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04)
성황의 아이들-104화(104/469)
§ 104. 오르토나 내전 (3)
오르토나에는 [헤네시스]라 불리는 독특한 오러 연공법이 있다. 그리 짧지 않은 검 날에, 힐트 또한 검신의 2/3가량의 길이로 뻗어 있는 헤네시스 장검에 특화되어 있는 연공술이다.
헤네시스 장검은 양손 검과 창의 이점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아름다운 검이었다. 보통 물결무늬의 섬세한 검 날에 화려한 가드와 폼멜을 가지고 있어, 혹자는 이를 단순한 귀족들의 장식용 예검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지간한 창에 맞먹는 넓은 공격 범위에 장검치고는 빠르게 회수 가능한 공속, 그리고 흉포하게 살을 찢어발기는 울퉁불퉁한 칼날의 위력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다시는 장식용 검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헤네시스 연공법의 진수가 지금 안드레스 평원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서걱!
그렇지 않아도 긴 검 날에, 두 치는 더 길게 덧씌워진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빠르게 원을 그리며 휘둘러진다. 달려들던 기마병 둘이 그대로 말과 함께 두 동강이 나 바닥을 굴렀다.
자신이 기마대를 상대하는 쪽이 시간당 효율이 좋다고 판단한 가엘 장군이 다시 기마대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히이익!”
주위의 기마병들이 기겁을 하며 재빨리 말머리를 돌린다.
날뛰는 소드 마스터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고자 기마병들이 대열을 흩트리며 갈팡질팡했다. 근처에 있어 봤자 그를 막기는커녕, 연무장의 허수아비처럼 그대로 썰려 나갈 뿐이었으니까.
그들 또한 왕당파의 최정예 기마병이었지만, 감히 가엘 장군의 긴 간격 안으로 검을 밀어 넣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또다시 휘리릭 가볍게 팔자로 휘둘러지는 검. 등을 보이고 달아나던 기마병 여럿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선으로 길게 동강 나며 땅으로 엎어졌다.
히히히히힝! 매캐한 흙먼지가 일었다.
“휘유, 정말로 괴물 같은 양반이구먼.”
별동대의 선두에 서서 신나게 검을 휘두르던 용병대장 저스틴이 휘파람을 불었다.
겉보기에는 점잖고 얌전해 보이는 양반이, 한번 검을 뽑으면 그야말로 인간 재해가 따로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해진다.
가엘 장군의 주위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기세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적군은 손을 덜덜 떨며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들 별동대가 하나하나 썰어내는 적들보다, 저 소드 마스터가 단칼에 쓸어내는 기마병이 훨씬 많을 지경이니 말 다 한 거지.
저스틴은 쓰고 있던 살릿의 바이저를 위로 밀어 올리며 힐끔 옆을 돌아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소년 쪽을.
“바트. 넌 왜 요즘 계속 그런 얼굴이야? 아직도 이번 의뢰를 받은 게 불만이냐?”
처음부터 이번 내전에 참전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던 소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수가 적은 그가 최근 눈에 띄게 침울해 보여, 그를 반쯤은 억지로 데려오다시피 한 저스틴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소년은 잠시 멀리서 휘몰아치는 푸른 오러를 응시하더니 저스틴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결국 끝이 정해져 있는 일이지. 이런 일은 뒷맛이 좋지 않아.”
“그거야, 뭐…….”
용병대장은 말끝을 흐리더니 곧 어깨를 으쓱하며 과장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를 고용하신 양반들이 걱정할 일이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
“…….”
소년은 대답 없이 철컥, 쓰고 있던 살릿의 바이저를 내렸다. 곧 얇은 바이저의 틈으로 기이한 은빛의 안광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심상치 않은 기세를 눈치챈 저스틴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너 뭐 하려고?”
“빨리 끝낼 거다.”
“뭐?”
“…미안하다.”
흰빛에 감싸인 손으로 말의 목을 쓱쓱 쓰다듬은 소년은, 곧 저스틴이 미쳐 뭐라고 묻기도 전 말의 배를 박찼다. 히히힝!
“야! 잠깐!”
용병 대장의 다급한 외침을 뒤로 하고 소년은 난전의 한가운데로 말을 달렸다. 그가 탄 말이 뒤엉켜 있는 기마대를 이리저리 용케도 피하며 내달린다.
