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6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60화(60/300)
60화 무인도 생존 훈련 (7)
짝! 짝! 짝! 짝!
선두에 서 있는 사내가 느닷없이 손뼉을 치자 박수 소리가 불쾌한 메아리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음충맞게 입을 뗐다.
“꼬마야, 너 정체가 뭐냐? 살살 던지긴 했어도, 가볍게 피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뭐, 너도 위장 취업한 청부업자 같은 거냐?”
뱀 같은 혀를 기괴하게 날름거리는 모습에 나는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그러자 사내는 이내 쇳소리 섞인 실소를 터뜨렸다. 이어 곧장 옆에 있던 단장, 레이 션에게 툭, 말을 던졌다.
“단장, 저 새끼 보통내기가 아닌데? 어린놈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야? 재밌는 새끼네, 저거. 단장, 진짜로 쟤 스카우트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
레이 션은 팔짱을 낀 상태로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어 그녀는 곧장 차가운 눈초리를 내게 가일층 집중시켰다. 나를 가늠하듯, 가늘게 좁혀진 눈매.
장정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외모의 여인. 짐짓 귀족처럼 보이는 외견이지만, 그 알맹이는 피비린내 나는 살인 청부업자의 것이었다.
‘레이 션.’
플레이 무렵의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군단장급과 직접 계약을 통해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인류를 세간에선 ‘빌런’이라 칭했다.
그들은 스토리 초중반부까지는 비중이 많지 않았으나, 후반부 목전에서 군단장들의 앞잡이로서 가장 먼저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눈을 부릅떠 그녀를 쳐다봤다. ‘기적의 가호 M’ 플레이 당시에 그녀를 처음 조우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상태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표표히 흩뿌리는 살기에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그것은 필시 인간의 것. 아무래도 아직은 빌런으로 타락하기 이전 시점인 듯하다.
‘하긴, 처음 만났을 때가 아마 레온의 3학년 막학기쯤이었지.’
레이 션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독심이 섬뜩하게 서린 단음절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기품이 번진 눈동자에 위화감을 느꼈다.
“…너, 어디 소속이냐.”
“…….”
뭐라는 거야, 씨발.
느닷없이 언더테이커들이 날 습격한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대뜸 어디 소속이냐고 심문을 가한다.
여름의 더위 때문에 불쾌감이 치밀어 오르지만, 머리가 감정에 휩싸이면 실수를 부르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찰나의 흥분은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법이기에, 최대한 빨리 이성을 되찾아야만 한다.
나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숨을 조용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곧이어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심상이 빠르게 식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적들을 훑으며 전력을 파악해 나갔다. 눈에 보이는 상대의 머릿수는 일곱이지만, 직감으로 가늠컨대 두셋 정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얼추 열 명 내외군.’
와중에 뱀 같은 사내가 덩달아 살가운 미소를 걸고 입을 움직였다.
“야, 새꺄. 죽기 전이지만 너, 대단한 줄 알아, 어?! 단장이 사냥감에 관심 갖는 건 거의 처음 아닌가? 맞지, 부단장?”
놈은 동조를 구하듯, 부단장이라 불리는 사내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댔다. 부단장은 짧게 한숨을 흘리고는, 끄덕였다.
“확실히, 움직임을 보니 보통은 아니네. 이번 해 수석생이라곤 해도 고작 애일 거라 생각했는데, 저 정도면 이쪽 업계에 바로 뛰어들어도 될 만한 수준이야. 게다가 저 녀석, 가방을 멘 상태로 파릭 네 공격을 전부 피했잖아. 뭐… 완벽하게 피하진 못했지만.”
부단장은 삐딱한 미소로 나를 비웃었다. 그러자 연기처럼 차오르던 뿌연 감정들이 일순 사그라들고, 스산한 무언가가 혈관을 구석구석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의식과 심장이 멎어 가는 듯한 감각. 무한히 덮쳐 오는 압도적인 탈력감에 일기 시작한 마비되는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일순 전신을 휘감는다.
‘이 느낌…….’
후두부가 가격당한 듯한 먹먹함. 예의 녹스와 대련 중에 느꼈던 원인 모를 고양감과 비슷하다.
달아오르는 혈온과 맞물려 속을 휘감는 도취감에, 이내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흙바닥에 툭 던지며 말을 뗐다.
“시체 처리반, 네놈들이 온 걸 보면 사주한 건 최소 원로급이겠군.”
그러자 사정없이 구겨지는 언더테이커들의 면면.
