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6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63화(63/300)
63화 재앙 (2)
검제 지크프리트는 마력이 공명하는 근원지에 다다랐다.
“크음.”
절로 매운 기침을 뱉게 하는 불길한 공기가 폐부를 사정없이 찌른다.
뻗어 나오는 마력은 강건한 정신력마저 일순 무너뜨릴 정도로 흉흉하다.
검제는 잠시 발걸음을 멈칫하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꿈이라 믿고 싶었던 참경은 현실의 지옥도였다.
마치 거대한 기운에 일시적으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생령(生靈)의 소리가 멎었다. 자칫하면 정신이 툭, 끊길 것 같았다.
‘…이 감각은.’
반세기 전, 6군단장 바스몬과 대적했던 떄 그 이상이다. 화마처럼 전신을 갉아먹는 맵싸한 마력에 검제는 상대를 보지도 않았음에도 가늠할 수 있었다.
“…아고르.”
군단장들 중 유일하게 불의 마법을 다루는 악마. 그 유해성은 한낱 인간 한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수한 물음표들이 뇌리에 스치지만, 날벼락에 이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후.”
검제는 숨을 길게 뱉어 낸 뒤, 무장을 단단히 쥐는 것으로 겁을 떨쳐 냈다. 수풀을 한 겹 걷어 내면 적을 마주하게 되겠지.
검제가 그 참혹한 현장을 향해 걸치듯 발을 내디딘 때였다.
드레스 같은 적의를 걸친 여인. 뿜어내는 마력으로 보건대, 아고르는 저 여인의 몸에 깃들었으리라.
군단장급의 마족이 모습을 드러내려면 살점을 제물 삼아 마경과 인계의 경계를 헐겁게 만들고, 촉매 역할을 하는 인간의 육신에 빙의해야 한다.
그 반동으로 빙의한 군단장들은 일신의 무력 전부를 끌어내지는 못하나, 막을 수 없는 재해임은 변함없었다.
‘결국 예상했던 게 맞구나.’
마른 침음을 흘리고 나아가려던 찰나, 검제의 시선이 살짝 돌아가고. 이윽고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생도 강검마. 그가 아고르를 응시하며 천천히 칼날을 들고 있었다.
검제는 그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눈동자에 흔들림이 없다. 칠성 영웅인 자신조차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강검마는 공포의 기색을 지워 낸다.
목숨을 포기한 전사의 눈빛이 아니다. 환연히 총기가 깃든 눈동자. 강검마는 지금 적을 벨 생각인 것이다.
아고르는 굳었던 표정을 잠시 풀고 흥미로운 기색으로 강검마를 쳐다봤다. 입가에 걸리는 호선은 사람을 홀리듯이 미염하다.
키이이이이이⎯잉
사시미의 검명이 처연하게 나부꼈다.
화르륵!
동시에 칼날에 흐르는 휘황한 빛무리. 그 장면이 반사된 검제의 망막이 파르스름하게 염색됐다.
뼛속을 저미는 몸소름. 그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검제는 중얼거렸다.
“…오러.”
미성년의 나이에 검기를 피워 내다니. 검을 휘두르는 같은 검사로서의 질투보다도 경외가 먼저 치솟았다.
검기의 불티가 적을 향해 튀었다. 검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의지가 깃들어 있다. 순청색의 오러가 적빛의 참경 속에서 홀로 초연히 생명의 불씨를 발아한다.
넋 잃고 바라보던 검제는 고개를 흔들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의식을 놓을 뻔했다. 이어서 그는 목청껏 강검마의 이름을 불렀다.
“강검마, 멈춰라!”
노인의 외침에 아고르와 강검마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검제의 난입에 아고르는 귀찮다는 듯 퉁명스레 그를 흘겨보았다. 생명의 정기를 빨아먹는 몽마는 노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고르는 도로 시선을 강검마 쪽으로 돌렸다. 광채가 낀 안광이 사납게 번들거렸다. 흉흉한 살기가 더욱이 짙어졌다.
‘강검마, 저 생도만큼은 안 된다.’
인(人)과 마(魔) 악의 고리를 끊어 낼 희망이자 보배.
불세출의 재능이 이런 곳에서 허망하게 사라져선 안 된다.
“내가 상대하겠네! 자네는 빨리 몸을 피하게!”
검제가 다시 한번 울부짖듯 소리쳤다. 강검마는 입매를 움직이려다 이내 말을 아꼈다. 그러곤 시선을 적에게 고정하고서 곧 검집을 전부 벗겨 냈다.
