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6화(6/300)
6화 아카데미는 녹록지 않다 (2)
아스라한 노을이 저물어 가는 저녁.
호아킨 아카데미 생활도 벌써 일주일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저녁도 거르고, 배정된 기숙사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씨발.”
딱 욕 한마디가 입안에 씹혔다. 야속한 내 위는 음식물 찌꺼기라도 달라며 꼬르륵 소리를 내며 시위해 댔지만, 못난 주인은 배를 움켜잡고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벌떡 일어나 벌컥벌컥 생수를 들이켰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서.
“다 마셨네.”
힘없는 성대는 허기에 말이라도 아끼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내가 왜 거지새끼처럼 이러고 굶고 있냐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정신 나간 아카데미는 교내 식당에서도 돈을 받는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무상 급식은 못 해 준다 쳐도.
‘제육볶음이 5만 원인 건 존나 선 넘는 거 아닌가?’
심지어 방금 내가 마신 ‘영창수’, 1.5L짜리 생수도 교내 마트에서 만 원 주고 사 온 거다.
이 세계에 빙의한 지 어언 1년이 지났지만, 이런 정신 나간 물가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상류층을 위한 학교라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굶지는 않았다.
교내 마트에서 산 만 오천 원짜리 햇반에 집에서 싸 온 조미김을 반찬 삼아 일주일 내내 먹었다.
눈물 젖은 김은 소금기가 더해져 평소보다 짜고 달았다. 그마저도 이제 거덜 났다.
참고로 내가 받는 한 달 생활비는 40만 원.
솔직히 저 금액도 많다고 거절했지만, 아비 된 도리로써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끝끝내 품 안에 용돈을 찔러 넣어 주시던 아버지. 철든 척 손사래 쳤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줄 때 받을걸.
나는 멍한 표정으로 빈 생수통의 라벨지를 응시했다.
‘영창…….’
문득 군대 생각이 나자 아른거리는 눈물이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다.
거기는 밥이라도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줬는데.
살면서 짬밥이 그리울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지금이라면 끔찍하게 맛없던 고등어 순살 튀김마저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녹여 먹을 수 있으리라.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침대에 엎드려 몸을 웅크렸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신진대사를 줄이고, 숨도 최대한 천천히 쉬자.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정확히는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 깍둑썰기한 모두부도 넣고, 파도 송송 썰어 넣고.
왠지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뚝배기 바닥까지 핥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눈물 대신 입에서 침이 주룩 흘렀다.
‘그래도.’
나는 마음속으로 짤막하게 ‘가호’라고 말했다.
파앗―
== ==
[검신(劍神)의 가호]베면 잘릴 것입니다.
[육신(肉身)의 격이 (1▶2)로 상승했습니다.] [육신(肉身)의 격이 상승해 검(劍)의 규격이 완화됩니다.] [※ 길이가 30+(2) 센티 이하, 폭은 5+(1) 센티 미만의 검일 때만 가호가 발동됩니다.]== ==
이제 좀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떠오르자 볼살이 쏙 들어간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대머리 교관과 함께한 고된 훈련은 내 체형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훈련 덕인지 잘 못 먹어서인지 말랑말랑하던 뱃살은 어느새 사라지고 군살 없는 복근이 윤곽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젖살도 빠져 턱선이 한껏 날렵해져 있다.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져 매 조례 시간 연무장 구보도 뒤처지지 않았다. 일주일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몸은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검제 양반이 혈을 뚫어 줘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비록 아직 검의 규격이 사시미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차근차근 올리다 보면 소검까지는 잡을 수 있겠지.
‘나 왜 뿌듯해하지?’
분명 입학식까지만 해도 칼 한 번 쥐는 그것조차 두려워했던 나인데, 이상하게 지금은 칼을 쥐고 있지 않으면 손이 간질간질했다. 아무래도 가호가 성향에도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나는 작게 도리질하며 상념을 털었다. 당장은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봐도 딱히 변하는 게 없었다.
똑. 똑. 똑.
누군가가 조용히 내 기숙사 방의 문을 두드린다.
