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8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82화(82/300)
82화 축제: 사시미 ■■이 되었다 (2)
어디까지나 이번 축제의 본분은 동아리 부스였다.
한식의 세계적 전파 같은 거창한 이유도 아니고, 그저 동아리 부원들과 공유할 추억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기치 않은 악연과 촌극이 벌어졌다.
그게 어제 오후의 일. 하지만 큰 걱정은 기우였을까.
그 일 직후에 우르르 기자들이 몰려와 카메라를 들이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제는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속으로 안심한 뒤, 축제 둘째 날인 오늘은 순순하게 나만의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대기 번호 238번 손님! 입장하실게요!”
전표를 재빠르게 훑는 웨폰. 그의 앞에는 손님들이 기차처럼 줄지어 서 있다.
땀이 뻘뻘 흐르는 무더위지만 행렬의 후미가 보이지 않았다.
탕, 탕, 탕, 탕, 탕⎯!
클로이는 날랜 손재간으로 재료를 손질했다.
손속이 워낙 빨라 잔상이 져 팔이 여러 개로 보였다.
분주한 움직임에도 손질된 식재는 금세 도마에서 사라졌다.
“이거 영업 방해입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시죠.”
부스 입구에선 료조가 팔짱을 낀 자세로 기자 무리를 제재했다.
옆에선 하나 선배가 안경알을 번뜩이며 거들었다. 그녀들은 기자들이 애걸해도 단호하게 쳐 냈다.
“CBS에서 온 한상훈 기자라고 합니다! 강검마 씨 딱 30초, 아니 15초만 뵙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사전 협의가 되지 않은 인터뷰는 금지인 거 모르시나요?”
“아, 글쎄 딱 한 번 얼굴 사진만 찍겠다니까요?”
“당사자가 싫다는데 계속 이러실 거예요!? 방송국 채로 해킹당하고 싶지 않으면 좀 돌아가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뭐, 뭔-! 지금 기자 상대로 협박하시는 겁니까!?”
“하, 이렇게 상냥한 협박이 어딨다고. 웃기는 양반들이네. 댁들 때문에 좁은 공간 미어터져 죽겠구만. 어디 갈 데까지 가 보든가!”
한참을 말다툼하더니 터덜터덜 발을 옮기는 장정들. 그들은 입맛을 다시며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와글, 와글.
에어컨도 없는 부스에 가득 들어찬 머리들. 땀방울이 턱 끝에 맺혀도 개의치 않고 뻘건 국물을 흡입한다. 여자 손님들은 먹다 말고 스마트폰을 음식에다 들이밀었다.
“야야, 넌 피드 태그 어떻게 했어?”
“해시태그 사시미 검성, 김치찌개, 한식 이렇게!”
“헐, 나도 그대로 해야겠다.”
“그치, 사시미 검성표 김치찌개인데 조회 수 폭발이지-!”
나는 멍하니 서 손님들을 쳐다봤다.
‘사시미 검성.’
이 사달의 이유. 어제저녁, 기다렸다는 듯 포털에 기사들이 우수수 걸렸다.
어쩌면 당연했다. 대륙의 별, 마오 랑이 일개 생도에게 꺾였으니까.
거기까지는 예상한 바였고, 그 부분에 대해 부원들에게 미리 언질을 줘 뒀다.
하지만 많고 많은 기사 중 하나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모양이다.
『대륙의 별을 굴복시킨 괴물 신인 ‘사시미 검성’』
톡 쏘는 제목의 차별성 때문인지, 그 기사엔 무수한 댓글과 관심이 쏠렸고.
나는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검성.’
‘기적의 가호 M’에서 시스템으로 막아 놓았던 칭호.
정사대로라면 후일의 검제가 사사 받겠지만.
사실 그는 작금에 은퇴를 선언했기에 망실할 명칭일 터였다.
‘그런데 하필, 왜.’
그 감투가 졸지에 내게 씌워졌다. 물론 그 의미 자체는 장난기가 짙었지만 말이다.
‘존나 쪽팔린다.’
어제 뒷정리 중이던 료조가 실소를 터뜨리며 기사를 보여 줬을 당시의 감상이다.
