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8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83화(83/300)
83화 축제: 만남 (1)
축제 둘째 날, 막 자정이 넘어갈 무렵.
똑, 똑.
한 여인이 학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 들어와.”
메디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렸다. 여인은 그녀에게 허리를 꾸벅 접어 인사했다. 오렌지색 중 단발이 어깨 위를 한차례 쓸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학원장님.”
들어선 여인은 올 뮤트, 칸 엘리자베스.
성조기가 박힌 코스튬을 입고 있으나, 군살 없는 몸 선에 절묘하게 어울렸다.
“그러게- 엘리, 네가 졸업하고 처음이니까 오 년 만이네!”
메디아가 생글생글한 미소로 옆을 가리켰다. 올 뮤트는 재차 절도 있게 예를 표하며 착석했다.
“아무튼 잘 왔어. 축제는 잘 즐기고 있어?”
“네, 잘 즐기고 있습니다.”
“얘도 참, 너는 어째 학생 때나 지금이나 대답이 그렇게 딱딱하니?”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너도 요새 유행 따라가니? 소울리스좌였나, 그거?”
올 뮤트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소울(Soul)? 리스(less)?’
그녀는 잠시 메디아의 말을 곱씹더니 대꾸했다.
“저 종교 있는데요.”
“어우, 어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또-옥같아, 아주.”
올 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메디아는 한숨 지으며 고개를 내젓더니 돌연 말을 뗐다.
“엘리, 너 우리 검마가 궁금해서 온거지?”
“…….”
올 뮤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 얼굴에 대해 생각했다. 검은 머리를 한 생도, 메디아의 말을 빌리면 그의 이름은 검마이리라.
‘…근데.’
이름 앞에 ‘우리’라는 수식어가 묘하게 거슬린다.
메디아가 고작 생도 하나를 이토록 살갑게 부른 적은 없었는데. 그녀의 민트빛 눈동자에는 호감 이상의 감정이 맴돌았다.
톡, 톡.
메디아가 가볍게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상념을 턴 올 뮤트는 작게 한숨 지었다.
“그 검마라는 생도 정체가 뭡니까.”
“음, 글쎄. 어떤 의미로 묻는 거야?”
“심상의 영역을 다루지 않습니까.”
올 뮤트의 동공엔 미약하나마 적개심이 감돌았다. 메디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건 엘리 너도 체질적으로 다룰 줄 알잖아? 우리 검마가 다루는 게 뭐가 어때서?”
“학원장님! 저는 말장난이나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올 뮤트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협탁을 탁, 내리쳤다. 갑작스레 학원장실의 기류가 사나워졌다.
“엘리.”
“……!”
메디아가 나지막이 올 뮤트를 불렀다. 동시에 그녀가 등진 창문들에 쩌적- 하고 사슬처럼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너, 안 본 사이에 예의가 많이 없어졌구나?”
속눈썹 아래 반쯤 뜨인 동공이 차가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올 뮤트의 전신이 잘게 떨렸다.
언령이 둔중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턱을 괸 자세로 지그시 바라볼 뿐인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사실 메디아에겐 ‘현자’ 이외의 또 다른 이명이 존재했으니.
‘폭군 메디아.’
나른한 인상에 가려졌지만, 메디아의 저력을 아는 이들은 그녀를 감히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메디아가 본심을 내비치면 같은 칠성인 창성과 절궁조차 식은땀을 흘린다지.
단신임에도 원로단이 그녀를 쉬이 못 대하는 것이 곧 힘의 방증. 그 편린을 올 뮤트는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압력이다.’
올 뮤트가 마른침을 삼켰다. 메디아는 빤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맑게 웃었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거야?”
“아, 아, 죄송합니다.”
떨떠름하게 도로 자리에 앉는 올 뮤트. 그제야 메디아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미안, 잠시 흥분했네. 요새 지크 그 새끼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다소 예민했나 봐.”
