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9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91화(91/300)
91화 기말고사 (1)
기말시험에 앞서.
“…생각보다 맛이 더 별로네.”
나는 퍽퍽하기 짝이 없는 빵 쪼가리를 씹고 있다.
한입 물면 입안이 바싹 말라 물로 입술을 적신다. 이 일련의 행위를 반복한다.
식감이 어찌나 질긴지 턱뼈가 얼얼할 지경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턱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먹어야 살지.”
그렇게 중얼거려 보지만 이 빵, 먹는 게 참 고역이다.
시험 전이라 배를 든든히 불릴 생각으로 사 놨건만. 양만 많지, 맛이 드럽게 없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그 말이 빵에도 적용될 줄이야. 어제 장 보면서 저렴한 가격대에 눈멀어 무턱대고 산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맛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내 지갑 사정은 그리 궁핍하진 않았다.
김치찌개 부스가 워낙 대성한지라, 당장 끼니 걱정은 지울 수 있는 목돈이 들어왔다.
재룟값을 제하고, 부원들과 정산 끝에 내게 떨어진 금액은 무려.
‘5백만 원.’
숫자 5에 0이 여섯 개 연달아 붙으니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일전에 대장장이를 슈킹한 돈이 남아 있긴 했지만, 자고로 곳간과 숱은 풍성해야 안심이 되는 법이다.
내가 이런 부실한 아침 식사를 하는 것 또한, 통장에 물 샐 틈을 줄이기 위함. 절약해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이곳의 부모님이 부재된 상황에서, 돈이 들어올 구실은 옹이구멍보다 작다. 아낄 수 있는 돈은 아끼고, 그러모을 수 있는 건 싹싹 긁고.
그렇게 살다 보면 2학년 되기 전까진 어떻게든 버티지 않을까? 그때부턴 알바가 가능하니 고정 수입이 생길 것이다.
‘젠장.’
이러고 있으니 괜히 옛날 생각이 났다. 전생에도 딱 이 나이대에 이러고 살았던 것 같은데……. 울적한 마음에 빵을 질겅거리는 어금니에 괜히 더 힘이 실린다.
나는 부단히 턱을 꿈틀거리면서 폰을 응시했다. 화면에 떠오른 글씨들도 함께 곱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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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년도 1학기 기말고사 실기 공고]모종의 사유로 인해 기존 기말고사 실기의 내용이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 변경 사항: 외부 던전 공략 ▶ 팀 대항전.
실시 기간: 2034. 06. 02.(화) ~ 06. 06.(수)
시험 장소: 호아킨 아카데미 특별관.
조원 구성: 2학년생도 한 명, 1학년생도 두 명. (임의 선정.)
[※ 조 구성은 시험 전날 문자로 전달됩니다.] [※ 정확한 시험 내용은 직전에 구두로 통보됩니다.]== ==
내 아침 식사만큼이나 단촐하기 그지없는 구성이다.
심지어 시험이 어떻게 치러지는지조차 안 적혀 있다. 웨폰은 이럴 거면 차라리 백지장을 돌리는 편이 낫지 않냐며 투덜거렸다.
‘진심.’
그러나 유저 시절의 경험 덕택에 이런 단편적인 내용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게 있다.
이 짤막한 문장들 속에서 유달리 두드러지는 단어. 시험이 치러지는 장소인 호아킨 아카데미의 특별관.
레이첼이란 이름 석 자에 얼얼해 깜빡할 뻔했지만, 시험 장소 역시 그 못지않은 충격이다.
설정에 변고가 생긴 게 아니라면, 본래 3학년 생도들만이 사용하는 곳이니까.
넓디넓은 아카데미의 부지의 북쪽 끝에 위치된 거대한 회동. 그곳은 호아킨 아카데미의 학풍인 실전 지향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말이 좋아 건물이지 던전, 아니 그 이상으로 흉흉하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뭔 특별관이여.’
절로 침음성이 흘렀다. 그도 그럴 게, 호아킨 아카데미 특별관은 마족들의 터전인 마경 게헤나(Gehenna)를 압축 구현해 놓은 곳이다.
설립자인 발로르 호아킨이 20년간의 마경 생활을 토대로 재현했다는데, 어찌나 공을 들였는지 마경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부터 자갈, 풀까지 주워 와 심어 둬서, 특별관 내부에는 독자적인 생태계가 조성됐다고 한다.
심지어 마경 게헤나의 특수성인 방향 감각 상실까지 똑 떼 왔다고 하니까. 설립자의 정성을 자못 알 만했다.
교육 시설이라는 미명하에 게헤나를 본떠 만든 미궁,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지 싶다.
