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4화(44/300)
44화 의문 (1)
호아킨 아카데미.
700년이라는 유서 깊은 전통과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간판.
월드 클래스 귀족들의 자제님들이 모이는 공간이었기에 부속 시설들 또한 모두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금전 감각이 남다른 생도님들은 물가가 어떻든 지갑을 가볍게 연다는 점이 큰 메리트였다.
그래서인지 학내 마트부터 헬스장, 카페, 식당 등등. 엄중한 검열과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지만 간신히 입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기 호아킨 아카데미 부속 대장간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노르웨이 출신 대장장이 뷜란트,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도 어언 15년이 지났다.
아카데미의 생도라면 재학 중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뷜란트에게 자신의 무장을 맡긴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많은 무장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다소 세속적인 성정이었으나 뷜란트의 실력만큼은 업계 정점 수준이었기에 그가 손댄 무장들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고객님들도 만족했다.
하지만 그렇게 탄탄대로일 것 같던 대장장이 생활에 유쾌하지 않은 방점이 찍혔다.
이 주 전 즈음, 한 소년이 기다란 외날 검을 들고 뷜란트의 대장간을 찾았다.
흔치 않은 검은 눈과 머리칼을 한 1학년 생도. 어째선지 머리카락의 끝부분이 잿빛으로 세어 있었다. 검정 명찰 색으로 보건대, 출신은 특진생.
사실 영웅 출신이 아닌 뷜란트에게 생도의 출신 성분은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줄 고객님이라면 급식들의 무장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망치로 신나게 두드릴 수 있는 그였다.
하여튼, 여느 날처럼 접대용 미소를 입가에 걸고 응대하던 뷜란트에게 검은 머리 특진생이 찾아와 무장의 제련 및 강화를 의뢰했다.
척 보아도 주머니 사정이 궁핍해 보이고, 무장도 특이한 만듦새의 외날검. 자칫 망치를 잘못 놀렸다간, 툭 불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뷜란트는 고민 없이 수주했다.
이유는 당연히 보수. 재단하고 남은 B급 무장의 쇳덩이를 준다는데 어떻게 마다할 수 있을까. 경매 유통가만 하더라도 못해도 3, 4천만 원은 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싹 도는 군침을 닦아 내고, 싱글벙글 웃으며 풀무로 대장간의 불을 지폈다. 업계 정점이라 일컫는 뷜란트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넘어서 믿음이 있었다. 대장장이의 긍지였다.
B급도 분명 상위급 무장이었으나, 뷜란트가 평소 다루어 왔던 무장들은 A급부터 보구급인 S급.
밑져야 본전이었다. 게다가 뷜란트는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혹여 일을 그르친다 해도,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애송이 정도는 구워삶아 줄 자신이 있었다. 장사꾼으로서의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일 주 전까지. 현재의 그는…….
“아저씨, 강화해 주세요.”
“…….”
뭔 놈의 소재를 한 보따리를 싸 온 검은 머리 남학생. 뷜란트는 맹랑할 정도로 당돌한 태도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밝히길, 자신의 이름이 강검마란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뷜란트는 실소를 흘리곤 강검마가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 보았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버팔로의 뿔들. 못해도 족히 스무 마리 이상이었다.
“이거 네가 다 토벌한 거냐?”
“혼자 한 건 아니고, 조원들이랑 같이했습니다.”
소재의 틈바구니에 뿔 하나가 유독 교태롭게 빛이 났다. 같은 C급 마수 버팔로의 파생 소재라기엔 예사롭지 않았다.
대장장이의 눈썰미로 보건대 못해도 B급 아니, A급 마수의 소재 같았다. 출처야 불분명하지만, 본디 이런 것은 묻지 않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었다.
뷜란트는 두드러지는 뿔과 강검마를 곁눈질로 번갈아 보았다.
