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5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54화(54/300)
54화 무인도 생존 훈련 (1)
필기 고사가 끝나고 다가온 주말. 원래라면 침대에 쭉 뻗어 자정쯤에 슬금슬금 일어났을 테지만, 나는 평일과 같은 시각에 눈을 떴다.
이유는 며칠 후에 있을 ‘무인도 생존 훈련’에 대비해 간만에 도서관을 들를 생각이다.
물론 요즘 같은 4차 산업이 범람하는 시대에 사전 조사야 너튜브로도 충분하다지만, 뭐랄까 나는 종이 책이 좀 더 편하더라고.
“빌려야 할 책이…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독초 구분법, 일타 강사 베어 갈릭스의 생존법이랑 또……. 이 정도면 되려나?”
나는 핸드폰에 메모해 놓은 대출할 서적들을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2박 3일 동안 ‘아발론’ 섬에서 치러지는 무인도 생존 훈련.
「생존 훈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일견 생과 사를 넘나들고 피 튀기는 서바이벌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캠핑에 가까운 이벤트성 훈련이다.
학업에 찌든 십 대 생도들의 숨구멍을 한 번 터 주기 위한, 쉽게 말해서 수학여행 비슷한 취지였다.
조 구성도 1인부터 최대 4인까지 재량껏 가능한 점이나, 전 생도에게 훈련 일정에 대해 상세하게 공시한 점 등이 반증이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말은 중의적으로도 작용해, 2박 3일이라는 단기간이지만, 생도 개개인의 자생 능력을 가늠하려는 의도도 껴 있었다
게다가 게임 스토리상으로도 꽤 조명되는 이벤트인데, 무려 주인공 레온이 주무장이 될 ‘발뭉’의 칼자루를 얻는 곳인 데다, 메인 히로인인 아벨과 레온 사이에 감정선이 싹트게 되는 계기인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벨과 이어지는구나.”
솔직히 그 부분은 딱히 부럽진 않았다.
이곳에 입학하고 나서, 이성을 보는 데 다소 냉소적으로 된 것도 있고, 먼젓번에 아벨이 레이첼과 랑 클래스에 찾아왔을 때 나를 경계하는 티를 팍팍 냈었다. 아무래도 미운털이 박힌 듯했다.
안 그래도 풍전등화 같은 상황인데 제아무리 예쁘다 해도 감정이 피어오르기는 힘들었다. 그것이 누구라도 말이다.
아카데미의 원로가 나를 노리고 있으며, 신원 불명의 교관과 나머지 동아리 부원 모집 등등. 따뜻한 초여름의 흥취를 누리기엔 상황이 너무나 각박하다.
그리 생각하니 코끝이 조금 찡해져 왔다.
“청춘은… 다음 생에…….”
그뿐만 아니라, 칼잡이로서 발뭉 쪽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적의 가호 M’의 유저였던 나로선 발뭉의 위치도 알뿐더러, 그 성능을 또한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탐이 났다.
발뭉. 작중 유일무이한 측정 불가 등급의 무장. 조각조각 난 발뭉의 피스를 찾아가는 것이 스토리의 핵심 서사 중 하나였다.
성검이자 마검인 발뭉에게 선택받는 조건은 ‘기적의 가호’를 발현하는 것. 한마디로 주인공 전용 무기란 소리지 뭐.
작중 묘사로는 지면에 꽂으면 땅이 꺼지고, 휘두르면 산이 베인다는데, 나중에 가서는 레온 혼자 무쌍을 찍게 만들어 주는 사기적인 무장이었다.
그에 반해 내 무장은 E급. 아니, 이제는 D급이던가. 아무튼, 발뭉에 비하면 가소로워 보이는 작달막한 사시미.
추가로 혹시 몰라 아직까지 다이쏘 사시미도 여분으로 들고 다니고 있다.
“…발뭉도 사시미로 제련할 수 있나?”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나는 비치된 컴퓨터로 오늘 하루 내내 탐독할 서적들을 검색했다.
전생에 일식 요리사였으면서도 낚시 같은 취미조차 없던 나로선, 제아무리 2박3일지라도 생존 지식 하나 없이 불모지에서 버티기란 힘들다.
지참할 수 있는 도구들도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자급자족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마수가 서식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다. 훈련의 본 취지에 맞게 생존이라는 키워드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
물론 예의 중간고사 때를 생각해 보면, 다른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훈련은 교관들이 생도들과 대동한단다. 당연히 게임 플레이 당시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학원장의 특명인지 현재 랑(狼) 클래스의 임시 교관을 맡고 있는, 검제도 인솔 교관진에 껴 있었다.
인류 최강의 영웅이 1학년 생도들 수학여행 가는 걸 인솔한다라…….
정사에선 다소 틀어진 전개이긴 한데, 그래도 보안 부분에서는 안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내가 할 일은 캠핑이나 생존, 독초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지식을 갖추는 것. 딱 거기까지가 ‘표면’상 훈련을 위한 나름의 준비였다.
나는 전설 카테고리에 꽂혀 있던 아발론 섬 관련 서적들을 내려놓고 빠르게 읽어 나갔다.
「아발론(Avallon)은 먼 서쪽 바다에 위치한 섬으로, 그 지형이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한 장소이다. 정중앙에는 ‘여왕의 호수’라는 신화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대의 호수가 존재하며……중략……몇몇 소수 민족에게는 ‘시작의 땅’, ‘낙원’이라고도 불리는 장소이지만, 현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다.」
“음, 대충 설정이랑 비슷하네.”
이것저것 살이 덧붙긴 했어도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거의 비슷했다.
