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805)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806화(805/820)
을령검후의 자식.
그렇게 적힌 서찰에 묵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 반응을 지켜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궁금했다.
과연 과거에 무림맹에 있던 묵연이란 사내는 을령검후에 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또한 그때 ‘전쟁’에서 있었다는 일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당신도 관련이 있는가.’
묵연이란 노인은 그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그것이 내겐 궁금한 일이었고 구태여 적지 않아도 될 말을 적은 이유기도 했다.
그러니 보여라.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그때 당신이 봤던 세상에 관한 감상.
그걸 조금이라도 보여라.
그런 마음으로 묵연을 지켜보고 있자니.
“…을령검후…. 그녀가….”
“…”
묵연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고.
그걸 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보류.’
반응이 미묘하다. 충격이라 하기도 그렇고 애틋함이라 하기도 그렇다.
애틋이라면 무엇이 애틋하겠는가.
뭔가 떠올리긴 한없이 부족한 반응.
그래서 아쉬웠다.
‘당신이 몰랐을 리는 없어.’
묵연이 을령검후에 관해 몰랐을 가능성?
없진 않으나 거의 무(無)에 수렴한다.
당시 전성기라 불리던 무림맹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서 했을 노인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가 돌아온 지 기껏 해봐야 보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맹은 체계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작살 나고 있던 민심을 되돌리고자 수를 쓰기 시작했고. 고인 물을 빼고 망가진 체계를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속도와 안전성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맹 내부와 외부의 일을 모른다면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했거늘.
한동안 쉬다 온 노인네가 이 정도인데 그때의 묵연은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장난 아니었겠지.’
아무리 봐도 이 노인이 사정을 몰랐을 가능성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상황에 따라 이를 같이 도모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알면서도 묵인했거나.’
나는 이 둘 중 묵연이 어느 부분에 속하는지가 궁금했다.
물론.
‘둘 중 어느 것이라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지만.’
이중 묵연의 선택이 무엇이었든 그를 없앤다는 선택지는 바뀌지 않는다.
결과를 향하는 과정에 변화가 생길 뿐.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묵연의 반응은.
‘아직은 더 떠볼 필요성이 있다.’
그렇게 떠올리며 묵연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내게 말을 덧붙인다.
“어찌 성룡대주께서 이 여인을 알게 된 겁니까…?”
나와 을령검후의 자식. 봉순이와의 관계성을 묻기에 표정을 정돈하며 말했다.
“거기까지 제가 말씀드려야 합니까? 이건 계약에 없던 물음 같은데요.”
“…”
어떤 사정을 지녔어도 내가 원하는 다섯은 검대원으로 받아들인다.
그게 조건에 적힌 글귀였다.
그런 만큼 묵연이 내게 말을 물을 수는 없다.
이를 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성룡대주.”
“예.”
“…그대는 을령검후가 누군지 알고 계시오?”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지요.”
뭐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묵연에게 답했다.
“정사대전을 준비하던 죄인 아닙니까.”
“…”
덤덤한 대답에 묵연의 눈썹이 희미하게 움찔했다.
그래, 을령검후는 반역자이자 죄인이다.
그게 현재 무림맹이 만든 역사였다.
“그걸 알면서도 이 여인을 데려왔다는 뜻입니까?”
어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어투.
그걸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야 했다.
“하하. 묵 책사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
“…뭐라구요?”
“어미가 죄인인 것과 이 여인이 죄인인 건 좀 다른 문제 아닙니까? 심지어 사생아라고 하잖습니까.”
“…”
“게다가.”
손을 뻗어 서찰에 적힌 글귀 하나를 가리켰다.
“무엇보다 아미파가 여인을 입증하고 있다는데. 불안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피연연.
피가의 여식이자 그녀를 지지하고 있는 존재는 아미파. 그것도 장문인인 권선이다.
다른 곳도 아닌 구파일방이 신원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덕에 명분은 이미 충분했다.
단지.
‘아미파라는 게 걸리겠지.’
다른곳도 아닌 아미파.
내가 볼 때 을령검후와 아미파. 그리고 맹은 무언가 엮인 게 있을 터였고 그 탓에 신원을 보증한다고 해도 묵연의 속에선 의문이 터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혹, 걸리시는 거라도 있으신지요.”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한들, 세간의 인식이라는 게 있습니다.”