던전보다 더 던전 같은 장소를 아카데미 부지 내에 만든다라……. 박치기식 교육에 찬동하는 나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본업에 비유하자면, 여러 생선을 다뤄 보자는 명분으로 횟집에 아쿠아리움을 차린 것이다. 해수랑 모래까지 바다에서 직접 길어 와서 말이다.
‘발로르 호아킨, 그 인간도 정상은 아니야.’
다행인 점이라면 마수까지 가져와서 처넣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안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웃픈 일이다.
어쨌든.
그런 특별관에서 팀 대항전이 행해진다. 이 점이 내겐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알기론, 특별관은 아공간 장막이 전개가 안 되는 걸로 아는데…….’
광범위하게 운용되는 아공간의 장막이지만, 특별관은 유일한 영향권 밖의 장소다.
아공간과 마경은 빛과 어둠, 물과 기름처럼 각기 섞일 수 없는 정반대의 성질이다.
정황들을 추려 짐작해 보자면, 생도 사이의 혈전이 금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공간이야 현실 개입이 없으니 외상은 없겠다만, 권외 영역인 특별관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토너먼트에서 승패를 가르는 판단 기준은 뭘까? 그거 하나가 의문이긴 하다만 좀 이따 바로 알게 될 테지.
‘…시험의 방식이랑 보상을 모른다는 게 익숙하지가 않네.’
지금까지는 유저 시절의 기억이라는 기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그래선지 낯선 앞날이 내겐 생경하게 와닿는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게 정상적인 삶이지 않은가. 내가 무당도 아니고 미래를 훤히 내다보는 게 감히 가당키나 한 걸까.
장르 소설이나 웹툰 등지에선 이세계에 떨어지면 거짓말처럼 아다리가 딱딱 맞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닌 듯하다.
하기야, 코어 게이머도 아니었던 내가 게임 속에 떨어진 시점에서 결이 좀 다르긴 하다. 어차피 스토리의 후반부도 모르는 상태니, 예행 연습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건 그렇고.
난 입안의 찌꺼기를 봉투에 뱉었다. 그리곤 곧바로 생수를 목구멍에 들이부어 입가심했다. 잇몸이 저려 왔다.
“도저히 못 처먹겠네.”
나는 짐과 지갑을 챙겼다. 이딴 퍼석퍼석한 빵을 먹을 바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우고 만다. 그리 중얼거리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 * *
편의점에서 킹뚜껑으로 끼니를 때운 뒤, 나는 특별관 앞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당연히 특별관이었다.
고풍스러운 여타 아카데미 건물들과 확연히 다른, 겉치레 따윈 하나 없는 투박한 외관. 사람 형상의 돌조각들이 외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요상한 장소라고 떡하니 광고하는 것 같았다.
다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주눅 들게 하는 위압을 뿜어낸다는 건 확실하다.
“…게임으로 봤을 때랑 느낌이 많이 다르네.”
그때는 나름 운치 있다 생각했었다.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아카데미 내에서 판타지스러운 멋이 있어 좋아했는데……. 실물로 마주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섬찟한 기분이다.
‘마경을 본따 온 곳이니…….’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웅성거리며 각자의 조원들과 합류하는 생도들로 복작복작하다.
조금 이상한 건, 교관들의 머릿수도 생도와 비례해 많았다. 못해도 백 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검⎯하⎯!”
옆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어찌나 큰지 내가 농아여도 또렷이 들릴 만한 성량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내 쪽으로 다가오는 두 여인.
기말고사의 같은 조 레이첼과 하나 선배였다. 조원의 사진도 같이 발송돼서인지 쉽게 합류한 모양이다.
“검마얏! 보고 싶었어어⎯!”
레이첼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닥을 차고 달려들었다.
방천화극의 창대를 어깨에 걸친 채. 코뿔소가 뿔을 세우며 들이닥치는 것 같은 기세다.
나는 주머니를 더듬었다.
“……!”
그러자 코앞에서 우뚝 급정지하는 레이첼. 여파로 돌바닥이 그녀의 발 모양으로 이지러졌다. 관성이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다릿심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자, 잠깐! 칼부터 뽑아 드는 건 반칙이지!”
“…….”
생각보다 레이첼은 눈치가 빨랐다.
“그래도 그런 나쁜 남자다움이 매력적이지 검.마.는.”
주머니를 다시 더듬었다.
“농담이야, 농담! 하여간, 진지한 건 중간고사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하아.”
내가 한숨을 내쉬어도 레이첼은 헤헤 웃을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신경을 끄고서 하나 선배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녀는 조금 전의 소란에도 얼굴에 여유로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것보다.’
