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6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65화(65/300)
65화 재앙 (4)
“이 악마 같은 것아!”
검제는 소리를 지르며 아고르에게 달려 나갔다.
“호호, 마족한테 악마 같다고 하는 건 칭찬 아닌가?”
아고르는 강검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 익살스럽게 키득거렸다.
검제의 턱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흐르고, 훤히 뚫린 배 구멍 사이로 바람이 통했다.
사방은 불길이 생명처럼 꿈틀거리고, 생명은 양초처럼 빠르게 녹아간다.
승기 따윈 없었다. 그럼에도 지크프리트는 칼자루를 붙잡고 내달렸다.
“이 한목숨 희생해서라도 아고르, 네놈의 다리 두 쪽은 가져가 주마!”
키이이잉⎯
지크프리트의 검이 주인을 대신해 울었다. 그러자 검제의 손가락 마디를 시작점으로 도신을 타고 흐르는 순백색의 빛.
그걸 보던 아고르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고르는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검성의 오러?”
하얀 막처럼 지크프리트의 검을 감싼 광원의 정체. 700년 전, 아고르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초대 검성이라 불리던 인간의 검기다.
“아론 니벨룽.”
아고르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는 그것. 규격을 뛰어넘은 인간의 검술에 5군단장의 몸이 저려 왔다.
1차 인마대전 당시, 인간 주제에 군단장인 자신의 목전에 서늘한 날붙이를 들이밀던 인물의 얼굴이 검제와 겹쳐 보인다. 당황도 잠시, 아고르의 깊은 곳에서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
“…이, 이 벌레 같은 인간이……!”
아고르가 표정을 사정없이 구기며 치미는 부아를 내지르려던 때에.
고오오오오.
어두운 그림자가 하늘을 삼킨다. 사납게 타오르던 마법의 불길도 잦아들었다.
“……!”
날씨의 변덕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아고르와 검제의 전신을 저미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팽팽했던 긴장감을 억지로 밀어내듯이, 바람의 방향이 역류한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아고르는 턱만 치켜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뭐야, 이건?”
검게 물들어 가는 하늘. 백주 대낮이 한순간에 밤으로 바뀌고 있었다.
세상을 밝히던 태양이 달의 그림자 뒤에 몸을 숨겨 훈륜을 남긴다.
멍하니 위를 쳐다보는 아고르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무수한 별.
그 수를 가늠할 수도, 추산할 수도 없는 압도적인 별들이 의지가 깃든 시선이 되어 일제히 아고르를 노려본다.
곧바로 낙뢰음이 귓가로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새카만 구름 사이로 벼락의 다발이 뿌리를 그리며 맹렬하게 튀었다.
흐려지는 별빛을 대신해 섬광이 광오한 하늘을 메운다.
콰르릉!
고막을 찢어발기는 듯한 굉음의 연속.
텅 빈 허공을 짓이기는 뇌성의 선을 따라 하늘이 허물어지자 생명의 거목, 위그드라실의 빛바랜 낙엽들이 눈발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공중에서 맞부딪치던 벽력의 줄기들이 의지를 가지고 지상의 한 점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한다. 그곳엔 강검마와 아고르가 있었다.
아고르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낙뢰를 망연한 눈동자에 담아내다 이내 저며진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앙칼진 고성이 녹음에 반사되어 메아리쳤다. 낙뢰가 꽂힌 자리에는 노란 불티와 뇌류가 튀겼다.
“허억… 허억…….”
전신이 검게 그을린 채 거친 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서는 아고르. 피부 위로는 핏발이 뿌리 모양으로 터져 피를 뿜어 냈다.
상처는 곧장 아물었지만, 아고르의 얼굴에는 혼란이 맴돌았다.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 드세게 타오르던 불길은 넘실거리는 섬광에 갉아 먹히고 있었다.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고르의 시선이 저절로 옮겨졌다.
“이, 이, 이건.”
시선이 향한 곳엔 강검마가 서 있다.
고막이 얼얼한 폭음을 배경음 삼아, 그를 에워싸는 휘황한 빛무리.
안광에는 형용할 수 없는 광채가 깃들어 있고, 강검마의 몸을 따라 공간이 굴절되어 아지랑이 치며 너울거린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검제도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눈을 가늘게 좁혀 자세히 보려 해도, 형상이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기이잉.
강검마가 두 손으로 움켜잡은 사시미가 성결한 검명을 내뿜었다.
“저, 저건 뭐야!”
여전히 넋을 놓은 표정을 짓던 5군단장 아고르가 발작하듯이 기함했다.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 목소리에 껴 있었다.
미증유의 힘과 무게가 악마의 전신을 조여 약자처럼 몸부림치게 만든다.
“…….”
강검마는 말없이 위그드라실을 등진 채 굳건히 서 있다.
