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7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78화(78/300)
78화 축제: 시답잖은 악연 (1)
칼밥 먹은 20년 남짓 동안 나는 몸담았던 많은 가게를 살려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사시미를 쥐지 못했던 노 주인장이 운영하는 횟집부터, 악덕 블로거들 때문에 재료 가지고 장난친다는 낙인이 찍혔던 사장님.
제주도 앞바다에서 포장마차 하나로 프랜차이즈 횟집에 대항하던 해녀 사장님까지.
대기업의 물질적 제시를 거절하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가게들만 찾아갔다.
주변 동료들은 나보고 머리가 어떻게 됐다며 힐난했었다. 그럼에도 난 꿋꿋이 제 길을 걸어 많은 걸 이뤘다.
순전히 자선 사업가 기질이었던 건 아니고 그저 자기만족이었다.
‘사시미 한 자루로 부활의 신호탄을 울린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솔직히 인정한다. 난 중 2병이 늦게 왔다. 그건 아마 내게 칼질을 가르쳤던 첫 스승님의 영향이지 싶다.
‘나도 나지만, 그 양반은 정도가 심했어.’
재야의 고수를 찾겠다며 허구한 날 가게를 비우질 않나. 전에 말했듯, 회칼을 구해 오면 같잖은 이름을 붙이곤 품에 껴안고 잤었다.
아무튼.
부스를 세우고 포장마차 감성으로 음식을 파는 것. 내겐 친숙하고 익숙한 일이다.
어쩌면 내가 축제 전에 그리 설렜던 게 전생의 추억들이 떠올라 그랬던 것 같다.
‘그땐 그랬지.’
내가 손만 댔다 하면 다 쓰러져 가는 노포도 지역 맛집이 되고 손님들은 대기표를 뽑는다.
…그랬던 난데.
“어떻게 손님이 한 명도 없지?”
나는 허공을 부유하는 파리를 쳐다본 뒤, 부스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괜히 빈 도마 위에서 파를 썰어 보는 클로이. 모퉁이에서 조용히 독서 중인 하나 선배와 심드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료조.
부원들밖에 안 보이는 가게 전경. 참고로 웨폰은 전단지 뿌리러 나갔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만전을 기하진 못했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20년의 노하우와 부원들의 일머리가 합쳐졌음에도 부스는 텅텅 비었다. 적어도 내겐 생경한 풍경이다.
메뉴 선정이 에러였나? 크게 칼을 쓰지 않아도 되며 취향 안 가리는 음식이라 고심 끝에 선정했다. 게다가 김치찌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터다.
소규모 동아리 부스라 외곽 쪽에 배치받긴 했어도, 웨폰이 축제의 심부로 전단지를 뿌리러 갔다. 그런데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기 힘들다.
“저, 저기, 검마 군.”
뻘쭘하게 대파를 썰던 클로이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녀는 어두운 내 표정에 말을 머뭇거렸다. 나는 살짝 어색하게 대답했다.
“어, 무슨 일이야?”
“재료 손질 끝나서요. 뭐 더 할 게 없을까요?”
한마디에 정곡이 찔렸다. 가슴 한편이 아리다.
반면, 클로이의 동공은 열정으로 타올랐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음, 그럼 네 방에서 그릇 좀 더 부탁할 수 있을까? 이따가 손님들이 들이닥칠 수 있으니까.”
클로이는 작게 끄덕이곤 목적지로 향한다. 잠깐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일감이 없어서 손이 놀아 보긴 처음이다.’
시작부터 난황이다. 호기롭게 ‘이왕 할 거면 즐기자.’라는 대사까지 쳤는데 이래서야 성과 없이 하루가 사라진다.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근데 웨폰, 얘는 전단지 뿌리러 갔다면서 왜 안 와?’
그는 뙤약볕에서의 고생을 자처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꼭 해야 한다나.
하지만 날이 더워 그리 긴 시간 바깥 활동을 못 할 텐데,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의문이 어리는 차, 료조가 안광을 찌푸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나, 웨폰 이 새끼 좀 잡아 올게.”
그렇게 말한 뒤, 료조는 쌩 찬바람을 일으키며 부스를 빠져나갔다.
그녀의 옆얼굴은 치솟는 짜증을 삼킨 표정이었다.
“뭐야?”
