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1051)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1051화(1051/1052)
청녹의 들판 위로 백골이 수없이 쌓여있다.
눈에 보이는 범위가 저토록 넓은데 그곳을 빼곡하게 쌓고 있을 지경이라니.
심지어.
‘시간도 상당히 지났어.’
저만큼의 백골화가 되었다는 건, 절대 최근에 죽은 것들이 아니라는 의미였고.
심지어 바스러지기 직전인 걸 보면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뜻했다.
‘……뭐지?’
이상한 일이다.
‘막이 이런 것조차 가리고 있던 건가?’
까마귀 놈과 대치하고 있던 잿빛 하늘. 그곳에서 느껴지던 삭막한 공간엔 적어도 이런 백골은 없었거늘.
그런 막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에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이게 오히려 현실이란 건데.’
대체 어쩌다 이런 게 생겨난 거지?
의문을 떠올리던 순간.
‘설마.’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른다. 잿빛 공간에서 마주했던 수정들. 그 안에 느껴지던 생기를 생각했다.
“하.”
아무래도 그건 것 같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건 생명체였다. 그것도 여전히 살아있던.
그런 생명체들의 생기가 일순 허공으로 치솟더니, 이내 까마귀에게 흡수되면 격변하는 걸 목격했던바.
‘그럼 이 백골들은.’
전부 그 수정 속에 들어있던 것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면.
‘형태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생기가 사라져서인가?’
정황상 시간이 한참 흘렀을 것들이나. 나는 직접 보지 않았던가. 수정에서 생기가 빠져나오던 걸 말이다.
생기는 생명체에게서 존재하는 것.
이런 백골이 살아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무언가 일이 있었다 판단하는 게 맞았다.
‘생기가 빠지면 백골화과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뿜어진 걸 모두 그놈이 흡수한 건가?
‘애당초 어떻게?’
그런 막을 어찌 만들어 놓은 건지도 의문인데. 이런 생기를 모아두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놈의 반응을 보자면, 주인 몰래 준비한 일인 것 같았지.’
만계의 주인은 모르도록 준비한 것.
무슨 의도일까. 그리고.
‘그 모습은 뭐지?’
놈이 보여주던 백색의 형태.
하얗게 변색된 세 쌍의 날개와 푸른 눈을 떠올렸다.
꾸욱.
주먹이 절로 말린다.
‘아득했어.’
격의 차이.
존재감에서 오는 높은 격차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건 마치.
‘……어머니나 무저갱을 볼 때 같은 감각.’
주인이라 불리는 존재들을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과 아득함.
그걸 까마귀란 놈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크게 달라졌다.’
놈의 상태가. 생기를 끄집어내 담아낸 놈의 육신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격한 변화가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생각인 거지?’
뭔지는 몰라도 놈의 의도가 껄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옘병할. 조졌네, 이거.’
상황이 꼬였다.
까마귀란 놈에게 정체를 발각당한 것도 문제인데, 놈의 의도가 모르겠다는 것도 문제다.
‘무슨 의도일까.’
도대체 무슨 의도를 지닌 걸까.
딱 보니 일단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쓰읍.’
의문을 토하며 시선을 돌렸다. 백골도 백골인데 그 너머에 솟아오른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하게 솟은 나무, 화산파 내부에 있던 신목만큼은 아니어도 지금까지 봤던 나무 중 두 번째로 컸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신목이다.’
저건 신목이다. 다만.
‘……기운은 느껴지질 않아.’
신목이 지니고 있을 특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말인즉슨.
‘죽은 나무라는 건가?’
기운뿐이라면 그럴 수 있겠는데, 나무 자체에서도 생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즉, 저 나무조차 이미 생이 끝났다는 걸 뜻했다.
미간을 좁히며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 했다.
지끈-!
‘……썩을.’
다리를 움직이려니 격통이 느껴진다. 아직 몸뚱이가 다 낫지 않은 탓이었다.
‘대체 뭘 한 거지?’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릇이 이리 망가진 걸까.
육체만 아픈 것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릇 자체에 무리가 갔어.’
단전이고 그릇이고 다 엉망이 됐다. 기억은 나지 않으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음은 자명했다.
이를 판단하며 뒤를 돌아본다. 천마와 야랑이 날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와중에 야랑은 어느새 가면을 착용한 상태다.
상체가 거의 반절이 날아간 듯 보였는데. 천마의 마기로 인해 완벽히 치료된 모습.
그 결과물에 놀라워하는 한편.
‘얜 대체 뭘까.’
기억이 없다고 들었다.
신검일 적의 기억은 망각이 됐으니 떠올리지 못한다고 들었건만.
‘왜 자꾸.’
옆으로 나타나 신경 쓰이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설마 기억이 있나 싶다만.
‘……있다면.’
있다면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믿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신목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더 확실하다.
‘……죽었다.’
나무는 죽어 있었다. 겉보기엔 멀쩡하나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이를 느끼며 손을 뻗어 겉면을 매만졌다.
까슬까슬한 껍질의 감촉이 느껴지는 한편.
“이런.”