그는 고개만 살짝 돌려 당황으로 머뭇거리는 검제와 시선을 맞췄다. 검제의 심상에 성스러운 고양감이 가득 들어찬다.
“아, 아.”
주름진 눈매가 서서히 붉어지더니 뜨거운 물이 줄줄 흘렀다. 좀 전까지의 슬픔의 눈물이 아닌, 희락의 눈물이었다.
검제는 한쪽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
나중에 누군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검사로서 무의식의 행위였다.
“내가 베겠다.”
강검마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귀를 통해서가 아닌, 뇌에 직접 꽂히는 직언이었다. 강검마임은 분명하나 뇌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나 말투가 생경하다.
그 순간, 검제의 배에 뚫렸던 구멍에서 살점이 부글부글 끓더니 이내 상처를 메워 버린다. 잘린 팔의 단면에도 새살이 돋아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얼떨떨한 얼굴로 배와 잘린 팔을 쓸어 만지는 검제. 이해하려 노력해 봐도,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 모습을 아고르는 흐릿한 눈동자로 쳐다봤다. 무슨 상황인지 반추해 보려 해도 인식 밖의 일이었다.
강검마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악마의 불길이 수해를 좀먹으며 타오르는 소리가 귓가에 스민다.
강검마는 칼자루를 비스듬히 틀어쥐었다. 동시에 그의 발밑을 시작점으로 순백의 빛이 쏟아져 나와 대지를 뒤덮는다.
촤아아아아악.
[무통의 가호 신(神)이 발현됩니다.] [재생의 가호 신(神)이 발현됩니다.] [전이의 가호 신(神)이 발현됩니다.]두 가호는 전이의 가호로 옮겨져 세계선 전체를 뒤덮으며 우주를 지탱한다.
가호의 차원을 아득히 넘은 신비의 영역이다.
아고르의 눈에는 강검마의 모습이 희뿌연 안개같이 보였다.
마치 뇌에서 존재 자체의 인지를 거부하듯이, 신체와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아고르는 정지한 몸을 움직여 모든 마력을 그러모았다. 열기로 팽창한 수해와 지천에 깔린 시체들이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렸다.
의식을 집중시켜 육신의 상한선을 해방해 모은 마력을 한순간에 뻗어 내자 불의 장막이 가일층 흉험하게 타올랐다.
화르르르르륵!
“블레이즈 템페스트(Blaze Tempest).”
녹음과 개천을 말리다 못해 녹여 버리는 거대한 화염구가 공중에 떠올랐다. 자칫하면 강림한 육신조차 삼키는 광열의 마법이다.
‘저 녀석을 여기서 내버려 두면, 분명 우리 마족의 앞길을 막을 것이다.’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찰나다. 생각을 굳힌 아고르가 손을 뻗었다. 팔뚝 살이 녹아 검게 그을린 뼈가 드러났다.
콰르르릉!
거대하게 치솟은 불티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섬 전체를 태울 만큼 어마어마한 화력이다. 불줄기 한 가닥에 바위가 용암처럼 부글부글 녹아내렸다.
강검마는 조용한 눈으로 다가오는 화마를 응시했다. 눈썹에 반쯤 잠긴 동공은 잠잠한 빛이 맴돌았다.
망막에 비친다. 이글거리는 화염구에 왜곡된 공간. 그리고 이리저리 총총하게 그어진 무수한 붉은 선.
강검마는 사시미 한 자루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사소한 버릇, 절륜한 기술, 죽이고자 하는 살의. 어떠한 것도 묻어 있지 않은 천의무봉한 동작이다.
칼의 끝이 하늘을 향했다.
광휘한 빛이 날을 타고 번쩍이고.
검극이 땅을 가리켰다.
⎯⎯⎯서걱!
매끄러운 소리가 났다. 빛기둥이 화염구를 사선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금빛 섬광은 끝을 알 수 없는 저편까지 이어졌다.
파앗⎯!
주변을 녹이던 불길이 잔열도 못 남기고 거품처럼 터졌다.
강검마의 참격은 ‘소멸’이라는 현상을 현실로 이끌어 내는 규칙과도 같은 것. 원인과 결과가 역전된 부조리였다.
그에 반해 아고르의 불길은 어마어마한 마법일지라도 세계의 일부일 뿐.
불가해한 현상은 마력의 근원 자체를 베어 버린다.
“아.”
아고르가 중얼거렸다. 허리에 길쭉한 생채기가 나더니 이내 몸의 위아래가 미끄러지듯 분리됐다.
자신이 베였다는 사실을 조금 지나서야 인지했다. 아로새겨진 자상에서 새살이 돋아나지 않는다. 맺히는 피도 없다.
퉁.
비뚜름히 잘린 상체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와중에 눈에 담긴 광경에 아고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풍경에 비스듬한 균열이 생기는 착란이 일었다. 땅과 하늘의 경계선이 새로 그어진 것이다.
