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7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71화(71/300)
71화 검신의 가호
“#@$$!#%!@#@#☐☐&*(”
귀울림이 심하다. 고막을 탕탕 두드리는 것 같은 얼얼한 통증.
-…뭐야?
목소리가 목젖에서만 맴돌며 안에서 메아리친다. 익숙한 기분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오오오오.
풍경이 새하얗다. 눈길 가는 곳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백색투성이다.
오염의 흔적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백지장의 세계가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당황은 찰나에 끝났다. 나는 이곳이 어딘지 알기에.
-꿈.
그래, 전에도 이런 꿈을 꿨던 적이 있었다. 비록 잠에서 깨자마자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사라진 꿈이었으나, 같은 꿈이어서인지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때와 비슷한 부유감과 탈력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다만, 장소가 달랐다.
-전에는 우주였던 것 같은데.
성운, 성단, 태양들이 점처럼 수놓았던 전과 달리, 이곳은 잡티 하나 없는 세계다.
위, 아래, 좌, 우의 구분이 없다. 게다가 일견 느껴져야 할 그 어떠한 자극도 차단된 듯 먹먹한 청각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정지된 것 같았다.
솔직히 내가 지금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니.
와중에도 고막 안을 긁는 듯한 이명이 계속 들려온다.
-존나 기분 나쁜 꿈이네.
아마 이 꿈도 깨면 뇌내에서 지워지듯 걷어 내지겠지. 그럼에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이 꿈은 내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단서와도 같은 것이리라. 의념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 대상은 아마도.
-‘G.M.’
속으로 그리 말하자, 귀를 괴롭히던 이명이 일숙 뚝, 끊어지듯 멈췄다.
이어서 도화지에 먹물을 푼 것처럼 검은 점과 선이 생겨나더니, 무(無)의 세상에 새로운 풍경을 그려 나간다.
백지장에 검은 윤곽이 드리우고 광오했던 무의 세계가 점차 구성을 이루기 시작한다.
멍하니,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스스로도 모를 자세로 쳐다보던 중 무음이 귓전에 닿았다. 소리가 없음에도 들린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하지만 이미 내 시선은 그 소리의 발원을 쫓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뒤로 돌리자, 망막에 비치는 사람의 형상.
-…뭐야, 저건.
이목구비는 없고 흰색 그림자처럼 생긴 것이 서 있다. 민무늬 얼굴에 검은 선으로만 윤곽이 드러난 존재. 얼핏 그림처럼 생겼지만 완연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실로 기묘하게 생긴 외견이었다.
눈을 얇게 좁혀 그것의 형태에 집중해 보아도, 어렴풋하게만 보일 뿐이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자, 그것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네.”
입이 없음에도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가냘픈 아녀자 같으면서도, 걸걸한 사내대장부 같기도 한 요사스러운 목소리.
초인지적인 현상에 어안이 벙벙해 있자 그것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 이곳에서 너는 내가 처음이지? 헷갈렸어.”
⎯ …너는 설마⎯.
말이 채 끝나기 전, 그것은 으쓱거리며 도리질했다.
“미안한데, 난 G.M.이 아니야.”
⎯ …….
머릿속을 통째로 읽힌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것은 입꼬리를 좀 더 끌어 올리며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 어떻게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아닌가? 엄연히 따지면 반대이기도 하지. 뭐, 아무튼 내가 그 녀석일 수도 있고, 그 녀석이 나일 수도 있기도 하니까. 강검마, 네가 편한 대로 생각해.”
뭐라는 거지?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 가 눈앞의 녀석이 한 말을 되짚어 봤다.
무슨 철학가인 양 말해서 그런지 도통 의미가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감이 있었다. 불가해한 감각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나는 애써 욕지기를 삼키며 그것에게 물었다.
⎯ …뭐냐, 넌?
그렇게 말하자 그것은 실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웃긴지 어깨를 들썩이고,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고였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거지?’
그러자 ‘이목구비가 없어 보인다.’라고 머릿속에서 억지스럽게 인지되는 것이었다. 심상이 조작당하는 것 같아 눈살이 구겨졌다.
⎯ …언제까지 웃기만 할 거지?
