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7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79화(79/300)
79화 축제: 시답잖은 악연 (2)
솔직히 말해서 까먹고 있었다.
“흐음- 뭔 짐승처럼 생겼다고 하더니만, 슌이랑 진이 이야기했던 것 이상으로 곱상한데?”
마오 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내 폭 한숨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하긴, 걔네가 남을 좋게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지만.”
철각의 마오 랑.
옆 나라 제일의 영웅 명가, 철왕가의 차기 당주.
약관이 갓 넘은 나이에 대륙의 별로 추앙받는 여자. 마오 쌍둥이의 온갖 패악질에도 철왕가(家)가 대륙 제일을 위시하는 건 그녀 덕이 크다.
가문의 흠결 따위는 사소한 치부로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의 소유자. 철각이란 이명에 걸맞게 민활한 발차기가 주력기였다.
‘기적의 가호 M’에선 옆 나라의 위상이 낮아 작중에선 등장이 없는 인물이지만, 이 세계 내에선 그녀의 입지와 인기는 막강하다.
괜히 저 남정네들이 벌떡벌떡 일어나서 사진질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근데 아마 저 폭력적인 옷차림도 인기의 한 축일 터. 골반까지 훤히 트인 옆태가 인상적이다.
‘운이 좋군.’
하지만 그런 그녀와 나는 악연이 꼬여 있다. 정확히는 클로이도.
“너 보러 직접 찾아왔어. 내 동생들 반병신 만들어 놨는데, 얼굴 정도는 알아 놔야 하잖아?”
그렇다. 나는 반 배정 시험에서 마오 랑의 쌍둥이 동생을 초주검을 내 버렸었다.
물론 아공간 내 혈투였지만 후유증 때문인지 그 둘은 입학식 날 도망치듯 떠났다.
그간 많은 일이 벌어져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랜데…….
그 미친 쌍둥이의 누나가 친히 등장할 줄이야.
이런 레퍼토리야 식상할 정도로 뻔하다. 뭐, 원수라도 갚으러 왔겠지.
가족은 닮는다고, 마오 랑의 성격이 유할 리 없다.
애초에 남의 영업장에 깍두기들을 대동하고 온 것부터 그 의도가 불순하다.
“뭐야, 저 생도 마오 랑이랑 아는 사이야?”
“아- 내 친척이 이 아카데미 교관이라 건너 들었는데, 패악의 쌍둥이 있잖아. 그 둘이 반 배정 시험에서 검은 머리 생도한테 초주검이 났대. 걘가 봐!”
커플로 보이는 한 쌍이 쑥덕였다. 불온한 이야기는 입에 입을 타 전염되기 시작한다.
“오, 나도 들은 적 있어. 걔네 그때 충격으로, 요실금 환자처럼 똥오줌을 쉴 새 없이 지린다며?”
“어휴, 그 새끼들 안 그래도 미친놈들로 유명했는데 꼬시네.”
“야, 쉿-! 분위기 좀 읽어, 병신아! 마오 랑이 바로 앞에 있는데.”
소란스러움은 찰나. 마오 랑과 같이 들어온 사내들이 면면을 차갑게 노려봤다.
떠들던 입들은 그대로 합죽이가 됐다.
이빨을 자유분방하게 턴다면, 고른 치열이 강냉이가 될 것을 직감한 듯이.
마오 랑의 트인 치파오 사이로 탄탄한 허벅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으로 무쇠로 만든 구두로 시선이 향한다.
‘S급 무장, 람각(嵐脚).’
초월적인 다릿심과 람각을 운용한 그녀의 다리 기술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지.
“…….”
부스 안에 싸늘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와중에 클로이는 눈에 쌍심지를 켜며 식칼을 곧추세웠다. 마오 랑의 시선이 그녀에게 잠시 머물렀다.
“하하-.”
마오 랑의 짧은 실소가 적막을 깼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이미 몇 달이 지난 일인데, 인제 와서 예전 일을 들춰서 뭐 하겠니. 어린애도 아니고.”
마오 랑이 휘휘 손짓하자 깍두기 중 한 명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우뚝.
그가 멈춰 선 곳은 조금 전 입을 열심히 놀리던 남자 손님의 발치였다.
그는 턱뼈가 후들거릴 정도로 이를 딱딱 떨었다.
“잠깐 빌리지.”
말과 동시에 의자를 빼내 오는 깍두기. 그는 의자를 물티슈로 쓱쓱 닦고는 마오랑에게 대령했다.
남자 손님은 긴장이 풀렸는지 힘없이 주저앉았다. 무릎이 어찌나 후들거리는지, 일행이 부축해야 겨우 균형을 잡는다.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저들의 태도도 태도지만,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에 암흑가에선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부렸다. 전에 말했듯,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깡패들을 내쳤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일식 요리사한테 칼 좀 쓴다고 깡패가 되라 한다니.
빡대가리들의 지성은 상식의 지저를 아득히 뚫는 것이었다.
‘뭐, 전국 제일의 칼잡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생긴 오해였지만.’