메디아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무슨 소문을 듣고 검마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난 직분 때문에 생도 관련된 정보는 알려 줄 수가 없어. 학원장은 모든 생도를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자리잖아?”
“…예.”
“그리고 엘리, 내가 너 아카데미 재학 당시에 누누이 말한 게 있잖아.”
“네?”
“궁금한 게 있으면 발로 뛰어라. 기억나지?”
올 뮤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거리곤 일어섰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원장님.”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뭐, 해 준 말도 없는데. 아카데미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야?”
“원래는 내일 정오에 출발 예정이긴 합니다만…….”
“뭐, 그렇게 급할 거 있어? 축제잖아. 느긋하게 즐기다 가-,”
메디아는 살랑살랑 손짓으로 배웅했다. 올 뮤트가 꾸벅 숙이고서 문 쪽으로 발을 옮기려던 때, 불현듯 의문이 여렸다.
“학원장님.”
“웅? 더 궁금한 게 있어?”
올 뮤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모든 생도를 평등하게 대하신다는 말씀, 그 생도에게도 적용되는 겁니까?”
“음, 글쎄. 솔직히 우리 검마는 나한테 그냥 생도라기보다는.”
메디아의 입가에 묘한 호선이 새겨졌다.
“남자… 랄까?”
탁.
올 뮤트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아까보다 더한 소름이 몰아쳤다.
“검마, 그 녀석은 대체…….”
그녀는 팔뚝에 돋은 닭살을 쓸어 만지며 중얼거렸다.
* * *
어느덧 축제도 막바지다.
어젯밤, 나는 기숙사에서 여러 생각들을 정리했다. 쉴 틈이 없었던 앞선 이틀.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부원들의 모습이 괜히 눈에 걸렸다.
‘너무 일만 하면서 축제를 넘기는 것 같기도 해.’
나는 축제의 본분을 되새겼다. 즐기자고 시작한 일인데 급작스레 몰린 인파로, 나와 부원들은 노역하고 있었다.
결심은 빠르게 섰다. 나는 부스 천막을 젖히기 전, 부원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은 오전까지만 하고 오후는 각자 자유 시간. 어때?”
그리 말하자 고된 노동으로 지쳐 있던 안색들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볼살이 쏙 들어간 얼굴로 연신 끄덕거리던 부원들. 그중에서도 특히 웨폰이 격한 쾌재를 내질렀다.
‘하자고 했던 당사자는 녀석인데 말이지.’
그렇게 마지막이 될 부스가 개장하자, 곧바로 손님들이 몰려왔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짐짓 어제보다 인파의 수가 많았다.
하지만 이틀 동안 적응을 끝마친 부원들의 합은 노련했다. 거기에 오후엔 쉴 수 있다는 희망이 엮여 있으니 다들 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저, 검마 군.”
대파를 채 썰던 클로이가 말했다. 그녀는 이제 도마에서 시선을 떼고도 재료들의 각을 살렸다. 요리의 둔재가 이틀 만에 도달한 경지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응, 왜?”
“혹시 이따 오후에 따로 계획 있어요?”
따로 세워 둔 계획은 없었다. 그냥 이리저리 유랑이나 하거나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클로이를 보건대 추후 일정을 같이하고 싶은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얘가 가장 고생 많이 했지.’
하루 중 50초밖에 칼질 못 하는 나를 대신해, 클로이는 대부분의 주방일을 도맡았다. 나야 옆에서 재료들이나 쓸어 넣고 간 정도만 맞췄지.
그리고 클로이는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는 잠시 단어를 고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별 계획은 없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나랑 같이 축제 돌아다닐래?”
“어, 어 정, 정말요!?”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클로이의 동글동글한 눈망울이 커졌다. 과장 좀 보태서 두 배 정도?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괜찮지?”
“당연하죠!”
클로이의 뺨에 홍조가 진하게 떠올랐다. 씰룩거리는 입술.
곧이어 그녀는 시선을 도로 도마에 고정했다.