지금껏 신목을 만졌을 때 느껴지던 그 무엇도 없다.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녕 죽은 나무다.
차라리 이게 신목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나았을 텐데. 본능적으로 신목이라는 건 감지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흑황궁이라 불리는 이 주변의 신목. 이걸 얻어내어야만 하는데 이미 나무가 죽어버렸다면 어찌해야 할까.
‘……애당초 신목이 죽는 게 가능한가?’
이 부분은 들어본 게 없어서 모르겠다.
‘쓰읍.’
아무 반응도 없는 신목에 관해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애당초 신목이 죽었다는 것도 문제야.’
어머니의 말을 따르면 뭔가 정해진 수순이 있어야 하거늘. 신목이 사망해서 그런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것도 혹시 까마귀의 짓인가?
생기를 빨아들였듯, 신목에도 무슨 짓을 한 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볼 땐 이게 가장 확률이 높아.’
신목 스스로 죽었을 가능성보다.
이 또한 까마귀가 했을 가능성이 월등하게 높다.
“후우…….”
신목에서 손을 뗐다. 그대로 뒤를 보니 들판 위에 백골이 무성한 게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
잿빛 세계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수정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절규가 들리더라고.’
수정에서 생기를 느끼는 것뿐 아니라,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제발 좀 죽여달라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죽여달라고.
그리 아우성을 치더라.
그래서였다.
그 망할 광경에 열이 살짝 받았던 것이.
그래서 범인으로 보이던 놈에게 냅다 들이받았던 것이.
“쯧.”
짧게 혀를 차며 손을 움직였다.
스으으-!
심장에서 기운이 이동한다. 격통이 느껴지지만 무시했다. 이 정도는 참을만했다.
기운을 다소 많은 양을 담아 움직이자, 바닥에 모여있던 백골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쉬이이이이이–!!!
단체로 허공에 떠올랐고. 그 순간 천마를 보며 말했다.
“야. 땅 좀 깊게 파봐.”
“…….”
말을 들은 천마의 발끝에서 기운이 요동쳤다.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지면을 뒤집어엎는다.
쿠구구궁–!!!
순식간이었다. 단단했던 바닥이 요동치더니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그 안으로 백골을 모아 집어넣었다.
후두두둑-! 하고 백골이 들어간다.
살짝 쌓인 백골을 바라봤다. 이대로 덮어버려도 문제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휘둘러 불꽃을 일으켰다. 지독한 열기가 백골을 휘감더니 열기로 바스러뜨려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덮어.”
가루가 된 것을 확인하고서 천마에게 말했다. 검은 기운으로 떠올려놓은 지면을 다시 그 위로 덮어냈다.
쿵-!!
언덕처럼 보이긴 했으나 그걸 기압으로 눌러 평평하게 만들어내니 그나마 티가 나진 않는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잠시 보다 등을 돌렸다.
합장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 걸 할 만큼의 성품은 아닌지라, 이 정도면 딱 됐다고 봤다.
“……자, 이제 어쩌지?”
까마귀 놈의 의도도 모르겠고.
녀석이 노리는 바도 모르겠고.
‘내 몸 상태도 잘 모르겠어.’
어쩐 일을 겪었기에 지금 그릇 꼬라지가 이리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걸렸다.
‘기억이 안 나.’
정신이 끊어지기 직전.
몸에 있던 그릇에서 무언가 흘러넘쳐 육체로 스며갔다.
분노한 몸뚱이 위로 따뜻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천마의 마경문 속에 있던 처소였지.
‘뭘까.’
그 짧은 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그냥 천마가 와서 구해주었다고 하기엔.
‘느낌이 이상해.’
남은 육체의 흔적이 미묘하다.
단순히 격통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이건…….’
까마귀에게 느꼈던 아득하고 이질적인 존재감.
그게 내 육체에 남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더불어, 이 기운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알고 있기에 더 그렇다.
이건
‘신목에서 얻어낸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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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번, 그곳에서 얻어냈던 신목의 기운. 내 그릇에 담겨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게 어째서인지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과연 좋은 반응일까.
나로선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를 봐야 묻는가 하는데.’
이 지역의 신목이나 상태 때문인지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고.
계획이 헝클어져 복잡해졌다.
‘어쩌지?’
이제 어떻게 할까.
‘일단 화산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럼.
‘쟤는?’
천마 옆에 있는 야랑은 또 어찌할까. 쟤도 데려가야 하나?
고민이 연신 떠오르던 찰나.
치직-!
“음?”
귓가에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칙. 치칙.
뭔가 튀겨지는 소리 같은 느낌.
불편함에 왼쪽 귀를 만져보는데.
-……들리더냐?
“……!”
놀랍게도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심지어 아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장로님?”
거북이의 목소리가 틀림이 없다. 이게 뜬금없이 왜 들리는 거지?
놀라 눈을 키우고 있으니.
-……당장, 돌아오거라. 화산에 일이 생겼다.
“…….”
거북이의 말이 이어졌고.
그 순간 고개를 돌려 몸에 불을 피워냈다.
화르르륵—!!!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