피곤한지 입을 쩍쩍 다시는 강검마. 어린놈의 건방진 태도에 뷜란트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한 대 쥐어박고서 신성한 대장간에서 쫓아내고 싶었지만, 한숨을 깊게 내쉬는 걸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던 중, 강검마는 주머니에 찔러 둔 무라사메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무장, 이거 이렇게 됐는데 강화하는 김에 수리도 가능하죠?”
무라사메를 건네받은 뷜란트의 눈에 일순 분기가 일었다. 빛이 흐르던 칼날은 실금이 쩍쩍 가 있었고, 최상급 오동나무로 만든 검신은 전소해 버린 숯처럼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뷜란트, 자신이 최선을 다해 제련한 칼이 완전히 거적때기가 되어 있었다.
강검마의 건방진 태도에도 꾹 다물고 있던 뷜란트의 관자놀이에 굵은 혈관이 맺혔다.
“얌마! 대체 뭔 지랄을 했길래 무장을 이딴 꼬라지로 만들어 놔!”
안 그래도 빨간 얼굴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수랑 싸우다 보니까 어쩌다.”
강검마는 귀찮다는 듯 어미를 자르고 짧게 대답한다.
뷜란트는 뭐라고 한 마디 덧붙이려다 침과 함께 겨 겨우 목구멍으로 삼켜 냈다. 목에 까끌까끌한 생선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응어리가 느껴졌다.
“…….”
퀭한 녀석의 눈동자를 보자 일 주 전, 칼을 잡고 비소를 흘리던 모습이 생각났다. 혈관을 짓누르는 듯한 살기에 닭살이 돋은 갈색 팔뚝을 쓸어내렸다.
그는 안면 근육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쥐어짜 내며 해맑은 영업용 미소를 빚어 냈다.
“…좀 조심히 다루지 그랬나. 몸이라도 상했으면 어쩌려고.”
“E급이라 그런지, 내구성이 약합디다. 거기에 A급 마수 소재도 있으니까, 알아서 잘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그렇게 말하고는 등 돌린 채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강검마.
‘저 저,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새끼. 저거 아주 사탄도 기립 박수 칠 놈이야.’
뷜란트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입술만 움직여 소리 없이 욕질 거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때 좋게 고개를 휙 돌리는 강검마. 뷜란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맞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반응에 뷜란트는 침을 크게 삼켰다. 대장간의 건조한 열풍 때문인지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갔다.
월말마다 정 없이 빠져나가던 사망 보험금이 뷜란트의 뇌리를 스쳐 갔다. 잠시 불편한 정적이 흐르고, 강검마는 짧게 이죽거리고서 입을 뗐다.
“강화하고 남은 소재는 뽀찌 삼아 약주라도 하십쇼, 그럼 진짜 갑니다.”
강검마는 입이 찢어지라 하품한 뒤, 묵직한 대장간의 문을 닫고 나갔다. 뷜란트는 멍하니 강검마가 지나간 자리를 응시했다.
이어서 뷜란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뒤, 망치를 들었다.
땅! 땅!
쇠를 때리는 거친 타격음이 대장간 문 너머까지 퍼졌다. 희비가 교차하는 쇠 울림이었다.
* * *
버팔로 던전을 클리어하고 난 이틀 뒤.
철원에 다녀온 익일에 무라사메를 대장장이에게 전해 주었다. 기껍지 않은지 대장장이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뭐 어쩔 텐가. 자기가 싼 똥은 본인이 알아서 치워야지.
애초에 그 아저씨가 무장을 조져 놓지만 않았어도 나나 그 양반이나 서로 편했을 것을.
그래도 앞으로 자주자주 볼 사이에 괜한 억하심정을 남기고 싶지 않아, 뽀찌도 좀 넣어 주었다.
어차피 남은 버팔로 뿔들이야 내겐 크게 쓸모도 없다. 사냥꾼들이 집 벽에 걸어 두는 헌팅 트로피도 아니고.
버팔로의 뿔은 C급 파생 소재기에, E급에서 D급으로 등급 업 할 때 정도나 쓴다.
