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8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85화(85/300)
85화 축제: 만남 (3)
총총하게 부지를 메운 인파들에 혀가 내둘러진다.
웬만한 소도시보다 넓은 면적의 아카데미다. 하지만 오늘은 그 드넓은 면적에도 여백 따위 없었다. 퍼레이드의 대열과 인해가 시선의 사각까지 넓게 드리웠다.
‘겁나 많네…….’
사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일정이 압축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엄청난 규모와 자본이 투입된 축제. 그중에서도 대미를 장식하는 건 퍼레이드.
그러나 퍼레이드가 으레 그렇듯. 호아킨 아카데미라 해서 별 특별한 건 없고, 흔한 유원지의 그것과 비슷했다.
당연히 규모나 퀄리티는 이쪽이 몇 곱절은 대단하긴 하다만, 적어도 내 눈엔 거기서 거기로 보인다. 원래부터 이런 복작복작한 행사에 별 감흥이 없기도 하고, 인형 탈에 환호하기엔 동심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어려서부터 안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는 인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행진을 관망했다.
저 틈바구니에 끼자고 웨폰을 필두로 부원들이 졸라 댔으나, 안 그래도 더운데 사서 땀 흘리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나, 즉 강검마는 키도 큰 편에 시력도 좋아 멀리서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망부석처럼 버티니 결국 부원들은 나를 제외하고서 인해로 뛰어들었다. 특히 원숭이처럼 달려 나가던 웨폰의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긴 하네.’
금빛 치장품들을 치렁치렁 걸친 채 삼바를 추는 누님들. 그녀들을 태운 화려하기 짝에 없는 구조물들은 위엄마저 느껴진다. 배금과 순금을 고루 입혀 만들었다는데, 저것만 팔아도 노후 자금은 충당되지 않을까 싶었다.
실없이 누님들의 후끈한 춤사위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
저벅- 저벅-
나는 들려오는 발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속이 메스꺼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료조. 그녀는 파리한 안색으로 투덜거렸다.
“하아- 사람 많은 거 딱 질색이야.”
료조는 어느새 내 옆에 나란히 선 뒤, 양갱을 우물거렸다. 나는 눈만 살짝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왜 내 번호로 부원들한테 문자를 돌린 거지?’
피곤한 투로 기숙사에서 쉬겠다는 애가 사서 고생이라니, 안 그래도 잠도 많은 녀석이 말이다. 이번 축제 기간 동안 정신노동으로 가장 지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얘는 뭔 생각하는지 도통 모르겠네.’
하나 선배를 제외한 부원들과는 이미 두 달을 공유했다. 아기새 같은 인상의 얀데레 클로이, 양아치 같은 겉모습이지만 개그캐인 스피드 웨폰. 게임상에선 비중이 전혀 없던 두 사람이지만, 지금에 와선 나와 가장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근데 공기캐 속성이긴 해도 메인 히로인 중 하나인 료조를 오히려 잘 모르는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속내를 숨기는 것 같다 해야 하나.
그 외에도 웨폰과의 잦은 설전도 료조가 적당히 어울려 주는 느낌이라든가…….
절궁의 딸이라는 타이틀만 떼어 놓고 보면, 나는 료조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성향도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기도 하고.
‘이번 일도 의중을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
내 번호로 가장해 부원들을 소집한 의도가 무엇일까. 미심쩍긴 한데…….
‘무슨 이유가 있겠지.’
방식이 껄끄러운 것과 별개로 나는 료조의 두뇌를 신뢰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고구마 방지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니까. 굳이 넘겨짚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료조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어느새 양갱은 다 먹고, 생수로 입가심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얘랑 단둘이 있어 본 적은 처음이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료조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힐긋힐긋 나를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곤 새침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뭘 그렇게 봐.”
료조는 입을 삐죽이며 내 눈길을 애써 피했다. 얼굴까지 붉히며 입매를 삐쭉 내밀었다. 그녀 스스로도 이번 일은 떳떳하지 않은 모양.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네.’
여태껏 그녀가 보인 태도 중 가장 또래다웠다.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료조는 미묘한 감정이 담긴 눈동자로 보고는 곧 고개를 훽 돌려 버렸다.
