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5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59화(59/300)
59화 무인도 생존 훈련 (6)
흐르는 정적이 미묘했다.
휘이이잉.
나는 손으로 바위를 짚은 채로 레온을 빤히 응시했다. 레온은 여전히 서글서글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다.
녀석의 입장에서도 내 등장은 갑작스러울 텐데,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얼굴이다. 이어서 내 시선이 천천히 레온이 잡고 있는 날 없는 칼자루로 옮겨졌다.
‘찾았구나.’
마검이자 성검이라는 모순적인 속성의 무기.
황혼의 검, 발뭉의 칼자루.
순은빛 광채가 감도는 칼자루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반짝거리고, 영롱한 물결무늬가 검신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칼자루 중앙에 박힌 푸른 보옥이다.
‘에테르의 보석.’
본디 세계관 최흉의 마검인 발뭉을 신성력으로 중화시키는 촉매제였다. 그 가치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플레이상으로만 보다 실물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유저 시절에는 기본 무기인 양 휘둘렀는데 아직 칼날 부분은 비어 있어도 과연 세계관 최강의 무장다운 교태로운 자태였다.
솔직히 같은 칼잡이로서 탐이 나긴 한다만, 어차피 저 에고 소드는 레온의 고유 가호 없이는 손가락 하나 허용치 않는다.
‘…멋지긴 하네.’
…근데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이 여긴 왜 있는 거지? 잡념이 가시자 어리는 의문.
이 텃밭은 아발론 섬의 최중심부에 위치한 구역이다. 기억상으로 발뭉의 위치는 이곳에선 한참이 떨어진 외곽일 터.
섬에 오기 전, 준비에 만전을 기한 나조차도 이틀 동안 내내 헤매면서 겨우 도달한 곳이다.
하물며 무수히 많은 수풀을 스쳐 지나며 엉망이 되어 버린 나에 비해 멀끔한 허우대를 보니, 레온의 여정은 꽤나 수월했던 모양이다.
뭐, 걸핏하면 바뀌는 섬 지리의 특성상, 녀석이 우연히 이곳에 왔을 확률도 있긴 했지만…….
나는 각고의 노고 끝에 발견한 구역을 레온은 그저 우연에 기대어 찾아 냈다 생각하니, 짜증이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주인공 버프도 정도껏 해야지.’
내 눈에 노기가 일렁거리자, 눈치를 보던 레온은 당황한 기색으로 급하게 포개진 손을 뗐다. 그리곤 턱을 긁적거리며 먼저 말을 뗐다.
“저 멀리서 오브가 보여서 달려왔는데, 동선이 겹쳤나 봐.”
말하는 와중에도 다른 손은 발뭉을 탁 틀어쥐고 있었다.
명백하게 경계하는 기색이다. 하고 생각하기엔 나 역시 오른손에 잡은 사시미를 놓지 않고 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사시미를 도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제야 레온도 멋쩍게 발뭉을 갈무리한다.
레론은 어색하게 웃으며 무어라 할 말을 찾는 듯 고민했다.
그러다 이어지는 침묵.
사실 제아무리 넓은 아발론 섬일지라도 아카데미의 생도들로 득시글거리는데,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하필 만난 게 레온이라서 문제지.’
무인도 생존 훈련은 주인공인 녀석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이자, 시나리오 초반부를 가로지르는 분기점이다.
정사대로라면 이 무렵은 레온이 아벨과 조우해 꽁냥꽁냥 감정을 싹틔우고 있을 타이밍일 터다.
선남선녀 한 쌍이 모닥불을 앞에 두고서, 숨겨 왔던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뭐, 그런 이야기. 그리 생각하자 문득 어리는 생각.
‘설마 레온이 아벨과 보내야 했을 시간을 의도치 않게 내가 가로챈 건가?’
그럼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내 예상을 벗어날 것이다.
‘젠장.’
내가 입술을 잘근 짓씹자, 쳐다보던 레온이 다시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 검마 너도 이 오브 발견하고 온 거야?”
나는 레온의 의중을 가늠하려 눈을 살짝 치떴다. 거짓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때 묻지 않은 얼굴. 아무래도 녀석은 가호를 의도하고 오진 않은 것 같다.
내 입장에선 겸사겸사 오브도 챙겨서 나쁠 건 없지만, 어디까지나 주목표는 ‘재생의 가호’였다.
