워 낸 것.
자신의 몸체를 장작 삼아 생명력이라는 기름을 들이부어 마력을 피워 냈다. 사키 료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음을 각오한 마수의 투지. 거기에 생명력의 밑바닥을 긁어 일궈 낸 강대한 힘은 마법의 영역을 두드리고 있었다.
콰강!
지면을 박찬 카우 킹은 사납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도끼에 감긴 요사스러운 빛이 비산했다.
강검마는 뒤로 물러나지 않은 채 숨을 다듬었다. 그의 눈동자는 올곧게 매섭게 달려오는 적을 맞이한다.
스피드 웨폰의 선율이 위태로웠다. 리코더를 꼬나문 입술에서 핏물이 거미줄처럼 타고 흘렀다. 볼살이 쏙 들어간 게 쓰러지지 않은 게 용한 상태였다.
스피드 웨폰은 게슴츠레 눈을 치켜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리를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속으로 말을 곱씹었다.
‘…믿는다.’
지켜보는 이들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머물렀다.
“음-메에!”
카우 킹은 함성을 날카롭게 끊으며 도끼를 휘둘렀다. 빨갛게 번뜩거리던 마력이 도끼날의 테두리를 타고 반월 형상으로 뻗어 나왔다.
압도적인 체급 차이에 기인한 엄청난 범위의 공격. 휘말린다면 형태도 없이 갈가리 찢길 것이다.
강검마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로 반쯤 감긴 새카만 동공. 배경음처럼 들리던 조원의 응원 소리가 귓전에서 멈추었다. 완벽한 무념의 상태.
날카롭게 바람을 자르는 소리가 났다. 후끈한 열감과 함께 카우 킹의 공격이 강검마의 발치에 닿았다.
0.1초도 안 되는 생사결의 순간. 강검마의 눈은 존재의 죽음 담아 낸다. 망막에 떠오르는 붉은 선들.
‘베면 잘릴 것입니다.’
몽연하게만 느껴지던 어구의 의미가 새삼 이해가 갔다.
강검마는 이내 반쯤 감긴 눈에 힘을 주었다.
이어서 그의 어깨와 팔이 절로 휘둘러진다. 사시미의 궤적을 따라 오라의 잔상이 채찍처럼 휘몰아쳤다.
쉬이이이이이익―!
강검마의 오라와 카우 킹의 마력이 달라붙었다. 그의 칼질이 뻗어 나온 마력을 베어 냈다. 무라사메는 오로지 하나의 결과만을 위해 움직였다.
베고 자르는 것.
마력의 교란 속에서도 기교 없는 검놀림은 정확하게 붉은 선을 파고들어 갈랐다. 그 순간마다 마력의 흔적은 핏빛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콰과강!
맹렬한 폭음이 연이어 공동을 메웠다.
싸늘했던 공기에 일순 훈기가 감돌았다. 바람이 역류하자 클로이와 사키의 치마가 나부꼈다. 공방의 여파만으로 살갗이 쓸렸다.
곧이어.
푹!
파열음이 귓전에 닿자 사키 료조는 치마를 붙잡는 대신 팔로 흩날리는 먼지를 막아 시야를 확보했다. 그녀는 몸을 움찔 떨었다.
카우 킹의 가슴팍에 칼자루의 절반까지 틀어박힌 사시미. 강검마가 칼날을 열쇠처럼 비틀었다.
솨아아아앙아악!
우락부락한 가슴에서부터 시작한 새파란 검기가 마수의 거구를 휘몰아 삼켰다.
“음모오오오오오오오오오!”
카우 킹이 크게 고통을 터뜨렸다. 강검마는 한 번 더 사시미를 비틀었다. 오라가 실린 칼날이 마수의 속을 긁었다. 뼈가 부서지고 끊어지는 소음이 났다.
카우 킹의 눈자위가 회백색으로 염색되어 갔다. 공동에 메아리치던 마수의 함성도 낮게 가라앉았다.
쿵!
미노타우로스의 한쪽 무릎이 지면에 부딪혔다. 마수는 뿌예진 시야 때문에 서서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마수는 고개를 들어 보였다. 격전의 승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인간의 낯빛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침울함이 번져 있는 얼굴. 그 모습은 마치 적이었던 자신을 크게 위로하는 듯했다.
“음모오오오…….”
카우 킹은 울음기 섞인 신음을 옅게 흘렸다. 소의 눈망울에 물이 고였다.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 카우 킹은 온 힘을 끌어내 창대의 밑동을 바닥에 크게 찍었다.
쿵!
그것은 마지막 부탁이었다.
인간과 마수.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진심은 닿기 마련이다.
묵묵히 내려다보던 인간은 한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칼을 든 팔을 치켜들었다.
카우 킹은 태어나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 감정을 표했다. 세워진 칼이 일순 환하게 빛났다.
―슥!
썰리는 소리가 산뜻했다.
