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6화(46/300)
46화 의문 (3)
성(星) 클래스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이유는 사키 료조의 클래스 재배속.
최고 클래스이니만큼 동기 중 적응하지 못한 몇몇이 용(龍) 클래스로 자진 낙제하는 경우가 분명 있었다. 보통 그런 생도들은 크게 두 분류였다.
출신이 상대적으로 맞지 않거나, 실력이 클래스의 수준에 안 맞거나.
하지만 이번 소동의 당사자는 아카데미 사석에 필기 수석생.
툭 하면 자긴 했어도 매주 있던 쪽지 시험도 항상 만점에 실력도 발군. 게다가 출신마저 일본 총리대신이자 절궁 사키 코지마의 고명딸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그녀가 성 클래스에 맞지 않아 재배속을 희망했다 해도 선택한 클래스가 가관이었다.
“아벨 아씨, 그거 들었어? 사키 걔, 랑(狼) 클래스로 재배속됐다던데? 맨날 어디서 퍼질러 자기만 하는 얘가 무슨 헛바람이 들은 거람.”
“…응, 그렇구나.”
레이첼이 뻐근한 관절을 풀면서 아벨에게 물었다. 우두둑⎯ 하고 들려오는 뼈 소리. 그러나 아벨은 표정 변화 없이 턱을 괴고 멍하니 칠판을 응시했다.
레이첼은 실망 없이 어깨를 으쓱거리고서 아벨의 옆얼굴을 흘깃했다.
자칫 멍청해 보일 수 있는 시선임에도 아벨의 홍채는 순금 색의 미려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트형 눈동자에 장난기가 번지더니 레이첼은 난데없이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아쉬워?”
“어, 응 뭐가?”
“왜, 클래스 재배속은 티오가 안 나면 안 되잖아. 마침 올해 랑 클래스 정원도 한 명 모자랐다잖아. 사키, 걔는 어디서 그런 정보를 알고 먼저 선수를 쳤대. 만날 궁도장에서 잠만 자던 얘가.”
가만히 레이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벨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런데 사키가 랑 클래스 재배속된 거랑 내가 아쉬워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스피드 웨폰한테 들은 건데, 저번 주에 검마랑 파티 꾸려서 버팔로 던전 클리어하고 왔대.”
“⎯⎯!”
말하는 와중에 레이첼은 한쪽 눈으로 아벨을 힐끔했다. 미약하지만 확연히 당황한 기색이 깃든 아벨의 얼굴.
그 반응에 레이첼의 입가에 장난기가 더해진다. 그녀는 크게 아쉬워하는 듯 시늉하며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사키, 걔도 참. 아무리 마음에 들었어도 그렇지, 순서라는 게 있는 건데. 그렇지 않아? 검마는 우리 아벨 아씨가 선점했는데.”
“레, 레이첼! 진짜 전부터 무슨 소리야!”
아벨은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며 일어났다. 레이첼은 키득키득 웃으며 재밌다는 듯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배배 꼬았다. 아벨의 입매가 삐뚜름해졌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아벨 아씨는 유독 검마 이름만 나오면 반응하더라?!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야?”
아벨은 한숨을 푹 흘리고서 도리질하며 말했다.
“확실하게 말해 둘게. 강검마, 걔랑은 말 몇 번 나눠 본 게 끝이고,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러니까 앞으로 이상한 억측은 안 해 줬으면 좋겠어.”
“헤에⎯”
레이첼을 아벨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저 피식 웃더니 입을 뗐다.
“지금까지 아무 사이 아니라는 거지, 앞으로는 모르는 거 아니야?”
의중을 가늠해 본다는 듯이 다소 서늘한 음성과 가라앉은 눈동자.
“아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아 보여.”
“…….”
아벨의 얼굴에 당황, 놀람, 의아함 등의 감정이 번졌다. 평상시의 장난기 그득한 언행이 아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레이첼의 말에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아벨의 태도는 언제나 의젓했다. 아니, 의젓해야만 했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고, 덤덤한 모습을 견지했다.
목적은 단 하나. 할아버지 검제 지크프리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조부로서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그였지만, 검술에서만큼은 좀처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인류 최강이자 차기 ‘검성’이라 불리는 만큼 눈높이가 그만큼 높을 것이리라. 아벨은 그리 생각하며 목적을 검제의 인정에 두고서 수련했다. 불필요한 감정들도 잘라 냈다.
어엿한 검사로 거듭나기 위해, 그녀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칼자루를 단단히 잡고서 휘둘렀다. 자신의 성장을 방해 할만한 요소들을 털어 내듯이.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근육이 찢어졌다 붙는 고통을 달게 받아들였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데 억울함 따위는 없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마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중간고사 때 있었던 마인의 습격 건에 관해 할아버지에게 상담을 부탁했다.