물론 이 정도의 크기의 오브라면 그 가치는 높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가호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흔쾌하게 오브만 레온에게 내준다면 어째서 내가 그토록 호다닥 달려왔는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겠지.
‘굳이 납득시킬 이유와 필요는 없다.’
레온이 내게 미심쩍은 생각을 품을 바엔 차라리 속물로 비치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대충 생각을 굳히고서 고개를 까딱였다.
“어, 맞아. 섬에 온 동안 오브를 하나도 못 찾았는데 마침 눈에 띄길래.”
“음, 그렇구나.”
턱을 쓸며 잠시 생각하는 레온. 몇 번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어쩔 수 없지.”
“……?”
그렇게 말하며 레온은 갈무리했던 발뭉을 꺼내 들었다.
키이잉.
칼날 없는 칼이 울었다. 공명은 찰나였다.
곧바로 칼자루 윗동에서 뻗어 나오는 순백의 직검.
레온은 눈매를 좁힌 채 발뭉을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무형의 검날의 빛에 의해 녀석의 얼굴선을 타고 해일로(Halo, 광륜)가 졌다.
“대련에서 나를 꺾고 가져가.”
성전사 같은 외모로 무슨 던전 보스 같은 대사를 치는 레온.
뜻하지 않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오브 하나 두고 칼부림을 벌이자니 우스운 상황이지 않은가.
레온이 이리 세속적인 성격인가 싶었다.
다만, 녀석의 안광에는 결의와 투지가 짙게 깔려 있었다. 불온한 사념은 완연히 걷힌 검사의 눈빛.
그 모습에 레온의 변덕스러운 반응이 일견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오브는 명분일 뿐, 녀석은 나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스스로를 담금질하기 위한 발도(拔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내심 품었던 불신이 덜어졌다.
역전의 용사란 갖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내고서야 비로소 업적을 이뤄 낸다. 어쩌면 여태 레온이 못 미더웠던 것은 발뭉의 선택을 받기 전이어서 그랬을 뿐이리라.
그것을 증명하듯이, 레온은 요전과는 사뭇 다른 광오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나는 피식, 뿌듯한 웃음을 흘리고서, 칼자루를 잡았다.
“주인공은 주인공이네.”
다만, 가상한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모를 변수를 고려하면 이런 일에 무통의 가호 시간을 안배하는 것은 낭비일 것이다.
게다가 대련이라도 분위기에 휘말려 자칫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나는 저벅저벅 걸음을 내디디며 검집에서 날을 뽑아냈다.
키이잉.
발뭉과 사시미가 합을 이뤄 공명했다.
* * *
잠시 후.
대련은 허무하리만치 찰나에 끝이 났다.
초 단위를 넘기지도 못했다.
작달막한 사시미가 성검 발뭉에 스치자 발뭉의 칼날이 엿가락처럼 썩둑, 잘려 나갔다.
‘너무 높다.’
검을 수십 년 휘둘러도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지였다. 중간고사 때보다 진일보한 것를 넘어 진화한 것 같은 검기다.
동년의 나이에 어떻게 저런 귀신같은 솜씨를 부리는지 알 턱이 없었다. 묻는다고 해서 알 수도 없을 것이다. 기술 따위가 아닌 본능과도 같은 검 놀림이니까.
“하하.”
레온은 멍한 시선으로 날이 빈 칼자루를 쳐다보다가 괜히 헛웃음을 터뜨렸다.
레온은 강검마를 쳐다봤다. 그는 무기를 집어넣고서 오브가 놓였던 바위를 살피고 있었다.
강검마의 안중에 조금 전의 대련은 터럭만큼도 없어 보인다. 그저 승자의 특전인 보상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강검마, 차라리 네가 선택받았어야 했어.’
레온은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가슴을 그득 채워 답답하게 한다.
레온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아 내며, 인사 없이 느릿하게 숲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짙어지는 노을의 그림자가 뒤돌아선 등판을 물들여 갔다.
* * *
“어, 뭐야. 언제 갔지?”
잠깐 문양이 새겨진 바위에 눈이 팔린 사이에 레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너무 빨리 끝냈나…….”
내가 생각해도 결과는 허무했다.
50초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과했는지, 대련은 칼질 한 번으로 끝났다.
발뭉에 그려진 붉은 선을 사시미가 훑자, 무형의 칼날은 먼지처럼 허공에 번져 비산했다.
