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7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72화(72/300)
72화 전국 제일의 칼잡이 (1)
어처구니가 없었다. 첨부 파일을 보는 한참 동안 침음만을 흘렸다.
“…씨발, 이건 뭔데.”
강검마, 그러니까 나에 대한 정보는 지나치리만큼 깔끔했다. 무릇 있어야 할 출신지, 가족 관계, 부모님 성함 등 모든 것이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기재되어 있는 정보들은 전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의 것들. 그 전은 마치 없었던 사람인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원래 이 세상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나는 엄연히 이 세상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다음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이 세계에 삼켜진 나를 따스하게 보듬어 준 이 세계의 부모님들. 아발론 섬에 다녀온 뒤, 두 분의 모습을 더듬어 봐도 잔영조차 기억에 없었다.
‘하.’
이빨 사이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당혹과 경악이 치솟는 와중에도 영민한 이성이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다.
손끝의 떨림, 등골에 식은땀조차 흐르지 않는다. 그저 차곡차곡 생각을 정리해 나갈 뿐. 불필요한 요소들은 심상에서 배제해 정념을 억누른다.
기억에서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기엔 너무나 뚜렷한 반증이 핸드폰 액정에 담겨 있다.
나만의 망상? 확실히, 그럴 수도 있으나 언제나 그렇듯 지각력이 그 가설을 부정한다.
나는 턱만 치켜들어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감추려는 듯이, 묵직한 구름들이 부표한다.
“두 분은 내 적응을 돕기 위한.”
구태여 뒷말을 잇진 않았다.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상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문득 가슴을 쓸어 내렸다.
조금 전까진, 단단히 근육 잡힌 몸에 자찬했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는듯, 공허한 느낌이다. 명치 부근이 뻥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좆같네.”
나는 책상에 핸드폰을 툭, 던지듯 올려놓았다. 상념이 길어 봤자 그 이상을 이끌어 낼 것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적혀 있는 내용이 없다시피 하니,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농간에 놀아난 듯해, 뜨거운 무언가가 밑바닥부터 치솟았다. 당혹스러움을 대신해 분노가 그득 들이찬다.
주먹 쥔 손등에 살벌한 핏줄이 올라왔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마디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혈관에서 부글부글 끓던 혈류가 차츰 식어 갔다. 이어서 나는 접어 두었던 공책을 펴 보았다.
⌜검의 신⌟
⌜G.M.⌟
꿈에서 깬 직후, 적어 둔 두 단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그것들을 노려보는 두 눈이 사납게 타올랐다. 으득, 이가 갈렸다.
“언젠가는…….”
말끝과 동시에.
쿠구궁⎯!
회백색의 구름끼리 부딪혀 낙뢰음이 났다. 곧바로 번갯불이 대지에 폭려했다.
쿠
그그
⎯그
⎯콰앙!
평소보다 폭음이 사납다. 하지만 난 표정 변화 없이 그 광경을 관조했다. 한 손에는 어느새 무라사메가 들려 있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칼끝을 겨누어 보았다.
낙뢰가 잠시 멎는가 싶더니, 공기를 흔들 듯 거세게 몰아쳤다.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계속되자, 생도 몇몇이 창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어 구경했다.
“…….”
한참을 그 광경을 망막에 담아 두다가, 씻기 위해 화장실을 향했다. 샤워하는 동안에 문득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벼락의 움직임도 별로 빠른 것 같진 않았다.
* * *
오전 수업 전, 성 클래스.
“하…….”
축 늘어진 레이첼이 숨을 길게 끌었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팔짱으로 얼굴을 묻었다. 흔치 않은 모습에 아벨은 당황했다.
상시 과할 정도로 텐션이 높은 레이첼이 풀이 한껏 죽어 있었다. 반쯤 감긴 하트형 동공도 오늘따라 평범한 동그라미였다. 힐긋 보던 아벨은 생각했다.
‘얘 오늘 왜 이래. 날씨 타나?’
유독 날이 흐리고 번개가 많이 치는 날이다. 심지어 성 클래스의 생도 중엔 하늘이 노했다며 종교적인 이유로 수업을 빼먹은 이들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구라였다.
아벨은 레이첼과는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클래스 내에서 유일하게 친근히 말을 붙여 주는 그녀였기에,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아벨이 머뭇거리는 사이, 두 팔에 이마를 파묻은 레이첼이 이마만 빼꼼히 들어 보였다.