명예로워야 할 ‘검성’의 칭위 앞에 ‘사시미’만 붙였을 뿐인데, 그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졌다.
아무튼, 그렇게 소소했던 우리 부스는 ‘사시미 검성표 김치찌개’라 불리며, 각지에서 손놈들이 몰려왔다.
“부장! 찌개 아직 멀었어? 대기 번호 250번 손님들 받아야 하는데.”
웨폰이 부스 안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며 말했다. 나는 잠깐 출타했던 정신을 다듬고, 손을 움직이려다 문득 물었다.
“웨폰, 혹시 대기 번호 얼마나 있어?”
“음- 일단 출력해 둔 건 674번까지 있어. 더 있는데, 전표 용지가 부족해서 이따가 사 와야 해. 못 뽑은 것까지 하면 아마 1000번 이상은 되지 않을까?”
“…….”
전국 칼잡이였던 전생에도 이토록 장사가 잘됐던 적은 없다. 물론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만큼 명예로운 훈장은 없다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넉넉했던 재료들도 순식간에 뚝배기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클로이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칼질 중인 그녀가 안쓰러웠다. 벌써 극심한 피로로 손가락을 떠는 게 보인다.
‘손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찾아온 사람들을 내쫓는 건 요리 인으로서 불명예다. 그렇게 손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해결책을 모색 중이던 무렵.
“어우, 스승님. 제가 살면서 이렇게 장사 잘되는 가게는 처음 봅니다. 안 그러냐, 녹스?”
“…네.”
한국 초밥집 사장 만수르와 녹스가 얼굴을 비췄다. 무아지경으로 칼질 중이던 클로이는 녹스를 눈치채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 반가우면서도, 정신 사나웠다. 나는 깊은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저기, 사장님. 다음에 제가 개인적으로 찾아뵐 테니 오늘은…….”
말꼬리를 흐리자 고개를 갸웃하는 만수르. 이어서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저희는 손님으로 찾아온 게 아닙니다, 스승님.”
“그럼?”
“어제 우연히 기사를 보고, 오늘 미어터지겠구나 싶어. 녹스랑 손 좀 보태러 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녹스의 등을 탕탕 두드리는 만수르. 녹스는 쭈뼛쭈뼛 선 채, 고개를 떨궜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 번의 짧은 만남이었을 뿐인데 찾아와 준 것에 그저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감상은 찰나. 손님들의 입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럼, 사양 않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수르는 치열을 드러내며 팔을 걷어붙였다.
“제자 된 도리로서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제 쪽에서 감사를 표해야죠, 스승님. 아니, 이젠 사시미 검성님이라 불러 드려야 할까요?”
“…장난칠 거면 그냥 가십쇼.”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자자, 녹스 너도 준비해. 아, 맞다. 스승님, 참고로 어제 기사 이 녀석이 제게 알려 준 겁니다. 저보다 녹스가 더 걱정하더이다.”
“사, 사장님!”
녹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지그시 그를 응시하다 낮게 웃었다.
‘저 자식의 여동생 걱정은 정말…….’
잠시 머쓱하게 서 있던 녹스가 앞치마를 챙겼다. 그리곤 웨폰의 손님 응대를 도왔다. 전보다 능숙해진 영업용 미소가 도드라진다.
만수르도 클로이 옆에 나란히 서 칼자루를 잡았다. 대파를 채 써는 사시미가 쾌검이다.
“…….”
보태진 손은 고작 둘. 하나, 든든함은 곱절 그 이상.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땀이 계속 흐르고, 맵싸함이 안구를 찌르고, 왁자지껄한 소음이 귓전을 때린다.
그런데도.
“하하-.”
어째선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 * *
“후우-.”
기나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부스 밖에서 저린 손마디를 쭈물거렸다. 그새 물집이 잡혔다.
“…이 짓도 두 번은 못 하겠네.”
무더위가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가는 오후다. 바글바글했던 손님들이 전부 빠진 부스. 멍하게 보고 있자니, 지금의 여유로움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재밌긴 했어.”
나는 아이스크림을 으적으적 씹으며 중얼거렸다. 끝이 없어 보이던 주문들은 녹스와 만수르 덕에 수월하게 쳐 냈다.