‘누구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기숙사 사감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나는 별수 없이 침대에서 벗어나 문을 열었다.
“어?”
눈앞에 있는 건 쭈뼛쭈뼛 서 있는 클로이였다.
* * *
첫날 이후로 클로이와 대화를 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교실에서 살금살금 나를 피하기만 할 뿐. 그렇기에 그녀의 방문이 더 뜬금없게 느껴졌다.
“혹시 제가 쉬는 걸 방해했나요……?”
클로이는 여전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방해는 무슨, 그냥 누워 있었어.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그게 일주일 내내 교내 식당에 안 보이시는 것 같아서요. 몸이 어디 안 좋으신가 해서…….”
그녀는 걱정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정신 나간 가격 때문에 도저히 갈 엄두가 안 난다고. 다만 사나이로서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 그게… 난 원래 남이 해 준 밥 잘 안 먹어.”
남이 해 준 밥 존나 좋아한다.
“아, 아. 그러시구나.”
“응, 그러니까 걱정 마.”
클로이는 실망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교내 마트에서 식자재를 좀 사 와서 저녁 같ㅇ…….”
“가자.”
“네?”
“저녁 같이 먹자는 거 아니야? 나 요리 잘하니까 요리는 내가 할게. 클로이네 기숙사는 건너편이었지?”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강호의 도리가 아니지.
내가 빠른 걸음으로 선두에 서자 엉겁결에 클로이가 뒤를 쫓았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한산한 기숙사 복도에 울려 퍼졌다.
* * *
클로이의 방에 들어서 나는 두리번거리며 방을 살폈다. 혼자 사용하기에는 다소 넓은 크기에, 흰색 벽면에 흰색 소파와 침대.
약간 병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십 대 소녀의 방치고는 과할 정도로 꾸밈없이 정갈한 느낌이었다.
침대 위에 토끼 인형이라도 몇 개 있을 줄 알았는데, 책상 위에 올려진 책 몇 권이 인테리어의 전부였다.
소슬한 밤바람이 불자, 순백색의 커튼이 나직하게 펄럭였다.
“방이 지저분해서 죄송해요…….”
응? 있는 게 없는데?
클로이는 내 눈치를 살피다 냉장고에서 식재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도미부터 광어, 우럭, 연어, 삼치… 심지어 처음 보는 생선들이 스티로폼 곽에 얼려져 레고처럼 탑이 쌓였다.
생수 한 통에 만 원인 교내 마트에서 이 정도를 산 거면 대체 얼마나 든 걸까.
입에서 감탄성이 절로 나왔다.
“생선 많이 좋아하는구나?”
“아, 네. 제가 바닷가 쪽 출신이라서요.”
“마침 잘됐네, 내 특기가 생선 요리거든.”
“오, 정말요?!”
클로이는 동글동글한 눈매를 반짝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문지르며 말을 덧붙였다.
“음, 도미 빼고는 다 넣어 줄래? 한 마리로도 충분할 거 같거든.”
“네!”
한껏 기세 좋은 대답에 나도 모르게 기합이 들어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침 손도 근질근질하던 차, 간만에 회나 좀 썰면서 기분을 달래 볼 심산이었다. 허기졌지만, 왠지 심장이 두근대고 에너지가 솟구쳤다.
‘근데 문제는…….’
싱크대 옆에 나란히 꽂혀 있는 부엌칼들이 날을 번쩍이고 있다.
저걸 짚는 순간, 가호가 발동될 것이다. 뒤따라올 격통을 생각하니 입맛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혹시 좀 더 긴 칼 없을까?”
“좀 더 긴 거요?”
“응, 너도 알다시피 내 무장이 저런 칼들이잖아. 그래서 뭔가 좀 쓰기 껄끄러워진달까.”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더니 수납장으로 가 주섬주섬 자기보다 긴 일본도를 들쳐 메 가져 왔다. 어이가 없어서 한순간에 표정이 판판하게 펴졌다.
“이 정도면 될까요?”
“아니야… 그냥 저 부엌칼로 할게.”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클로이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어쩔 수 없지.’
그래, 30초 안에 끝내자.