“아벨 아씨, 고민 상담 좀 해 줄 수 있어?”
목소리가 젖어 있다. 아벨은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했다.
잠시 고민한 그녀는 자세를 고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첼은 반쯤 감은 눈으로 말을 덧붙였다.
“나 말이야, 요새 자존감이 너무 바닥이야. 솔직히 스스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무력도 자신 있고, 얼굴도 남자애들이 귀찮게 따라붙을 정도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몸매 하나만큼은.”
“……?.”
말을 하다 말고 레이첼은 아벨을 한번 흘깃했다. 하트형 눈동자가 아벨의 가슴께에 한 번 머물다 떠났다. 시들했던 레이첼의 안광에 빛이 조금 돌아왔다.
아벨은 잠깐 눈만 깜빡거리다, 울컥했다. 레이첼의 굴곡은 농염함을 넘어 드센 산봉우리와 다름없었다.
“레, 레이첼 너, 지, 지금!”
레이첼은 그녀가 말할 말미를 주지도 않고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 갔다.
“아벨, 너 검마가 동아리 만든 거 알지?”
갑작스레 떠오른 강검마의 이름에 아벨은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말한 레이첼도 아차, 싶었는지 입술만 달싹였다.
“아, 그때 아벨 너는 검제님 일 때문에…….”
“어, 뭐.”
사실 아발론 섬에서 복귀한 뒤, 아벨은 눈물로 이불을 적셨다, 그녀의 할아버지 검제가 큰 부상을 당해 왔기에. 자세한 사항을 아는 이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극소수일 것이다.
아벨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제에게 굳이 묻지 않았다. 묻는다 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임을 가족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먼저 말을 뗀 이는 할아버지였다.
‘아벨, 정확하게 말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차차 알게 될 것이야. 내가 어째서 강검마 생도의 병간호를 자처하는지도.’
그리 말하곤 검제는 강검마가 입원 중인 병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검마.’
만감이 교차한다. 다만, 강검마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이제 터럭만큼도 없었다. 검제의 극진한 정성 역시 순순히 납득하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검마 걔는 할아버지를 돕다 그렇게 된 걸 거야.’
문득 아발론 섬에서 있었던 일이 뇌리를 질주하듯이 스쳐 지나갔다.
섬에서 돌아온 후, 토끼 모포가 아벨의 이불을 대체하고 있다는 건, 그녀의 말 못 할 비밀이다.
아벨이 고개를 비스듬히 끄덕였다. 그녀의 뺨에 홍조가 진하게 맺혔다.
“아벨, 너 설마 검마랑 무슨 일 있었어?!”
레이첼은 갑자기 허리를 세우더니 아벨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트형 안광에 광채가 맴돌았다.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먹이 경쟁을 앞에 둔, 야수와도 같았다.
“아, 아니! 무슨 말이야!”
“흐응.”
아벨은 손사래를 쳤다. 금안이 좌우로 진동하듯, 흔들렸다. 그 모습에 레이첼은 잠깐 눈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폭, 짧게 흘렸다.
“그래. 뭐, 아벨이 거짓말할 성격은 아니지. 조금 예민했나 봐, 미안. 하긴, 전에 강검마한테 요만큼도, 손톱발톱먼지세포만큼도 관심 없다고 했는데, 나도 참.”
“…나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는데?”
“엑? 그럼 설마 아벨도 검마한테 관심 있는 거야?”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레이첼은 짧게 웃음을 흘리더니,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건강한 윤기가 금발을 타고 흘렀다.
“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언제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원래 인간 관계라는 게 또 절대라는 게 없잖아? 아무튼, 무슨 말 했더라…….”
“강검마, 걔가 동아리 만들었다는 것까지 말했잖아.”
아벨의 대꾸에 레이첼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벨의 얼굴엔 피로가 드리웠다.
“아, 맞다, 맞다. 그게 글쎄,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웨폰한테 가입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거든? 근데 딱 잘라서 안 된다는 거야.”
“응, 왜?”
되물음에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벨도 살짝 스미는 아쉬움을 애써 털어 냈다.