“뭐, 그렇겠지요.”
“이는 맹 내부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아무리 성룡대주께서 조건을 언급한들 말입니다.”
“문제라…. 죄인의 자식을 무림맹에 넣는다는 것 말입니까?”
그것도.
“성공했다면 정사대전의 불씨가 됐을 여인의 자식을?”
“…맞습니다.”
묵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당신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말이다.
“으음.”
당연히 그런 척이었다.
“묵 책사님. 그럼 어떻게 할까요. 빼고 다른 사람을 넣을까요? 전 그래도 별 상관없기는 합니다.”
문제가 된다면 빼겠다.
평범히 뱉은 말이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문제가 될 것 같기는 했지만, 혹시 몰라서 넣어본 거라 꺼림칙하면 빼겠습니다.”
“…그건.”
“말씀대로 문제가 있기는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말을 뱉으며 손을 뻗었다. 봉순이에 관련된 서찰만 빼서 가져가려는 의도였는데.
꾹.
“음?”
어째서인지 서찰이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묵연이 서찰을 잡고 안 놓아주고 있었다.
“묵 책사님?”
“말씀하셨던 조건이 있는지라, 무작정 제외하라는 의견은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눈을 좁혔다.
“하면?”
“마지막 줄은 지우겠습니다. 이 부분만 주의해주시면 상관 없을듯 합니다.”
마지막 줄이라는 건….
‘을령검후에 관한 부분인가.’
피연연. 봉순이가 을령검후의 핏줄이라는 정보.
그것만 비밀로 치부하면 상관 없다는 의견이었다.
이 말인즉슨.
‘알면서도 조용히 넘어가 줄 테니. 넣으라는 뜻이고.’
여기에 묵연이 이만큼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이 노인네도 엮인 게 있기는 하다는 것.’
을령검후와 어느 정도 관계성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이건 살짝 무리수 같은데.’
내 무리수가 아닌 묵연의 무리수.
묵연은 나를 경계하고 있다.
날 이용해 무림맹에서 물을 걸러 낼 의도를 품은 것과 별개로. 내게 무언가 의심을 품고 있음을 안다.
거기다가, 내가 마냥 병신은 아니란 것도 묵연은 알고 있을 테니. 이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 챌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묵연은 을령검후의 자식을 신경 쓰고 있다.
중요한 일을 비밀로 치부해서까지 넣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걸 내가 인지했다.
이 과정을 묵연 또한 알고 있을 텐데….
‘근데도 이렇게 하시겠다?’
나로선 놀랄만한 일이었다.
당연히 빼라 할 것이라 봤다. 그래서 다음 수단도 이를 염두해두고 짜놓았건만.
‘이렇게 되면, 세 번째로 가야겠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파기다.
즉시 세 번째로 가야 했다.
“이미 묵 책사님께서 아시는데 비밀로 한다고 뭐 달라지겠습니까?”
“해결 방안은 준비해 두겠습니다. 아미파와는 따로 제가 얘기해보죠.”
“음.”
신경 쓰는 걸 감출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
이 정도면 안 물어볼 수 없었다.
“왜요?”
내 물음에 묵연의 인상을 찌푸렸다.
“…”
“을령검후 자체가 문제입니까. 아니면, 그녀의 딸인 게 문제입니까. 묵 책사께서 이렇게 나오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상대의 무리수를 떠올리며 나도 살짝 대놓고 물었다.
그러자 묵연의 눈에 살짝 날카로움이 담긴다.
“말씀의 대답은 직전에 대주께서 제게 한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물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놨으니 너도 묻지 말아라. 그런 의미였다.
‘쯧.’
아쉽지만 말마따나 더 파고들어봤자 나올 건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수확이다.
‘묵연이 과하게 신경쓰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남은 건 알아보면 그만이었다.
“예, 뭐. 그럼 된다는 걸로 확인하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듣고 곧장 등을 돌렸다.
동시에 손을 들어 볼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냈다.
얻은 건 많은 얘기였지만. 아쉬운 게 하나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알았겠는데.’
내가 묵연에 관해 한 가지를 더 알았듯.
묵연도 아마 눈치챘을 것이라는 거다.
‘내가 을령검후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것.’
이를 온전히 알았는지, 혹은 그럴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는지까진 모르겠지만.
뭔가 낌새는 알아 챘을 것 같았다.