키이이이잉⎯
의지가 깃든 사시미가 검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검제도 검을 빼 들고 지면을 박차고 나갔으나.
쉬식.
강검마가 잔영을 남기고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인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자 직선의 신형이 필름처럼 드리웠다.
콰앙!
짧은 발돋움 소리와 함께 공기가 터지는 파공음.
순식간에 아고르의 눈앞에 닿은 강검마.
그의 팔이 적을 향해 미끄러지며 호를 그렸다.
‘속도가 눈에 담기지 않는다…….’
검제의 눈꺼풀이 깜빡였다. 그 찰나에 결과의 과정은 깔끔하게 생략되고, 은빛 궤적이 겹겹이 쌓여 간다. 급하지 않고 정확하게 정곡을 노리는 예리한 동작이었다.
휘릭, 서걱!
비현실적인 속도에 정교함이 엮인 쾌검이 아고르의 목을 노린다. 소리가 뒤늦게 강검마의 움직임을 쫓았다.
인지를 아득히 초월한 속도. 더 이상 신체 기관으로 쫓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검제는 심상의 영역을 활용해 어렴풋이 공방을 뇌리에 쑤셔 넣는다.
검극이 고점을 찍어 낙하하고, 찰나의 순간에 저점에서 위로 비상한다.
단단한 힘이 실린 강검과 매서운 쾌검이 사사미 두 자루에 서려 있다.
신형을 갖추기도 전에 다른 그림자가 저 멀리에 있다가도.
아래나 위에서 갑작스레 나타나기도 한다.
강검마가 사시미를 흔들었다.
‘휘두르며.’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교란시켜, 혼선을 준 다음.
‘찌르고.’
사시미의 요체는 칼끝의 뾰족함과 그 가벼움에 있다.
‘벤다.’
다른 무기라면 가할 수 없는 연격이 각진 직선을 그린다.
⎯⎯⎯⎯휘리리릭!
강한 적을 상대하는 법, 급소, 상대의 호흡, 감정의 기조, 공격의 흐름.
이 모든 것이 취합되어 강검마의 뇌리에 때려 박히고 있었다.
피부에 새겨진, 사시미만을 잡고 휘두른 칼밥 20년 인생의 잔재다,
전국 제일의 칼잡이로 이끌어 준 칼의 재능. 거기에 검신의 가호가 더해졌다.
부족한 실전은 칼을 잡은 경험치로 메꾸고, 만개한 센스는 검신의 가호로 담금질을 가해 재능의 영역을 한없이 확장한다.
서걱!
날렵한 빛살이 허공을 베어 냈다. 어마어마한 속도 때문에 직선의 번갯불처럼 보였다.
“오- 제법인데? 너, 지금 인간의 한계를 넘었구나?”
시야에서 사라진 아고르가 어느새 강검마의 뒷전에 서 있다. 아고르가 발을 디딘 지면은 일순간에 삭아 문드러진다.
아고르는 끈적끈적한 손톱으로 내리쳤다.
콰앙!
충격의 여파만으로 공기가 찌그러지고, 바닥이 움푹움푹 파였다.
강검마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오라가 입혀진 검극은 고요하면서 사납다. 해록석색 기운이 칼날 끝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어린 나이에 오라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고, 정말 인간으로 두기는 아까울 정도야.”
아고르는 짧게 웃더니 공격들을 맨손으로 쳐 냈다. 칼질에 생긴 생채기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아고르는 유열에 찬 얼굴로 연격을 감지하고 받아 낸다.
흩어진 파공성과 함께 주위의 풍경들이 매가리없이 꺾여 나갔다. 반격과 공격의 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져만 간다.
사가가가가가가각!
그럴수록 강검마는 맹렬하게 칼날을 퍼부었다. 팔, 어깨가 흔들리면 공간이 같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포착하기 힘든 속검의 연속. 모든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밀하고 근거가 내제되어 있다. 날카로운 검격들은 칼바람을 만들어 몰아친다.
콰아아앙!
공격의 여음(餘音)이 일기도 전에 다중의 칼날이 맹금처럼 적에게 날아들었다.
꺾여 들어오는 검로를 넘겨 흘리는 아고르. 여유만만하던 표정은 한 꺼풀 벗겨지고 사뭇 굳은 기색이었다.
‘점점 빨라진다.’
