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5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51화(51/300)
51화 짧은 여유 (2)
대장간에 들른 후 기숙사로 돌아왔다. 두 팔로 머리를 받치고서 등을 침대보에 묻었다. 넋 잃은 시선을 익숙한 천장에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왜 하필 마석이냐.”
무라사메를 처음 받았을 때, 성장성 하나만큼은 높아 내심 기대했었다.
거기에 부응하듯 새롭게 추가된 기능.
무려 특수 능력을 세 개나 박을 수 있다는 기가 막힌 특전이었다. 슬쩍 봤을 때는 속으로 쾌재를 내지를 정도로 말이다.
“하.”
절로 푹 내쉬어지는 한숨. 만족스러운 결과임은 분명하나 ‘마석’이라는 문구에 생각이 깊어졌다.
게임상에선 설명란에 미사여구만 잔뜩 범벅 되어 있고, 실용성은 그닥인 광석이었는데.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더니, 선현들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대체 왜 마석이 특수 능력 부여의 촉매인 거지? 그런 의문이 스치던 찰나, 무라사메 설명란의 마지막 문장이 불현듯 떠오른다.
「크기는 작아도 사용자에 따라 성능은 다를 수도?」
“…….”
설마 내 이름에 마(魔)자가 붙어서 그런 건가? 개소리 같겠지만, 왠지 그쪽으로 가능성이 쏠리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될 대로 되라지. 애초에 가호는 ‘검신’이면서 이름이 ‘검마’인 시점에서 말장난에 물꼬를 튼다는 게 이상하진 않은가. 나는 초연하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마석, 마력을 품은 광석.
특정 던전들의 보스 몹들을 토벌할 시 드롭되는 소재였다.
문제는 마석을 토해 내는 보스 몹들은 일단 마수이긴 했지만, 그것들은 위험 등급이 최소 A급인, 기실 마인이나 다름없는 개체들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예의 던전의 석문의 열쇠 격인 ‘기간트 마석’을 드랍하는 기간트만 해도 거수(巨獸)라는 이명이 붙은 마수.
어째서인지 누군가의 손에 토벌되어 마석을 뺏긴 것 같지만, 기간트는 엄연히 상위급 마수다.
무식하게 큰 덩치와 맷집을 가진 골렘 마수, 기간트가 발만 굴러도 그 일대가 흔들린다는 묘사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래도 기간트 정도면 애교인 것이, 그 녀석 이후에 마석을 토해 내는 마수들은 사실상 말만 마수지 존재 자체가 자연재해였다.
부정한 뱀 ‘바실리스크’, 흉수(凶獸) ‘만티코어’, 리치 킹 ‘드라우그’ 등등.
본격적으로 마족과 대립하기 전까지는 무소과금을 고집하던 유저들 사이에서 일명 ‘통곡의 벽’이라 불리던 분기 보스들이었다.
플레이 당시엔 소과금 유저였던 나 역시도 그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더랬지.
명목상으로는 주인공 레온의 위업을 쌓는 장치 격인 마수들이지만, 그 미친 게임사가 유저들 돈 빨아먹으려고 만든 마수들일 터다.
물론 난 마수 토벌에 유리해지는 과금 따윈 하지 않았다. 속내가 노란 것이 고깝더라고.
나름대로 악바리가 있는 성격이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녀석들의 패턴을 해부해 가며 공략했었다. 자동 사냥도 풀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을까 싶다.
아무튼, 그런 위험 요소들까지 감수해 나가며 무장에 특수 능력을 부여할 가치가 있을까.
하물며 녀석의 토벌은 레온의 몫일 텐데.
나는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몸을 벌떡 일으키고서 창틀에 몸을 기댔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A급 이상의 무장은 되어야 부여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을, 무려 세 개나 부여할 수 있다.
임의로 발동한다는 것이 리스크이긴 해도, 플레이 경험에 비춰 봤을 때 특수 능력 유무의 차이는 여느 양산형 게임들처럼 부조리할 정도로 확연했다.
애당초 유저들이 과금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무장 강화 및 특수 능력 가챠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무장의 특수 능력은 사용자의 무력을 진일보시켜 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특수 능력 하나 없는 무장들로 여태껏 위기들을 잘 헤쳐 나온 게 용했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게 떠오른 만월.
보고 있으니 시름은 덜어지고 생각은 깊어져 갔다.
