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5화(45/300)
45화 의문 (2)
“…그렇게 되어서 오늘부로 사키 료조 생도는 우리 랑 클래스에 재배속되었다. 모두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전달 사항은 이 정도고, 30분 내로 환복하고 연무장으로 모인다. 이상.”
본인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던 이원빈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 직후, 클래스 분위기는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실화야? 사키 님이 우리랑 같은 클래스라고?”
“대머리 교관이 말했잖아. 본인이 원해서 재배속됐다고. 대박.”
생도들은 연예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키 료조를 에워쌌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녀는 기적의 세대라고도 불리는 올해 생도 중 사석. 필기시험 수석이라는 명석한 두뇌와 그에 뒤지지 않는 무력을 지닌, 문무겸비라는 말이 실로 어울리는 규슈였다.
게다가 칠성 영웅 중 한 명 절궁(絶弓) 사키 코지마의 딸이기도 했다. 참고로 설정상 사키 코지마는 절궁이라는 별호와 더불어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이다.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대중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검제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과는 달리, 사키 코지마는 칠성 영웅의 위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본 행정부의 수장을 무려 40년간 연임하고 있었다.
지구와 동일하게 이 세계의 일본도 대통령제가 아니라서 사실상 사키 코지마는 종신 총리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면 일국의 왕이라 칭해도 될 정도다.
여타 칠성 영웅들과는 명백히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이질적인 인물이기에, 그 영향력은 대외적으로 막강해서 세계 사회에 끼치는 입김은 여타 세 명보다 세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따라서 사키 코지마의 딸인 사키 료조의 입지 또한 일국의 공주에 준하는 것이다.
실제 공주님들도 여럿 존재하는 이 세계에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위신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거다.
참고로, ‘기적의 가호 M’ 세계관에선 각국 간의 서열을 지구보다 노골적으로 공표한다.
최강대국은 현실 반영인지, 당연히 천조국인 미국. 그다음은 자랑스럽게도 한국이다. K-운영으로 욕을 퍼먹는 게임사지만 이런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독일, 일본, 영국, 중국 등이 줄지어 있었는데 사실상 미국과 한국의 양강 체제였다.
물론 일본도 우리나라만 못하단 거지 4순위의 강대국임에는 이견이 없다. 사키 료조는 그런 일본의 국체(國體)의 따님인 것이다.
그렇기에 최상위 귀족들의 자제로 구성된 성(星) 클래스 내에서도 사키 료조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생도들이 가장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녀의 고운 외모도 남생도들이 접근하려는 이유에 크게 한몫하겠지만.
“사키 님, 정말 저희 클래스에 재배속되신 거예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야야, 비켜! 너만 사키 님께 질문하냐?!”
“사키 님! 남자 취향은 어떻게 되십니까!”
계속되는 생도들의 질문 세례에도 사키 료조는 무심하게 입맛을 쩝쩝 다시며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미려한 눈꺼풀은 그들을 담기를 거부하듯 나른하게 깜빡거렸다.
“하암.”
별안간 사키 료조는 하품을 크게 한 뒤, 나직한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수백 쌍의 눈동자들이 그녀의 발끝을 바짝 쫓았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사키가 어느 자리에 앉을지, 그 옆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
아마 사키가 자리를 정한 뒤, 자리 쟁탈전으로 피바람이 불 것만 같았다. 하여 그녀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 한데…….
그녀가 발을 내디딘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생기 없던 사키의 눈동자에 일순 총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무시했다.
불안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역시나 모두의 이목은 사키와 나 두 사람에게 일순 집중됐다. 이 정도 되니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지척까지 다가온 사키가 물었다.
“여기 자리 있어?”
“…….”
나른하면서도 이지적인 목소리. 귀 뒤로 착 넘긴 머리칼은 청명한 하늘과 닮아 있었다. 그녀가 눈짓으로 내 옆자리를 가리켰다.
항상 클로이가 앉는 자리. 감기 때문에 병석에 누워 있지만, 엄연히 그녀의 자리였다.
백번 양보해서 별안간 사키 료조가 우리 클래스에 재배속된 건 이해한다 치자.
칠성 영웅인 검제가 클래스 공동 교관직을 맡은 시점에서, 랑 클래스는 더 이상 비범한 반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키가 내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별개였다. 공기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인물이라 해도 그녀는 레온의 여자 중 한 명이다.
그 말은즉슨, 내 입장에서 사키 료조는 졸라 부담스러운 인물이라는 뜻이다.
버팔로 던전에서의 사단 이후, 내게 어느 정도 흥미가 돋은 모양인데 그녀와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하물며, 사키와 첫 만남이 그리 썩 좋은 편도 아니었잖아.
