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7화(7/300)
7화 아카데미는 녹록지 않다 (3)
걸출한 영웅가들은 볕바른 양지에서 주적인 마수를 토벌한다. 영예를 얻고, 세간의 경외를 받으며 그들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하지만 언제나 고여 버린 이면에는 내부의 적이 있기 마련이다. 영웅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그렇지 않은 자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기득권 세력들.
공권력조차 부패해 버린 세력들을 단죄할 수 없게 되어 버리자, 영웅가 중 한 곳이 솔선해서 그림자를 자처해 그들을 처단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가훈을 따르며 질서 유지와 암살을 겸하는 가문.
-아디토레 디 시칠리아(Auditore da Sicilia).
표면적으로는 이탈리아 남부 해안가에 거처를 둔 작은 귀족 가문이나, 실상은 내부의 적을 축출하고 환부를 도려내는 어쌔신 가문이었다.
가문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들은 철이 들기 전부터 암살자로서 키워진다. 감정이 피어오르는 시기는 대개 사춘기. 십 대를 꽃피우기 전부터 정신 개조를 시행해, 감정이 거세된 암살 기계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클로이가 처음 손에 피를 묻혔던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손가락에 감돌던 찐득하면서 미끈거리던 감촉. 칼을 휘두를 때마다 부패한 귀족들의 피가 화려하게 튀었다.
한창 청춘을 만끽해야 할 나이에 클로이의 삶은 밤의 어둠과 선혈의 빨강으로 얼룩져 있었다.
‘클로이, 네 암살자로서의 재능을 부정하지 마라.’
철이 들기 전부터, 가문 사람들에게 귀에 피딱지가 눌러앉을 정도로 들어 온 말이었다.
암살자로서 클로이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파악한 가문 사람들의 기대감은 소심한 성격의 작은 소녀의 마음을 옥죄는 올가미였지만, 그녀의 유약한 면을 거세시키려 아디토레 가문은 그녀에게 온갖 훈련을 강제했다.
클로이는 받아들였다. 사실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끊임없는 혹독한 훈련들은 클로이의 심상을 어그러트렸고, 그녀의 속 깊은 곳에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그렇게 자아가 점차 마모되어 감정의 흔적만이 남았을 무렵, 어느덧 클로이도 호아킨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찼다.
아카데미 3년 생활도 지리멸렬한 삶의 방점일 뿐, 클로이 또한 여지없이 암살자가 될 운명이리라.
음지를 지향하는 가풍상 아디토레의 구성원들은 가문에 의해 범(凡) 클래스에 배정됐다.
그들 개개인의 실력은 못해도 용(龍) 이상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아디토레가(家)와 호아킨 아카데미 측이 협약을 맺었기에, 3년이라는 청춘 동안마저 가문은 자유 의지를 빼앗았다.
때는 호아킨 아카데미의 반 배정 시험. 시험의 내용에 관해서는 가문에서 언질을 해 줬기에 알고 있었다.
아디토레는 언질을 주면서도 눈에 띄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럴 거면 시험 내용은 왜 알려 주나 싶었지만, 클로이는 목각 인형처럼 수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결국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한 남학생을 만나기 전까진.
반 배정 시험에서 ‘패악의 쌍둥이’라 불리는 마오 쌍둥이와 같은 조에 걸려들었다. 그 둘이 무쇠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상대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다 허리가 꺾였다.
그 모습은 클로이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암살자였다. 살이 잘리고, 뼈가 튀는 소리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익숙했다.
제아무리 패악의 쌍둥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손에 묻힌 피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터다.
게다가 이곳은 환영의 영역인 아공간, 죽어도 죽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녀가 여태 빼앗아 온 생명들은 진짜였다.
동기들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마오 쌍둥이가 시선을 클로이에게 두었다. 두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클로이는 덤덤히 그들의 공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범(凡) 클래스에 배정될 터.
죽음의 공포에 전신이 미미하게 떨렸지만, 두려움을 지울 수 있었다. 아디토레식 교육의 산물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걔는 건들지 마!’
갑작스럽게 누군가 쌍둥이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반사적으로 쌍둥이의 시선이 소리의 발원을 쫓았다.
쩌렁쩌렁한 외침에 클로이는 정신이 일순 백지장처럼 하얘져 잡고 있던 무장을 떨어뜨렸다.
검은 머리의 남학생, 그는 양손에 회칼을 들고 쌍둥이를 향해 연신 소리쳐 댔다.
욕설이 섞인 그 외침에 클로이의 깊은 곳이 흔들렸다. 내면의 밑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 진동했다.
서릿발이 휘몰아치는 심상에 먹구름을 뚫고 태양이 드리운 것만 같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속에서 넘실거렸다.
그러자 쌍둥이 중 한 명이 의기양양하게 그를 향했다. 끈적하게 피가 발린 무쇠 건틀릿을 쥐락펴락하며 비릿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쌍둥이를 겨눈 칼날의 끝이 떨리고 있었다. 저 상태라면 저 남학생은 일격에 안면에 바람 구멍이 뚫릴 것이다.
환영이긴 했어도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
‘막아야 해.’
클로이는 흙바닥을 더듬거리다 놓쳤던 무장을 어렵사리 주웠다. 그러자 검은 머리 남학생은 엉성한 자세로 손목만을 움직여 검집을 털었다.