나름대로 녀석에겐 생채기가 생기지 않게 조심스레 발뭉만을 때렸다.
아무리 칼자루밖에 없다고 해도, 나름 세계관 최강의 무장인데 속절없이 사라진다. 나는 잠시 대련을 복기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 최종 형태의 발뭉은 다르겠지.”
나는 바위 위에 놓인 오브를 집었다. 수정처럼 생긴 보옥은 야구공만 한 크기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성적 반영치는 높겠네.”
나는 오브를 등가방에 대충 쑤셔 넣은 뒤, 문양이 새겨진 바위에 가까이 다가섰다.
파인 문양의 음각에는 은은한 광원이 흐르고 있었다. 손을 펴 바위에 가까이 대 보았다.
“…….”
아무 반응이 없다. 보통 이러면 번쩍하고 빛이 나고 몸에 스며드는 이펙트가 나지 않나?
생각해 보니 게임상으로는 그저 가까이 가면 뾰로롱, 하는 기계음과 함께 자연스레 얻어졌었지.
나는 눈매를 좁힌 채 바위의 위아래를 훑었다. 혹시 어디 특이점이라도 있을까 싶어 세세하게 살펴보아도 그냥 문자 몇 줄이 각인된 나무 모양 돌이다.
그렇게 몇 분을 우두커니 서서 골똘히 고민하고 있자니, 짜증이 일었다.
힘들게 애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목표를 눈앞에 두고 뭐 하는 짓인지.
그러던 중,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우연찮게 재생의 가호를 얻었던 당시의 기억이 뜨문뜨문 떠오른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다 중얼거렸다.
“…설마.”
나는 어깨에 멘 등가방을 내려놓고서, 사시미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칼자루를 단단히 말아 쥐고 힘을 실어 휘둘렀다.
썩⎯뚝!
날 끝이 닿음과 동시에 버터처럼 갈라지는 바위.
쿵!
충격의 여파로 떨어져 있던 나뭇잎들이 용솟음치며 흩어졌다.
곧이어 망막에 반가운 상태창이 떠올랐다.
파앗⎯!
== ==
[NEW!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가호를 습득하셨습니다.] [재생(再生)의 가호]손상된 세포를 빠르게 증식시켜 회복시킵니다.
[※ 단, 떨어져 나간 신체 부위는 재생되지 않습니다.]== ==
미간을 좁힌 채 상태창을 보다 사시미는 도로 집어넣은 뒤, 가방에서 마체테를 꺼냈다.
“확인이나 한번 해 볼까.”
나는 마체테로 팔뚝을 옅게 그었다. 깊게 베이진 않았어도, 처치하지 않으면 흉은 남을 정도의 자상이다.
그러나, 피부 위로 몽글몽글 맺히던 피가 멎고 일순간에 살이 달라붙었다.
“오, 성능 확실하네.”
여태껏 얻어 왔던 성과들 중 가장 직관적이고 확실한 성능이다. 좀 더 확인해 볼까 하다가, 소중한 몸뚱이에 장난질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후, 그래도 원했던 건 얻어서 다행이야.”
손바닥으로 턱을 밀었다. 우드득 하는 관절이 풀리는 소리.
기분이 상쾌했다.
중간에 예상치 못한 레온의 개입이 있었지만, 그간의 행적에 비하면 방해 수준에도 못 미친다.
나는 문득 눈을 위로 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서쪽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금세 짙게 깔렸다.
꼬르륵.
배에서 고동이 세차게 울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먹은 게 육포밖에 없네.”
남은 식량이 없었다. 오늘 내내 수풀을 헤집고 뛰어다니느라 사냥을 못 한 탓이었다.
지금이라도 산짐승을 찾아볼까 했지만, 고였던 피로가 몰려와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긴, 다섯 시간 넘게 뛰어다녔으니.’
나는 턱을 긁적거리며 주변을 넓게 둘러봤다. 뭔가 좀 먹을 만한 걸 찾고 싶었다. 그러자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생명의 과실.”
원래도 냄새가 향긋했는데, 주린 배다 보니 턱을 타고 침이 줄줄 흘렀다. 미각이 되살아나 입맛을 돋운다.
“천상의 향기, 지옥의 맛…….”
요리사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런 향을 풍기는 과일이 맛없기는 쉽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떫은맛이 와전돼서 생긴 소문이겠지.