“거기, 클로이 자리야.”
“아, 그래?”
그렇게 되묻고선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착석해 버리는 사키 료조. 나는 잠시 멍해졌다. 어이가 없었다.
“…뭐야?”
“조례 시간까지 안 왔으면 지각이거나 못 오는 거 아니야? 여기숙사 위치를 고려해 보면, 지각이라기보다는 못 오는 거겠지. 그리고 자리에 네 자리, 내 자리가 어딨냐?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지.”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정말 틈을 주지 않는 언변이다. 만약 클로이가 이 광경을 봤다면, 여지없이 피바람이 불었으리라. 나는 짧게 침음을 흘렸다.
생도들이 웅성거리는 소음들이 귓전에 내 닿았다. 그래도 검제와 대련 이후, 그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힐난하거나 무시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심상의 대련이었지만,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쯤 되는 그들에게도 나는 꽤나 입지적인 특진생이었다.
그들을 한번 훑자, 생도들은 헛기침을 뱉고선 하나둘 환복하러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몇은 아직 사키에게 말 걸 타이밍을 재고 있었지만, 이내 입맛을 다시며 다음을 기약하고서 떠났다.
그렇게 생도 대부분이 교실을 빠져나가자 사키는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주섬주섬 양갱 두 개를 꺼냈다.
“하나 먹을래?”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달았던 양갱의 맛이 입안에 맴도는 듯했다. 나는 대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키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양갱 하나를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남은 양갱의 포장지를 벗겨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나직했던 그녀의 두 눈이 번뜩 뜨였다.
“존맛.”
“…….”
확실히 알면 알수록 깨는 이미지다.
사키가 랑 클래스에 재배속된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아침 조례 훈련이 목전이었다.
나는 짧게 숨을 내뱉고서 환복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키는 그러든 말든, 흐물흐물한 얼굴로 양갱을 우물거렸다.
“사키, 너는 훈련 안가냐?”
“나는 궁사라서 밖에서 뛰는 것보다 정신 수양이 우선이야. 이렇게 당분 섭취하는 게 내 나름대로의 훈련이란 말씀.”
흐물거리는 얼굴을 반색하며 검지를 치켜세워 강조하는 사키 료조. 나는 헛웃음을 치고서 교문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아, 그리고.”
사키가 나직한 음성으로 불러 세웠다.
“사키 말고 료조라고 불러 줘.”
“뭐?”
“원래 친구 사이는 성 대신 이름으로 부르잖아?”
“스피드 웨폰도 너 사키라고 부르잖아.”
“뭐, 걔는 걔고. 아무튼 훈련 열심히 하고 와-. 나는 한숨 자야겠다.”
그렇게 대충 얼버무린 사키 료조. 그녀는 고개를 몇 번 꾸벅거리더니 금세 책상에 고꾸라지며 잠에 들었다.
나는 곤히 단잠을 청하는 그녀를 잠시 쳐다봤다. 이어서 절로 새어 나오는 코웃음을 뒤로 하고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 시각 강원도 철원군.
버팔로 던전 검문소 앞에는 ⌜출입 금지-AGENT LINE-수사 중⌟이라는 로고가 박힌 노란 테이프 라인이 얼기설기 꼬여 진을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 입구 안쪽에서 서부극에 나올 것 같은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의자에 앉은 검문소 직원을 가운데 두고서 심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뭐라 말했습니까?”
“그, 그게… 생도들이 걱정된다고 자기가 들어가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직원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요원의 얼굴을 힐끗거리며 입을 움직였다.
요원 중 한 명이 선글라스를 치켜올리고서 심드렁하게 직원의 말을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습니까.”
“…음, 글쎄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친구 왜인지 몰라도 대인 무장을 챙겨서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싶었는데, 어쩐지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기도 했고요.”
이내 검문소 직원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당시의 상황을 술술 읊어 댔다. 요원들은 선글라스 알을 번뜩이며 그가 뱉는 말을 받아 적었다.
던전에서 사람이 죽는 건,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마수들이 우글거리는 던전에 입장한다는 것부터 목숨을 내놓을 결의를 다져야 하는 것이다.
하여, 던진 내에서 인명 사고에 대한 수사는 그렇게까지 면밀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건은 상황이 모호했다.
마수들이 득실대는 던전인 만큼 투입되는 요원들은 영웅 아카데미 출신들이었다.
세계 최고 명문 호아킨 아카데미까지는 아니어도 2, 3순위를 다투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들은 행정부 산하의 영웅 협회에서 스카웃해 갔다.