곧이어 클로이는 눈을 크게 떴다. 남학생의 쇠젓가락만 한 칼날이 흔들릴 때마다 뭉텅뭉텅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갔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검. 남학생이 칼을 휘두르는 이유는 그녀 자신이었다. 갈비뼈를 두드리듯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매정하게 쇄도하는 검극에, 1분도 채 안 되는 찰나에 거드름 피우던 쌍둥이의 머리통이 어깨 아래로 떨어졌다.
가문 사람들 몰래 머리맡에 숨겨 두고 읽던 동화가 떠올랐다. 성에 갇힌 공주를 왕자님이 나타나 구한다는 줄거리. 클로이의 눈에 일순 그 왕자님의 삽화가 저 남학생과 겹쳐 보였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그녀는 손으로 뺨을 싸매며 남학생을 쳐다봤다. 알 수 없는 몽롱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클로이는 그것을 사랑이라 정의 내리기로 했다.
* * *
한참을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클로이.
손에는 아직 세제가 씻기지 않은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
“…….”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피식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몸은 고정한 채 목만 꺾는 그녀.
나는 말없이 난간에 기댄 채 창밖을 내려다봤다.
5층이었다.
‘좆됐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십 대 소녀의 순정을 훔쳐본 것부터였을까, 아니면 밥 준다고 헬렐레하고 멍청하게 쫓아온 시점부터였을까.
나는 작게 침을 꼴깍이며 상념을 털었다. 일단 지금은 살 궁리가 우선이다.
슬쩍 눈동자만 돌려서 곁눈질했다.
복슬복슬한 아기 새 같던 얼굴은 이미 지워졌다. 흰 눈자위로 싸매진 공허한 눈동자가 나를 빤히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클로이, 오늘 달이 너무 예쁘지 않아?”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늘, 네 덕에 간만에 저녁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고.”
“…….”
“오늘은 이만 가 볼게, 내일 보자.”
그리 말하고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클로이가 살살 고무장갑을 벗는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나는 손으로 난간을 붙잡았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작은 입술이 벌어졌다.
“봤어?”
“응? 뭐를?”
“그거.”
클로이가 턱짓으로 내가 책상에 올려 둔 일기를 가리켰다. 나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아- 참고서 말하는 거구나? 너 공부 진짜 열심히 하더…….”
“일기장.”
그녀가 샐쭉한 표정으로 가자미 눈을 흘겼다.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평상시 그토록 고집하던 존댓말은 어느새 까칠한 반말로 일변해 있다. 그 태도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을 마주한 것 같다.
“안 봤어.”
“거짓말.”
“그럼 봤어.”
그리 말하자 클로이가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일본도를 들었다. 칼 몸의 마감 새가 좋은 게 날의 절삭력도 대단할 것 같다.
스릉⎯
클로이가 검을 빼 들었다. 날의 표면에 물결무늬가 번져 있다. 독사 같은 두 눈을 보니, 아마 벽지 색을 하얀색에서 빨간색으로 염색시키고 싶나 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얇은 손목에 살벌한 혈관 가닥이 맺혀 있다.
클로이가 한 걸음 내디딘다.
진퇴양난.
눈앞에선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검귀가 다가오고, 창가로 뛰어내리자니 몸이 박살 나 버릴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틀어 클로이를 흘겨봤다.
미동도 없이 초점이 사라진 동공. 의식이 끊긴 듯, 칼끝을 바닥에 끌며 천천히 다가온다.
저런 부류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다.
얀데레.
아마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지. 여기서 기세를 잡아 놔야 앞으로의 인생이 안전할 것이다.
게다가 한순간에 일변한 사나운 어조와 탁한 적색으로 염색된 눈동자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클로이가 아니었다.
‘설마 이중인격?’
아무래도 일기장을 열어 본 게 인격 전환의 트리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얀데레 속성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이중인격 속성까지.
…아카데미 생활이 참 녹록지 않다.
나는 눈자위를 굴려 대며 주변을 살폈다. 주방 쪽에 도열되어 있는 부엌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저기까지 내달려 손을 뻗자니, 외팔이나 외발이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나는 시선을 더욱 잽싸게 돌렸다. 목숨을 연명하고 싶다면 방법을 쥐어짜 내야만 한다.
클로이가 다가올수록 짙어지는 살기는 직감적으로 마오 쌍둥이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러면 그때는 왜 숨기고 있었을까? 상황 판단을 어렵게 하는 의념들이 쌓여 간다.
나는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순간, 책상에 시선이 우뚝 멈춰 섰다.
연필통에 꽂힌 커터 칼.
‘…….’
클로이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허용된 시간은 9초.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것을 재빠르게 낚아채 집어 들었다.
드르륵―
삐져나온 칼날이 울었다.
[기지를 발휘하여 정신(精神)의 격이 상승합니다.] [말과 행동에 일시적으로 위압감이 깃듭니다.] [억제력을 사용해 사용자에게 맞게 조정을 시작합니다.]지이잉⎯
순간 뒷골이 먹먹하게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비상식적인 침착함이 달궈진 가슴을 빠르게 식힌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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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서 나지막이 입을 뗐다. 스산한 밤바람이 불자 클로이의 붉은 옆머리가 뺨 옆에 달라붙었다.
“클로이.”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에 그녀의 턱 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머리가 좀 길군.”
섧게 뜬 달이 구름에 몸을 가린다.
“베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