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480)
Chapter 480 – 썩어버린 것.
깊게 파인 구덩이.
그 아래를 보던 나히는 숨을 참아야 했다.
호수의 물이 전부 빠진 건 둘째 치고, 그곳에 있는 인물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설마?’
나히의 미간이 가득 찌푸려진다.
육체의 느낌이 다르고 생김새에 변화가 있었지만, 나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다.
저자는.
직전에 독천호수에 몸을 날렸던 구양천이라고 말이다.
‘어떻게?’
이해할 수 없었다.
저 호수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있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 모습이 어째서…?’
구양천의 모습이 직전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입은 옷은 물론이거니와, 키가 멀리서 봐도 예전보다 커져 있었고 몸집도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예전의 모습이 날렵하고 다소 말라보이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건장한 청년이라 봐도 무방했다.
‘거기에…. 혼자가 아니야.’
옆에 무언가 있었다.
저게 뭐지? 나히가 눈을 좁히며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구양천 옆에 있는 무언가가 조금 더 확실하게 보인다.
‘마… 물?’
적어도 인간의 형태는 아니었고, 아무리 봐도 마물이었다.
청색 비늘을 지닌 것으로 보아, 청등급 마물인가? 그렇다기엔 색이 다소 연했다.
진한 청색보다는 하늘색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나히가 조심히 마물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으니.
스윽.
마물의 눈이 나히에게 향한다.
“…!”
분명 거리가 있었는데, 마물은 나히를 감지한 듯 똑바로 그녀를 쳐다봤고.
크르르르-!
흉악하게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위협했다.
그 으르렁거림에 나히는 자신도 모르게 등골에 소름이 돋아야 했다.
‘… 뭐야?’
고작 해봐야 청등급 마물의 위협이다.
절정급 암살자인 자신이 이런 위협에 겁을 먹을 리가 없을 텐데.
알 수 없는 경각심이 느껴져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모습이 변한 구양천은 물론이고, 저 옆에 마물은 대체 뭐지?
나히가 의문과 당혹을 품으며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 무렵.
“… 헙…!”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반응을 참아야 했다.
갑작스럽게 이변이 나타났는데, 그게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우드득-!
구양천의 육체에 변화가 나타난다.
몸이 살짝씩 비틀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끝에는.
‘작아지고 있어?’
키가 줄어들고 몸집이 왜소해진 것이다.
왜소해졌다고 하기는 다소 애매할지도 모른다.
호수에 뛰어들기 직전의 모습이 되었을 뿐이니까.
커진 모습이 진짜인지.
작아진 지금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마찬가지다.
이를 확인한 나히는 그대로 몸을 돌리려 했다.
이상했다. 저 인물은 분명 무언가 이상했다.
도망쳐야한다. 나히의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독왕에게로? 아니면 당덕에게로?
어느 쪽으로 향하든 문제였지만, 우선 나히는 몸을 움직였다.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라 봤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가?”
“–!!!”
달아나려던 나히의 앞에 누군가 나타나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다.
암객으로 살았던 나날 덕일까. 나히는 간신히 비명을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 나히의 앞을 막아선 이는, 바로 방금까지 구덩이에 있던 구양천이었다.
“어디 가냐고.”
구양천은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한껏 미소를 짓고선 나히를 바라본다.
나히는 그 미소가 되레 두려웠다.
이는 외형 때문만은 아니다.
‘뭔가… 뭔가가.’
앞에 있는 구양천의 분위기는, 처음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뭐랄까.
절로 무릎을 꿇고 싶어지게 만드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내가 잘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
사박.
구양천이 한 걸음 다가온다.
이에 나히는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지만. 그마저 하지 못했다.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도망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라는 경고. 그런 걸 내가 안 했던가?”
“…”
“기억이 안 나서 정말 물어보는 거야.”
했었다.
말은 얼마든 도망쳐도 된다고 했지만.
그때 느껴지던 눈빛이.
또한 그의 기운이, 다른 답을 나히에게 말해주었었다.
그렇게 하면 두 다리를 뽑아 버리겠다고.
구양천의 눈빛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히의 표정을 읽었는지 구양천이 묻는다.
