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6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61화(61/300)
61화 무인도 생존 훈련 (8)
열 명 남짓했던 언더테이커들의 주검은 자갈밭을 구르며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었다. 푸르죽죽하게 죽은 얼굴들을 보자 어째 입맛이 싹 달아난다.
“…하.”
역시 마수의 생명을 꺾는 것과는 다른 생경한 감각. 그렇다고 해도 일말의 후회나 망설임은 없었다.
저들이 먼저 기습했고, 나는 그에 대한 정당방위를 행했을 뿐이다. 하물며 인간 백정 살인 청부업자들인데, 손속에 자비를 둘 이유가 없었다.
‘대충 정리가 됐군.’
혹시 몰라 감각의 범위를 넓게 포진해 보아도 일대에 살아 있는 사람은 나와 레이 션뿐이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레이 션은 아랫입술을 잘근 짓씹었다. 몸이 안 움직이는지, 보위 나이프를 쥔 두 손만 잘게 떨며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몸을 튕겨 낼 것 같은 자세였지만, 주박에 엮인 듯 좀처럼 운신하지 못하는 레이 션.
아무래도 그 이유는 검신의 가호의 정신의 격 효과인 ‘말과 행동에 위압감이 깃듭니다.’ 때문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마수나 마인, 인간보다 초월적으로 강한 괴물들만 상대해 왔던지라 정신의 격이 쓸모 있게 작용한 적이 없었는데.
마족보단 인간에게, 그리고 그 수가 적을수록 그 효과가 더 잘 먹혀들어 가는 모양이다.
그를 입증하는 것이 눈앞의 레이 션이었다. 나는 손목을 흔들어 칼날에 발린 피를 털어 냈다.
다만, 너무 묻은 탓에 완전히 털리지 않아 눈살이 찌푸려졌다.
숨어 있던 녀석들에게 칼 세 자루를 날려 버린 탓에 남은 사시미는 이 두 자루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대충 피를 옷소매에 닦아 내고서 검집에 꽂아 넣은 뒤, 레이 션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이 션.”
이름을 부르자 일자로 좁혀지는 그녀의 눈썹. 그제야 짓이기는 위압에서 몸이 풀린 레이 션은 거칠게 숨을 끊어 토해 냈다. 이어서 표정을 와락 굳히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누가 보냈는지 말해.”
“…내가 그걸 말할 거라 생각하나?”
살기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레이 션의 눈빛.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폭 흘렸다.
게임 메인 스토리상에서 레이 션의 인간 시절을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는 나는, 그녀의 성격 또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좋게 말하면 프로 의식, 안 좋게 말하면 개똥철학의 살인 청부업자. 적당히 타이르기보다는 압도적인 공포로 짓눌러 실토하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겠지.
계속해서 나를 죽이려 하는 배후를 알 수 있는 기회다. 한순간에 목을 베어 그 내막을 듣지 못한다면, 아마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이어서 나는 엄지로 뒤편에 이미 생명의 열기가 전부 꺼진 놈들을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네 부하들이 저런 꼴이 났는데, 멍청한 거야 아니면 용감한 거야? 좋게 좋게 말할 때 불면 서로 좋잖아.”
“…미친놈.”
그렇게 말하며 비틀비틀 몸의 균형을 다잡는 레이 션.
어느 순간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부하의 원한인지 사사로운 객기인지 눈빛은 전의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쯧 혀를 찼다.
안 그래도 자욱하게 깔린 피비린내가 불쾌감을 가중하는 와중에, 레이 션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그것을 배가시킨다.
그것도 가장 밑바닥의 직업인, 살인 청부업자에게 미친놈 소리를 들으니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언더테이커는 암흑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악독한 집단. 돈만 받으면 피아 구분 없이 죽여 버리는 역겨운 녀석들이다.
의뢰를 사주받았단 한들, 생도인 내게 문답 무용으로 칼부터 날린 것부터가 그들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희미한지를 보여 준다.
감각을 곤두세웠던 상태였기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목이 달아난 건 나였을 것이다.