칼날이 카우 킹의 목을 미끄러지듯 가로로 통과해 지나갔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수의 두 귀가 한차례 쫑긋거리더니 철퍽- 하는 소리가 났다. 잘렸다는 자각조차 못 할 정도로 검로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뒤늦게 미노타우로스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수는 만족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외로웠던 삶의 마지막에는 한 인간이 있었다.
* * *
“헉, 헉.”
스피드 웨폰은 입에서 리코더를 떼어냈다. 박자가 엇나간 호흡을 고르며 숨을 다듬었다. 무릎을 짚고 상체를 숙이니 메스꺼움이 몰려와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외상은 없었지만, 고통 경감의 가호의 후 통으로 속이 곪아 버렸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뾰족한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감각. 허리를 세우려 해도 균형이 무너진 몸은 옆으로 기울어진다.
“야, 숨 쉬어, 숨.”
사키 료조가 옆으로 다가와 비척거리는 웨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내 다리에 힘이 풀린 웨폰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아, 하아.”
웨폰은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입김이 크게 뿜어졌다.
그는 피가래를 퉤, 바닥에 뱉고선 팔로 바닥을 짚으며 간신히 상체만을 세웠다. 그러고는 시선을 강검마 쪽으로 옮겼다.
강검마는 마수의 주검을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승자가 지을 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쾌재라도 내질러 줄 생각이었는데, 웨폰은 머쓱하게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웨폰.”
“어, 왜.”
옆에 쪼그려 앉은 사키 료조가 말을 뗐다.
“…네가 아까 했던 말,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아.”
“아까 했던 말?”
“그 전설이니 뭐니 있잖아.”
“아, 그거.”
사키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천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네가 왜 저 녀석을 졸졸 쫓아다니는지도 알겠고.”
“아, 내가 언제!”
스피드 웨폰이 팔을 뻗어 화를 냈다. 사키는 고리눈으로 피식 웃음을 흘린 뒤, 강검마에게 시선을 두었다.
“왠지 나도 강검마 쟤랑 다녀 보고 싶네.”
“…너, 충격 때문에 머리가 맛이 간 거야? 아니면 마가 꼈나? 그 사키 료조가 뭘 하고 싶다고?”
사키 료조는 자신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물었다.
“웨폰, 아카데미 교칙상 강검마가 올해 월반하는 건 불가능하지?”
“어, 그렇지. 교칙 2조 4항에 딱 명시되어 있으니까.”
스피드 웨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사키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골몰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 반대는? 그게 안 된다는 조항은 없잖아, 그렇지?”
“사키, 너 설마……?”
웨폰은 사키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배시시 웃기만 하고 말을 아꼈다.
* * *
미노타우로스가 죽었다.
스피드 웨폰의 고통의 가호를 덧댔음에도 몰려오는 격통 때문에 몸이 비틀거렸다. 나는 짧게 웃었다.
‘이 정도면 양반이지.’
무통의 가호 없이 적을 상대했다. 그 정도만으로 충분한 성과였다. 아카데미에 돌아가 주말 내리 푹 쉰다면, 정상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컨디션을 되찾을 터다.
“검마 군!”
후다닥 달려오는 클로이가 내게 와락 껴 안겼다. 고맙긴 한데…….
나는 가만히 서서 헐떡거리는 숨을 골랐다. 사레라도 들려 기침이라도 한다면 폐부가 찢겨 나갈 것 같았다.
클로이에게 잠시 떨어져 달라며 손짓하자, 클로이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거리를 벌려 줬다. 나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극심한 피로를 억누르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
[NEW!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가호를 발현시켰습니다.]== ==
원래대로라면 주인공 레온이 얻었어야 할 기연.
나는 쓰게 웃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게다가 생명줄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카우 킹을 상대해야 했기에.
나는 파르르 떨리는 검지로 새롭게 떠오른 문구를 터치했다.
파앗―
== ==
[전이(轉移)의 가호]보유 중인 가호를 생명체나 사물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
[※ 단, 신체가 무조건 그 대상에 닿아야 합니다.]== ==
그래, 장황한 것보다는 이렇게 심플한 설명이 낫지. ‘기적의 가호 M’ 플레이 당시에도 발현시켜 본 가호였기에 새삼 친숙했다.
단일 성능보다는 결합했을 때 제 성능을 발휘하는 시너지 형 가호. 등급도 무려 이 세계에 몇 없다는 정령급 가호였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석문이 아가리를 벌리며 열렸다. 문틈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끼이익―
검문소에 있던 직원이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혼재된 얼굴. 웃고는 있으나 일그러진 표정 탓에 마수보다도 께름직하게 생겼다.
클로이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는 문 쪽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내 옷소매를 끌며 말했다.
“…검마 군, 아까 저한테…….”
“클로이, 아까 부탁했던 거.”
나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지금이야.”
“네!”
고개를 크게 끄덕인 클로이는 눈썹을 휘날리며 직원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