고개를 갸웃하자 독서 중이던 하나 선배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마 저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선배가 턱짓으로 료조의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각 화면을 그득 채운 저화질의 영상들.
‘CCTV?’
추측건대 료조가 해킹한 모양이다. 최고 보안망을 자랑하는 호아킨 아카데미 네트워크를 방문 열듯 따 버린다니…….
‘근데 이게 쟤가 나간 것과 무슨 상관이지?’
선배한테 눈짓으로 물어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독서를 이어 간다.
나는 도로 시선을 돌려 노트북을 빤히 쳐다봤다. 곧이어 시선이 화면의 귀퉁이 쪽을 향하고.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열렬히 환호 중인 웨폰의 모습. 그의 겨드랑이엔 전단지들이 꼬깃꼬깃하게 끼워져 있다. 참고로 저것들 료조가 만든 거다.
“…….”
그 순간, 직감했다.
자칫하면 오늘, 스피드 웨폰은 료조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
* * *
시간이 조금 지났다.
출정 나갔던 료조가 이윽고 복귀했다. 그녀의 한 손엔 웨폰이 시체처럼 끌려왔다. 콧잔등에 피가 흥건했다.
료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껌 종이처럼 휙 던졌다. 웨폰이 바닥에 파김치처럼 축 늘어졌다.
“…….”
“어흙크흐읅으…….”
웨폰은 입안이 터졌는지 뭉개진 신음을 흘렸다. 료조는 짝짝 소리를 내며 손을 털었다.
‘얼마나 팬 거야?’
처량해 보이긴 하지만 웨폰이 자처한 일이다. 딱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나는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웨폰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손만 간신히 뻗으며 말했다.
“아읅아으 부쟝⎯ 샬뤄 줘어⎯.”
웨폰의 서러워하는 울부짖음. 나는 침음성을 내뱉으며 그의 몸 상태를 이리저리 살폈다.
코뼈가 좀 나간 것 같은데 그 외엔 큰 이상 없어 보인다. 나는 만족스레 웃었다.
“그래도 팔다리 뼈 나간 데는 없으니까, 일하는데 지장은 없겠네.”
“…부… 장……?”
가늘게 떨리는 웨폰의 눈동자. 나는 쪼그렸던 무릎을 펴며 말했다.
“저기 거즈 있으니깐 피 좀 닦고 와.”
요리하다 클로이가 손이라도 베일까 비치해 놨다. 나는 하나 선배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전단지 뿌리기는……. 하나 선배가 대신해 줄 수 있어?”
“응, 마침 지루했는데 잘됐네. 내가 하고 올게.”
기지개를 켠 하나 선배가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아, 그리고 료조, 전단지 좀 더 뽑아 줄래? 이거 피가 많이 묻어서 못 쓸 것 같아서. 뽑아서 선배한테 넘겨 주면 돼.”
“그 후엔?”
“이왕 홍보할 거면 전단지만 말고, SNS에도 같이 뿌려 봐, 태그도 팍팍 붙이고. 나머지는 맡길게.”
료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낮게 웃으며 눈만 살짝 내렸다. 웨폰이 망연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는 서빙.”
웨폰은 말문이 막힌 듯, 입술만 더듬거리다 주억였다.
짝.
손뼉을 한 번 쳤다. 부원들이 각자 자리를 찾아 분분히 흩어졌다. 나는 이마에 두건을 두르고, 앞치마 끈을 조였다.
“이제 손님 좀 오겠네.”
문제점을 발견했으면 도려내고 개선한다.
그것이 장사의 기본이다.
* * *
오후부터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웨폰이 전단지를 돌렸을 땐, 휑했던 부스에 꽤 많은 머릿수가 채워졌다.
하나 선배의 발품과 료조의 타이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일하는 맛이 난다.’
탕⎯ 탕⎯ 탕⎯ 탕⎯ 탕⎯
클로이가 나를 대신해 호쾌한 칼질을 벌인다.
마체테로 거들겠단 내 아이디어는 부원들의 질색하는 표정으로 거절당했다.
‘아쉽다.’
어쩔 수 없이 난 그녀 옆에서 육수 담긴 뚝배기를 끓이고, 간을 맞췄다.
합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것이 리듬감마저 느껴졌다.
‘…잘하네.’
클로이는 자신을 요리의 둔재라고 자평했지만, 무장이 카타나라 그런지 칼 재주만큼은 발군이다. 그녀의 얼굴엔 즐거움이 맴돌았다.