“미안 미안,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하긴, 검마 네가 나를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 근데⎯.”
그것은 불현듯 턱을 치켜올렸다. 시선이 가리키는 곳에는 선으로 그려진 커다란 시계가 떠 있었다.
째깍, 째깍.
시침 없이 분침과 초침만이 움직이는 시계. 잠시 바라보던 그것은 이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내가 누군지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져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대충 설명해 줄게.”
그것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삶은 달걀같은 민무늬 만면에 미동이 일자 그것은 읊조리듯 말을 덧붙였다.
“난 사람들한테 여러 이름으로 불려. 누군가에겐 재앙 혹은 자연, 우주, 그리고 신.”
⎯ …신?
그것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그냥 신은 아니고, 정확히는.”
그것의 두 눈이 게슴츠레 열렸다. 인지적인 게 아닌 물리적으로.
빙글빙글 회오리치는 동공에 말단 부위부터 경련이 몰려온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공포가 혼재되어 몸이 굳어 버렸다.
“검의 신.”
-……?!
“네가 생각하는 그런 신은 아닐 테지만, 그냥 편하게 신이라 불러. 좀 그러면 아무렇게나 부르든지. 뭐, 결국엔 그게 ‘나’일 테니.”
내가 잔뜩 놀라자 신은 맑게 웃었다. 여태껏 생각해 왔던 신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다.
“뭐, 지금은 일단 여기까지만 말해 줄게. 더 설명해 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많지 않은 모양이니까.”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얼마 전에 구속이 해제됐거든. 기억 안나?”
잠깐 반추해 보자 문득 빠르게 뇌리에 떠오르는 어구.
⌜검신(劍神)의 가호(假呼)가 해제됩니다.⌟
아고르가 정신 계열 마법으로 심상을 헤집으려 했을 때 귓전에 맴돌던 음성이었다. 내 반응에 신이 짧게 웃었다.
“너가 생각하는 거 맞아. 그래도 완전히 해제된 건 아니라서, 그 불완전하게 네 앞에 나타난 거지. 이렇게라도 말을 전달할 수 있는 게 기적이야. 하여튼.”
댕, 댕, 댕.
청아한 시계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쩌저적⎯
발아래서부터 시작된 작은 균열이 일순 풍경을 타고 거미줄처럼 퍼져 나간다. 이 꿈이, 아니 세상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나는 급한 마음에 그것을 향해 크게 한걸음 내디뎠다. 발재간이 가볍고 빠르다. 하지만 제자리걸음 하듯, 그것과 거리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다.
내 모습에 그것은 부드럽게 웃더니 발을 뒤로 꺾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손만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아, 그리고 베고 잘라 대는 건 좋은데, 너무 무턱대고 그러진 말고.”
거리가 더욱 벌려져 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나는 되는 대로 손을 뻗었다. 호흡이 가쁘다. 뻗은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쩌저적⎯
와중에도 균열들이 흰 배경을 빠르게 붕괴시키고 있었다. 나는 절박함을 토해 냈다.
⎯ 젠장,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고!
“참고로, 네가 다루는 힘은……. 지금 말해도 모르려나.”
신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골통 안에서 울렸다. 피식, 웃음기가 껴 있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실수하지 마.”
동시에 백지장의 세계가 갈라지고.
콰광!
빛이라곤 없는 칠흑이 전신을 삼켰다.
“믿는다, 강검마.”
* * *
잠에서 깨자 저절로 열리는 상태창.
파앗⎯
== ==
[NEW! 동화율 수치가 (17.9% ▶ 21.3%)로 재조정되었습니다.]== ==
눈을 깜빡이며 보다가 갑자기 안구가 따끔거렸다.
“으…….”
백열광에 노출된 것처럼 아리고 시린 안구를 비비고 있자, 조금 진정된다.
나는 침대에서 벌컥 일어나, 공책에 방금 꿈 내용을 적어 내렸다.
사각, 사각.
바삐 움직이다가 멈칫하는 연필 소리.
상세히 떠올리고 싶었지만 움켜 쥔 모래처럼 술술 빠져나간다.
뜨문뜨문한 기억의 조각들을 애써 붙잡아 볼수록 흩어져 비산한다.