“근데 왜 도망쳤어?”
“… 당… 당신… 대, 대체… 정체가… 정체가 뭐죠?”
공포에 짓눌렸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암객으로 살아온 삶이 있거늘, 나히가 이토록 당황을 머금은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히의 물음을 들은 구양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체라.”
말과 동시에.
“억.”
나히의 시선이 흔들린다.
“그러게.”
구양천이 나히의 목을 잡아채, 들어 올린 탓이다.
“이젠 나도 모르겠어. 천천히 좀 알아가려고.”
“끄으윽….”
죽일 생각인 걸까.
그럴 것이다.
이 자는 자신의 비밀을 알아차린 인물을 살려두는 멍청이로는 안 보였으니까.
‘이대로….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이 온다.
나히는 몰려드는 공포심에 온몸이 떨려왔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로 인한 공포심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는 것.
무능하게 이 땅에서 작별을 고하는 게 무서웠다.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거늘…. 이대로 죽는다고?
“살… 살려…. 살려주… 세요….”
목에서 느껴지는 압력과 온몸을 죄어오는 공포를 뚫고 목소리가 튀어 나간다.
그걸 들은 구양천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신기하네. 살려달라고 빌 인간은 아닐 거로 생각했는데.”
“저는…. 이… 이렇게 죽… 으면 안….”
“닥쳐.”
“…!”
후욱-!
서늘한 기운이 나히의 몸을 관통한다.
살기인가? 아니, 그와는 조금 달랐다.
“짖는 게 시끄러워. 입 닫고 있어 봐, 죽일 생각 없으니까.”
말과 달리 행동은 여전하다.
목을 잡고 있는 손에 압력은 그대로였고.
나히를 보는 눈빛 또한 그대로였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
더 나아가 자신을 생명체로도 취급하지 않는 거 같은 어둑한 눈빛이다.
“널 왜 죽이겠어.”
웃는 것 같지만, 서늘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나히의 귓가를 파고든다.
“안 그래도 지금도 되나 안 되나 시험해봐야 했는데. 딱 좋은 실험체인데 말이야.”
실험체.
듣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 단어가 나히의 속을 깊게 파버린다.
소름이 끼쳤다.
자신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거지?
그런 나히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된다.
스으으으으….
“… 어… 꺼으억….”
목을 잡은 손끝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나히의 몸을 침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뜨겁다.
미칠 듯이 뜨거운 열기다.
하물며 혈도를 파고드는 기운에는 마치 가시라도 돋친 기분이었다.
기운이 지나갈 때마다 몸속에서 상처가 나는 느낌이다.
“끄… 으하… 하… 으아악!!”
암살자로 살아왔기에, 온갖 고문과 고통에 능한 나히가 참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른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표시였다.
이윽고 기운이 단전까지 파고들어.
꾸우욱-!
그곳에 기운이 똬리를 틈과 동시에.
쿵-!
나히의 심장에 무언가가 강하게 묶이는 기분이 스친다.
이후 엄청난 고통이 나히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앙-!
“꺽.”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히가 눈을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는다.
추욱-….
힘이 풀렸는지 몸을 축 늘어뜨린 나히.
“음.”
그걸 보는 구양천은 나히의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했다.
“죽은 건 아니네.”
나히의 몸에 제대로 섞인 마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마기도 잘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확인한 다음.
휙.
툭-!
나히를 대충 멀리 던져 치워버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히는 힘없이 바닥을 구른다.
툭툭.
이후 손을 대충 털어냈다.
찝찝해서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뭐랄까.
뭔가 만지면 안 될 걸 만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 구양천에겐 저 멀리 쓰러진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여인이 아니라.
이생에 있을 자신의 중요한 이들과.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독천단의 제조법.
그리고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뿐이다.
방금 마인으로 만든 나히?
그런 건 별로 관심 없었다.
아주 조금도 말이다.
******************
사천 어딘가의 숲속.
주변에 나무가 무성했고 청아한 푸른색이 담긴 생기 넘치는 숲이다.
휘이익-! 휘익-!
그 중심에는 들판이 하나 있었는데.