서걱. 이따금 앞을 가로막는 기마병을 향해 그는 주저 없이 검을 휘둘러 갔다.
제대로 된 검식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효율적이며 정갈해 보이기까지 하는 검로. 그렇게 몇 차례의 피분수를 뿌린 소년은 어느새 공화파 잔당의 우익 진영에 도착해 있었다.
푸른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던 가엘 장군이 힐끔 그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 그를 지나친 소년은, 어느새 화살비가 쏟아지는 적의 목책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저… 저런!”
소드 마스터의 지원으로 전열을 정비하긴 했지만, 더는 전진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공화파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스파르 장군이 저도 모르게 엄폐물 뒤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위험해!”
퍼부어지는 화살 속에서, 소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안장에 묶인 검 한 자루를 왼손에 뽑아 들었다. 그렇게 양손에 검을 쥐고서는.
파앙.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순간 엄청난 속도로 말 위에서 솟구쳐 올랐다.
적진의 목책 높이를 훌쩍 넘어서는 비현실적인 도약.
공화파와 왕당파 양측 진영의 사람들이 동시에 입을 쩍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로 뛰어오를 수 없는 높이였으니까.
히히히힝!
그 사이 화살비 속에서 벌집이 된 말이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며 고꾸라진다.
소년 역시 무방비하게 화살에 노출된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용케도 화살 하나 맞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물론 그의 주위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본 것은 가엘, 단 한 사람이었다.
휘이이이. 소년의 몸 주위를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휘감고 돌았다. 그 세찬 바람이 대부분의 화살을 옆으로 비껴 나가게 만들고 있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몇 안 되는 화살은 양손에 쥔 검에서 만들어진 하얀 검막에 막혀 버린다.
“쏴… 쏴라!”
당황한 적진의 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궁수들을 향해 외쳤다. 궁수들이 재빨리 시위를 매기고 허공에 떠 있는 소년을 향해 활을 겨눴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화살을 피했다고 해도, 지금부터 한 번에 쏟아지는 일점사를 모두 피할 수는 없을 터.
그리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허공에 잠시 멈춰 그대로 화살받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년이.
파앙! 공중에서 마치 무엇을 박찬 듯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적진의 한가운데로 쏘아져 나갔던 것이다. 미처 화살을 겨냥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 어?”
목책 뒤에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적장이 얼빠진 소리를 내는 사이, 소년은 그의 머리 위를 넘어 바람을 휘감으며 사뿐 진영 한가운데 내려앉았다.
우우웅! 동시에 그가 오른손에 쥔 검에 옅은 오러가 감싸이더니, 휘익 하고 목책의 한가운데로 날아온다.
무언가를 정밀하게 겨냥하고 집어 던진 것은 아닌 듯,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온 검이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목책 한가운데에 박혀 들었다. 그리고 잠시 부르르 떨리나 싶더니.
째앵! 날카롭게 조각난 쇳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영문을 모르고 주춤거리며 서 있던 궁수 여럿이 그 폭발에 휘말려 들었다.
“으아아아악!”
“아악! 내 눈!”
예상외의 사태에 일순 궁수 부대 전체에 소요가 일어났다.
검이 갑자기 폭발했다? 뻔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지휘관이 눈을 끔벅거리고 있는데.
파앙. 또다시 땅을 박차고 쏘아진 소년은 어느새 적장의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뭐……!”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단말마가 되었다.
적의 지휘관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가 눈 한 번 겨우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허억!”
“괴, 괴물……!”
그 광경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년으로부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바이저 너머로 그의 은빛 안광을 접한 몇몇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마치 인간이 아닌 듯 엄청난 무위를 보여준 소년에 대한 공포가 진영 전체를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공화파의 뒤를 치기 위해 대부분의 병력을 뒤로 빼돌렸던 적의 진영에는, 약간의 궁수 부대와 그리 많지 않은 보병들이 남아 있을 뿐.
그리고 지금 허망하게 지휘관을 잃은 그들의 사기는 완전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잠시 그 모습을 서늘한 눈으로 둘러보던 소년은, 잘린 적장의 머리를 들고는 천천히 목책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휘익.
