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03)
성황의 아이들-103화(103/469)
§ 103. 오르토나 내전 (2)
그날 이후, 가엘은 종종 새로 사귄 용병과 어울려 다니는 키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용병은 바트라고 불리는 소년이었는데, 얼마 전 합류한 애스트로스 용병단의 객원 단원이었다. 일전에 가엘이 눈여겨보았던 그 심상치 않은 자질의 소년이다.
키케는 그 용병을, 마치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라도 된 것처럼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공화파 진지에는 또래 아이가 없는 데다, 아이의 아버지 베니시오 왕자는 작전 회의에 들어가 있거나 아니면 술병만 끌어안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키케가 기껏 찾은 그 젊은 친구가, 다른 어른 용병들보다 더 나이 든 사람처럼 굴고 있다는 점이었겠지.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울분이 이렇게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면 곤란하지 않으냐.”
“그거 알아? 형은 가끔 진짜 어려운 말을 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고리가 걸렸다고 무기를 함부로 발치에 집어 던지면 다친다는 말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키케를 향해 타이르며 소년이 한숨을 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엘이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의 정강이가 제법 깊게 패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뭔가가 세게 긁고 지나간 자국이다.
단검 고리가 검집에 걸려 좀처럼 빠지지 않자 홧김에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튀어 올라 하필이면 정강이를 찍었다고 키케가 멋쩍은 듯 설명했다.
“키케 님, 일단 왕자님의 막사로 돌아가 처치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가엘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의 상처 위에 바트의 손이 올라오더니, 이내 그 위로 신성한 하얀빛이 어렸던 것.
키케의 정강이는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신성력?’
이 소년은 분명 검사라고 하지 않았나?
당황한 가엘과는 달리, 키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마 이런 일이 이전에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마워, 형.”
아이는 바지의 먼지를 툭툭 털며 인사를 했다.
“혼나기 전에 칼은 얼른 도로 갖다 놔야겠어. 그럼 나중에 또 봐!”
키케는 팔을 휘휘 휘두르고는 막사를 향해 힘차게 뛰어갔다.
“…….”
졸지에 소년과 둘만 남게 된 가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찬찬히 이 신기한 소년을 살폈다.
보면 볼수록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함께 모여 있는 듯한 소년이었다.
귀한 집 도련님 같은 방랑 용병. 오르토나어를 구사하는 제국인. 신성력을 가진 검사.
가엘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지 내 의료 사제보다 오히려 솜씨가 좋아 보이는군. 왜 사제가 되지 않았나?”
그러자 잠시 알 수 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가엘을 바라보던 바트가 되물었다.
“진지 내 참모진보다 문장 솜씨가 더 좋으시더군요. 왜 문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최근의 암울한 상황에 정신 못 차리는 참모진들을 대신해, 이따금 가엘이 대외 선전문을 쓰는 것을 일컫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괜찮았던 것 같지만.
아니,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무려 동부 최강의 검사이자 대륙 최연소 소드 마스터에게 왜 검을 들었냐고 묻다니?
“…선전문을 읽었나?”
“읽었습니다. 명문이더군요. 아마 공화파의 처지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았더라도, 왕당파 측 병사들이 대거 전향하고 싶어졌을 겁니다.”
“…….”
다시 말하면, 그럼에도 전향하지 않을 정도로 공화파의 처지가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공화파 최후의 검]이라고 불리는 장군 앞에서 너무 가차 없는 언사 아닌가.
“지극히 부정적인 전망이군. 아직은 모르는 일이네.”
“아마도 변수는 없을 겁니다, 장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러나 공화파의 가치에 동조하는 많은 이들이 아직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있네. 자네가 속한 애스트로스 용병단 역시 밀로 백작의 후원으로 공화파에 참전하고 있지 않은가.”
“밀로 백작은 적당히 주어진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가 빠져나갈 적기를 정말 모르리라 생각합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소년이 키케에게 일러준 말들이 떠올랐다. 밀로 백작은 상인 연합의 편이라 했던가.
가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도 내심은 그렇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역시 그런가. 어쨌든 그의 의중을 미리 귀띔해 준 것은 고맙네. 이후 참고하도록 하지.”
그러자 소년은 입을 다물고 잠시 가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팔을 들어, 이내 소드 마스터의 어깨 위로 태연하게 손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
그 당당함에 오히려 가엘이 더 당황했을 정도였다.
가엘이 그가 하는 양을 가만히 두고 본 이유는, 어떤 돌발 사태에도 반응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쩐지 그러한 소년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탓도 있었고.
곧이어 바트의 손에서 환한 빛줄기가 터져 나와 온몸을 감쌌다. 순식간에 자잘한 두통과 통증이 사라지고, 몸의 근골격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러 유저가 된 이후 부상과는 큰 인연이 없었던 가엘에게는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본래 신성력이란 것이 이런 느낌인가?’
그리고 그제야, 가엘은 최근 자신의 몸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낮에는 홀로 전선을 동분서주하고 밤에는 참모들의 업무 일부를 떠안는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소드 마스터의 체력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바트는 손을 떼어내더니, 그에게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과도한 압박감을 공화국을 향한 열정으로 승화하고 있는 중이라 착각하며 의념을 움직이니, 이를 아무리 보상하려 해도 결국은 오러가 다다르지 못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가엘이 어리둥절하여 반문했다.
키케의 말이 적어도 하나는 맞았군. 이 소년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자 바트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어쩐지 냉랭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쓸데없이 미련하다는 말입니다.”
“…….”
갑작스러운 인신공격에 가엘은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뒤돌아선 소년에게서 그가 느낀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진심의 파동이었다.
* * *
파파파파팍!
