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4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47화(47/300)
47화 별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
“…으.”
잇새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일광에 따끔거릴 정도로 눈이 부셨다.
가볍게 말아 쥔 손으로 연거푸 눈꺼풀을 비볐다. 하지만 좀처럼 눈은 자비 없는 직사광에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이내 나는 팔을 내려 행위를 멈추었다. 어차피 시간이 좀 지나면 적응하기 마련인 것을. 괜한 조바심이 들어 급하게 행동했다.
나는 숨을 깊게 집어삼키고서 크게 토해 냈다. 그러자 한껏 쌓인 긴장이 조금 걷혔다. 곧이어 오감 중 시각을 제외한 감각들을 확장해 나갔다.
귓전에 스미는 적막. 현실적으로 제아무리 낮은 적막이라 해도, 벌레 소리라도 들리기 마련이거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이명이 들릴 정도로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누군가 억지로 귀를 틀어막은 것처럼.
그다음엔 손가락을 쫙 피고서 허공에 흔들었다. 산들산들한 공기의 저항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뭐랄까,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나오는 심해에서 정처 없이 부유하는 장면 같은 느낌이었다. 몸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탈력감.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 마비되는 기분에 흠칫 소름이 돋았다.
게슴츠레 눈을 들어도 짜릿한 통증이 안구를 훑었다. 나는 쌍욕을 한번 뱉고는 재차 눈을 굳게 감았다.
눈을 감은 채 침착하게 상황을 톺아보았다.
‘여기는 어디지?’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 영문 모를 장소(?)에 도착한 경위가 기억나지 않았다. 이질적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익숙한 기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사태 파악이 어느 정도 되기 시작했다. 상실된 감각, 인과 없는 경위. 추론할 수 있는 정황은 하나뿐이다.
꿈이구나.
꿈임을 알아챔과 동시에 자의와는 상관없이 가늘게 떠지는 눈. 곧 흐릿했던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각몽인가 그건가?”
내 중얼거림은 성대에서 맴돌다 삼켜졌다. 하지만 확실하게 귓가에 울리는 내 목소리. 생경한 감각에 나는 침을 삼켰다.
이내 반쯤 감겼던 눈꺼풀이 열리고, 눈앞의 광경에 입술만 몇 번 뻐끔거리다 말았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시커먼 도화지에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수놓인 별들과 진하게 타오르는 태양.
시선을 살짝 돌리자 보이는 창명(滄溟)한 풍경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는 은하수. 우주 자체를 베어 내는 한 자루의 칼 같았다.
“우주?”
그렇다. 꿈속의 나는 별안간 우주, 망망대해를 유영 중이었다. 나는 황급히 들숨과 날숨을 확인했다. 다행히 잘 쉬어졌다.
너무나도 현실성이 짙어 순간적으로 꿈이란 사실을 잊어버렸다. 나는 멋쩍게 헛웃음을 치고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우주에도 노을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아스라한 성흔들이 묵색 우주에 틈새에서 오색빛 광채를 내뿜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이지만 이 또한 자연이다. 나는 새삼 감탄하며 우주의 무중력에 몸을 맡겼다. 이 부유감이 썩 중독성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 꿈을 꿨던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반년? 일 년? 이상은 꿔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오랜만에 꾸는 꿈이 이토록 현실감 넘치는 자각몽이라니.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던 그때.
스스슥⎯
“⎯⎯!”
우주에 흩뿌려져 있는 별들이 나를 중심으로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에는 자신 있었는데,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부산스럽던 별들은 이내 제자리를 다 찾았는지, 일순 움직임을 멈추고 배열되었다.
내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재차 확인했다.
망막에 떠오른 그것은 별들로 쓰인 낱말의 조합이었다. 나는 놀라서 눈동자를 키워 정면을 지그시 응시했다.
[‘G.M.’이 당신에게 대화를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그 문장에 내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내가 띄우는 상태창과 비슷했다. ‘기적의 가호 M’의 세계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하다 하다 꿈도 이런 식으로 꾸는 모양이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고정되었던 별들이 다시금 움직여 재배열되었다.
