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5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50화(50/300)
50화 짧은 여유 (1)
동아리 담당 부서 직원 서염정의 낯빛이 새하얘졌다.
행정실 일동은 꼿꼿이 세운 허리를 벽에 붙인 채 일렬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가운데.
나풀거리는 검정 실크 로브. 아침 햇살을 받은 어깨에서 머리칼이 수정처럼 빛났다.
팔짱을 끼고서 구둣발을 울리며 다가오는 치명적인 여인. 어깨가 쩍 벌어진 수행원 둘이 그녀의 뒤를 바싹 쫓았다.
‘…학원장님?’
이윽고 서염정의 목전까지 다가온 학원장. 차게 식은 눈초리에 서염정은 침을 크게 삼켰다. 눈앞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 했으나,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학원장님의 가까운 지인의 사촌?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근데 이 특진생의 동아리의 담당 고문이 학원장님이라고?
일곱 성웅(聖雄)의 주축인 현자 메디아가 일개 특진생의 후견인을 자처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릴까. 갓난아기를 앉혀 놔도 코웃음 칠 상황이 서염정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이토록 가깝게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십 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고 싱그러운 미모. 하지만 그녀를 쳐다보는 학원장의 눈동자는 전혀 싱그럽지 않았다.
꿀꺽. 질식할 것 같은 무거운 적막이 벽면에 스미고, 망연한 시선으로 학원장을 바라보던 서염정이 꿈에서 깬 듯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하, 학원장님!”
서염정의 성정은 강약약강. 자신이 약자라 생각하는 이에겐 매몰찬 그녀였지만, 사회적 강자에겐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렸다.
메디아는 겸양이 잔뜩 낀 그녀의 말투가 썩 내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던 중, 옆에서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특진생을 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어제는 전화만 했었는데, 우리 검마 이렇게 직접 보니 너무 기쁜데?”
“바쁘실 텐데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에이, 아니야. 네 부탁이면 버선발로라도 뛰어와야지. 그리고 때마침 출근길이기도 했고.”
긴장감이 역력한 행정실의 분위기 속에서 학원장과 특진생 두 사람만이 살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임직원 일동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살살 학원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고개를 푹 조아리고 있는 서염정은 곁눈질로 특진생을 흘깃했다.
어떻게 호아킨 아카데미의 최고 통수권자가 한낱 생도, 그것도 특진생을 저리 격 없이 대할 수 있는 거지?
…근데 잠깐 저 특진생의 이름, 강검마라고? 문득 가슴을 휘감는 위화감. 친한 교관에게 건너 들었던 이야기. 분명 올해 수석 입학생이 이름이…….
뇌리에서 부유하던 의념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지기 시작하자 서염정의 입술이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강검마를 흘겨보던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검마야, 일단 그 서류 줘 볼래? 남은 절차는 동아리의 담.당.인 내가 대신할게. 벌써 아홉 시 십 분 전이다. 다음 주면 필기 고사잖아, 수업에 늦으면 안 되지. 얼른 가 봐!”
“아, 시간이 벌써. 그럼 부탁드립니다.”
학원장에게 까딱 목례 하는 강검마. 나이든 직원들은 그의 가벼운 목례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학원장이 그들을 슥 훑자 표정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럼 그럼.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공부 열심히 해!”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메디아는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강검마가 문고리를 잡을 때까지 살갑게 손 인사 했다.
탁.
강검마가 행정실의 문을 닫고 나가고. 문쪽을 향해 살랑살랑 흔들리던 메디아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곧이어 그녀는 천천히 몸 방향을 꺾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네.”
“…….”
시리도록 차가운 그녀의 음색. 생도들에겐 한없이 자애롭고 따스한 학원장이지만, 임직원들에 한에선 공포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고 냉정한 상사였다.
공기를 슥 읽어 낸 메디아는 이윽고 헛웃음을 흘렸다.
현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상황의 편린만으로 정황을 완벽에 가깝게 유추해 냈다. 구태여 고유 가호인 ‘시인의 가호’를 발현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학원장으로 있는데, 아직도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일하고 있었네? 보나 마나 출신으로 뭐라 했겠지. 그것도⎯”
가일층 서늘해지는 장내의 공기. 창틀 위 커튼이 거세게 나부꼈다.
“⎯나와 지크가 후계로 점찍어 둔 생도에게 말이야.”
직원들의 등허리를 타고 식은땀이 개천처럼 흘렀다. 몇몇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서염정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빼꼼 고개를 들쳐 올렸다.