내가 일말의 지체 없이 놈들의 생명을 꺾은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와중에도 두 손에 쥔 나이프에 탁류를 응축시키기 시작하는 레이 션. 거칠게 넘실거리는 탁한 기류에 주변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하긴, 저 정도 수준은 되어야 훗날 군단장과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할 터다.
‘대가리는 좀 다르다 이건가.’
무정한 내 시선을 받은 레이 션은 한 차례 흠칫 놀라더니 갑자기 상황에 맞지 않는 비소를 흘리는 게 아닌가.
“하- 왜 그 인간이 네 녀석 처리를 의뢰했는지 알겠네. 친인척, 부모 관계부터 해서 인적 사항도 전부 말소되어 있는 것에서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그 노친네, 감히 우리한테 빌런 토벌을 의뢰해?”
뭐라 뭐라 말을 내뱉는 레이 션. 그때 여태 미동조차 없었던 심상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뇌리에 어린 수많은 의념들. 친인척, 부모 관계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이지? 이 세계에는 엄연히 나를 일 년가량 보살펴 준 부모님이 계셨다.
고개를 살짝 들어, 레이 션을 쳐다봤다.
그녀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조 섞인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고 있다.
거짓을 토해 내는 사람의 태도는 아니라고, 예민한 직감이 나를 자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속을 갑갑하게 하는 것은, 어째서인지 이곳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생기셨었지?’
마치 인위적으로 지워진 듯, 기억의 파편은 신기루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입학하기 전의 집 주소, 부모님과 나눴던 대화들 역시 희뿌연 안개처럼 잔상만을 남긴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원로 늙은이 목부터 땄어야 해―.”
“야.”
정신없이 이어지는 레이 션의 말을 끊어 냈다. 그러자 레이 션은 순간 멈칫하고서 시선을 이쪽으로 옮기더니, 이내 곧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내 입술 사이를 비집은 것은 나조차도 놀란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빠르게 공포의 감정이 번져 가기 시작한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
“…뭐?”
레이 션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삽시간에 엄습한 흉흉한 분위기에,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내게 친인척과 부모가 없다고 했나?”
“…….”
석상처럼 굳어서 말없이 신음을 삼키는 레이 션. 그녀의 입가에 걸렸던 냉소도 덩달아 옅어지더니 곧장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다.
“원래는 나를 죽이라 사주한 녀석의 이름만 듣고 편히 보내 주려 했다만.”
“…….”
나는 주머니에 갈무리했던 사시미를 도로 빼내었다. 레이 션은 말을 안 하는 건지 못 나오는 건지 엉거주춤 침묵했다.
“너한테 물어볼 것이 생겼다.”
“……!”
“참고로, 이건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니까.”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예상한 듯, 창백해진 안색은 이내 핏기마저 가셔 시체나 진배없었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끼리릭―
검집을 반쯤 벗기자 칼날에 붙은 핏방울이 떨어지며 흐리터분한 검명이 사위에 스몄다.
가일층 메아리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섬뜩한 분위기를 더하고, 내가 앞으로 발을 디디며 칼날을 훤히 내보인 순간이었다.
사라라라락―
불현듯, 후두부를 가격당한 듯한 현기증이 혈류를 타고 몸을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미는 듯한 무시무시한 열풍이 몸 전체에 스미자, 나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력……?”
질식시키듯이, 흩날리는 마력의 수해. 정신이 한순간 날아가 버릴 수준이다. 몸을 우악스럽게 짓누르는 마력이 내 움직임을 집어삼킨다.
“씨발, 무슨 일이야!”
나와 레이션이 있는 이곳이 마치 완벽히 유리된 공간처럼 아지랑이 피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어지는 광경은 더더욱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스르르르륵―
죽어 있는 언더테이커의 시체들로 웅덩이진 핏물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니 레이 션을 향해 그러모아진다.
곧바로 실처럼 가늘어진 핏물들이 뱀처럼 엉겨 붙어 사슬 형태를 이루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발끝을 타고 배열되며 몸 선을 따라 입혀졌다.
“뭐, 뭐야. 이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는지, 빠르게 경악과 두려움의 감정이 번진 얼굴로 고함을 쳐 댔다.