공화파의 진영을 향해 갑자기 뭔가 동그란 것이 날아와 툭 떨어진다. 소년이 적진으로 난입한 후, 쏟아지던 화살비가 갑자기 멈추자 의아해하며 적의 목책을 살피는 와중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살펴보니 그것은 투구째로 날아온 잘린 사람의 머리였다.
열린 바이저를 통해 가스파르 장군은 그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저 머리통은.
“…알론소 장군!”
공화파 진영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적의 지휘관이다! 어째서 갑자기?
그러나 노련한 가스파르 장군은 지금이 다시없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엄폐물에서 튀어 나가며 소리쳤다.
“지휘관의 머리가 떨어졌다! 모두 적진으로 돌격하라!”
“도… 돌진! 돌진하라!”
뒤이어 다른 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그의 뒤를 따른다.
와아아아아! 부대 전체가 함성을 지르며 고지로 내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화파 진영이 목책에 도달할 때까지 더 이상 화살은 쏟아지지 않았고, 그들은 지금까지 애를 먹은 것이 거짓말인 양 손쉽게 적의 진지를 점거할 수 있었다.
* * *
“이번 전투는 정말로 자네들 애스트로스 용병단의 공이 컸네. 덕분에 아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어. 감사를 표하지.”
가엘은 친히 용병단의 막사를 찾아와 단장 저스틴을 마주하는 중이었다. 급하게 이들을 차출한 터라 아직 적절한 보상에 관해 논의하지 못한 탓이다.
그는 조금 피로한 얼굴이었다. 방금까지 작전 회의에서 당장 카스티야 백작령을 쳐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공화파 인사들과 한참을 씨름한 뒤였기 때문.
물론 지금의 전력으로는 무리한 일이라는 결론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그들을 속인 백작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부러 전선을 넓힐 필요는 없는 일.
거기다 만일 카스티야 요새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멀쩡한 카스티야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중립 귀족들이 일시에 왕당파로 돌아설 빌미가 될 것이었다.
“장군님. 생각해 보니 우리 용병단이 늘 가장 위험한 싸움터에 나서지 않습니까? 역시나 약간의 위험수당이 더 책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가엘을 향해 거침없이 호구라고 부르는 주제에, 이 넉살 좋은 단장은 잘도 뻔뻔하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는 잠시 울컥했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단장의 말도 조금은 일리가 있는 듯 느껴졌다. 일단 저 용병 단장은 진심으로 보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고.
가엘이 고심하고 있는데 옆에서 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스틴. 적당히 하라고 했을 텐데.”
용병 바트.
늘 단장과 맞먹는다 싶더니, 오늘 본 실력은 확실히 단장을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는 자다. 아직 약관을 넘지 못한 어린 소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경지였다.
가엘의 뇌리에는 불가사의한 움직임을 보이며 적진으로 쏘아져 들어갔던 소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라고 해도 좋으리라.
“아니, 하지만 오늘 전투에서 우리가 얼마나 활약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당연히 고생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야?”
단장은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지만 이어진 소년의 말에 곧 입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그럼 먼저, 용병단 내에서 정당한 내 몫에 관해 좀 더 심도 있게 의논해 보는 것이 우선이지 않나?”
“…….”
음음. 저스틴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굴리더니 우물쭈물 가엘을 향해 말했다.
“…장군님, 그럼 위험수당을 올리는 것은 없었던 일로 합시다.”
추가될 위험수당보다 저 소년에게서 갈취하고 있는 금액이 더 크다는 말인가!
가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트라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어린 나이에 비해 참으로 어른스럽다 싶었건만, 자신 못지않은 호구가 여기 또 있었다. 그의 시선에서 뭔가를 눈치챘는지 소년이 눈썹을 꿈틀 움직이자, 가엘은 황급히 저스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기세가 한풀 꺾인 단장과 한동안 보상에 관해 논의를 했다. 곧 만족할 만한 금액으로 합의를 끝낸 가엘은 피로로 축축 늘어지는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년의 물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여간해서는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소년이 처음으로 그를 향해 말을 건 것이다. 의외의 질문에 뒤를 돌아보니, 가엘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은 전에 없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은 이대로 공화파의 순교자가 될 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