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8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88화(88/300)
88화 도둑잡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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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년도 1학기 기말고사 실기 공고]모종의 사유로 인해 기존 기말고사 실기의 내용이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 변경사항: 외부 던전 공략 ▶ 팀 대항전.
실시 기간: 2034. 06. 02.(화) ~ 06. 06.(수)
시험 장소: 호아킨 아카데미 특별관
조원 구성: 2학년 생도 한 명, 1학년 생도 두 명. (임의 선정.)
………
……
…
[※ 조 구성은 시험 전날 문자로 전달됩니다.] [※ 정확한 시험 내용은 직전에 구두로 통보됩니다.]== ==
“아니, 씹. 시험 삼 일 냉 두고 감자기 변경됭다고?”
웨폰이 팅팅 부은 뺨을 매만지며 말했다. 먼젓번처럼 뭉개진 발음과 왼쪽 눈가에 물방울이 맺혀 묘하게 측은했다.
‘얘는 요새 왜 이렇게 맞고 사냐.’
클로이가 어지간히도 힘을 실었던 모양이다. 근데 뺨에 날파리가 붙었다면서, 어째 이물질 하나 없이 깨끗했다. 뭐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상념을 털고서 문자를 직시했다. 솔직히 내색은 안 했지만 당황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
‘시험 내용이 정사와 달라졌다.’
그간의 변수들은 대부분이 인간관계에 비롯된 것들이었다.
레온, 검제님, 아벨, 레이첼 등 작중 굵직한 인물들과 엮였던 사건들. 당시엔 정사에 관여하는 것 같아 껄끄러워 투덜거렸는데.
솔직히 말해 나, 즉 강검마의 존재가 이질적인 존재다 보니 이제 와선 이해한 상태다.
아고르가 죽은 걸 제외하면, 게임상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 상황은 다르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기말고사는 가평에 위치한, ‘고블린 던전’의 클리어였을 터. 마석을 품은 마수는 없지만, 소재는 쏠쏠한 던전이라 고대하고 있었는데.
‘…스토리가 변하기 시작하는구나.’
하긴, 여태껏 내가 벌여 온 일들을 생각하면 정해진 수순이다. 오히려 굵직한 사건들의 틈바구니에서 변경점이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
핸드폰을 잡은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기적의 가호 M’의 플레이 경험이란 가장 큰 특전을 제 발로 찬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사에 생기기 시작한 실금이 큰 균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고작 공고 문자 하나에 불가지의 경우의 수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응시했다. 그 모습에 료조가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말을 던졌다.
“뭐야, 왜 너답지 않게 긴장하고 그래.”
갑갑함을 환기해 주는 듯한 깨끗한 목소리. 나는 짐짓 놀라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료조는 싱긋 웃으며 이어 말한다.
“시험 내용이 바뀐 거는 나도 당황스럽긴 한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또 완전히 수긍 안 되는 일 처리는 아니잖아. 생각해 봐. 저번 중간고사 중에는 마인이 튀어나오고, 무인도 생존 훈련에서도 검제님이 부상당하셨어. 외부에서 치르는 훈련마다 사건이 터지는데, 아카데미 측에서도 장소 정정을 하는 건 맞는 절차지. 생도들이 안전할 수 있는 장소로 아카데미만 한 곳도 없잖아?”
“…….”
연필까지 끄적여 가며 설명해 주는 료조. 당혹감 때문에 멍했던 머리를 일깨워 주는 듯했다. 잠시 이성이 짓눌려 제대로 반추를 못 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별의별 생각을 다 했겠지만.
료조가 영민하게 되짚어 주니, 대저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정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바뀌는 것. 인위적인 조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발상의 전환일 뿐인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하여간, 고구마 방지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그녀다.
‘근데 왜 이런 애가 웨폰이랑?’
웨폰도 분명 좋은 친구지만 작금의 행동거지가 좀… 많이 가볍다 해야 하나.
뭐, 이성이 봤을 때는 다른 매력이 있겠지. 여자들은 유머러스하고 상냥한 남자를 좋아한다니까. 문득 나는 시선을 웨폰 쪽으로 돌렸다.
부어오른 볼을 안쓰럽게 매만지는 웨폰. 클로이는 후다닥 양호실로 냉찜질 팩을 가지러 갔다.
‘…….’
나는 잡념을 털어 낸 뒤, 료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그렇지?”
료조는 연필을 도로 내려놓았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짐짓 당황한 기색으로 몸을 뒤로 뺐다.
“뭐, 뭘 그렇게 보냐?! 사람 민망하게.”
“덕분에 상황 정리가 됐어. 고맙다.”
료조는 입술이 떨릴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 연청색 눈동자가 빙글빙글 굴러다닌다. 기특한 마음에 나는 눈웃음쳤다.
“따, 딱히 네가 걱정돼서 한 소리는 아니니까!”
돌연 목청을 높이는 료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대사를 내뱉는다. 곧이어 그녀는 가늘고 긴 검지를 내게 겨눈다.
“강검마, 네가 경황없으면 나도 혼란스럽다고!”
“네가? 왜?”
되묻자, 좀 더 빨갛게 달아오르는 료조의 얼굴색. 여름인데도 그녀의 정수리에서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니, 나 포함해서 우리! 여행 동아리 부원들 말이야! 네가 부장이잖아. 부장이 어리바리하면 전원 기강이 흐트러지잖아-!”
“아-.”
그런 의미였구나.
부장으로서의 책임감까지 빠짐없이 상기시켜 주는 한마디. 오늘따라 여러모로 의지가 되는 그녀다.
나는 감탄성을 흘렸다. 료조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폭 흘린다.
‘아, 맞다.’