메디아가 턱짓하자 수행원 중 한 명이 서 있던 서염정의 의자를 빼 왔다. 서염정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
메디아는 서염정의 의자에 풀썩 앉고서 도발적으로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턱을 괴어 서염정을 응시하더니 낮게 입을 뗐다.
“길게 말 안 해. 오 분 줄게.”
말끝과 동시에 서염정은 펜과 종이를 꺼내 사직서를 적어 나갔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 코를 찡그리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펜을 움직였다.
변명이라도 했다간 직장이 아니라 이승을 사직할 것 같았기에.
* * *
그날 오후.
수업을 끝마치고, 행정실을 다시 찾으니 동아리 창설이 접수됐다는 통보를 건네받았다.
물론, 부원이 한 명 부족해 정식 수리는 아직이라지만, 달리 말하면 그것만 해결되면 동아리가 창설된다는 것.
어차피 촌각을 다투는 일은 아니기에 나머지 부원은 다음 주 시험이 끝나고 구해 보기로 헀다.
근데 어째 아침에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던 여직원의 자리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게다가 사근사근한 말투로 다과를 건네던 행정실 직원들…….
메디아가 무언가 일러둔 거 같은데, 그렇다 해도 일변된 그들의 태도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뭐, 그래도 행정실엔 동아리 관련 일로 앞으로도 몇 번 들를 것 같으니 나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잡념을 훌훌 털고, 아카데미 내 대장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아저씨, 저 왔어요.”
그 한마디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담금질 중이던 뷜란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검은 떼가 잔뜩 낀 헝겊으로 땀을 훔치고서 시근덕거리는 숨을 다듬었다.
“무장 찾으러 온 거지? 잠시만 기다려라.”
나는 알겠다는 눈치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그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는 의뢰한 무라사메를 가지러 창고 쪽으로 향한다.
안에 입은 튜닉 틈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힌 광배근이 도드라졌다. 잠시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서 적당히 아무 의자나 빼내 몸을 기댔다. 가마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열풍 때문에 삐질삐질 땀이 새어 나왔다.
안 그래도 여름의 초입이라 날씨도 슬금슬금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나는 넥타이를 한껏 느슨하게 풀고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저 인간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 계속 일하는 거지?’
저 대장장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저였던 내겐 애증의 인물이다.
게임 플레이 시절, 나는 소 과금 유저였던지라 그에게 별 억하심정이 없기도 했고.
…뭐, 얼마 전의 일 때문에 ‘증’이 좀 더 커지긴 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장장이 뷜란트. 무장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도맡는 메인 NPC 중 한 명. 그와 동시에 유저들이 장전해 둔 총알을 순식간에 거덜 내 버리는 태생 자체가 욕받이이기도 한, 참 양면적인 인물이다.
작중 대사로 비추어 볼 때, 돈을 많이 밝히기는 해도 특유의 넉살 때문에 미워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근데 그건 내가 소 과금 유저였기에 그랬을 거다.
반면, 헤비 과금러들은 커뮤니티 등지에서 그를 쥐랄트, 둠란트 심지어 부랄트 라고 신랄하게 까 댔었다.
혜자 축에 속한 ‘기적의 가호 M’이라도, 출신 성분이 결국엔 K-모바일 게임이다. 그런 세계에서 무장 제련, 강화를 맡은 뷜란트로선 원성과 분노를 피할 순 없는 노릇이니.
하기사, 나도 그가 내 무라사메를 B급에서 E급으로 만들어 놨을 땐 부아가 치밀었었다.
그래도 참작해 주면 그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니면 더 빡칠 것 같으니까.
아무튼 과금 유저들은 그러면서도 강화 갓챠를 돌리기 전이면, ‘뷫란트 님, 제발 이번 한 번만!’이라며 뷜란트의 사진을 강화창에 같이 띄워 놓고서 염원했더랬지.
유저들의 피를 빨아먹은 건 게임사겠지만, 유저들의 돈을 장작 삼아 가마에 불을 지피는 건 뷜란트니.
게다가 그는 내게 더 이상 무미건조한 NPC가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 격인 실존 인물이다. 그리 생각하니, 심경이 꽤 복잡해졌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냐?”
멍한 표정으로 상념에 잠겨 있자, 어느새 발치로 다가온 뷜란트가 물어 왔다.
“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아저씨가 아는 사람이랑 닮아서요.”
“그럼 그 사람도 나처럼 미남이겠구나.”
뷜란트는 검게 그을린 턱수염을 매만지며 이를 드러내 웃었다. 나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그는 한 손에 꼬나 쥔 무라사메를 건넸다.