게다가, 매출을 노리고 차렸던 건 아니었으나, 수익도 엄청났다. 갹출해도 각자 떨어지는 돈이 많았다.
‘나 빼곤 돈이 궁한 사람은 없겠지만.’
어찌 됐든 뿌듯한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저벅, 저벅.
조용한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녹스. 뒷정리는?”
“…뭐, 대충 마무리되어 간다. 내일 치 식자재가 좀 부족한 것 같지만, 그건 사장님께서 가게에서 가져오겠다더군.”
“오- 엄청 고맙네.”
“나 말고 사장님한테 고마워해라.”
“새끼. 쑥스러워하긴.”
내가 히죽 웃자, 녹스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무튼, 네 덕에 한숨 덜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려던 찰나.
“강검마, 혹시 이따 시간 좀 되나.”
“시간은 되는데, 왜?”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중했다.
“다름이 아니라…….”
녹스는 입술을 달싹이다 눈매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당주님께서 강검마, 너를 뵙고자 하신다.”
“…….”
나지막이 울린 녹스의 목소리. 말하는 본인도 심경이 복잡한 듯하다.
하기야,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니.
‘아디토레의 당주.’
산의 노인, 알’타이르 아디토레.
그림자 가문의 가주이자, 고금 제일의 암살자라 불리는 사내.
음지에서 암약하며 영웅 사회의 질서를 지탱하는 인물이다.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존재마저 불투명하단 소문이 돌았다.
‘그런 그가 나를 보고자 한다는 건…….’
속내가 어렴풋이 가늠됐다.
내 암살을 사주한 아카데미의 원로단과 연관된 거겠지.
‘당연히 그뿐만은 아니겠지만.’
그 역시 마오 랑과 나의 대련을 지켜봤을 것이다. 내가 심상의 영역을 다루는 것도. 영역을 다루는 자들은 멀리서도 알아본다지. 나는 얼마 전까지 표적이 될 뻔한 대상이었으니 여러 의문이 생겼을 터다.
“음.”
고민에 잠겨 있자 녹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당주님께서 외부인에게 흥미가 동하신 건, 적어도 내가 알기론 처음이다. 게다가 친히 얼굴을 드러내는 일 또한 없다시피 하지. 아마 칠성급 영웅들이 보자 해도 모습을 안 나타내실 거다.”
녹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사실 네게 물은 것도 그저 의례상 절차다. 당연히 너도 대면하고 싶겠지. 묻고 싶은 게 많은 테니 말이다.”
나는 그리 말하는 녹스를 빤히 쳐다봤다. 붉은 눈동자는 꽤 담담했다.
녀석에게는 오늘 신세를 졌다. 만수르와 녹스 덕에 수월히 넘긴 하루니, 나중에 갚을 요량이었다.
근데 때마침 그가 내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심지어 들어주기 어렵지도 않았다. 슬쩍 몇 마디만 나누는 정도겠지.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나는 똑똑 녹아내리던 아이스크림을 목구멍에 꽂아 넣었다. 곧이어 엉덩이를 털고서 몸을 일으켰다. 녹스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쏟아 냈다.
“뒷정리도 아마 얼추 끝났을 거다. 환복하고 바로 나를 따라와라. 당주님이 계신 곳까지 안내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일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녹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도 없지?”
나는 옅은 미소로 대꾸했다.
“안 갈래.”
“…어?”
녹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뜨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얼굴이다. 녀석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대, 대체 왜.”
녹스를 따라간다면 내가 휘말린 내사를 들을 수 있겠지. 실보단 득이 있을 만남일 것이다.
그렇긴 한데.
말문이 막힌 녹스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뒷목을 긁적이며 짧게 이유를 설명했다.
“귀찮아.”
“…….”
“피곤하기도 하고.”
풍경에 주황색 노을이 점차 가시기 시작한다.
“오늘은 도와줘서 고마웠다.”
나는 뒤돌아 손만 휘휘 흔들어 인사했다. 멀뚱멀뚱 서 있는 녹스 뒤로 그림자가 길게 덧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