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7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70화(70/300)
70화 신입 부원 (2)
충격의 여파 때문에 오후 수업은 날림으로 들었다.
‘어떻게 그딴 포스터를 보고 연락을 줄 수 있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센스에 감화되어 지원을 했다면 필시 정상인은 아닐 터.
‘심지어 웨폰, 그 녀석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어.’
웨폰은 멍청한 눈으로 한참 동안 검은 액정을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서 가슴을 탕탕 두드렸더랬지.
자신 있는 척은 다 하더니, 정작 자신도 놀라는 모습이 어이없으면서도 퍽 우스웠다.
“…그건 그렇고.”
어쩌면 나를 노리는 배후 세력들이 보낸 첩자가 아닐까? 그런 의념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아직 예의 여교관과 레인 션이 말하려던 전말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고선 그딴 포스터를 보고 연락을 줄 리 만무하니까.
‘의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서 시간을 확인했다. 마지막 수업이 마치기 10분 전. 잠시 후면 새로운 인물과 마주할 시간이다.
참고로 이번엔 스피드 웨폰도 상대를 몰랐다. 아까 그가 고개를 갸웃한 것도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라 경계심을 품었다고 한다.
웬만한 주요 인물들과는 모두 친분이 있는 웨폰이 모르는 인물이니, 핵심 캐릭터는 아닐 테고. 뭐, 사실 만나서 직접 확인해 보면 되니 깊게 고민할 건 없었다.
나는 창밖의 노을을 바라봤다. 지평선 끄트머리로 슬금슬금 몸을 숨기는 태양.
주황색 여광이 대지를 물들이고 있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잠깐 멍을 때리던 중, 수업의 마침표를 찍는 교수님의 분필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날개처럼 양옆에서 벌떡 일어서는 료조와 클로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이 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도 서둘러 짐을 챙기곤 미팅 장소로 향했다.
* * *
교수동에서 나서서 우리가 모인 곳은 본관 스타복스였다.
커피 가격은 부담스럽다만, 나름 면접인지라 뒤뜰로 불러낼 순 없겠더라고.
나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서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클로이는 여느 때와 같이 아보카도 스무디, 료조도 양갱이 돌체 라떼를 들고 내 양옆에 착석했다.
이 둘은 어느새부터인가 내 좌우를 사이좋게 분담해 도맡았다.
그 모습에 카페 안의 시선들이 내게 모였다. 여생도들의 눈에는 경멸이, 남생도들의 눈에는 질투 낀 부러움이 서려 있었다.
“어, 뭐야 다들 빨리 와 있었네?”
뒤늦게 도착한 웨폰도 남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동아리 관련 서류들을 꺼내 탁상에 탁탁, 두드려 가지런히 시켰다.
묘한 공기가 카페에 스몄다. 각자 말없이 각자 음료를 들이켜며 정적에 일조했다. 여러 복합적인 기분이 번진 면면. 기대, 불안, 의심이 뒤섞여 있다.
“저기.”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몸을 돌렸다.
어깨까지 오는 연녹발과 두툼한 안경. 번뜩거리는 안경알은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너머가 잘 보이지 않았다.
다소 흐릿한 인상이라는 것만 빼면 키나 겉모습은 매우 평범했다.
특이점이라면 투명하리만치 흰 피부 정도? 햇살을 쬐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허여멀건했다.
“혹시 여행 동아리 부원들이신가요?”
“아, 네네. 앉으시죠.”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있던 웨폰이 빈 의자를 향해 손짓했다.
그녀는 크게 꾸벅하고선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았다. 료조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뭐야,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데?”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러곤 도로 지원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민망하게도 지원자는 지극히 평범 그 자체. 개성 덩어리들 인물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근데 묘하게 분위기가 누구랑 비슷한 것 같은데.’
고개를 기울이며 쳐다보자 그녀는 중지를 콧등에 척, 갖다 대며 안경을 고정시켰다. 알이 매우 큰 안경은 얼굴을 가리는 가면 같았다.