“진짜 드럽게 눈치도 없어.”
복작복작한 배경음 속에서 료조가 작게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안 들릴 테지만 날카로워진 내 감각은 놓치지 않았다.
‘눈치?’
지금껏 행적들을 반추해 봤을 때, 료조는 허투루 말을 내뱉지 않는다. 저 말속엔 분명 남모를 속뜻이 있을 터다. 하물며 내 번호를 빌려 조원들을 소집한 것 역시도. 나는 짐짓 표정을 굳히며 되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그리 묻자, 료조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아무래도 내가 들은 줄은 몰랐던 모양.
“…그걸 들었어?”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덥석 붙잡으며 재차 물었다. 윗옷의 어깨에 손자국 주름이 생겼다.
“무슨 일인데. 뭐,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챈 거야?”
“어, 어, 어?”
료조는 당황한 기색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동공이 회오리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태도.
나는 어깨를 붙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료조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아파.”
“어, 뭐라고? 이번에는 안 들렸어.”
료조가 두 손으로 퍽 나를 밀쳤다. 힘이 어찌나 센지 균형을 잠시 잃을 뻔했다. 그녀는 한차례 시근덕거린 뒤, 나를 노려봤다.
“그럼, 어깨를 그렇게 꽉 움켜잡는데, 너 같으면 안 아프겠냐?! 그리고 눈치는 그렇게 없으면서, 귀는 또 왜 그렇게 밝은 건데!”
나는 영문 모를 기함에 료조를 쳐다봤다. 걱정된 마음이 무색하게 그녀의 눈빛은 사나웠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뗐다.
“기껏 걱정해 줘도 난리야.”
“…….”
료조는 눈을 끔벅거렸다. 그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게 아닌가.
‘뭐 하자는 건지.’
나는 혀를 찼다. 내 반응에 료조의 입술이 파르라니 떨렸다.
“…화났어?”
조심스러운 목소리. 평소에 똑 부러진 말투만 들었던지라 엄청 생경했다.
‘너무 정색했나.’
나는 뺨을 긁적이며 고개 저어 부정했다. 그제야 심란했던 료조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의문이 어렸다. 단둘이 있을 때가 별로 없는 만큼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제격일 테니.
“근데, 료조.”
“응?”
“갑작스럽긴 한데.”
단단한 내 말투에 료조의 동공에 미동이 일었다.
그녀는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너 혹시 웨폰이랑 연애하냐?”
“…뭐?”
곧바로 내 정강이를 노리는 료조의 발길질.
나는 몸통만 살짝 틀어 흘렸다. 예상 범주 내의 움직임이었다.
훅.
뒤이어 료조의 발끝이 애먼 공기를 찔렀다. 발차기의 반동으로 균형을 잃고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는 료조.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는지, 손으로 허리께를 짚는다.
‘맞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란 말이 있지. 원래 청춘 남녀는 겉으로 보기엔, 치고받고 싸워도 그것도 모종의 애정 표현이었다.
물론, 난 전‧현생을 포함해 연애 한 번 해 본 적 없긴 하지만… 어느 정도 알 건 다 안다.
‘젠장, 괜히 쓰리다.’
와중에도 료조는 눈을 부라리며 말을 뱉었다.
“너, 너,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저딴 원숭이 새끼랑 사귀게?!”
여러 감정이 뒤섞여 발발 떨리는 목소리.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료조를 등졌다.
“야, 강검마! 어디 가!”
앙칼진 외침이 등판에 내리꽂혔지만 애써 무시했다. 부장으로서 동아리 내 연애 정돈 묵인해 주는 것이 또한 도리일 것이다.
“야⎯!”
* * *
같은 시각, 호아킨 아카데미의 외곽.
소란이 잦은 거리를 걷는 두 남녀.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평상복을 입은 올 뮤트와 그녀의 매니저인 케인. 둘의 발소리만이 흙바닥에 스몄다.
“엘리,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이마부터 시작한 땀이 케인의 콧등을 타고 흘렀다. 덥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조바심이 나는 게 컸다. 그는 올 뮤트에게 손목시계를 두드려 보였다.