아고르가 잘게 호흡을 내뱉었다. 처음엔 어울려 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칼날들을 받아 내는 데 급급하다. 공격을 내지를 타이밍에 가차 없이 날붙이가 시야를 깎아 먹듯 파고든다.
이윽고 아고르의 피가 후두둑 지면을 적셨다. 잘림과 동시에 새살이 탐욕스럽게 돋아난다. 한데, 아고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피가 빨갛다는 거 진짜 적응 안 된다. 마치 내가 인간이 된 것 같잖아. 700년 전의 그 조항만 아니었어도……. 진짜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
아고르의 그림자가 깜빡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강검마의 발치에 나타난다. 그리곤 피를 머금어 찐득한 손톱이 강검마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살에 손톱이 닿기 직전에 강검마는 몸을 회전하면서 공격을 피하고, 내지른다. 검은 머리카락만이 느릿하게 흔들렸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속도를 뽑아내는 움직임.
카가가가가강!
빨강과 하양이 섞인 치열한 공방이 겹겹이 쌓여 또렷한 형태를 갖춘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5초 남짓의 시간에 벌어졌다.
“…아, 아니.”
검제가 뜬 눈을 비비며 말을 더듬었다. 강검마가 행하는 검술은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 있다.
벤다는 의지를 머금은 칼날이 오라를 끌며 적에게 쇄도한다. 공간 채로 베어 내는 듯, 자욱한 흙먼지에 절삭된 인위적인 흔적이 머물렀다.
검제는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속도도 차마 눈으로 못 쫓는 판이다.
거기에 강검마가 흩뿌리는 검기가 타인의 개입을 불허한다.
그저 눈을 가늘게 좁혀 간신히 검로를 파악하고 담아내려 노력한다. 동공이 너무 빨리 움직여 지진 난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화르륵.
쇠로 만든 도구가 공기를 쓸고 지나가면 마찰이 일어 허공에 불티가 튀었다. 타는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하지만.’
치열했던 공방이 이어질수록, 격전의 균형이 아고르 쪽으로 기울고 있다.
강검마는 한계에 봉착했는지 눈자위가 점점 탁해져 갔다. 매서웠던 검극도 눈에 띄게 둔해졌다. 실핏줄이 터진 눈에서 붉은 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렀다.
호흡은 엇박에 강검마가 숨을 내쉴 때면, 초여름임에도 잇새로 입김이 새어 나왔다.
체온이 기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증거였다.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몸놀림에 혈류가 용암처럼 들끓고, 몸의 열기가 비정상적으로 치솟는다.
“하앙.”
그러자 아고르는 열락에 찬 얼굴로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옅은 자상에서 김이 피어오르자 말끔히 아물었다.
“정말 인간으로 두기에는 아까운데?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그 화염 같은 투지가 참 매력적이야. 버르장머리는 좀 없지만, 그 나이에 이 정도면 ‘그분’의 그릇으로 점치는 아이보다도 장래성이 있겠어. 근데⎯”
그것이 옅게 웃었다. 이어서 한 손을 편 아고르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놀아 주는 건 여기까지. 이제 이 육신에 거의 적응한 참이거든.”
아고르가 숨을 짧게 다듬었다. 그러자 바람의 흐름이 거꾸로 바뀌어 역류한다. 아고르의 손에 그러모아지는 마력이 일순간에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네가 과연 우리의 염원을 이루어 줄 아이인지, 이참에 시험해 보자꾸나, 얘야.”
“피해라, 강검마!”
상황을 알아차린 검제가 주저 없이 강검마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런 그를 한번 흘깃한 아고르가 음흉하게 웃더니 가볍게 영창했다.
“플라마(Flama).”
영창이 끝나기 무섭게 눈을 뜰 수조차 없는 매서운 열풍이 일더니, 어마어마한 불길이 피어올랐다.
고막을 태우듯이 들려오는 작열음. 근방의 생명과 숲의 녹음이 잿더미로 일변한다. 검은 연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더럽혔다.
가장 단순한 화 속성 마법일지라도 영창한 대상이 군당장급이라면, 그 위력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아고르의 등 뒤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마가 불길을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흩날렸다.
적빛으로 물든 배경 가운데 아고르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일그러진 얼굴로 아고르를 바라보는 강검마. 더 이상 운신이 불가한지 몸을 비척거렸다.
그 모습에 아고르는 흉신처럼 기분 나쁜 비웃음을 흘린 뒤, 손가락을 곧게 핌과 동시에.
화르르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