작금의 나는 강함을 갈구하고 있었다. 평이, 무탈, 안전이라는 해이한 생각들은 접어 두었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이전과도 비단 다를 바 없었다. 살아가는 것.
플레이어 당시에는 없었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창궐하고, 나를 노리는 위험 요소들이 지천에 도사린다.
마치 이 세계가 나를 배척하듯이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내가 알고 있던 정사들이 비틀려 갔다.
아카데미 생활이 녹록지 않을 거란 생각은 진즉에 했지만, 여러 일들이 겹치니 성격도 많이 냉소적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도 한 달이나 지나 있었다. 3년 후로 예정된 2차 인마대전 또한 차츰 내막을 드러낼 것이기에.
그에 대한 방비로 일신의 무력 상승과 더불어 무장에 특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왜냐면, 솔직하게 3년 후에 발발할 인마대전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우리의 주인공 레온 반 라인하르트. 이상하게도 어째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머메이드가 마인이라 해도, 차기 용사라는 녀석이 평타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건 꽤나 충격적이었다.
뭐, 그때 이후엔 내가 알고 있던 레온의 행적과 큰 차이는 없긴 했지만, 솔직히 미덥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과는 뚜렷한지, 그가 꾸린 파티가 상급 던전을 토벌했다느니 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있을 ‘무인도 생존 훈련’이 치러질 ‘아발론’ 섬에서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무장이자 명(明)과 암(暗) 속성이 공명하는 검 ‘발뭉’의 칼자루를 얻을 터다.
‘부러운 새끼.’
가설이지만, 어쩌면 내 존재는 주인공 레온의 액막이 같은 게 아닐까? 원래라면 그에게 향했어야 할 위협을 내가 대신 똥받이 해 주고 그런 거. 그렇게 생각하니 썩 좋지 않은 기분이다.
찝찝한 마음에 나는 괜히 무라사메를 잡고서 노끈을 반쯤 풀었다. 키링- 하는 선명한 검 울림이 잔잔하게 깔렸다.
월광을 듬뿍 머금은 칼날. 그곳에 반사되어 맺힌 얼굴.
검게 칠해진 눈동자와 머리칼의 끝만이 허옇게 배설되어 내려앉듯이 염색된 흑발.
사뭇 삭막하게도 보이는 외견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레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빛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어쩌면 이 세상에 나를 내던진 무언가가 그런 불쾌한 의도를 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한동안 무라사메를 바라보다가, 이내 세게 칼자루를 틀어쥐었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핏기가 가셨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나는, 강검마다. 주인공다운 완벽한 선(善)의 행보를 밟을 이유도 마음도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를 것이다.
“…베면 잘릴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문득 읊조렸다. 어디선가 들어 본 구절처럼 아련한 기분이 맴돌았다.
동시에 쨍한 월광에 가려져 흐릿했던,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 새카만 하늘을 한가득 채워 갔다. 교수님 한 분이 강의 도중에 넌지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이 세계의 별들은 먼저 간 성웅(聖雄)들의 영혼이란다.
죽어서도 인세(人世)를 가호키 위해 당신들의 혼을 불사르면서까지 내다보는 것이라고.
그 순간, 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내빼며 호선을 그렸다.
유성.
내게 응답하듯 낙성(落星)하는 그것에, 이유 모를 안도와 위안감을 얻었다.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필기 고사 당일이 되었다.
나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냉수마찰로 몸을 씻었다.
이제 초여름이고, 시험 날의 의식처럼 해 봤는데, 전신을 훑는 찬물에 뼛골이 시렸다.
그래도 눈가에 대롱거리던 졸음은 단숨에 달아났으니, 소정의 목표는 이룬 셈이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 물기를 닦아 내었다. 조례 훈련을 틈틈이 겸한 운동의 성과로 딱 자리 잡힌 식스팩과 군살 없는 몸매.
무엇보다 단전 아래의 묵직한 그것. 역시 마르고 키가 크면 다른 것도 큰가 싶다.
“새끼, 좀 치네.”
피식, 진심으로 실소한 후 마무리로 머리를 탁탁 털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한다.
또래 같지 않게 젖살은 많이 빠진 모습. 그러나 아직 얼굴에 솜털이 뽀송뽀송한 것이 영락없는 십 대다.
레온처럼 조각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름 반반한 편이지 싶다. 피부도 뽀얗고 턱도 매우 날렵하다.