레이 션은 잡고 있는 보위 나이프로 피의 사슬들을 잘라 냈지만, 칼질보다 몸을 침범하려는 속도가 잽쌌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울음 섞인 비명을 내지른 레이 션.
하지만 순식간에 여태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이 툭, 끊긴 것처럼 눈자위에 탁한 막이 생겼다. 그리곤 축 늘어지는 팔다리.
동공에 생명의 빛이 꺼지자 그녀의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레이 션의 전신에 찐득하게 발린 핏물.
이윽고 레이 션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자, 새파랬던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찌르르 울어 대며 하늘을 날고 있던 새들은 일제히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콰가가가가강―!
역천의 힘이 하늘을 뒤덮고, 생명이 꺾이는 절명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말 그대로 재앙이 도래한 것 같은 참상이 눈앞에 빚어지고 있었다.
* * *
같은 날, 이른 아침부터 검제 지크프리트는 유유자적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 무렵부터 즐겨 온 소소한 취미였다.
일흔까지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사실은 낚시와 검술의 묘리가 사뭇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손끝에 감각을 세워 무언가 미끼를 물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것은 마치 검을 쥔 채 가부좌를 틀고 하는 명상과도 같았다.
잔잔한 실개천 소리가 검제의 영민한 귓가에 스미고, 기류의 흐름이 주름진 뺨을 사늘하게 스친다.
‘가서 생도들한테 뭔 일 안 나게 단속 잘하고 와. 심심하면 가서 낚시나 하든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뒤척거리며 말하던 메디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간고사를 반면교사 삼아 치안책으로 섬에 보내졌으나, 검제는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장소가 아발론 섬이니만큼 그윽한 풍취가 감돌았다. 잔물결 진 수면 위로는 반사된 위그드라실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관리 차원에서 온 것 치곤 나쁘지 않군그래.”
검제는 낮게 콧노래를 부르며 가만히 찌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념. 시간을 낚는다는 말도 있듯이, 낚시라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조금의 움직임에 휘몰려 낚싯대를 낚아채면 대어를 낚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흘렀을 때, 검제는 이맛살을 좁혔다.
“…오늘따라 유독 안 잡히는군.”
그래도 1, 2분 정도 안에는 입질이 올 터인데, 손맛이 너무 심심하다. 검제는 찌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못마땅한 눈으로 낚싯대를 노려본다.
“비싼 값을 못 해.”
그 순간, 하늘에서 울리는 새들의 기분 나쁜 울음소리. 새파랬던 경관에 불길한 묵색이 점점 흐릿하게 드리웠다.
반사적으로 검제가 눈만 올려 그것들을 바라보던 중, 왼쪽 너머에서부터 어슴푸레 내닫는 스산한 기운을 느꼈다.
동시에 온몸의 터럭을 쭈뼛쭈뼛 곤두세우는 소름이 전신을 휘감는다.
잔잔했던 물결엔 망가진 심장 고동처럼 파문이 일고, 주변의 산새들이 푸드덕거리며 급하게 자리를 피한다.
검제는 안력을 돋워 그 불길한 기운의 출처를 살폈다. 그것은 왼편 너머에서 뻗어 나와 그의 옆태를 두드렸다.
“설마, 이건……!”
이 불길한 기류는 검제의 노건한 육신에 각인되어 있는 것. 마력의 공명.
대체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아발론 섬은 위그드라실의 신성력으로 인해 마수나 마족이 머무를 수 없을 터다.
하지만 본능이 연이어 감지하는 이것은 영락없는 마력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마력이 아닌,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우악스러운 파륜(波輪).
전신을 핥아 대는 흉악스러운 감각이 가시처럼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찌른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아름다웠던 경관마저 마력의 열풍에 저며지며 색이 바래고 있고, 산짐승들은 비명 비스름한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이 정도 수준의 마력을 분출할 수 있는 마족은…….”
검제는 주름진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멈춰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잡고 있던 낚싯대를 집어 던진 뒤, 허리춤의 검 자루를 틀어쥐고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