(Y/N)
▲
스스스⎯
[당신은 G.M.의 대화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G.M.’이 세계선-Code.◎●○●○●●○○●●○○○●에 간섭합니다.]“세계선은 또 뭐야?”
아리송한 어휘들. ‘G.M.’은 뭐고 세계선이랑 그 뒤의 기호(?)들은 또 뭐지.
하나, 꿈이라기엔 왠지 모르게 섬찟할 정도로 또렷했다. 소름이 전신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부우우우우우우웅⎯
맹렬한 굉음과 함께 시야에 반짝거리던 별들이 흔들렸다.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우주가 진동하고 있었다.
몸은 무형의 사슬에 포박된 듯, 운신에 제동이 걸렸다. 발끝부터 차츰차츰 굳기 시작하더니 성대까지 틀어막힌다.
[상대의 격이 너무 높습니다.] [당신의 격이 너무 낮습니다.] [당신은 아직 【? ? ?】으로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동시에 귓전에서 쳐 대는 메아리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그래도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Y/N)]망막에 새겨지듯 떠오르는 별 무리로 빚어진 문장. 나는 그것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유.
못해도, 내가 부여받은 ‘검신의 가호’의 실마리일 것이다.
떠오르는 가능성은 그것밖에 없었다. 와중에 우주의 공명은 더욱이 거세져 갔다. 나는 간신히 뻣뻣하게 굳어 가는 목에 힘을 주어, 끄덕였다.
(Y/N)
▲
곧이어.
[G.M. 이 당신의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G.M. 이 접선을 위해 억제력을 사용합니다.] [세계선-Code.◎●○●○●●○○●●○○○●의 전체 조정 및 변환을 시작합니다.]지이이잉⎯
곧이어 망막을 채운 새카만 우주에 쩌적- 하는 소음이 나며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내 잘게 쪼개진 공간의 파편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일순 삭막하게 그려지기 시작하는 붉은 선 다발들. 명백하게 내가 가호를 발현할 때 생기는 그것이 분명하다.
그 선들을 따라 수많은 성흔과 성단, 공간이 말끔하게 잘려 나간다. 나는 망연한 시선으로 그 장면을 목도했다.
‘…이게 무슨?’
먼지처럼 비산하는 별 무리. 참경과 황홀경의 경계 흐릿해진다.
비유 따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천지(天地)가 개벽(開闢)하고 있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아카데미의 입학 날 ‘검신의 가호’를 발현했을 때와 비슷했다.
이윽고 난잡하게 쓸려 다니는 파편들의 틈새로 눈에 담을 수 없는 빛이 발광했다. 나는 그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것이 무엇인지 봐야만 한다. 그런 출처 없는 확신이 들이찼다. 그러자 우주의 진동이 걷잡을 수 없이 맹렬해지더니 일순 정신이 확 몰려오기 시작했다.
“야! 일어나!”
곧바로 귓전을 때리는 누군가의 음성. 누구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익숙했다. 어깨에서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외부의 방해로 ‘G.M.’이 후일을 기약합니다.] [‘G.M.’이 당신에게 말을 건네려 합니다.]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서서히 암전되기 시작했다.
나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 손가락 사이로 별들로 엮어진 활자를 빚어 낸다.
[베고 자르십시오.]하지만 등 뒤에서 작용하는 인력이 무심하게 나를 빨아들였다.
그 문장을 끝으로.
순식간에 쇄도해 온 어둠이 거칠게 나를 삼켰다.
파앗⎯!
+++
…………
………
……
…
《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
……
………
…………
+++
“야! 강검마! 일어나라고!”
눈을 뜨니 료조가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댔다. 어찌나 세게 흔들어 대는지 일평생 해 본 적 없던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으며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아스라한 노을이 풍경 너머로 일렁이고 있었다.
“나한테 많이 잔다고 뭐라 할 때는 언제고, 아주 꿀잠을 주무시던데?”