“헐,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그니깐 이거 음식 이름이 뭐라고 했지? 프랑스 돌아가면 해 먹어 보고 싶은데.”
“김치찌개라잖아. 별거 들어간 거 없는데, 간이 딱 들어맞아.”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은 호평 일색이었다. 가장 큰 홍보는 입소문이다.
혀를 만족시켜 주면 고객들의 입이 맛을 전파한다. 자고로 맛있는 음식은 공유하고 싶기 마련이니까.
“웨폰, 이거 9번 테이블.”
“앙, 응.”
웨폰은 콧구멍을 틀어막은 거즈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시커먼 남자애가 깜찍한 소리를 내니 속이 좀 그랬다. 그래도 그는 정신을 차렸는지 부지런히 움직였다.
솔직히 아까 너무 매몰차게 대해 살짝 미안했는데 웨폰이 내게 먼저 찾아와 사죄했다. 오래전부터 미국의 영웅 ‘올 뮤트’의 팬이어서 자못 이성을 잃었다나.
겸언쩍게 말하는 모습에 나는 씩 웃는 걸로 화답했다. 그제야 녀석도 어두웠던 표정을 풀었다. 원래 사내들은 말보단 행동이다.
‘근데 웨폰은 원래 설명충인데.’
뭐, 중요한 건 진심이 전해져 왔다는 거다.
‘…그건 그렇고.’
웨폰이 극렬한 팬이라던 히어로 올 뮤트(All mute). 본명은 칸 엘리자베스.
지구에서처럼 미국은 이곳에서도 국가 서열 1위의 초강대국이다. 그 위명 때문인지, 그들만의 독자적인 체계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영웅’을 히어로라 부르고. 복장은 형형색색 쫄쫄이 코스튬을 입었다. 혹자가 생각하는 그것. 딱 그렇게 생겼다. 정말로.
태생이 이쪽이 아닌 내 눈엔 다소 민망하나, 여기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실물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소감은…….
강검마가 미국인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어떻게 그런 옷을 입고 다닐 수 있지?’
겉모습이 어쨌든 칸 엘리자베스는 검제가 은퇴한 작금에 칠성에 가장 가까운 자다. 그 말은즉, 비공식적이나 검제의 후계로 점지된 나와는 동선이 겹칠 가능성이 농후하단 뜻이다.
‘되도록 마주치지 말자.’
어차피 축제 3일 내내 부스 밖을 나갈 생각은 없다. 또한 현재 가장 주목도 높은 그녀가 김치찌개나 먹으러 올 리가.
“후, 생각보다 엄청 바쁘네.”
뉘엿뉘엿,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손님들이 물밀듯 몰려온다. 하나 선배의 영업 능력이 남다른 모양이다. 나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한여름에 뚝배기에선 열기가 피어오른다. 진한 매운 내가 콧속을 후비지만 터럭만큼의 짜증도 없었다. 오히려 맺힌 땀을 털어 내니 개운했다.
하지만 안도는 찰나였다.
펄럭⎯
부스 천막이 나부꼈다. 곧이어 도복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어서 오세⎯.”
응대 중이던 웨폰이 멈칫했다. 장내의 이목도 같은 곳에 집중됐다.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 울렸다. 그러자 도복 입은 사내들이 일제히 길을 터 주었다. 이윽고 당사자가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치파오가 흔들리면서 다리 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 어, 어, 저 사람은……!”
손님 중 한 명이 놀란 기색으로 김치찌개를 왈칵 쏟았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했다는 듯, 사진을 찍어 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여기서 이분을 뵙게 될 줄이야!”
“저 좀 봐 주세요! 팬입니다⎯!
모두가 선망에 찬 눈으로 그 여인을 바라봤다. 남자 손님들은 휘파람을 불어 댄다. 오로지 나만이 인상을 딱딱하게 굳히며 쯧, 혀를 찼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잠시 뒤, 무리의 가운데 선 여인이 걸음을 잇더니 내 앞에 우뚝 멈췄다. 너무 많은 시선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공기가 스산하다.
“너구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는 얼굴들과 적당히 닮아 있다.
‘패악의 쌍둥이.’
그녀는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내 동생들 그렇게 만든 게.”
철각의 마오 랑.
시답잖은 악연이 눈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