그들은 처음엔 금전적 제시, 그다음은 좋은 말로 타이르듯 회유를, 마지막은 지금처럼 우르르 몰려와 깽판을 쳐 댔다.
지금이 딱 그 상황과 겹쳐 보인다.
‘짜증 나네.’
마오 랑은 다리를 꼬더니 그 위에 두 손을 포개 올렸다. 그녀의 얼굴엔 느슨한 감정들이 맴돌았다. 여유, 흥미, 약간의 멸시.
“뭐 하러 온 거야!”
사납게 으르대는 클로이. 그녀의 성난 눈썹이 좁혀졌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클로이.”
나는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 진정하라는 축약된 의미. 클로이는 입술을 딸싹거리다, 끄덕였다.
‘알아들었군.’
클로이는 야성과 이성의 경계가 희미하다. 그녀에겐 긴말보다 외마디가 묵직하게 닿을 터. 그리고 재빨리 말로 제압해 둬야 애먼 피를 안 본다.
부원들 전원에게도 눈빛만으로 말했다. 그들은 표정으로 은연의 긍정을 보냈다.
‘다들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군.’
물론 나 역시 부아가 치미나, 마오 랑이 찾아온 이유 자체는 궁금했다.
“여긴 왜 온 거지.”
“별 이유는 없고. 일단은 네가 누군지 궁금해서? 가족인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슌이랑 진이 성격이 개차반이긴 해도 실력만큼은 뛰어난 애들이었거든. 아, 참고로 걔네, 네 성씨만 불러도 경기에 발작한다? 네가 그 꼴들을 봤어야 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푸핫.”
마오 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했다.
‘…미쳤나?’
아무리 쓰레기라지만 자기 가족을 반병신 만든 당사자 앞에서 저러고 있다.
의외로 개념인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기우로 뒤바꾸는 웃음이다.
지켜보는 이들도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마오 랑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깍지 낀 손에 턱을 괴었다.
차게 가라앉은 분위기.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마오 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너한텐 좀 고마워서.”
“뭐?”
“슌이랑 진, 걔네 때문에 가문의 위신이 말이 아니었거든. 나도 나름대로 노력은 해 봤는데, 걔네가 여간 미친놈들이 아니잖아? 아무리 후려 패도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 근데 네 덕에 이젠 나쁜 짓 못 하게 됐잖아? 가족 된 사람으로서 정말 안심이야. 걔네가 더 이상 나를 포함해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마오 랑은 검지로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입가엔 만족스럽다는 듯, 고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
그녀는 복수 내지 겁박하는 대신 오히려 나를 치하한다.
얼핏 보면 도량 있는 처세술처럼 보인다.
실제로 주변에서 하나둘 내게 감사를 표한 마오 랑을 예찬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대륙의 그릇은 그 크기가 남다르다며.
‘…하지만.’
료조와 웨폰의 굳어 있는 표정. 머리가 잘 돌아가는 두 사람이다. 마오 랑의 속뜻쯤은 당연히 꿰뚫었겠지.
‘내 앞날에 방해되는 애들 치워 줘서 고마워.’
마오 랑은 서글서글 미소 짓지만, 눈동자는 한없이 싸늘했다.
‘칠성의 자리를 노리고 있구나.’
마오 랑의 입지와 인기만큼은 칸 엘리자베스에 버금간다. 허나 그녀는 차기 칠성의 후순위로 점쳐진다. 쓰레기 쌍둥이의 누나라는 오명이 그 까닭이었다.
그 오명을 일면식도 없는 내가 걷어 내 줬으니 그녀로선 감사할 만도 하다.
다만 마오 랑의 의중은 그 하나만이 아니리라.
깍두기들을 대동하고, 굳이 무장인 람각을 신고 온 것은 경고성일 공산이 크다.
쉽게 말해 방해물들 조져 놔서 고맙긴 한데.
나로 인해 철왕가의 명성에 때가 탔다는 거겠지.
어찌 됐든 가문의 일원을 맨날 실금 지리는 녀석들로 만들어 놨으니…….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숨기고 보여지는 것으로 압력을 가한다.
칼 밥 먹으면서 종종 봐 왔던 부류다.
‘정치인.’
단순히 나쁜 놈들보다, 저런 유형이 훨씬 까다롭다.
나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말을 뗐다.
“할 말 끝났으면 이제 가시죠.”
어투에 적당히 겸양을 섞었다. 마오 랑과 괜한 마찰을 빚어 봤자 터럭만큼의 득도 없다. 더욱이 저런 께름직한 성정은 피해야 마땅하다.
“그럴까?”
다소 날 선 발언임에도 마오 랑은 그다지 괘념치 않아 했다. 그녀가 치파오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깍두기 일동이 목덜미를 빳빳이 세우며 늘어섰다.
‘빨리 가라.’
남의 장사 방해하지 말고.
“아, 맞다. 검마, 너한테 고마운 게 하나 더 있었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 마오 랑이 지나가듯 말을 툭 던졌다.
“내 모국의 음식인 파오차이로 부스를 열어 주니 뿌듯하다, 야.”