“정확히는 모르는데, 검마가 성 클래스 소속은 부담스러워서 안 받겠다고 했대. 근데 그렇게 말하면서, 동아리 고문이 학원장님일 건 또 뭐람.”
“근데 그게 레이첼, 네 자존감이 하락한 것과 무슨 상관인데?”
“아, 그거.”
레이첼은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며 다시 말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스타복스를 지나다가 여행 동아리 면접하는 걸 창 너머로 봤었거든. 그때 새 부원을 바라보던 검마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서…….”
레이첼의 투덜거림을 아벨은 가만히 경청했다.
“검마 걔, 입꼬리가 아주 귀까지 올라갔더라. 안경 쓰고 허여멀건한 얘가 뭐가 좋다고. 아니면 혹시 검마 걔 취향이 그런 쪽인 건가 싶어서.”
“…….”
“뭐, 그래서 넋두리 좀 해 봤… 응? 아벨, 표정이 왜 그래?”
말을 끝마친 레이첼이 눈을 깜빡이며 아벨을 쳐다봤다.
곱게 휜 눈썹과 가늘게 좁혀진 미간. 금안이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굳어 있던 날씨는 마지막 수업이 끝남과 함께 풀렸다. 폭우가 쏟아진 직후라 그런지 비릿한 물 냄새가 코에 스몄다.
‘이런 날씨에 해산물이 당기긴 하지.’
부원들과 나는 초밥집을 향해 다리만 부지런히 움직였다.
특히 해산물을 좋아하는 클로이의 발재간이 가볍고 재빨랐다. 그녀는 멀찍이 앞서 나가다 거리가 너무 벌어지면 재촉하듯 손을 흔들었다.
‘맛있는 집이긴 한가 보네.’
얼마나 잘나가는 집인진 몰라도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 웨이팅만 1시간이 넘는단다.
“웨이팅 하는 집치고 맛있었던 집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짧게 혀를 찼다. 다른 건 몰라도, 요리 하나만큼은 진심인 나였기에 미각을 곤두세워 낱낱이 판가름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어리는 의문에 웨폰에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하나 선배는?”
“아, 선배는 날생선을 못 먹는대. 그래서 오늘은 참석 못 하신다고 하셨어.”
“그럼 어쩔 수 없네.”
부산 출신이면서 날생선은 못 먹는다라.
어른들 중에서도 식감이 물컹거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허다하니.
근데 난 왜 하나 선배를 계속 어른으로 인지하는 거지?
한 살밖에 안 많은데도 이상하리만치 애 같지 않아서 그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사이, 우리는 이내 초밥집 앞에 다다랐다.
가장 내 눈에 들어온 건 원목 느낌을 그대로 살린 간판이었다.
오…….
장사치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다.
‘가게의 간판은 소개팅에서 첫인상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부원들이 데려온 이 초밥집의 첫인상은 썩 괜찮은 것이었다. 크진 않지만 여러모로 깔끔한 외관과 잘 청소된 가게 앞만 봐도 사장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근데.’
⌜한 국 초 밥⌟
당당하게 적혀 있는 네 글자. 초밥은 본디 옆 나라 음식일 터인데, 어쩜 이렇게 위풍당당하게 ‘한국’이라 적혀 있는 거지?
설마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과 좀 다른 건가? 이곳은 엄연히 지구가 아니니, 혹시 모를 일이다. 진짜로 초밥이 한국 음식일 수도.
국산 게임사가 만든 국산 게임이니 뭔들 못 할까.
순간 궁금해 웨폰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당연한 상식을 묻는 것만큼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도 없을 테니.
드르륵.
선두를 맡은 클로이가 나무 문을 밀었다.
“하이, 이랏샤이-!”
쩌렁쩌렁한 일본어가 귓전에 내다 꽂혔다.
‘역시 이 세계도 초밥은 일식이군.’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생각해 보니 목소리가 익숙했다.
“어?”
가게 안으로 한 걸음 성큼 내디딘 클로이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걸음질 쳤다.
나는 뭔가 싶어 그녀를 힐긋 보고서 가게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곧 나도 순간 몸을 멈칫했다.
마주한 상대도 놀람을 넘어 몸을 떨다시피 했다.
“너 여기서 뭐 하냐?”
“……!”
클로이의 오빠, 녹스 아디토레.
그가 이마에 두건을 동여매고서, 손님들을 응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