“저희 여행 동아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
“자기 소개부터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웨폰의 말을 단숨에 끊어 내는 료조. 그는 목청을 높이려 했으나 사키의 곁눈질을 보곤 작게 투덜거렸다.
곧이어 료조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고서 말을 뗐다.
미소를 살며시 머금고 있지만, 섬뜩하리만치 감정이 지워진 얼굴.
모르는 상대를 가늠키 위해선, 속내를 숨기는 것이 기본이니까.
“아, 네. 저는 2학년 범 클래스 소속인 ‘산하나’라고 합니다. 아, 고향은 부산입니다.”
“한국분이세요?
“아, 네네.”
내가 묻자, 산하나는 검지로 안경을 짚은 상태로 끄덕였다.
‘…근데 우리나라에 산씨라는 성이 있던가?’
상념도 잠시, 이곳은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다.
특이한 성 하나둘쯤 있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어차피 나도 지구에는 없는 본관인 서리 강씨니까.’
연녹발에 흰 피부 때문에 외국인이라 생각했는데, 같은 한국 사람이라니.
게다가 나 역시 부산에 발을 담근 적이 있었다.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전에 부산에서 살았을 때 돼지국밥 엄청 많이 먹었는데.”
“아, 정말요? 돼지국밥 맛있죠. 뽀얀 국물에 다데기랑 정구지 넣어서 밥 말아 먹으면 크으⎯”
차분한 인상과 달리 입맛 자체는 엄청 아재인 모양.
현지 용어를 우수수 쏟아 내는 게 구력이 보통이 아닌 듯하다. 아저씨들 특유의 목 긁는 소리마저 자연스럽다.
‘찐 부산인이다.’
료조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댔다. 그리곤 입술만 움직여 한마디 내뱉었다.
‘야, 정신 안 차려?’
그 말에 나는 무심코 허물어진 경계를 도로 굳혔다. 호아킨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로 처음 본 한국인이라 살짝 느슨해져 버렸다.
턱짓으로 부원을 가리키는 료조. 웨폰은 팔짱을 낀 자세로 아직도 꽁한 얼굴. 클로이는 산하나의 평범한 첫인상에 경각심을 허물고서 스무디만 홀짝거렸다.
‘…그나마 진지한 게 료조밖에 없군.’
료조만이 새인물에게 의심과 신중을 기하고 있다.
‘역시 고구마 방지캐.’
날 보던 료조는 이내 눈과 입가에 정 없는 고리를 걸고서 산하나에게 질문을 이어 갔다. 목소리가 섬뜩하리만치 사근사근했다.
“저희 여행 동아리에 지원한 동기나 이유가 있으실까요?”
말끝과 동시에 눈을 얇게 뜨며 산하나를 훑는 료조. 눈동자는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요하게 움직였다. 반면, 산하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벽보에서 보니까, 동아리 주 활동이 여행 겸 던전 공략이어서요. 안 그래도 올해 실기 성적이 간당간당해서 몇 군데 클리어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저희는 엄연히 여행 동아리입니다, 던전 클리어는 부가적인 활동이고요. 위 학년 동아리 중에서도 던전 공략을 주력으로 삼는 동아리는 적지 않을 텐데요?”
료조의 속눈썹이 동공을 반만 가렸다. 산하나는 한숨을 작게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학년쯤 되니 저 같은 범 클래스생을 껴 주려는 곳은 없더라구요. 아카데미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다들 급한 거죠. 무능력한 제가 도태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생각해요.”
“…뭐,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료조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으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이야기지, 사실상 심문 혹은 언어의 공방이었다. 다소 따가울 수 있을 법한 료조의 어투에도, 산하나는 진실 되게 맞받아치고 있었다.