사실 그간의 정보를 취합해 대충 던져 본 말이었는데, 반응을 보니 맞아 든 모양. 곧바로 유독 인상이 사나운 부단장이 기함했다.
“이 씹새끼, 너 진짜 어디 소속이야?! 감히 우리 뒷조사를 해―!”
“그만.”
부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단장 레이 션이 끊어 냈다. 그러자 그는 입매를 크게 비틀더니 욕을 내뱉으며 쯧 혀를 찼다. 레이 션은 나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에 대해 아는 모양이군.”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인간 백정 새끼들이라는 것 정도는?”
도발성이 짙은 어조. 그녀의 눈동자에 옅은 건조함이 스며들었다.
“저, 미친 새끼. 단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부단장을 포함한 단원들의 기색이 점점 당혹으로 일변했다. 나는 레이 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본디 고위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 태어났다.
친인척의 배신으로 인해 가문에서 쫓겨났고 귀족을 향한 배신감과 원망에 이윽고 살인 청부업자의 삶을 택한 인물이었다.
그 원망은 날이 갈수록 점차 커져, 결국엔 군단장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빌런이 되어 버린 후, 레온에게 토벌되는 불운의 인물이지만…….
그러나 반인륜적인 삶을 택한 그녀에게 일말의 동정심 따위는 들지 않았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는가. 애초에 환경에 흠결이 있다고, 살인을 택한 것부터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전생에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하나, 난 탈선이 아닌 생선을 썰며 곧게 살아갔다. 돈 많이 주겠다던 암흑가의 유혹도 끝끝내 거절하며 말이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나도 존나 불쌍한 새끼였네……?’
저기 저, 살인 청부업자 보다 훨씬 더.
“…….”
레이 션은 고리 눈을 치켜뜨곤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구태여 뇌까린 것은 그녀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기 위함인데, 반응을 보니 잘 먹혀들어 간 모양이다.
저들은 인간이긴 하나, 살인의 프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아직 무장도 채 빼 들지 않아 적의 틈새를 이용해야만 한다.
나는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왜, 꼴에 귀족 출신이라고 나 같은 특진생한테 인간 백정 소리 듣기는 싫나 봐?”
방금보다 레이 션의 동공이 한차례 크게 떨리고, 그들 중 부단장이 곧 발작하듯 고함치며 달려들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피딱지 진 너클이 끼워져 있었다.
“이 개새끼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몸을 날리는 부단장. 오직 분노와 살의만이 가득한 얼굴이다. 단원들은 부단장의 돌발 행동에 일동 경직되었다.
‘지금이다.’
이 순간을 위해 일부러 레이 션의 속을 긁어 놨다. 일대다의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이다. 내가 품속에서 사시미를 꺼냄과 동시에 욕을 내뱉으며 코앞까지 다가온 부단장.
“뒤져라―!”
무게 실린 너클이 내 안면을 노렸고, 나는 재빨리 손목을 까딱여 날을 드러냈다. 그사이에 우악스러운 정권이 망막을 전부 채운다.
썩둑―
짧게 나는 칼질 소리와 함께 번쩍임이 부단장의 목을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갔다. 부단장과 내가 서 있던 위치가 교차했다.
부단장은 입술을 몇 번 뻐끔거리다가 손가락으로 목을 더듬어 댔다.
“뭐, 뭔?”
목에 정교한 선홍빛 생채기가 나더니 곧 툭, 하고 떨어지는 머리.
바닥을 구르며 점점 비어 가는 부단장의 동공이 어느새 단원들을 향하며 멈추었다.
“……!”
“뭐야, 저 이거!”
“이런 씨발, 부단장!”
뒤늦게 터져 나오는, 단원들의 비명 섞인 외침.
그들은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멍한 눈으로 몇 차례 나와 부단장이었던 것을 번갈아 보았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고양감이 가슴을 부풀렸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베는 것은 처음이다.
“후,”
묘하게 치솟는 이 감각이 썩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쾌감이 몸을 뒤덮는 기분이었다.
나는 호흡을 길게 몰아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제야 귓가에 울리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언더테이커들은 나를 보자 혼비백산하며 각양각색의 무기들을 뽑아 겨누었다. 레이 션은 잠시 선 채로 멍하니 서 있다. 곧장 홀스터에서 나이프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저 애새끼, 족쳐!”
“젠장!”
욕설을 비명처럼 터뜨리는 놈들. 누런 이빨 사이에서 침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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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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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미를 휘두를 수 있는 50초는 이미 흐르고 있었다.
* * *
콰직―!
섬뜩한 피육음이 울려 퍼지고, 또 하나의 목이 툭 떨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악!”