호아킨 아카데미 출신들이야 박봉에 연금도 쥐똥만큼 주는 공무원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사람이 죽어 나가는 사건이 허다한 던전이라 할지라도, 시신은 남기 마련이다.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요원들이 투입되어 주검을 확인하고 수거한다.
버팔로 던전 담당 수사 팀장인 심두준은 위화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꺼림칙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두준을 필두로 꾸려진 수사 팀이 사전 수색차 던전에 입장했을 때, 팀원 모두의 눈이 일제히 동그래졌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그들이었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버팔로로 쌓인 피륙의 산.
듣기로는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방문했다는데, 도저히 일개 생도들의 솜씨가 아니었다. 직원의 말로는 당시의 생도들은 무사 귀환했다는데…….
가장 큰 문제는 생도들이 걱정되어 들어갔다는 직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그렇다고 그자가 석문을 넘었을 리도 없었다. 인기 있는 던전 중 하나인 버팔로 던전의 석문은 그간 열렸던 적이 없었으니까.
심두준의 눈길이 자연히 던전 명부 쪽으로 향했다. 진즉에 생도들의 이름은 파악해 뒀으나, 진전이 없었다.
호아킨 아카데미는 치외 법권의 장소. 행정부 산하의 요원들일지라도 영장 없이 함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온갖 귀족 자제님들의 향연인 그곳을 수색할 수 있는 영장을 윗선에서 발부해 줄 가능성은 요원했다.
“미치겠구만.”
심두준이 쓰게 읊조리던 때, 검문소 쪽으로 다가오는 한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 봤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으로 하여금 신원을 특정 지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심두준 요원님. 호아킨 아카데미의 교관직을 맡고 있는 김 교관이라고 합니다.”
목전에 다가온 여인이 생긋 웃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심두준은 쭈뼛쭈뼛 고개를 까딱였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아카데미와 관련된 수사를 진행한다고 들어서요.”
“아, 네. 그게 며칠 전,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 네 명이 던전을 방문한 후로 검문소 직원 한 명이 흔적도 없이 실종됐습니다.”
영웅 협회와 호아킨 아카데미는 엄연히 다른 단체이나, 홀린 듯이 심두준은 현황에 대해 남김없이 설명했다.
“으음, 그렇군요.”
김 교관의 입가에 비릿한 호선이 걸렸다. 그러자 수사반장 심두준은 불현듯 스치는 격렬한 위화감에 흠칫 놀랐다.
어째서 이 여인은 통성명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하물며 협회 요원들의 수사는 극비리에 이루어진다.
제아무리 호아킨 아카데미라 할지라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어떻게 알고 시기적절하게 찾아왔단 말인가.
심두준의 얼굴에 놀람과 경악이 섞여 깃들자, 김 교관이 막대 사탕을 하나 꺼내 물었다.
“그럼, 이 현장 상황에 대해 아는 건 여기 계신 직원분이랑 심두준 반장님, 팀원들뿐인 거죠?”
“……!”
심두준의 고개가 인위적으로 끄덕여졌다. 자기 의사가 아니었다.
“흠, 그렇군요. 파견 보낸 윗선들도 알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싱긋. 웃음을 지어 보이는 김 교관. 그녀는 일순 표정을 굳히더니 미려한 손가락을 튕겼다.
“읍, 읍!”
심두준뿐만 아니라, 그의 팀원들과 검문소의 직원들도 입에 지퍼가 잠긴 듯 읍읍거리는 괴음만 내며 몸이 굳었다.
심두준의 뇌리에선 주마등을 대신해 이 미증유의 힘과 다루는 김 교관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수사관으로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협회에서는 저 여인 같은 존재를 반인반마(半人半魔)라 규정했다. 하지만 대중들이 그들을 부르는 멸칭은 따로 있었다. 악마와 계약한 인간. 세간에선 그들을 ‘빌런(Villan)’이라 불렀다.
김 교관은 그들을 가로질러 던전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손가락을 한 차례 더 튕겼다.
화르륵⎯
보랏빛 불 싸라기가 파도처럼 사내들을 덮쳤다. 무언가에 틀어막힌 입 때문에 외마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작열했다. 망막을 뒤덮는 화마(火魔). 그것이 심두준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몇 분 뒤, 인간 형상의 숯 더미가 차례대로 쓰러졌다. 그제야 고개만 살짝 돌린 김 교관이 삐뚜름한 웃음을 지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너무 눈치들이 없으시다.”
그리 말하고서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던전에 입장했다. 귀걸이의 보석이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며 찰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