강화 실패 확률도 있긴 한데, 그 부분은 카우 킹 소재가 실패 확률을 크게 경감시켜 줄 것이다.
설마 A급 소재까지 넘겼는데 실패하기야 하겠어? 그러면 진짜 손목을 날려 버릴 생각이다.
아침 조례가 시작되기 전, 생각을 정리하고는 녹색 칠판을 배경 삼아 상태창을 열었다.
== ==
[검신(劍神)의 가호]베면 잘릴 것입니다.
◎육신(肉身)의 격 : (8▶9) ▷ 검(劍)의 규격이 완화됩니다.
◎정신(精神)의 격 : (4▶5) ▷ 말과 행동에 위압감이 깃듭니다.
◎무장(武裝)의 격 : 3 ▷ 가호 발현 시 고통이 (1) 단계 경감됩니다.
☆동화율 : 9.3% ▶︎ 12.7% ▷ 【???】의 선(線) (1) 줄이 읽어집니다.
→[동화율 15% 달성 시 다음 해금 조건이 충족됩니다.]
★【???】
[※ 길이가 (38+1) 센티 이하, 폭은 (9+1) 센티 미만의 검일 때만 가호가 발동됩니다.]
== ==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금세 늘어 있는 동화율이다.
어느 순간부터 정체된 수치들과 다르게 사건을 한 번 겪고 나면, 껑충껑충 올라 버린다.
상술된 육신과 정신의 격 역시 오르긴 했다. 그 상승치가 초반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어서 문제지.
그래도 완전히 무쓸모 능력치는 아닌 게, 건장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 게 느껴졌다.
그리고 좀 더 수치가 상승했을 때, 단계적으로 해금 조건이 나타날지 혹시 또 모를 일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건 역시 무장의 격이다. 다만, 급할 필요는 없다.
내가 검신의 가호를 심층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히 강해지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좀 더 근원적인 문제다.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나는 잡념을 훌훌 털고서 고개를 살짝 내렸다.
‘동화율 15% 달성 시 다음 해금 조건이 충족됩니다.’
그에 반해 동화율은 아마 다음 던전을 한 개만 더 클리어하고 나면, 해금 조건을 충족해 있겠지.
선이 한 줄 더 보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항목도 추가될까? 그러면 개사기 능력일 텐데.
아니지, 솔직히 지금도 동화율의 묘리는 ‘기적의 가호 M’의 플레이어였던 나로서도 성능이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게다가 상승세는 꺾이기는커녕 박차를 가하듯, 그래프의 천장을 찔렀다.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는 능력치라…….’
상단에 적힌 세 개의 격들은 각각이 명확한 목표치를 정해 준 데 비해, 동화율엔 특별한 소모값이 없어 보인다. 과연 그게 좋기만 한 일일까.
세상에 거저 주는 건 없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이갈이가 끝나기도 전에 부모님이 뇌리에 각인시키는 불변의 순리.
특히 수치가 불규칙한 것도 의미심장하여 혼자 계산기를 두드려 세 격을 평균치를 내봐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한데.”
턱을 매만지며 그간의 달라진 점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동화율 상승의 시발점은 클로이와 치렀던 모의 대련. 당시를 분기점으로 뒀을 때, 신체적인 변화는 머리칼 끝에 새치가 자란다는 것.
처음에는 2센티 정도였던 새치는 작금엔 5센티 정도로까지 늘어나 있었다. 염색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딱히 크게 거슬리지는 않아서 내버려 뒀었다.
‘설마 새치 따위가 동화율 상승에 대한 대가일 리는 없겠지.’
그리고 대련 직후, 엄습했던 기묘한 증상은 그날 이후 겪어 본 적 없었다. 그러니 한창 상승세인 동화율의 대가로 치기에는 어폐가 있다.
‘…동화율이 오를 때마다 그 지랄이면 바로 칼을 놓아 버렸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이 세계에 던져진 직후부터 자금까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되짚어 봤다.