“…….”
태연하게 말하고서 휙 뒤돌아서는 마오 랑. 깍두기들도 일제히 부스 밖을 향해 발걸음을 꺾었다.
“야.”
곧바로 모든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나는 동여맸던 두건을 풀었다. 관자놀이에 굵직한 혈관이 올라왔다. 마오 랑은 고개만 반만 돌려 나를 흘겼다.
“김치를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라.”
다른 건 다 참아도.
“따라와라, 마오 랑.”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 있다.
“베어 주마.”
* * *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오후.
호아킨 아카데미의 연무장에서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후끈한 여름날, 흐르는 공기 또한 뜨겁다.
콜로세움 같은 연무장에 그득 들이찬 인파. 그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야야, 무슨 일이야?”
“못 들었어? 철각의 마오 랑이랑 웬 생도가 아공간 대련한대!”
“헐, 그 마오 랑이 받아들였다고!? 일개 생도랑? 이유가 뭔데!?”
“뭐였더라……. 들리는 말로는 엄청 정치적인 명분이라던데, 이유가 뭐가 됐든 우리로선 좋은 게 아니겠어?”
“하긴, 마오 랑이 생도를 어떻게 곤죽을 낼지 궁금하긴 하네!”
광기의 도가니. 경기 내용에 따라 엄지를 치켜세울지, 내릴지를 매기려는 듯 흥분감이 용솟음쳤다.
시선이 한데 모인 곳엔 두 남녀가 서 있다. 강검마와 마오 랑.
원래라면 쉽게 허가되지 않는 아공간 대련이나, 두 사람의 의지가 확고했다.
더군다나 대륙의 별인 마오 랑이 표명하니 아카데미 측은 못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아카데미의 정국에는 많은 것들이 뒤엉켜 있기에.
“흐음- 이런 기분 오랜만이네. 왠지 아카데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걸? 뭐, 나 때도 아공간 대련은 드문 일이었지만.”
마오 랑은 발끝으로 지면을 툭툭 두드렸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 말과 행동이 여유로웠다. 그녀는 슬쩍 말을 던졌다.
“근데 검마, 너 괜찮겠어? 호기을 부린 건 좋은데, 너도 내 동생들처럼 될 수도 있잖아. 얼굴은 곱상한데 정신이 이상해지면 나중에 장가 못 갈 텐데. 뭐, 배포가 크니깐 나중에 나한테 장가 와도 되고. 난 남첩은 언제든 환영이거든.”
“…….”
마오 랑은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강검마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무라사메의 노끈을 풀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넌 이걸 노렸던 거군.”
“웅?”
강검마가 코웃음을 쳤다.
“나를 찾아온 이유. 철왕가의 나머지 흠결인 나를 도발한 뒤, 제압해 모든 명분을 차리려는 거겠지.”
그러자 마오 랑의 동공이 한차례 크게 열리더니, 곧 폭소를 터뜨렸다. 만나고 처음으로 감정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푸핫, 너 생각보다 엄청 똑똑하구나? 근데 그걸 아는 얘가 이 얄팍한 도발에 넘어왔다고?”
강검마가 노끈을 반쯤 벗기자 칼날에 빛이 흘렀다. 그는 지그시 칼날을 응시했다.
벼려진 칼날은 검사의 거울이다. 흐릿했던 신형이 점점 구체적인 형상을 그렸다.
스릉⎯!
강검마는 칼날을 길게 끌며 뽑아 들었다. 한여름에 어울리는 쾌청한 소리가 났다.
“마오랑, 넌 칠성 영웅이 될 수 없어.”
마오 랑의 왼쪽 입꼬리가 한차례 씰룩거렸다. 그녀는 강압적으로 입매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음, 저기 검마야, 그… 너 혹시 눈치가 없다는 소리 자주 듣니?”
사근사근한 목소리엔 차가운 분노가 담겨 있다. 강검마는 짧게 웃었다.
“종종.”
“하. 하.”
마오 랑은 토막 난 웃음을 흘렸다. 곧바로 그녀가 눈매를 부라렸다.
“적당히 한 발로 해 주려고 했는데. 좀 화가 나서 안 되겠다. 못난 내 동생들이랑 똑같이 만들어 줄게.”
“…….”
“아, 그리고 정신 병원 간다고 너무 걱정하지만 마. 병원비는 내줄게. 평. 민.”
[지금부터 아공간 장막을 전개합니다.]기계적인 메아리가 연무장을 메우고.
[영웅의 가호가 함께하기를.]⎯⎯쾅!!
마오 랑이 발을 굴리자 지면에 파공이 일었다. 충격의 여파는 아공간 밖까지 번져 작은 지진이 난 듯했다.
관성이 실린 마오 랑의 정강이에 질풍이 끌려왔다. 가호와 무장 람각을 운용한 일격에 공간이 구부러진 순간.
마오 랑의 망막에서 불빛 하나가 점멸했다.
‘어?’
의아함은 찰나였다.
서걱⎯
과정과 결과가 일시에 이뤄졌다.
툭.
마오 랑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