반으로 쪼개진 하늘에선 빛기둥이 위그드라실 위로 쏟아져 내리고, 험준했던 산등성이는 절단면을 내보이며 수평으로 길게 잘려 지옥도를 걷어 냈다.
숲에도 잃었던 녹음이 일렁이고, 쾌청한 태양이 도로 드리웠다.
회전이 멈추고, 아고르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열린 하늘 사이로 어둠 속에서 뭉쳐 있던 햇살이 터지듯 쏟아졌다.
한순간에 환해진 시야에 아고르의 안구가 아렸다.
“크윽.”
아고르는 신음을 흘리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죽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땅바닥을 짚으며 하체 없는 몸을 기다시피 일으켰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아고르는 힘을 짜내어 눈을 부라렸다. 죽음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그 일격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저 하나의 확신만이 뇌리에 맴돌았다.
‘강검마, 저 녀석의 존재는 마족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다.’
우두커니 서 있던 강검마가 균형을 잃은 듯, 몸이 휘청거렸다. 그만한 일격을 가했으니 몸이 버틸 리 만무하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아고르는 남은 생명력을 불살라 마력으로 치환하며 영창한다.
“플라마.”
가까스로 손가락에 힘을 불어넣어 튕기기 직전.
푹.
칼날의 파공성. 순백의 직검이 아고르의 뒷덜미를 관통해서 아가리로 빠져나왔다.
아고르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뒤로 틀었다. 외팔로 칼을 박아 넣은 검제가 아고를 내려다본다.
“적을 두고 등을 보이다니, 6군단장 바스몬이나 너나 같군그래.”
아고르의 손톱이 땅을 고통스럽게 긁었다. 검제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 이 개새퀴가아아⎯!”
“지옥으로 꺼져라, 악마 같은 것아.”
입에 칼이 박혀 새된 신음을 내뱉는 아고르. 혀가 잘려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검제는 단숨에 검성의 오러를 불어넣어 몸을 헤집었다.
성스러운 빛이 휘감자 레이 션의 눈구멍에서 마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어 곧 아고르의 몸뚱이에 쩌적 하고 균열이 나더니 틈새로 오러의 빛이 새어 나왔다.
“아론의 후소온, 이 새끼야아아아!”
“그래도 네 녀석은 바스몬보다는 명이 질기군.”
검제는 칼자루를 비틀었다. 외마디를 끝으로 팍, 하는 소음과 더불어 아고르의 육편이 흩어졌다. 이윽고 조금 남은 마력도 신기루처럼 증발했다.
5군단장 몽마의 여제, 아고르의 죽음은 허무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아론의 후손이 아니라,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이네.”
검제는 한 팔로 검날에 묻은 피를 털며 일갈했다. 그리고는 비척거리는 강검마를 향해 달려가 몸을 붙들었다.
피골이 상접하여 한껏 수척해져 있지만 다행스럽게 숨은 붙어 있다. 바닥에 살포시 강검마를 눕혔다.
검제는 그 옆에 가부좌를 틀고서 강검마의 몸을 훑었다. 뛰어난 전사는 위급 시에 의료진의 역할을 겸한다. 하물며, 가호의 반작용에 대해선 검제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었다.
‘호흡도 자연스럽고, 혈이 막힌 부분은 있지만, 치명상은 없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정도는 아니군.’
강검마의 안정을 확인한 검제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턱에 굵게 고인 식은땀을 훔치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강검마, 자네는 대체.”
지크프리트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불세출의 천재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검마를 향한 위화감은 커져, 이제 이질감마저 들었다.
검제는 강검마의 일 합을 복기했다. 두뇌를 굴려 봐도 뭐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은 공격이 아닌 모종의 현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것 같은 얼얼한 충격이 아직도 몸을 휘감고 있었다. 생각의 폭을 그간의 경험을 재료 삼아 확장시킨다.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론을 취합해 보려 한다. 검제의 흰 눈썹이 가늘게 좁혀졌다.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의념은 급기야 새로운 가설들을 제시한다.
‘이자는 과연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검제는 시선을 떨구어 강검마를 쳐다봤다. 눈을 감고 누워 있음에도, 세상을 조망하는 것 같았다.
턱만 치켜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인위적으로 뭉텅뭉텅 잘린 구름들이 창공을 부유한다. 그는 도로 시선을 내려 강검마를 바라본다.
“…….”
오래전, 고대부터 인간은 삼라만상엔 불가해한 의지가 깃들었다 믿었다.
폭풍과 수해, 마른하늘의 벼락 같은 기상 현상, 밤하늘에 떨어지는 혜성까지.
초인간적, 초자연적 간섭들은 인류에게 늘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초월적인 힘에서 축복과 가호를 사사받기 위해 숭배하니.
사람들은 그것을 아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