그러고는 술로 보이는 살구색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혀를 축이는 뷜란트. 발효된 곡물 냄새가 나는 게 얼추 막걸리 같았다.
설정상 뷜란트는 북유럽 출신 인물인데, 막걸리를 잔째 맛있게 비우는 모습.
한국인 패치가 완벽하게 된 외국인 같은 피드들이 생각나서, 그 모습이 퍽 재밌었다. 빤히 쳐다보던 중, 뷜란트와 눈이 마주쳤다.
“너도 한 잔 주랴?”
“…미성년자한테 술을 권하면 어떡합니까.”
“얌마, 애가 애 같아야지! 말하는 뽄새는 무슨 세상 다 산 놈 같은 녀석이 말이야.”
“…….”
뷜라트는 낮게 툴툴거리고서 술잔을 휘휘 저었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서 건네받은 무라사메를 이리저리 살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다만, 이번 의뢰는 완벽 그 이상으로 했다 자부할 수 있어. 물론, 마수 소재들 사이에 껴 있던 상급 소재도 한몫했지만 말이지.”
그 말대로 절치부심이라도 했는지, 먼젓번보다 만듦새가 확연히 좋아졌다.
오라를 피워 낸 여파로 쩍쩍 실금이 가 버렸던 칼날은 한기를 내뿜었고, 숯처럼 그을렸던 칼자루도 고아한 오동나무의 질감을 되찾았다.
‘뷫란트.’
한층 격상한 무라사메를 뿌듯이 바라보며 속으로 상태창을 떠올렸다.
망막에 번뜩하며 떠오르는 문구들.
파앗⏤
== ==
[무통(無痛)의 가호]통증이 싹 가십니다.
[▷NEW! 가호 발현 횟수를 충족하여 발동 시간이 다음처럼 조정되었습니다.] [※ 발동 시간 : (40▶50) 초, 재사용 대기시간 : 12 시간]== ==
무통의 가호도 단순히 많이 발현하면 조건을 충족하는 게 아니라, 나름 실전에서 발현했을 때만 횟수가 카운팅되는 모양.
검신의 가호만 상시 확인했기에, 까먹고 있었는데 마침 반가운 소식이다. 안 그래도 앞으로 클리어해야 할 던전들을 생각했을 때 40초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비록 증대된 시간은 꼴랑 10초지만, 분명한 호재였다.
예전엔 무쓸모 가호라고 자조적으로 투덜거리긴 했어도, 본신 ‘강검마’가 발현한 이 무통의 가호는 사령급 가호치고는 범용성이 꽤 뛰어난 가호다.
훗날 무장의 격을 높였을 시점에도 전이의 가호와 병용하는 걸 고려하면, 긍정적인 전망이 가득하다.
나는 뺨을 긁적거리며 손을 좀 더 저어 스크롤을 내렸다.
== ==
[무라사메(叢雨)]종류 : 사시미
설명 : 이슬을 머금는 검이라 불렸‘던’ 검입니다. 장인의 노하우가 깃든 탄소강의 회칼로 거듭났습니다. 크기는 작아도 사용자에 따라 성능은 다를 수도?
규격 : 「칼날 길이 – 35센티」, 「폭 – 6센티」
특성 : 「파괴력 – C」, 「사정거리 – E」, 「경도 – (E▶C)」, 「성장성 – A」
등급 : (E▶D)급
[NEW!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 (터치 시 해금.)== ==
C급 마수인 버팔로 소재였기에, 큰 기대는 안 하긴 했어도, 고생한 것치고는 등급 업이 그다지 드라마틱하진 못했다.
A급 마수인 ‘카우 킹’의 소재도 있어서, C급은 될 줄 알았는데……. 하긴,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릴 리 없지.
그래도 ‘경도’가 두 단계 격상한 건 꽤나 고무적이었다. 앞으로도 불시에 무라사메에 오라를 불어넣을 상황이 닥칠 텐데, 그때마다 못 버티고 바스라지면 곤란할 터다.
이 주정뱅이 대장장이한테도 조금은 미안하고 말이지.
“……?”
스크롤을 쭉쭉 내리던 나는 하단에 적힌 문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터치했다.
파앗⏤!
== ==
성공적인 강화와 본 무장의 성장성이 맞물려, 특수 능력을 최대 3개까지 부여 가능합니다.
1) [ ⎯⎯(비어 있음)⎯⎯ ]
2) [ ⎯⎯(비어 있음)⎯⎯ ]
3) [ ⎯⎯(비어 있음)⎯⎯ ]
※ 특수 능력 부여는 *마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임의로 발동합니다.
== ==
“부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