“…일단 그럼 선배님의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네네, 전 꼭 이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어요. 던전 공략뿐만 아니라, 2학년쯤 되니 졸업하기 전에 아카데미에서 추억을 쌓고 가고 싶더라구요.”
“흐음.”
잠시 후, 료조가 내게 눈썹만 움직여 눈짓했다. 괜찮을 것 같다는 뜻이리라.
‘이 정도면 됐겠지.’
서비스직을 오래해서 풍기는 분위기로 어떤 사람인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다.
거기에 검신의 가호의 감응력을 더해 줄곧 산하나를 지켜봤다.
하지만 별다른 기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안경에 표정의 반절이 가려져 포커페이스를 유지 중인 산하나지만.
뛰어난 통찰력의 사키 료조의 교차 검증도 있으니. 안심해도 되겠지.
또한, 산하나의 평범함이 독특한 부원들을 중화해 주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을 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사람이지 않은가. 그것만으로 내겐 큰 플러스 요인이다. 마음을 굳힌 난 산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행 동아리에 잘 오셨습니다, 선배님.”
“어, 저 가입된 건가요?”
고개를 살짝 기웃하며 묻는 산하나. 나는 끄덕여 긍정했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꾸벅, 고개 숙여 감사를 드러냈다.
“선배님, 저희가 나이도 한 살 어리니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
“…어, 그럴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산하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녀와 여태 이야기하던 료조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역시 잠시 당혹감이 스쳤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일단은 선배니까 말을 빨리 놔 주는 게 서로 편하지.’
적어도 일 년은 볼 사이인데 불필요한 격의를 차릴 필요는 없으니. 게다가 존댓말은 클로이로도 충분했다.
“너희도 말 편하게 해 줘. 어차피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굳이 연장자 취급받고 싶진 않거든.”
나는 잠깐 골몰히 생각하다 이내 끄덕여 동조했다.
“그럼 편하게 하나 선배라고 부를게.”
대화가 얼추 마무리되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밑창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여럿 났다.
그 순간, 웨폰이 무언가 생각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산하나에게 입부 신청서를 내밀었다.
“저기, 하나 선배. 이거 이번 주 내로 작성해서 행정실에 제출하시고 나한테 알려 주면 돼.”
산하나의 안경알에 활자들이 거울처럼 반사됐다. 그녀의 시선이 내려가던 중, 문득 서류의 한 곳에 고정됐다.
“…동아리 고문이 학원장님이야?”
“맞아, 부장이 부탁드렸더니 바로 수락하시더라고.”
웨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산하나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는 지그시 나를 응시한다. 렌즈가 번뜩거려 보이진 않지만 또렷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의 입가가 동그랗게 모이나 싶더니,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진다. 산하나를 마주한 지 한 시간 만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덕분에 아카데미 생활이 즐거워질 것 같아.”
그렇게 살랑살랑 손 인사를 하고선 산하나는 먼저 카페를 나섰다.
이어서 부원들은 각자 짐 정리를 하고, 나는 곰곰이 산하나의 미소와 말을 곱씹었다.
‘즐거워질 것 같다라.’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말한 건진 모를 일이다. 다만, 말투나 미소가 누군가와 아스라하게 겹쳐 보였다.
‘아씨, 누구였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인상을 반추할수록 상념의 덩어리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자 료조가 툭 말을 내뱉었다.
“뭐야, 왜 그래?”
“음, 별건 아니고. 혹시 하나 선배 누구랑 닮지 않았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내가 묻자, 료조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살살 문지르다가 곧 갸웃거렸다.
“글쎄, 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는데. 전에 말했다시피 난 한 번 본 얼굴은 안 잊거든. 사실, 저분 안경이 워낙 크고 두꺼워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긴 했지만……. 저분이 그냥 인상이 흐릿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나는 목을 긁적였다. 곧이어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부표하는 잡념을 털어 냈다.
지금 막 일 하나가 해결된 상황에서 생각에 물꼬를 트고 싶진 않았다.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