노출을 극히 꺼리는 검제였기에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손수 일선에 나섰다.
무려 호아킨 아카데미의 임시 교관직을 맡는다는 소식. 그것도 손녀인 자신이 속한 성(星) 클래스가 아닌, 랑(狼) 클래스로.
짐작건대 강검마 때문이리라. 항상 권태로워 보이던 할아버지는 유독 강검마와 관련된 일에 흥미를 느꼈다.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된 원석을 보는 것처럼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강검마의 재능이 어지간히도 탐이 나는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성정을 생각해 봤을 때, 필시 그러할 것이다. 그 모습에 아벨의 가슴에 강렬한 감정이 용오름 치며 솟아났다.
‘강검마.’
부조리한 재능의 소유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특출난 그의 재능은 가히 불세출의 천재라 불려도 손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출신은 특진생.
검제의 노고 덕에 선민사상이 배제된 교육을 받아 온 아벨이었기에, 출신의 귀천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심중에 부유하는 의념들. 귀족들이 기득권을 세습시키는 정당성은 힘. 즉, 가호였다.
그들의 힘을 견고히 하기 위해 서로를 재단하고 걸맞은 상대와 교분을 튼 다음, 대를 잇는다.
그리하여 귀족들의 후세는 날이 갈수록 강인해져 갔지만, 평민들과의 격차 또한 커져만 갔다.
그러나 강검마는 달랐다.
출신 명분은 무시한 채, 본신의 재능과 무력으로 상황을 타파해 나갔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지, 몸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연약하기 그지없던 몸뚱이로 뺀질거리던 소년은 어느덧 남성미 물씬 나는 몸매와 날렵한 인상의 미청년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용사 후보라 일컫는 레온 반 라인하르트보다도 뚜렷하게 영웅의 행보를 이어 가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업적을 뽐내지 않은 채, 묵묵히 가시밭길을 걷는다.
아마 자신과 연루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겠지. 강검마가 마인을 베어 버렸다는 소문이 퍼지면, 마인은 그와 주변 인물들을 집요하게 노릴 터다.
거드름이라도 피운다면 싫어하기라도 할 텐데, 그는 그를 힐난하는 생도들조차 일절 무시할 뿐 대꾸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습이 아벨에게는 얄밉게 느껴졌다.
그런 강검마를 질투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얼굴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
한참을 상념에 잠긴 아벨의 양 볼에 홍조가 떠올랐다. 그러자 레이첼이 웃음을 흘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이내 화들짝 놀란 아벨은 고개를 털었다. 이어서 헛기침을 뱉고선 태연자약하게 입을 뗐다.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강검마한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감정’을 품을 생각도, 여유도 없어.”
“오-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도 안심이야, 아벨 아씨.”
레이첼의 눈동자에 다시 평소 같은 짓궂음이 빠르게 번져갔다. 아벨은 저 속을 읽을 수 없는 눈이 참 난처했다. 레이첼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너랑 검마 두고 경쟁 안 해도 되잖아. 다행이야, 다행! 그 빨간 머리 꼬맹이랑 사키까지는 어떻게 해 보겠는데, 아벨한테는 도저히 못 비비겠더라구, 냐하하!”
“…어.”
아벨은 아차, 싶었다.
* * *
“…자, 이 부분은 다음 주에 있을 필기시험에 나오니, 기억해 두도록. 학생의 본분은 본디 학문입니다. 아카데미의 취지상 비록 실기 시험의 반영 치가 높긴 하지만, 머리통이 텅텅 빈 생도는 세간에 존경받는 영웅으로 성장…….”
학문의 중요성을 강론 중이신 교수님. 새치가 성성한 머리가 도드라진다.
다소 고루할 수 있는 내용인 ‘가호 기초 분석학’에 관한 강의였다. 다만 저 교수님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생도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아직까진 먹물 냄새가 낯선 나조차 이 수업만큼은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게임 플레이에서 한두 낱말로 언급된 설정들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나는 부지런히 연필을 움직였다.
“자자, 가호의 등급은 깃든 주체에 따라서 구분됩니다. 수호령이 깃들면 수호령급 가호라 명하고, 정령이 깃들면 정령급 가호라 명하는 식이죠.”
“교수님, 그러면 조상신이 깃들면 조상신급 가호인가요? 안 그래도 요새 꿈꿀 때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와서요.”
“조상님은 쇠질 할 때 봉 무게 정도나 들어 주시지, 가호에 깃드시진 않아요, 조토 마테 생도.”
장난스러운 남생도의 질문에 교수님은 수더분하게 대꾸했다. 아재 개그가 취향인 생도 몇몇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소란스러워질 법한 분위기를 정숙시키고는 수업을 계속하는 교수님.
그렇게 화기애애한 수업 시간에 완벽히 유리된 듯 아랑곳하지 않고, 꿀잠을 자는 소녀가 있으니.