⌜검의 신⌟
⌜G.M.⌟
결국 공책에 적힌 낱말은 단 두 개. 연필 끝으로 공책을 두드리며 그것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 남아 있던 기억의 편린도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
“흐음.”
난 눈살을 한번 찌푸린 뒤, 옆을 쳐다봤다. 창틀 너머로 흐릿한 하늘이 보였다. 탁한 회백색 구름들이 하늘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
“벌써 장마철인가.”
한 틈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불었다. 같이 흘러들어온 습한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툭.
머리를 한번 털고서, 공책을 덮었다.
‘이렇게 하나씩이라도 단서를 모으는 게 중요한거지.’
난데없이 급등한 동화율이 거슬리긴 하다만.
‘적어도 지금까진 동화율이 올랐다고 불이익을 본 건 없다.’
창을 반쯤 밀어 난간에 걸터앉았다. 비 냄새 나는 한 점의 바람이 땀을 식혔다. 예전부터 난 맑고 쾌청한 날씨보다 흐린 날씨를 좋아했다.
이곳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하늘에 빗대어 본다. 얼핏 토속적이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세계는 엄연히 신과 가호, 마법이 범람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하늘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본다. 그들이 고개를 들 때는 맑은 날씨일 때뿐. 먹구름일 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맑음의 가치는 그렇지 못한 날씨가 있기에 돋보인다.
“…바라는 것과 현실은 다르지.”
나는 쓰게 읊조리고서 옷을 벗어 의자 등받이 걸었다. 땀에 젖은 윗옷이 힘없이 축 늘어진다. 흐린 날을 좋아하는 것과 더운 건 별개다.
“어째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네.”
손가락으로 복근을 더듬어 만졌다. 화려하게 여덟 조각으로 갈라진 복강 근육.
입원 기간 동안 딱히 운동을 곁들인 적도 없는데, 몸이 더 좋아져 있다.
괜히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쳐다보다가 웃음을 갈무리했다.
내 방은 2층이다. 웃통을 까고 혼자 몸을 더듬거리는 꼴을 누구에게 보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생도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변태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질지 모른다.
“…꼴값 떨지 말자.”
롤린~
무심하게 울리는 벨소리와 함께 진동하는 핸드폰. 아침부턴 누군가 싶어 갸웃하다 곧 창틀에서 엉덩이를 뗐다. 어차피 씻고 준비해야 했던 차라 타이밍이 적절했다.
“료조나 웨폰이겠지.”
어제 부원들은 내게 식사를 대접해 주고 싶다 제안했다. 퇴원과 여행 동아리 창설을 겸해서 말이다. 그것을 위해 료조, 웨폰, 클로이 셋이 십시일반 했단다. 아카데미 내에 새로 생긴 초밥집이 유명하다나 뭐라나.
처음에는 극구 거절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냥 남한테 얻어먹는 것이 익숙지 않은 성격인지라.
그러나 눈망울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핸드폰까지 들이밀었기에, 마지못해 승낙했더랬지. 게다가 그들은 엄연히 상류 사회 출신이니 밥 한 끼 사 주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근데 나 초밥에는 좀 까다로운데.”
나는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예상과 달리, 부원들이 아니었다.
[메디아: 검마야, 잠은 잘 잤어? 다름이 아니라 전에 네가 부탁했던 거 알아봤거든. 그래서 연락줬어.]“부탁했던 거……?”
나는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손뼉을 쳤다.
“아, 내 가족 관계랑 신상 정보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거.”
레이 션이 죽기 전 했던 말이 연신 신경 쓰였던 터라, 학원장실에 들렀던 당시에 개인적으로 부탁했었다.
나는 검지로 스크린을 슥슥 밀었다. 몇 개의 메시지가 추가적으로 더 날아와 있었다.
스크롤을 좀 더 밀었다.
[메디아: 생도 강검마 정보란.xlsx]첨부 파일 형식의 메시지. 보안이 걸려 있어 열람만 가능한 메시지였다. 괜히 긴장되는 마음에 옷단에 손 땀을 닦아 내고서, 꾹 눌러 터치했다.
“…이 뭔, 개.”
그것과 동시에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