순전히 검신의 가호에 관한 의념들뿐만 아니라 그간에 있었던 일들의 정리도 겸해서. 이제야 상황을 반추할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물론, 나를 노리는 원로원들과 검문소 직원이 말했던 ‘그 교관’에 대해서도 생각을 되짚어 보긴 해야 하나, 그건 일개 1학년의 신분으로 가능한 허용치를 넘어선 일이었다.
그래도 만전을 기하긴 해야겠지. 첫 스승님은 언제나 내게 유비무환의 자세를 당부했다.
하나씩 요목조목 짚어 보기보다는 당장에 당면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기도 하다.
유비무환을 누누이 강조하던 그 양반조차 막을 수 없었던 대머리…….
나는 괜스레 손가락이 이마 선을 더듬었다. 촌각에 닿는 풍성함.
안도의 한숨을 푹 흘린 뒤, 머리를 ‘살살’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일단 의도치 않은 이번 던전의 성과였던 ‘전이(轉移)의 가호’의 운용법도 생각해 둘 참이었다. 습득해 버린 가호를 뱉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시너지형 가호인 만큼 쓰임에 따라 그 성능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레오한테는 미안한 마음도 조금 있지만, 어차피 그 자식은 추후에 더 좋은 능력을 둘둘 두를 터다.
기지개를 쭉 켜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조례 시간이 가까워지자 슬슬 생도들이 등교하는 소란스러운 소음이 귓가에 스몄다.
나는 무신경하게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생겨 버린 버릇이었다.
현실감이 잠깐 날아갈 정도로 날씨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다. 청명할 정도로 화창한 하늘, 창 너머로 내리쬐는 햇살의 후끈함이 여름의 초입을 알렸다.
‘곧 있으면 하복을 입겠군.’
일 년 반 즈음 전에 이곳에 떨어진 뒤, 입학 통보장을 받기 전까지는 무난했던 일상.
현재의 내가 열렬히 원하는 삶은 이제 손을 뻗어도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았다. 아련한 슬픔이 가슴을 멍울지게 한다.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는 나름 고무적인 앞날을 꿈꿨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의 생활이 예상보다 녹록지 못했다.
목숨의 위협이야 상시 있는 일이고, 살인적인 물가에 생활 수준도 바닥을 기었더랬지.
그래도 마냥 불행으로만 점철된 아카데미 생활은 아니었다.
전생에는 소싯적부터 일만 했던 터라, 이렇다 할 교우 관계가 없었지만, 현생은 달랐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학우도 두 명 생겼다. 스피드 웨폰과 클로이.
클로이야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만…….
확연히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스피드 웨폰과는 두 번의 생사고락을 공유하니 사나이의 우정이 꽤 진해져 있었다.
정황 파악 등 머리도 잘 굴러가 나름대로 의지가 되는 녀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클로이와 웨폰은 ‘기적의 가호 M’의 주요 인물도 아니기에, 멀리할 이유 또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클로이는 갑작스러운 환절기 감기 때문에 병가라고 했지. 제아무리 암살자 출신이라 해도 병마 앞에선 평범한 인간이었다.
‘…감기 때문에 VIP실에 입원한 건 그닥 평범하진 않다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한참을 멍 때리고 있을 때, 드르륵⎯ 교문이 옆으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가일층 어수선해지는 클래스 분위기.
아마 오늘 조례도 검제가 이원빈 교관과 동석한 듯했다. 나는 고개도 안 돌린 채, 무덤덤하게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냈다.
위이잉⎯
그때 늘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뭐지?’
나는 고개만 살짝 틀어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야, 너 뭐 해.]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곧바로 핸드폰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한 번 더 진동했다.
[앞에 봐 봐.]곧이어 내 시선이 천천히 정면으로 향하고, 동시에 눈이 번뜩 뜨였다.
한 손에 핸드폰을 쥔 사키 료조가 방긋 웃으며 내게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