“미안, 케인. 근데 떠나기 전에 꼭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어휴.”
케인은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녀가 이토록 관심을 둔 대상을 속으로 생각하며.
‘그 1학년 생도.’
거의 본 적 없는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턱선. 얼핏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소년.
물론, 엊그제 그가 대중 앞에서 보인 퍼포먼스에 비하면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케인은 쓰게 웃었다. 그가 서포팅하는 올 뮤트와 그나마 비견 가능한 마오 랑이 일개 생도에게 꺾였다. 그것도 단 일 합 만에.
칠성 영웅을 두고 경쟁했던 관계였기에 미국 측엔 분명 호재였지만. 역설적으로 갑작스럽고 더 위협적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강검마.’
이틀 새 모든 영웅 길드와 에이전시들의 초미의 관심사.
현대에 이르러서 길드와 에이전시는 압도적인 무력의 영웅보다 스타성이 두드러지는 이들에게 눈독을 들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의 논리.
작금에 영웅들은 일종의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고, 그 부분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이 미국이란 국가다.
‘히어로’라는 독자적인 명칭을 생성한 이유 역시 그 일환. 캐릭터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코스튬과 닉네임도 마찬가지였다.
‘사시미 검성이라.’
기사 하나로 시작된 농 섞인 별칭이나, 아이덴티티 하나만큼은 더할 나위 없다. 무장은 젓가락만 한 식칼에 정말 보기 드문 검은 머리, 더불어 천부적인 재능까지.
고유성과 실력까지 고루 겸유한 재원. 그 순간, 케인의 뇌리에 문득 스치는 의념.
‘…설마.’
“엘리, 너 그 강검마란 생도한테 미리 물밑 작업 치려고 하는 거야?”
“그, 그런 거 아니야. 진짜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래.”
올 뮤트는 슬며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케인은 침음만 흘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적법하진 않지만 그런 인재를 놓칠 순 없지.’
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록 미국 시민권이 있어야겠지만, 본 에이전시의 입김 한 번이면 충분한 절차다.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케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렇긴 해도, 비행기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데.’
스케줄을 조율, 관리하는 것은 매니저인 그의 몫이다. 탐나는 재원일지라도 당장 중요한 것은 올 뮤트의 일정이었다.
이윽고 강검마가 김치찌개를 팔던 부스 앞까지 다다른 두 사람. 올 뮤트는 모자챙을 좀 더 푹 내렸다.
“어, 뭐야. 아무도 없는데?”
케인이 그리 말하자, 올 뮤트도 눈을 치뜨며 부스 내부를 살폈다. 김치찌개의 잔향만 콧속을 저밀 뿐, 인기척은 없다.
“아마 퍼레이드 보러 간 것 같은데.”
“…….”
아무도 없음을 확인 올 뮤트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모자를 벗었다. 주홍빛 머리칼이 어깨 위에서 흔들렸다.
“아, 맞다. 시간.”
케인은 재차 시계를 확인했다. 동시에 그가 다급한 기색으로 입을 뗐다.
“엘리, 그 강검마란 녀석은 다음에 찾아오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일단 가자. 진짜 아슬아슬하다니까?”
서두르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올 뮤트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근데 어차피 아카데미에 아공간 포탈 있잖아. 그걸로 다음 행선지로 가도 되지 않아?”
“야! 너 항공기 뜨는 데 돈이 얼마가 드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우리가 아공간 포탈 타면 전용기는 한국에 덩그러니 남겨 두자고?! 그거 다 국민들 혈세야, 혈세!”
케인이 꾸짖듯 기함하자 올 뮤트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케인의 말을 곱씹었다.
“…국민들 세금이면 어쩔 수 없지.”
“그래, 잘 생각했어. 다음에 시간 될 때 다시 오자.”
다시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는 올 뮤트. 그녀가 먼저 발을 뗐다.
“가자, 케인.”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이전시 전용기인데 어떻게 세금으로 움직이겠어, 멍청아.’
본업에만 충실하고 세속과는 거리가 먼 성격인 그녀였기에 가능한 거짓말.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녀를 설득했기에, 케인은 속으로나마 작은 죄책감을 덜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