탕⎯ 탕⎯ 탕⎯ 탕⎯ 탕⎯
칼날이 소나기처럼 도마에 쇄도했다. 서커스에 가까운 기예.
이틀 반 만의 성취라기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손속이다. 손님 중 몇몇이 그 장면을 카메라 렌즈로 담아냈다.
‘클로이는 칼에 대한 잠재력이 뛰어나다.’
잠시 클로이의 옆얼굴을 쳐다보고 있자, 뒷덜미에서 뾰족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리눈을 치켜뜨곤 나를 쏘아보는 료조. 그녀와 시선이 맞닿았다.
눈동자에는 화난 기색이 역력하다. 료조는 입술을 한 차례 짓씹더니 홱, 몸을 돌렸다.
‘쟨 왜 삔또가 나간 거야?’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 곧 어깨를 으쓱였다. 표정이 묘한 게 좀 걸리긴 하는데… 뭐, 또 웨폰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던 거겠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박차를 가해 움직였다. 끝물이 다가와 해이해질 수 있는 마음을 다잡았다.
‘요리사는 마감이 임박하는 순간까지 성심껏 손님을 대해야 한다.’
첫 스승님이 내게 강조하셨던 말들.
‘네겐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이겠지만, 그 사람에겐 첫 음식이다.’
생생한 육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나는 짧게 웃었다.
“그 양반이 말 하난 정말 잘했지.”
나는 피로로 늘어진 어깨 근육을 조였다.
* * *
드디어 영업이 끝났다.
나는 부원들에게 뒷정리는 내일로 미루자 말했다. 축제가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들의 대답은 만장일치로 ‘예스’.
부원들은 기지개를 켜며 저마다 앓는 소리를 낸 뒤, 각자의 축제를 즐기러 흩어졌다. 그중에서 료조만이 피곤하다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어제, 오늘 기자들과의 설전 때문에 진이 빠진 듯하다.
‘하긴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몸을 더 지치게 만드니까.’
나는 기숙사로 복귀했다. 그리곤 냉수마찰로 땀에 전 몸뚱이를 씻어 내고서 바로 빠져나왔다.
왜냐면, 방에 에어컨이 없어 밖보다 실내가 더웠거든. 서러웠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클로이와 약속 시간까지 넉넉잡아 30분가량 남은 상황.
‘어디서 좀 기다려야겠네.’
나는 몸을 의탁할 응달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다리를 바삐 움직이니 가로수 그늘에 비치된 벤치가 눈에 띄었다.
약속 장소에서 멀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한적하다. 곧이어 나는 벤치에 털썩 등을 기댔다.
여름치곤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습도도 낮아 몸이 덜 끈적끈적해 한결 쾌적했다.
“…좋네.”
머리를 등받이 뒤로 젖힌 채 눈을 감았다. 싱그러운 녹취가 코에 스민다.
졸음이 솔솔 쏟아졌다.
그냥 이대로 한숨 때릴까 하다 정신을 차려 잠을 쫓아냈다.
‘약속 시간이 곧 다가오니까.’
내가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하고 있을 무렵, 내 앞에 누군가 멈추어 섰다.
지팡이를 짚은 웬 초로의 노인. 그가 지팡이로 내 옆자리를 가리켰다.
“좀 앉아도 되겠나?”
나는 지그시 노인을 응시하다가, 엉덩이를 밀어 공간을 마련했다. 노인은 인자한 미소로 감사를 표하고서 착석했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안 그래도 한적했는데 기류가 어색하니 더 조용했다.
그러자 손수건으로 한참을 땀을 훔치던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이가 드니 더위가 힘들구먼.”
“…….”
나는 멍한 눈으로 노인 쪽을 살짝 흘겨보고, 다시 앞을 보며 대답했다.
“하실 말씀은 뭡니까?”
그리 묻자, 노인이 고개를 꺾으며 되물었다.
“뭐가 말인가?”
“멀리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로 말을 덧붙였다.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노인.
“아디토레의 당주, 알’타이르님.”
그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감이 좋은 젊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