나는 열매를 하나 따서 옷단에 슥슥 문질러 대충 닦았다. 과일 표면에서 번들거리는 광이 났다. 그리고 한입 크게 이빨 자국을 남겼다.
아삭.
“캬아악!”
입안을 휘감는 역한 맛에 절로 몸서리가 쳐지고,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었다.
“씨발! 퉤, 퉤!”
더 먹으면 미각을 상실해 버릴 것 같은, 지옥을 옮겨 놓은 듯한 맛이었다.
* * *
날이 밝고 다음 날,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숲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시야를 방해하는 수풀은 마체테로 썰어 넘겼다.
“…후, 푹푹 찌네.”
후끈한 바람에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면이 바다인 섬이라 그런지, 짜고 습한 바닷바람이 전신을 휘감는다.
윗단추 두 개를 풀고서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훔쳤다. 정수리까지 솟아오르는 불쾌 지수에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배도 아릴 정도로 쓰리다. 어제 생명의 과실을 먹어서인지 속이 아팠다. 비유 따위가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니 위장에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물, 물.”
망가진 속을 빠르게 헹궈 내고, 몸도 좀 씻을 물이 절실했다.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윗옷을 팔랑거리며 근방의 냇가를 찾으려 감각을 곤두세웠다.
영화에서처럼 두 손을 무릎 위에 고이 얹고 가부좌를 틀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검신의 가호로 연단된 감지력은 본래의 인지보다 훨씬 뛰어났다. 확장된 감응의 시야는 주변 지형을 입체적으로 그려 내 머릿속에 투사되었다.
풀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 바닷새가 창공을 노니는 흐름에 뒤이어서 금세 개천처럼 흐르는 물소리가 귓전에 닿았다.
‘찾았다.’
나는 눈덩이에 힘을 주어 눈을 치켜떴다. 금세 지리가 바뀌는지라, 놓치기 전에 도달해야 한다.
장딴지에 힘을 불어넣어 발치의 판석을 박차고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야에 길게 늘어지며 분분히 흩어지는 풍경들.
부지런히 단련을 계속해 온 덕인지 무거운 등가방을 멨음에도 발이 매우 빨랐다.
‘그렇다면 엊그제 그 토끼 새끼는 얼마나 빨랐던 거지?’
잘은 몰라도 그 녀석이 예사 짐승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 분가량을 달리니 이어지는 길의 끝에 흐르는 개천이 눈에 들어왔다.
강가에서부터 습한 바람이 밀려 들어와 불쾌 지수는 높아졌지만, 냉수마찰 한 방이면 전부 씻어 낼 수 있으리라. 이미 온 신경은 그곳을 향해 있었다.
스치듯 흘러가는 풍경의 조각들이 형태를 잡아 가고, 이윽고 땀을 씻을 개천에 바투 다가갔을 때였다.
슈슈슉―
빛살처럼 눈앞을 가로 지나가는 날붙이.
“……!”
순간적으로 골반을 비틀어 그것을 피하자, 곧 탁, 하고 옆에 서 있던 나무에 틀어박힌 곡검. 여진으로 인해 잔가지가 파르라니 떨렸다.
무슨 상황인지 의문이 어리기도 전, 같은 곡검 세 자루가 부메랑처럼 꺾여 들어온다.
슉슈― 슈슈슉― 슈슈슉―
허공에서 비틀거리듯 날아 들어오는 검들.
동시에 나는 진각을 밟아 낙법을 친 뒤, 휘리릭 돌며 눈을 어지럽히는 칼날들을 흘려 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습에 검신의 가호를 발현하지 못해, 몸 이곳저곳이 옅게 훑어져, 피가 배어 나온다.
곧장 타라락, 하며 고목에 송곳처럼 박혀 버리는 검들에 뒤이어.
저벅, 저벅.
불쾌한 다수의 발걸음 소리.
“와우, 단장. 저 새끼 진짜 생도 맞아? 대박인데? 이참에 그냥 우리가 스카우트하는 건 어때?”
“조용히 해라, 파릭.”
“예이.”
시야의 사각에서 그림자들이 하나둘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혀가 뱀처럼 갈라진 사내를 필두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 그중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장정들의 중심에 서 있는 여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알고 있다.
레이 션.
살수 집단인 언더테이커의 수장이자, 훗날 레온 반 라인하르트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반인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