하여 지금이라도 등을 돌려 묵연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건 외통수야.’
이건 확신을 줄지 모를 행위기에 참아냈다.
끼익.
문고리를 잡아끌며 침음을 삼켰다.
담화의 끝에서 얻어낸 말을 떠올린다.
봉순이가 을령검후임은 밝히지 말라.
묵연의 말은 그러했고.
‘들어줘야겠지.’
나는 그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내가 안 밝히면 되는 거잖아?’
입이야 내 입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묵연에게서 빠져나와 다시금 성룡대로 향했다.
곧장 향한 건 아니었고. 잠시 철룡대를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다.
은랑검에게 물을 게 좀 있어서 향했는데, 아쉽게 그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덕분에 철룡대원들의 찡그린 눈빛만 보다가 나왔다.
새끼들이…. 은랑검 팬 건 내가 아닌데 왜 날 아니꼽게 보는지 모르겠다.
한번 엎어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은랑검을 봐서 봐준다.’
생각보다 정상인이었던 은랑검. 그 인간을 봐서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쌍의환검이었으면 다 못 걸어 다니게 만들고 나왔을 텐데.
‘쯧.’
아무튼.
짧게 혀를 차며 대대로 향했다.
아직 약속했던 한 시진이 되려면 좀 남았지만, 남은 건 가서 구경하면 되겠지.
‘어떻게 됐으려나.’
일단 시켜놓고 나오긴 했는데. 일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말마따나 치고받으라고 한들 사이좋게 대화로 풀었을지는 모를 일이지 않은가.
‘맹 쪽 놈들은 몰라도 지원한 쪽은 적당히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단 한 명도 절정 이하가 없다.
과하게 강한 전력으로 모인 집단이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편할 수 있었다.
완벽한 전력 차는 구태여 싸움을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맹 쪽 놈들만 개판으로 싸우고 그쪽은 좀 평화롭지 않았을까.
그런 예상을 하며 성룡대로 향하는데.
후웅-!
“음?”
걷다가 문득 기운이 느껴졌다.
진득하고 짙은 내기의 바람이다.
‘어라….’
이를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익숙한 감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만 느끼는 게 아닌지, 주변에 어렴풋 보이는 무인들도 한곳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위치는 성룡대가 있는 방향.
이를 느끼자마자 걸음을 좀 빨리 내디뎠다.
그극-!
쿠웅-!! 끼기긱–!!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운은 물론이고 소리까지 커져간다.
“…”
여기까지 느끼자 발 끝에 힘을 줘 도약했다.
직감이 온다. 뭔가 일이 터졌음이 말이다.
후욱-!
순식간에 광경이 뒤바뀌며 대대 내부로 도착했다.
그 순간.
“미친.”
펼쳐진 광경에 욕을 내뱉어야 했다.
끼기기긱—!!! 쾅-!!
“으악!”
“피, 피해!”
내부에선 엄청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칼날의 풍압.
어찌 저리 과격한지 모를 내기의 향연.
검강으로 만들어진 격렬한 돌풍 속 내가 주변을 살폈다.
“가, 가까이 다가가지 마!”
“휘말리면 죽는다!”
맹 쪽 무인은 물론 지원한 이들도 다 같이 검강을 피하기 바쁘다.
중간중간 기운을 쳐내며 흘려내고 있었고. 혹여 기운이 피해를 줄까 이를 힘껏 막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때.
후아아악-!!
검강 하나가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즉시 손을 휘둘러 기운을 쳐냈다.
파강-!
검강이 부서지며 파편이 휘날린다. 손끝이 저릿했다.
상당히 강한 기운임은 물론이며.
‘…이 기운.’
너무도 익숙한 기운에 미간이 안 좁혀질 수가 없더라.
“대, 대주님-! 괜찮으십니까?”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내쪽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다.
심사때 도움을 줬던 열투전검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
“설명.”
“예, 예?”
그때는 존댓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변한 말투에 열투전검이 일순 당황을 품지만.
“지금 이 상황. 설명 좀 해달라고.”
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저 소용돌이의 주인.
금빛 어검과 격렬한 우레의 돌풍.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검강의 주인은 다름이 아니다.
“쟤네 왜 저러고 있는 건데?”
남궁비아와 위설아.
두 사람이 서로 죽일 듯 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