나는 전국 제일의 칼잡이라 불렸던 사내 아닌가? 가능하다.
클로이에게 조금 물러서라고 손짓하자 총총걸음으로 몇 걸음 떨어졌다.
생선을 대하는 경건한 내 모습에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나는 ‘무통의 가호’를 발현시킨 후, 잽싸게 칼꽂이에서 눈여겨봤던 장미 문양 사시미 하나를 빼 들었다. 손에 감기는 맛이 좋다.
그러자 반갑지 않은 메시지가 망막에 떠오른다.
[검신(劍神)의 가호 식(食)이 발현됩니다.]동시에 사시미가 번뜩이면서 도미의 아가미에 정확하게 휘어져 들어갔다.
* * *
“너어무 맛있었어요!”
“다행이네.”
요리인에게 맛있게 먹었다는 말 이상의 훈장이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파리한 안색으로 작게 턱짓해 긍정할 뿐이다.
21초.
내가 도미의 비늘을 벗기고, 뼈를 갈라 내장을 빼낸 다음 살코기를 포 뜨는 데 걸린 시간이다.
대충 손질해도 될 법한데, 뼈에 각인 된 요리사의 프라이드가 그걸 허용치 않았다. 그 덕에 식사는 인생의 역작이다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어쩌면 지금이 내 사시미 인생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호를 발현할 때 ‘검신의 가호 식(食)’이라는 문구가 떠오른 것으로 비추어 봤을 때 쓰임새에 따라 운용이 달라지는 것 같다.
참 쓸데없는 것 같은데 묘한 구석에서 쓸모 있는 오묘한 능력이지 않을 수 없다.
“검마 군은 어떻게 요리를 그렇게 잘해요?”
“전에 일식집에서 알바했었어.”
“알바요?”
클로이가 눈동자를 굴리며 되물었다.
“너 설마, 알바가 뭔지 모르는 거야?”
그녀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죄송해요.”
“아니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는데.”
나는 그 순간 신분의 격을 실감했다. 클로이가 아기 새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티 나지 않게 작은 숨을 뱉었다. 사람마다 자라 온 환경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맛있게 먹었다니까 나도 기분 좋다.”
그녀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그 모습에 입가에 기분 좋은 호선이 걸렸다.
“식사 준비하셨으니까,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솔직히 비싸게 얻어먹은 건 나였으나, 호의를 보답하겠다는 클로이의 눈빛이 대견해 설거지는 그녀에게 맡겼다. 좀 귀찮기도 했고.
책임감이라도 느꼈는지 클로이는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클로이는 창가 쪽 책상을 가리키며 앉아서 쉬라며 권유했다. 나는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며 창가에 걸터앉았다.
진득한 만월 빛을 쬐며 열린 창밖으로 학교를 내려다봤다. 묵색 구름이 밤하늘에 두둥실 부유한다.
쨍그랑―!
“아아, 죄송해요!”
설거지하다 접시라도 깨 먹은 모양이다. 도와줄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것도 경험이다. 나 때도 저러면서 컸다, 이 말이야.
툭―
바람이 살짝 불자, 책상 귀퉁이에 걸쳐져 있던 꼬깃한 공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졌다.
책상에 다시 올려 둘 겸 공책을 주웠다. 보려고 본 건 아니지만 대충 내용은 일기 같았다.
『오늘 반 배정 시험에서 어떤 분께 도움을 받았다, 나중에 꼭 보답해야지!』
둥글둥글한 글씨체에 곰돌이 스티커까지 붙여진 걸 보니, 클로이도 영락없는 또래의 소녀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부는 산산한 밤바람이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나를 구해 준 그분이 알고 보니, 나랑 같은 클래스였다. 이름은 강검마 군이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어찌할지 몰라서, 차마 말을 못 걸겠다!! >~<』
‘말을 못 건 이유가 이거였군.’
이번엔 내 손이 자연스럽게 다음 장을 넘겼다.
『검마 군.』
………
……
…
·
…
……
………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쨍그랑―!
접시가 깨졌다.
“…….”
“…….”
방 안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봤어요?”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