아름다운 숲과 달리, 그 중심은 너무나 과격해 보였다.
멀쩡한 바위가 주변에 하나도 없었으며, 본디 풀을 품고 있었을 잔디 바닥은 죄다 파여 엉망이 되어 있었으니까.
휘익-!
그런 곳에서.
한 사내는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
쉬이익-!
검 끝이 허공을 가른다.
우아하면서 유연하다.
사내의 검을 표현하자면 그러했다.
마치 물결을 검로로 형상화한 것 같다.
검에 휘감긴 검강이 흔적을 남기니, 마치 은하수가 펼쳐진 것 같은 착각이 이르기도 했다.
흐름에 몸을 맡긴 검로.
사내는 검 끝에 시선을 두지 않고, 흐름에 따라 손을 움직인다.
산발이 된 머리칼은 움직일 때마다 휘날렸고. 누더기에 가까운 도복은 여기저기 찢겨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사내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뚝.
문득 사내가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몸을 고쳐세운다.
하아암-
땀이 주륵주륵 흐르고 있었지만, 사내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하품을 한 번 뱉을 뿐이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함 소리가 꽂힌다.
하지만, 사내는 여전했다.
“거, 좀 닥쳐주시면 안 되겠소? 지랄하는 게 하루를 쉬질 않으시구만 그려.”
귓구멍을 열심히 파며 대충대충 답을 내놓는다.
척 봐도 멀쩡하진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사내의 별호는 무당괴선.
중원에 이르러 괴짜라 불리는 삼인 중 한 명이었다.
[—-!]“내려가긴 어딜 내려간단 말이오. 저번에도 한 번 내려갔다 왔구만, 좀 참으실 수는 없으시오? 나이도 그득한 양반이 참을성이 없어.”
[—]“하, 참으로 속이 뻔하시오.”
끌끌.
무당괴선이 웃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엿 같은 집구석엔 돌아갈 생각이 없소. 당신께서도 아시지 않소?”
[—]“나는, 무당의 도인으로 살 게요. 꼬우면 그냥 꺼지시라니까?”
[—–.]“그렇지, 나밖에 없지. 그러니까 당신이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고. 그럼 얌전히 좀 계시오. 확 버려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열심히 혼잣말을 내뱉던 무당괴선이 바위로 다가가 툭 하고 걸쳐 앉았다.
거기엔 미리 준비해놨는지 대충 말아놓은 주먹밥이 놓여 있었다.
이를 대충 잡고 한입에 집어넣는다.
옷에 밥풀이 떨어지고 손에 있던 먼지가 뒤섞여 들어가지만, 무당괴선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어 입을 더 삼키고선, 무당괴선이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아, 물을 안 가져왔구먼.”
이런 이런.
실수다. 물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거 참 곤란하구만.
살짝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무당괴선은, 갑자기 나무가 그득한 숲을 쳐다본다.
“이렇게 됐는데. 물 좀 가져다주시면 안 되겠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숲, 대뜸 그곳으로 혼잣말을 내뱉는 무당괴선.
하나, 놀랍게도 숲에서는 이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스르륵.
나무 기둥에서 누군가 차분한 걸음으로 나타난다. 이를 확인한 무당괴선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침을 한 번 뱉었다.
그런 무당괴선을 향해 의문의 인물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무당괴선은 너무나 싫었다.
“오랜만에 본 할애비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게냐.”
“손님으로 오셔놓고 아무것도 안 들고 온 노인네가 할 말은 아니십니다만.”
허허.
무당괴선의 말에 숲에서 나타난 이가 웃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더불어 청색 무복을 입고 등에는 안휘의 주인임을 뜻하는 한자가 쓰여있다.
남궁.
분명 노인의 등에는 그리 적혀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착각이라니, 그건 먹는 게요?”
“나는 손님이 아니란다. 나는 그저.”
노인의 정체는 바로.
천하 삼존의 일인이자, 남궁가의 절대 고수.
천존(天尊)이었으며.
또한.
“집 나간 손주 놈을 잡으러 온 할애비일 뿐이지.”
무당괴선 남궁형의 조부 되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