바로 내 옆자리의 사키 료조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교수님은 익숙하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불만이나 힐책을 표할 만도 한데, 별말 없이 강의를 계속한다.
절궁 사키 코지마의 딸이라는 대외적인 신분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실 료조는 이렇게 자도 매 쪽지 시험마다 만점을 따내니까.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참 부담스러운 생도일 만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쿨쿨 자는 료조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목과 이어진 미려한 어깨선. 하늘빛 머리칼 사이에서 새하얗다.
‘겁나 잘 자네.’
오늘로 사키 료조가 랑(狼) 클래스에 재배속되고 이틀이 지났다. 그녀가 왜 이곳에 온 것인지 의중을 떠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틈이 없었다.
왜냐고? 온종일 잠만 처자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어깨를 흔들어 깨워도, 무거운 눈꺼풀을 몇 번 끔벅거리고는 다시 잠에 들어 버린다.
교분을 쌓기 위해 다가온 생도들도 수업 시간 내내 잠만 자는 그녀를 보며 탄식을 흘렸다.
뭐, 여기까지는 그냥 잠만보 속성의 미소녀 정도라고 넘어가 줄 수 있다.
근데 왜 맨날 내 옆자리를 고집하는 거지? 나무늘보처럼 게을러 보이는 그녀지만, 언제나 내 옆자리를 선점한다.
원주인이었던 클로이의 입원이 길어져서 망정이지, 그녀가 알면 재차 칼부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도 얘 덕에 여러모로 뒷수습이 수월했지.’
검문소 직원의 목을 잘랐을 때, 사키는 가타부타 설교하는 대신 빠르게 뒷수습에 나섰다. 사람의 머리통이 눈앞에서 떨어져 나갔음에도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은 두뇌파인 스피드 웨폰은 두뇌를 빠르게 굴려 과정을 분석한다. 반면, 료조는 불필요한 말은 아끼고 긴요한 연결 고리를 파악해 냈다. 과연 고구마 방지 히로인이었다.
나는 턱 주변을 긁적이곤 교수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분필을 쥔 손가락에는 하얀 가루가 잔뜩 묻어 있다.
“가호의 등급은 위에서부터 영(英)령, 정(精)령, 수호(守護)령, 사(私)령 급으로 구분됩니다. 아마 여기 생도 대부분이 보유한 가호는 사령급 가호일 겁니다. 그렇죠?”
교수님이 그렇게 질문하자 생도들의 면면에 미묘한 감정이 스몄다. 교수님은 그들을 다독이듯 설명을 이어갔다.
“생도들, 실망하지 마세요. 수호령, 아니, 사령급 가호라 해도 운용만 능숙히 할 수 있다면 수호령급 가호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정령급은 어차피 이 세상에 몇 없는 가호지 않습니까?”
그 몇 없는 가호 중 하나를 며칠 전 내가 날름했었지. 와중에 한 여생도가 손을 들어 물었다.
“교수님, 영령급 가호는요?”
“영령급 가호. 세간에선 영웅급 가호라고들 부르죠. 가호학 교수인 제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사실상 전설로 치부되는 등급이죠. 인류가 가호를 처음 발현한 이래 단 한 사람,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 님께서만 발현하셨으니 말입니다. 뭐, 물론―”
문득 말을 끊는 교수님. 아마 영령급 가호의 두 번째 각성자인 레온에 대해 언급하려는 찰나였던 모양.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아직 레온은 인류 역사상 두 번째 영령급이자 타이틀 가호인 ‘기적의 가호’를 완전히 각성하기 전이니까. 학자의 입장에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노릇일 터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씀하시곤 교수님은 개론서를 세워 교탁을 탁탁, 치셨다.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생도들이 우수수 클래스를 빠져나갔다. 점심시간은 못 참으니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불현듯 의문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내가 소리치자, 정리 중이시던 교수님의 눈이 동그래진다. 나는 평소 조용히 수업을 듣기만 했기에 의외라는 반응이다. 곧 교수님은 온화한 미소를 보이셨다.
“얼마든지요, 강검마 생도.”
“혹시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이라는 문구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곤히 자고 있던 사키 료조도 내 목소리에 눈을 비비며 슬며시 머리를 들었다. 교수님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의아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질문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강검마 생도의 말에는 어폐가 있군요.”
“무슨 어폐 말입니까?”
내 말에 교수님이 두 눈을 깜박거리셨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남은 신은 없으니까요. 뭐, 그래도 본 생도의 학구열은 감동입니다. 언제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제 연구실에 찾아오세요, 그럼.”
클래스를 나가시는 교수님.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 광경을 보고 사키는 피식 웃어 버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꺾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 잤냐?”
“음, 아닌 거 같아.”
료조는 재차 이마를 책상에 파묻었다.
“와우.”
나는 짧게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