“씨, 씨발! 이 새끼, 이거 뭐야!”
패닉에 빠져 무어라 욕을 지껄이는 단원들. 와중에도 민활한 칼날이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그들의 몸을 훑었다.
“아니, 이 새끼 어디 있⏤”
썩둑⎯ 툭.
강건하기 그지없는 장정들의 신체가 두부처럼 무기력하게 절단됐다. 파릭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야, 새끼들아! 정신 똑바로 차려! 상대는 애새끼 하나야, 한꺼번에 찔러!”
그 말에 단원들은 찰나에 진형을 정비해 강검마에게 합공을 가했다. 다중의 날카로운 꼬챙이가 강검마를 노리고 덤벼든다.
하지만 강검마는 예상했다는 듯 무릎의 탄력을 싣고서 허리를 뒤로 크게 젖혀 피해 버렸다.
“미친!”
무정하게 허공을 찔러 버리는 합공. 허한 시선들이 강검마의 움직임을 눈동자에 담는다.
휘리릭.
강검마는 그 자세로 사시미를 역수로 고쳐 잡으며 팔을 휘둘렀다.
서―걱―!
화끈한 열감이 그들의 팔을 잘게 훑더니 무기를 쥔 손들이 후드득 연달아 잘려 나갔다.
“끄어어억, 씨―이바아알! 아파, 아파!”
“쥐새끼 같은 놈, 좀 뒤져라!”
개중 하나가 남은 팔로 칼을 휘둘렀다.
강검마는 용력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허리를 세워 사시미를 비틀어 밀었다.
울대를 파고든 칼날이 뒷덜미로 빠져나왔다.
“커⎯⎯억!”
단원은 외마디의 신음을 부르짖다가 강검마가 사시미를 뽑아내자 그대로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시선들이 동료였던 것에 모인 순간에.
사사삭.
핏물을 머금은 칼날이 남은 단원들의 울대를 물결처럼 훑고 지나갔다.
눈에 담지 못한 죽음이었다. 그들의 목이 자연스럽게 바닥을 굴렀다.
피융― 피융― 피융―
저 멀리, 뒷전에서 날아오는 화살들.
기척을 감지한 강검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젖혀 흘려 보냈다.
곧바로 강검마의 눈동자가 나무들 사이에서 활잡이들을 포착했다.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자 그들의 동공이 일제히 화등잔만 하게 크게 열렸다.
“이런 젠―”
그제야 몸을 피해 보려는 그들. 동시에 슥- 하는 공기 썰리는 소음이 나고, 사시미가 직선으로 날아들어 연달아 급소에 정확히 처박혔다.
활잡이 셋은 경련하듯 몸을 꿈틀거리다 그대로 나무 아래로 떨어져 목이 꺾였다.
언더테이커들은 말을 잃었다. 이것이 무어란 말인가. 비릿한 혈향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들이지만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사냥감으로 상정했던 표적에게 도리어 전원이 무참히 사냥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대는 생도.
수월함을 넘어 꽁으로 받아먹는 의뢰라 생각했는데, 10초도 안 되는 순간에 저 희번덕이는 사시미에 목이 몇 개가 달아난 건가.
충격의 여파에 단원들의 진영이 분분히 흩어진 순간, 강검마가 곧장 몸을 날렸다.
타다다닥!
급하게 뒷걸음질 치기도 전에 서늘한 쇠의 감촉이 짓쳐 들었다.
툭―투두두둑.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언가 다발로 끊기는 소리가 들리고, 배경음처럼 울려 퍼지던 비명이 잦아들었다.
남은 단원은 파릭과 레이 션 두 사람뿐.
“다, 단장!”
파릭은 공포가 잔뜩 낀 목소리로 레이 션을 애절하게 불렀다. 색색거리는 새된 비명이 갈라진 혀 사이로 새어 나왔다.
레이 션은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에 눌려 그저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저런 걸 죽여 달라고? 다시 생각해 봐도 저건 인간의 솜씨가 아니었다.
괴물, 귀신 그 어떠한 수식어를 저 새끼한테 갖다 붙여도 부족하다.
기예였다. 몸놀림뿐 아니라, 저항감 없이 파고드는 칼질 역시 현실 감각을 상실시키는 귀기 어린 솜씨였다.
저벅, 저벅.
와중에 강검마는 사시미를 틀어쥐고서 다가온다. 어깨를 파르르 떨며 탁한 숨을 몰아쉬는 파릭이 발작했다.
“오, 오지 마, 개새끼야! 씨발, 회칼로 사람 써는 백정 새―!”
콰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