료조가 샐쭉한 표정으로 뭐라 뭐라 말을 한다. 다만, 아직 먹먹한 귀울림 때문에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안 깨웠으면 내일 등교는 교실에서 했을걸?”
“…….”
“자.”
그리 말하고서 품 안에서 꺼낸 티슈 몇 장을 건네는 사키. 나는 한차례 머리를 털어 정신을 차린 뒤, 그것을 건네받았다.
“보통 사람이 자면 침을 흘리지 않나? 검마, 너는 왜 눈물을 흘린다니.”
그녀의 말마따나 뺨에서 줄줄 무언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티슈로 쓱쓱 닦아 내었다. 빤히 나를 쳐다보고는 걱정스럽게 말을 떼는 료조.
“뭐, 슬픈 꿈이라도 꿨어?”
“…음.”
맨날 잠만 처자는 사키한테 자다 걸린 것도 쪽팔린데, 왜 울고 있기까지 했는지 영문을 몰랐다.
나는 머쓱잖게 턱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분명, 무슨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원래 꿈이란 게 생각해 내려 할수록 잊힌다지만, 이번 꿈은 유독 빠르게 옅어졌다. 그러고는 신기루처럼 덜미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꿈을 꾸긴 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깨워 줘서 땡큐.”
“뭐, 그래. 원래 꿈이란 게 뇌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해마에 저장되는 걸 막는⎯.”
료조는 알 수 없는 과학적인 용어들을 줄줄 읊어 댔다. 쿨하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내 무관심에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며 주머니에서 꺼내 드는 그것. 양갱이었다.
“얼른 일어나. 30분 후면 교수동 문 닫힐 시간이야.”
“시간이 벌써 그렇게?”
“너, 수업 끝나고 이십 분이나 잤어.”
“…….”
자기는 수업 시간에 내리 자면서, 당당하게 나에게 잔소리한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얼른 일어나. 나가자.”
“어, 그래.”
료조는 내 의사는 듣지도 않고는 보채듯 나를 일으키려 했다. 책상에 널브러진 개론 서적 몇 권을 가방에 챙기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려는 때에. 문득 의문이 여렸다.
“근데, 사키 너는 왜 여태껏 귀가 안 한 거지?”
“…….”
사키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동자를 역동적으로 굴려 댔다. 이내 그녀는 더듬더듬 입술을 움직였다.
“어어, 당연히 마지막까지 남아서 너 깨우려고 했던 거지.”
평소의 냉랭했던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 위화감에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도로 앉았다.
그러자 머리가 굳은 듯, 당황한 기색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는 료조. 이어서 살살 눈치를 살피더니, 의중을 술술 실토하기 시작했다.
“흠흠, 그게, 레이첼한테 들었는데 남자는 그 왜, 있잖아. 자고 일어나면 생리적인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며? 다른 게 아니라, 순전히 학술적인 관점에서 그게 궁금했거든. 근데 그때 마침 네가 낮잠을 자는 거 아니겠어?”
뭔 놈의 아카데미가 남자보다 여자들이……. 나는 한숨을 푹 흘린 뒤, 그녀가 줄줄이 내뱉는 변명을 중간에 잘라 냈다.
“야.”
“어, 어? ⏤딸꾹!”
그녀는 양갱 탓에 사레라도 들렸는지 딸꾹질을 해 댔다. 내가 한심스레 쳐다보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딸꾹!
텅 빈 강의실에 메아리를 만드는 딸꾹 소리. 사키는 그것을 멈추려 입을 틀어막고 끙끙거렸다.
“먼저 가라.”
사키는 민망한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주억거리고는 빠르게 물러났다. 참 콘셉이 난해한 캐릭터였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이어서 천천히 사타구니를 내려다 보았다.
‘…….’
두 손을 멋들어지게 주머니에 푹 찔러 넣으며 고개를 창틀 쪽으로 꺾었다. 오늘따라 유독 노을이 눈이 부셔 잠시 보고 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