무인도 취급인 것도 똑같고, 시시각각 지형이 바뀌어서 따로 지도가 없다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내가 주말 아침잠까지 반납해 가며 도서관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아발론 섬에서 꼭 찾고 싶은 ‘그것’의 실마리를 찾고자, 분주히 책을 몇 권 더 들춰 보며, 아발론 섬에 관해 조사해 나갔다.
알았던 내용들이어서인지 영민하게 뇌리에 스며들 듯 주입되는 정보들. 활자를 훑는 안속(眼速)이 재빨랐다.
목적이 깃들어서인지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창틈 사이로 새는 노을이 내부를 황금빛으로 익히고 있을 무렵.
“어, 검마 너도 있었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이지적인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
황금빛 노을을 삼키듯 이글거리는 금발, 청명한 벽안.
“오랜만이야.”
레온 반 라인하르트가 내게 반갑게 손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 * *
적막이 감도는 도서관에서마저 눈앞의 레온은 찬란하게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장내를 넓게 둘러보자, 몇몇 여생도들은 책장 뒤에 숨어서 그를 훔쳐보며 지들끼리 꺅꺅거리다 도서관 사서에게 제재를 먹고 있었다.
하물며, 준열하게 그들을 다그치는 사서마저 레온을 곁눈질로 흘깃거릴 정도니, 외모가 개연성이라는 말을 실감 중이다.
‘더럽게 잘생겼네. 고추는 작겠지?’
…근데 녀석의 손에 들린 책들. 제목을 얼추 보건대 마법 관련 서적들이다.
‘왜 저런 책을 보는 거지?’
기가 막혀서 나는 레온을 쳐다보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푹 흘렸다. 아니, 주인공이라는 녀석이 마법 개론서를 들고 있는 모습이 퍽 유쾌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름 참작해 주자면, 중간고사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마인과 마법에 대해서 알고자 함일 터다.
하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일 텐데 도서관에서 마법이나 파고 있다니. 그를 향한 믿음이 마모되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내가 미간을 좁히자, 레온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것들을 뒤로 숨긴다.
“…….”
잠시 불편한 정적이 흐르고. 레온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책 읽고 있었어?”
“그냥 다음 주에 훈련 치르는 아발론 섬에 대해서 조사 중이었어.”
싸하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애써 환기하려는 듯한데, 굳이 초치긴 싫었기에 적당히 대꾸했다.
“검마 너는 엄청 성실하네.”
뭐, 부정은 못 하겠다. 작금에 내 생활 패턴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다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운동, 던전 탐색, 마수 공부로 꽉 들어찬 하루들을 보내고 있으니.
근데 어떡해, 어두운 앞날을 아는 나로선 남은 3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지.”
“앞가림이라…….”
내가 그리 말하자 레온은 씁쓸한 얼굴로 읊조린다.
“…너는 나랑 다르구나. 나도 너랑 다르고.”
뭐가 다르다는 거지? 레온과 처음 마주했을 때 녀석은 내게 의미심장하게 툭 던진 말이 떠올랐다.
 ̄검마, 너는 어디에서 온 거야?
심중을 가늠할 수 없었던 한마디. 마치 동향 사람을 찾은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그의 모습.
아무리 생각해도 플레이 경험에 비춰 본 주인공 레온의 모습과는 이질적이었다. 찬연한 얼굴에는 슬픈 음영이 져 있고, 묘하게 번민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플레이상의 레온과 크게 엇나가진 않는 행보를 보인다. 그의 성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상념을 털어 냈다. 레온에 대한 믿음과 별개로 녀석과 나는 방향성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럼 열심히 하고, 폐관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조심해서 들어가.”
“어, 고맙다. 레온, 너도.”
레온은 손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꺾었다. 나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그의 등판을 쳐다봤다.
그를 찬미하는 듯한 장내의 시선들과 대비되는, 노을에 불길하게 쭉 길게 늘어진 그림자. 양쪽 어깨를 각각 빛과 어둠이 무거운 추처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인류의 존망을 짊어진 용사의 부담감일까.
“…….”
그렇다고 내가 그를 어르고 달랠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떼고서 다시금 독서를 이어 갔다.
귀가 전까지 꼭 찾고 가야 할 것이 있었다.
* * *
…주말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뒤척인 뒤 돌아온 월요일 아침, 랑 클래스 안.
나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며 턱을 괴고 있다. 아직 이 세계에는 밝혀지지 않은 미증유 힘에 대한 단서와 실마리를 찾는 것이라 예상보다 쉽진 않았지만.
기지개를 쭉 켜자, 입가에 내심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고생한 보람은 있었어.”
그래도 금쪽같은 주말을 투자한 소득은 분명히 있었다. 아발론 섬에 숨겨진 ‘가호’의 위치를 짐짓 특정 지을 수 있었기에.
제1 목적은 정해졌으니 가호를 찾고 나선, 무인도 생존 훈련의 본 취지에 맞게 유유자적 야영을 즐겨 볼 생각이다.
불멍도 때리고, 줄낚시로 생선도 잡아 간만에 회도 좀 쳐보고.
“전생엔 일 때문에 그런 거 즐겨 볼 여유가 좀처럼 없었지.”
행복 회로를 돌리던 중, 문득 스치는 레온의 얼굴이 목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위화감을 흘리는 레온의 작태.
“…….”
그것도 잠시 나는 턱을 긁적거리며 치솟는 상념을 애써 무시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세상의 편애를 받는 녀석을 걱정하는 건 오지랖이다. 정사가 크게 틀어지지 않는 선에서 레온을 관망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선이다.
“…좀 잘까.”
어제도 밤늦게까지 활자를 들여다봤던지라, 눈 밑에 피로가 진하게 내려앉았다. 거사를 앞두고서 잠이 부족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