선배의 허리춤에 채워진 빨간색 쇠 지렛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구에서 뭐라 그랬더라? 빠루였나? 하여튼, 그런 공사판에서나 쓸 것 같은 도구를 왜 차고 있는 거지?
“그게 선배 무장이야?”
“응! 어때?”
하나 선배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네.”
“그치!? 이래 봬도 이게 B급 무장이거든.”
B급이라. 웨폰의 리코더도 그렇고 이 세계관은 무기의 룩과 성능은 별개인 것 같다.
와중에도 은근슬쩍 달라붙으려는 레이첼을 눈초리로 저지하고 있을 때.
“자,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이제 시험 진행 방식을 설명하겠다.”
최고참으로 보이는 중년 교관이 나와서 말했다.
“이번 1학년 기말시험은 이례적으로 특별관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문자로 통보됐듯이, 종목은 팀 대항전. 하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항전의 개념과는 결이 좀 다르다.”
그가 턱짓하자 앞에 일렬로 서 있던 교관진들이 일거에 발을 뗐다. 중년 교관은 다시 생도들 쪽으로 시선을 두고서 낮게 말했다.
“본 1학년 기말시험에서는 무장 사용을 금한다. 각자 무장은 앞의 교관들에게 반납하도록 한다.”
그 엄포에 생도들의 얼굴엔 황당을 넘어 경악이 번져 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일견 이해가 됐다.
생각해 보니 무장을 ‘지참’하라는 공지는 없었다. 굳이 지참하지 말라 덧붙이진 않은 건, 아마 시험 방식을 유추하지 못하게 혼선을 주려는 것.
‘반 배정 시험 때보다 훨씬 형평성은 있다.’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교관은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히 설명을 이어 갔다.
“특별관의 내부는 마경과 엇비슷한 생태를 갖춘 공간이다. 그 말은즉, 아공간의 장막의 영역 밖이란 걸 뜻한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3학년이면 모를까, 너희처럼 얼빵한 1학년들끼리 서로 무장을 들었다간, 인명 사고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 말에 소란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저 말이 이치에 맞는 말이다.
아직 핏덩이들인 이들이 서로 날붙이를 들면 사태는 참담해질 것이다. 반응들을 확인한 교관은 설명을 계속했다.
“시험 방식은 간단하다. 특별관으로 진입해 제한 시간인 1시간 안에 단계별로 지정된 체크 포인트에 도달하면 된다. 시간 내에 도착한 조는 다음 단계로, 그렇지 못하면 실격이다.”
‘…음, 대충 단체 레이스랑 비슷한 건가.’
제한 시간 1시간 안에 체크 포인트에 도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언뜻 말만 들으면 쉬워 보이나, 문제는 장소다.
마경을 본떠 조성된 특별관은 그야말로 벽 없는 미궁이나 다름없는 환경이다. 마수나 마인이면 모를까, 흩뿌려지는 마력에 인간은 길을 잃기 십상인 것이다.
‘방식 자체는 괜찮네.’
팀 대항전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된다. 지구력과 협응력을 요하는 시험.
쉽게 비유하자면 미궁에서 펼쳐지는 단체전 마라톤과 얼추 비슷했다.
이거라면 피 튈 일도 적어지고, 주파해야 할 장소만 빼면 딱히 위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아공간 없이 체점은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그러자 때마침 중년 교관이 그 부분에 대해 추가 설명했다.
“각 조에 교관을 한 명씩 대동해, 너희들을 체점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해 줄 거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반푼이 놈들도 배속된 교관에게 말하면 된다, 이상. 불운을 빈다.”
교관의 쌈박한 저주를 끝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백 명 남짓한 교관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어깨 가방처럼 생긴 아공간 주머니에 무장들을 수거했다. 잘은 몰라도, 똑딱이 지갑처럼 생긴 메디아의 것과 달리, 보급형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아- 뭐야, 이번 기말은 너무 심심한데……. 원래 십 대 때는 서로 치고받고 해야지~”
레이첼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하나 선배는 그저 말없이 싱긋 웃을 뿐. 레이첼과 달리 불평불만은 없는 듯했다. 애초에 자신의 의견을 잘 내비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저 멀리, 앞쪽에서부터 오던 교관들이 이내 우리와 바투 가까워졌다.
“생도들, 무장 반납하세요오-!”
익숙한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고의적으로 섞은 깜찍한 콧소리.
고개를 돌리자 우리 조를 담당한 여교관과 눈이 마주쳤다.
“…어, 어! 거, 검마, 님……!?”
빌런 최설아.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