료조와 이야기하다 보니, 부탁할 일이 떠올랐다.
“료조, 나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응? 무슨 부탁.”
“그전에 해킹했다는 아카데미 임직원 리스트 있잖아. 그거 혹시 저장본 있어?”
“어, 저장본은 데이터 추적 때문에 지우긴 했는데, 종이로 출력한 건 있어.”
료조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있으면 일이 쉽게 풀리지.”
“엥……?”
료조가 말뜻을 이해 못 했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흐릿하게 웃자 그녀가 옅은 침음을 흘렸다.
“뭐야, 그 표정.”
어깨가 움츠러드는 모습이 묘하게 놀리는 재미가 있다.
“료조.”
“으응?”
“아카데미 네트워크 한 번만 더 해킹해 줘.”
* * *
나는 최설아에게 건네 들은 것들을 간헐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아카데미 내에 빌런들이 위장 취업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다만 레온이 그들의 표적이란 사실은 누락했다.
한꺼번에 많은 정보 제공은 좋지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굳이 숨길 생각은 없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 기말고사도 코앞이고, 당사자인 레온에 대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서 밝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료조는 정보를 취합하려는 듯, 눈을 감고서 고개를 까닥인다. 곧이어 고민을 마친 그녀가 내게 물었다.
“으음, 그러니까 먼젓번의 리스트와 지금의 리스트를 대질해 보고 싶다, 이 말이지?”
“응, 맞아.”
원래 계획은 부원들과 함께 발로 직접 뛰려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론 내렸다.
‘방학까지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곧바로 방학이 시작된다. 그 기간엔 생도뿐 아니라, 임직원들 역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휴가를 떠난다.
‘현실적으로 그 안에 전부 확인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임직원들의 수는 수백 명, 남은 일수는 일주일 남짓.
방학 전까지 쇼부를 쳐 놔야지, 아니면 계획은 부득이하게 2학기로 미뤄진다.
거기에 최설아를 막 포섭한 지금보다 적절한 타이밍은 없을 것이기에 나는 계획을 발품을 파는 것으로 수정했다.
“…검마, 네 말이 맞는다면. 리스트를 대질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긴 해. 임직원들 정보는 달마다 갱신되거든. 먼젓번 리스트에 없던 사람들을 추리다 보면, 폭은 절로 좁혀질 테니까.”
“응, 수백을 수십으로 줄여도 확 수월해지잖아. 그리고 시험 기간엔 수업도 4교시 전에 끝나니까. 그리고⎯”
“⎯임직원들 전체가 시험 채점을 위해서 교직원실에 한데 모이니까, 쓸데없는 품을 아낄 수 있다는 거지?”
역시나 료조는 내 의도를 정확히 짚어 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아킨 아카데미는 임직원들의 정보는 매달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료조의 말을 빌리면, 아공간이랑 클라우드 허브에 백업 어쩌고라고는 하는데.
쉽게 말해서, 직원들의 신원 정보 갱신은 달마다 이루어지는 자동 저장 같은 개념이다. 지구로 따지면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다.
그러나 ‘기적의 가호 M’의 기본 베이스는 모바일 게임.
용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기점을 짧게 짧게 나눈 일편이었다.
주기적으로 저장을 갱신해 줘야 더미 데이터를 줄일 수 있을 테니. 유저들 사이에서 으레 ‘최적화’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건 나밖에 없겠지만.
‘정사는 변했어도 플레이상의 경험은 분명 유용해.’
이미 탈선해 버린 스토리에 연연하지 말고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하는 것. 유저일 때의 기억의 또 다른 활용법이다.
오히려 서사에 대한 집착을 털고 나니, 사고가 유연해짐을 느낀다.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튼, 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해.”
“응, 그건 나도 동감.”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언제까지 가능해?”
그리 말하자, 료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반쯤 내려앉은 속눈썹. 그녀는 의뭉스레 말을 뗐다.
“부탁 들어주는 건 어렵진 않은데. 나만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야?”
“…….”
너무나도 맞는 말에 난 입이 막혔다.
익숙해져서 까먹고 있었는데 료조의 능력 덕을 크게 봐 왔다. 예의 해킹도 그렇고, 축제 당시 동아리 부스의 홍보와 CCTV로 웨폰을 잡아 온 것도.
료조의 역할과 능력은 값지다. 같은 동아리란 명분으로 팍팍 부려 먹기엔 아까울 정도로.
당연히 그녀의 노고에 늘 속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굳이 입으로 전하지 않는 건.
‘낯간지러우니까.’
하지만 무상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사람은 성취나 보상이 있을 때 능률이 산다. 같은 공동체라면 더더욱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
‘…근데 문제는.’
나는 료조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 생각해 보라.
료조는 일본 종신 총리의 딸이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랐을 공주님께 한낱 서민인 내가 베풂을 운운한다고? 돈, 지위, 명예 그 어떠한 것도 없는 내가? 사시미만 좀 휘두를 줄 알지 내세울 만한 게 없는데?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어떡하지.’
나는 침음을 흘리고서 슬며시 입을 열었다.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원하는 거?”
의례적인 질문에 눈을 크게 뜨는 료조. 미간까지 짚어가며 골몰히 고민한다. 곧이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그럼 나도 나중에 부탁 하나만 들어줘.”
“…….”
괜스레 긴장된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애인 만큼 무엇을 요구할는지.
양갱 한 박스 정도일까? 근데 아카데미의 미친 물가를 생각하면 내겐 꽤 부담스러운데.
“걱정 마. 물질적인 부탁은 아니야.”
“…무슨 부탁인데?”
료조는 입가에 의미 모를 미소를 새겼다.
“그때 가서 말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