사방에서 화살의 비가 쏟아져 내린다. 여기저기서 절망에 찬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지를 점한 적군이 작정하고 때려 붓는 화살 세례에, 이쪽의 궁수들은 응사를 하기는커녕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기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분명 보급을 위해 철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화파의 노장군 가스파르가 비명처럼 고함을 지른다.
그리 많지도 않은 아군의 병사들이 허무하게 쓰러져 가고 있었다.
적의 주력 부대가 철수를 준비한다는 정찰병의 보고에, 지형적인 손해에도 불구하고 의기양양하게 우익 부대 대부분을 이끌고 달려온 것이 패착이었다.
적어도 근처에 있는 카스티야의 요새를 지키며 적을 맞았더라면 결코 입지 않았을 피해.
그러나 카스티야 백작은 공화파의 잔당에게 요새를 내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관문을 철저하게 단속하며 공화파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공화파는 변변한 엄폐물 하나 없는 넓은 평원에 진지를 꾸리고, 이후 끊임없이 밀려드는 왕당파의 군대를 상대해야 했다.
끝없는 소모전에 지친 그들이, 밀려나는 전선의 활로를 찾기 위해 무리한 돌파를 강행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스파르 장군!”
작은 수레를 엄폐물로 삼고 있던 기사 하나가 잠시 화살비가 주춤하는 사이에 노기사를 향해 달려왔다.
“이대로는 버티지 못합니다! 서둘러 퇴각해야 합니다!”
“어디로? 어디로 퇴각한다는 말인가.”
노기사의 물음에 기사가 정신을 차리고 남쪽 평원을 바라보았다.
보급을 위해 철수한다고 생각했던 적의 주력 부대가 어느새 그들의 뒤에 나타나 있었다. 군의 우익이 중앙 진영과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사기 등등한 왕당파의 기마대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결국 가스파르의 부대는 스스로 적의 모루에 뛰어들어 망치를 얻어맞을 꼴이 된 셈.
노기사는 이를 악물었다.
“그나마 적의 수가 적은 고지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멸이야!”
“그러나…….”
“조금만 더 버티게! 한 걸음이라도 더 고지를 향해 전진해야 해! 그러면 곧 그분이 지원을 오실 것이다!”
노기사의 말에 기사의 흔들리던 눈빛이 초점을 되찾았다. 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궁수 부대를 향해 달려갔다.
가엘 베르트란.
공화파가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스 평원에서 오랜 기간 진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공화파 최후의 검의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전선에서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 달려왔으며,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적군을 견제하는 강한 억제력이 되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림 없이 그들을 향해 내달리던 적 기마 부대의 후방에 작은 동요가 일어났다. 가스파르가 이끄는 우익 진영과 막 격돌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파악!
멀리서 길고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번쩍이며, 파도 같은 일렁임을 만들어냈다.
“…가엘 장군!”
적의 기마대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그들은 그대로 고립된 공화파 군대를 향해 돌진해야 할지, 아니면 뒤로 돌아 소드 마스터의 습격에 대항해야 할지 몰라 잠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시리게 푸른 검 날은 적의 기마 부대를 후방에서부터 도륙 내기 시작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베어 들어오는 터라 변변한 비명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히히히힝!
말들이 요동치는 가운데, 소드 마스터는 그대로 일직선으로 말을 달려 좌우의 적들을 단칼에 쓸어내며 기마대의 정중앙을 가로질렀다.
마침내 기마대 최전방에 있던 기사의 가슴이 가로로 쩍 갈라진다 싶더니, 곧 가스파르의 앞에 점잖은 인상을 가진 장년의 기사가 도착했다.
동부 최고의 검사.
적의 기마대를 중앙에서 가로질러 온 주제에 호흡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괴물이었다.
“가스파르 장군.”
구사일생으로 전멸을 면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노기사를 향해, 가엘이 덤덤한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적이 철수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온 정찰병은 카스티야의 첩자였다. 지금 그를 처형하고 중앙 진영을 정비하고 오는 길이네.”
“카스티야 백작, 그자가…….”
가스파르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영지를 걸어 잠글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건만. 결국 카스티야 백작, 그 작자는 왕당파의 손을 잡은 것이다.
앞에서는 그들을 달래듯 얼마 안 되는 군수품을 쥐여주고는, 뒤에서는 안드레스 평원에서 그들이 말라 죽기를 바라며 첩보를 교란하고 있었다니!
분노로 몸을 떨고 있는 노기사를 잠시 바라보던 가엘이 말을 돌리며 말했다.
“군대를 정비하게. 곧 중앙에서 오는 별동대가 기마대를 상대할 것이다. 우리는 그 틈에 고지를 향해 진격한다.”
그가 들고 있는 은색의 검 아르쥬나는 여전히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은 채였다.
노기사는 멍하니 그의 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가엘 장군은 신기하게도 첩자를 귀신같이 잘 잡아내곤 했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재주라도 있는 것처럼.
“으하하하하하!”
그때 저 멀리서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드 마스터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적의 기마대에서 또다시 커다란 동요가 인다. 가엘의 뒤를 따라 달려온 중앙의 별동대였다.
기마대의 전열이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 사이로, 뚜렷한 외기를 흘리는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거구의 남자가 나타나 신나게 기마대를 두드리고 있었다. 별동대의 구성원 대부분은 얼마 전 그들의 후원인 중 하나가 새로 고용한 작은 용병단이었다.
애스트로스 용병단의 단장, 저스틴이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다.
“모두 덤벼라! 계약 외의 임무렷다! 두당 얼마가 되었든 우리 호구 장군님이 그리 짜게 매기지는 않으시겠지!”
“호구…….”
노기사가 얼빠진 얼굴로 가엘을 올려다보자, 그는 옆으로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