그래도 상남자 외모였던 전생에 비하면, 너무 기생오라비 같아서 이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남자가 된 기분이네.”
본래는 강검마지만.
지금의 나를 완전히 자신으로 인지하는 것이 참 기묘한 기분이다. 간간이 보던 웹툰이나 이런 것들에선 ‘빙의’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문득 궁금해져서 화장실에서 몸 털기를 마무리 짓고, 핸드폰으로 빙의의 뜻을 검색해 봤다.
== ==
빙의(憑依)
[명사]1. 타인의 영혼 또는 악귀, 원귀, 신(神) 등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 깃드는 현상.
== ==
“흠.”
상식선에서 알고 있던 의미와 별반 차이는 없다.
사실 이런 걸 하나하나 따져 본다는 게 내 처지에 우습긴 했다. 이미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것 자체부터 태클 걸 게 너무 많다.
“이제 와서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는 핸드폰을 침대보 위로 휙, 던지고서 셔츠 단추를 채워 올렸다.
교복을 전부 갖춰 입고 자기 전 만들어 둔 샌드위치를 씹으며 공책을 들척거리며 필기 내용을 되새김질했다.
‘가호의 발현 나이대는… 694년 전,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웅 혁명의 여파…….’
호아킨 아카데미의 학풍은 기본적으로 실습. 중간고사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달성한 나로선 이토록 진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반영 비율도 낮은 필기시험에 사뭇 진지해진 이유는.
모든 생도들이 볼 수 있게끔, 석차가 교수동 복도에 대자보로 붙기 때문이다.
성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는 취지라는데, 무럭무럭 커 가는 새싹들에게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나를 포함해서.
솔직히 그것만 아니었어도 설렁설렁 볼 요량이었는데, 동아리의 부원 두 명이 하필이면 나란히 필기 수석과 차석이었다.
크게 상관은 없겠다만, 부장이 되어서 부원들에게 성적으로 무시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동아리의 창설 취지가 번듯이 던전 공략 학술회인데, 부장인 내 성적이 낮으면 가입하려는 생도가 있을까?
탁.
공책을 덮고 샌드위치를 전부 씹어 넘긴 뒤, 책가방을 들쳐 멨다. 묘한 긴장감에 어깨에 잔뜩 힘이 실렸다. 수험생의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지구에선 가세가 한순간에 기울어 고등학교를 중퇴했었지만, 중학교 때 나는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공부 머리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그때그때 잔머리는 잘 돌아가서, 요령껏 적당히 정답처럼 보이는 걸 찍으면 얼추 맞아 들었다.
‘모르는 건 3번.’
나는 굳은 결의를 속으로 읊조렸다. 대충 준비를 마치려던 즈음.
롤린~♬
수신음과 함께 부웅, 진동하며 수신을 알리는 핸드폰. 시험 중에는 어차피 제출해야 해서 오늘은 두고 가려고 했다.
“아침부터 누구야?”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사키 료조: 오늘 필기 고사인데 아침은 먹었어?]뜬금없이 어머니처럼 문자를 보낸 료조. 그녀는 간혹 쓸데없는 문자를 보낼 때가 있었다. 보통은 영양가 없는 양갱 관련 학술지 링크들이었다.
[나: ㅇㅇ 샌드위치 먹음.]0.5초도 안 돼서 사라지는 문자 뒤 숫자 1.
[사키 료조: 시험 전에는 충분하게 당 보충을 해 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든. 그래서 내가 맨날 양갱을 달고 사는… 어쩌고저쩌고.]학술 논문 링크까지 첨부하면서 뜬구름을 잡는 료조.
“얜 아침부터 또.”
쿨하게 읽씹하려 하려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톡톡, 키패드를 두드렸다.
[나: 우리나라엔 전통적으로 시험 보기 전에 먹는 단것이 있다.] [사키 료조: 진짜? 어떤 거???]핸드폰 너머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사키가 눈에 선했다. 나는 설핏 미소를 머금고 다시 액정을 두드렸다.
[나: 엿 먹어.]숫자 1은 사라졌지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롤린~♬
이윽고 울리는 수신음.
[사키 료조: …너 나 멕이는 거지?]“생각보다 놀리는 맛이 있네.”
나는 짧게 웃음을 흘리고서 핸드폰을 도로 침대에 던지고 등을 돌렸다.
롤린~♬, 롤린~♬, 롤린~♬
연신 울려 대는 핸드폰 소리를 뒤로한 채 방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