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10)
성황의 아이들-110화(110/469)
§ 110. 마물 전담반 (3)
“탄신연이 끝나도 당분간은 마물 전담반을 도우면서 황도에 머무르게 될 것 같아. 이미 레안드로스 경과도 이야기가 된 사항이다.”
로건은 이계 묵시록의 낡은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며 설명했다.
“게다가 아바마마께서 약조해 주셨지. 황도에 있는 동안은 토벌대 운영 자금 일부를 내 개인 자금으로 돌려주신다고.”
그거 용돈 올려줄 테니 집에 얌전히 붙어 있으라는 말인가?
“난 그냥 토벌에만 열중하고 운영은 신경 쓰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토벌대를 한 번 꾸리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더라고. 덕분에 오르토나 재건 준비 자금이 꽤나 늘어날 것 같아.”
성진에게 소리를 죽여 소곤거리는 로건은 조금 기쁜 얼굴이었다.
성진은 어이가 없었다.
너 인마, 죽기 전에는 나이깨나 먹었다는 놈이 지금 완전 성황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걸 모르겠냐?
“그나저나 뭘 보고 있어?”
성진은 로건이 넘기고 있는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라리 발레리 경과는 달리 그림으로 그린 듯한 성기사인 녀석이, 얼마 전까지는 금서로 지정되어 있던 이계 묵시록을 별 거부감 없이 펼쳐 들고 있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하긴, 애초에 이계 묵시록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은 마사인 경뿐인가.
아니나 다를까, 성진이 묵시록에 관심을 가지니 뒤에 서 있던 마사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불편해진다.
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북쪽 지방에서 악마를 토벌하던 중 뭔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악마의 마기와는 전혀 다른 기운을 풍기는 것이었지. 프란시스 경은 그것이 마물이 아닐까 추측하더군. 혹시나 여기 나와 있을까 해서 그걸 찾아보고 있지.”
“마물이? 델크로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고?”
성진은 움찔 놀라며 물었다.
설마 어딘가에 또 게이트가 열렸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쯤 거기서 마물들이 막 쏟아져서 난리가 났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바로 그때, 로건이 페이지의 한쪽을 가리켰다.
“아, 이거 같아! 정말로 이계 생물이었구나!”
마물 전담반의 모두가 몰려들어 고개를 맞대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마계의 푸른 꽃 딜레리아…….”
지브릴이 소리를 내어 페이지를 읽는다.
꽃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그곳에는 푸른 염료로 칠해진 작은 나비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아니, 나비보다는 조금 통통한 몸통에 깃털처럼 넓은 더듬이를 가진 걸로 보아 나방에 가까워 보이는데. 아무튼 핵의 위치까지 제대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역시나 마물인 거겠지.
“천개의 꿈을 거니는 동안 여러 차례 나의 길동무가 되었던 아름다운 생물. 차원과 차원을 넘나드는 여행자이자 마물을 홀리는 마물. 그 꿈처럼 푸른 날갯짓, 신기루 같은 극상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마물들은, 마치 마약에라도 취한 듯 딜레리아를 따르곤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도착하는 곳에 있는 것은 창백한 안식뿐.”
음. 성진의 미의식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이 시구르트라는 저자의 그림 솜씨가 그저 그런 것인가.
그림으로 보기에는 그리 예쁘지 않은 단순한 퍼렁 나비일 뿐인데. 게다가 날개 중앙에 그려져 있는 검은 무늬는 어쩐지 눈동자 같아서 기분 나쁘다.
마왕의 의견은 시구르트의 허풍이라는 것이었다.
[하여튼 겉멋이 철철 넘치는구나. 마물들은 단지 냄새에 이끌리는 것뿐인데. 그저 저것의 알을 잡아먹고 싶어서 따라다닐 뿐이야.]잠깐, 그거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인데?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왕이 투덜거렸다.
[그 난리를 치고도 그새 잊어버렸냐? 내가 전에 말한 적 있잖아? 채널링을 하면서 홀로 차원을 옮겨 다니는 나비가 있다고.]‘…설마 벌레형 마물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알이라고 하는?’
마왕의 설명은 그러했다.
일견 마물들이 홀린 듯이 딜레리아의 나비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둘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마물들은 알의 냄새에 이끌리는 것일 테고, 딜레리아의 나비는 그 알의 옆에 있는.
[암컷을 찾는 거지. 워낙 드물다 보니 딜레리아의 나비들은 암컷을 찾아 차원을 이동하며 다닐 정도니까.]암컷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나방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하지만 무려 차원을 넘나들다니,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걸까.
“이것을 보신 것이 확실합니까? 묵시록에는 다른 나비형 마물도 실려 있습니다만.”
빨강머리 인퀴지터의 물음에 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림과 채도는 조금 다르지만 파란 나비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지 않겠나. 거기다 날개에 있는 검은 무늬가 워낙 강렬해서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렇군요.”
혼자 차원을 이동하며 다니는 마물이라니까, 어딘가에 게이트가 열렸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나비를 악마종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최근 갑자기 마물들이 출몰하는 것이 악마종의 짓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
마침 성진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마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성진은 일전에 브루노 단장으로부터, 회색 역병에 걸리기 직전 [매혹]에 걸려들었던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알을 심은 놈이 혹시 악마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지.
그리고 로건은 해수 토벌 중에 악마와 마물 나비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고.
이 둘을 각각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마침 시기가 절묘하지 않은가.
게다가 딜레리아와 로페룸, 두 마물의 알이 하필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막막하네요.”
지브릴이 한숨 쉬듯 말하자 잠시 마물 전담반 전원에게 침묵이 내려앉았다.
회색 역병의 조사에서부터 나비 마물의 조사, 거기다 악마종과의 연관성까지.
확실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차근차근 풀어가 보자.”
성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회색 역병과 나비 마물의 연관성을 넘겨짚기에는 아직은 밝혀진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섣불리 연결 짓기 전에, 일단은 두 가지 사건을 각각 별개의 것으로 보고 조사해 들어가는 쪽이 오류를 줄일 수 있겠지. 먼저 회색 역병이다.”
마물 전담반 전원이 입을 다물고 성진의 말에 집중했다.
“일전의 마물 소동으로 회색 역병 환자는 사실상 모두 색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집중할 부분은 역병 그 자체가 아니야. 알을 심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인가가 될 거다. 심은 놈을 찾아 족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겠지.”
함정 수사라도 해볼까? 오러를 단전에 묶어두고 빈민가를 어슬렁거린다던가.
그때 지브릴이 슬쩍 운을 떼었다.
“저하, 혹시 일전에 말씀하신 아카데미 학생들을 만나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최근 심문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해요.”
오, 드디어!
“좋은 의견이야, 지브릴. 일단 오늘 중으로 내가 한번 만나보지. 그럼 다음으로 딜레리아 나비에 관해서다. 일전에 그걸 어디서 봤다고 했지, 로건?”
“북쪽 지그스문트 변경백의 영지 부근.”
“그래. 그럼 지금 당장 그곳에 가서 조사하는 건 무리일 거고, 차라리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예전 기록들을 찾아보는 쪽이 좋을 것 같은데? 델크로스에도 그 나비가 나타난 적이 있는가, 혹은 악마종과 마물이 함께 나타난 사례가 있는가 하는 정도로.”
그러자 옆에서 샤론 경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엑소시스트들이 대륙 각지에서 올린 악마종 퇴치 보고서들이 있습니다. 지그스문트 영지와 델크로스를 중심으로 해서 이전 사례를 추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적절하군. 그럼 그 건은 샤론 경에게 맡겨도 될까?”
고개를 끄덕이자, 샤론 경의 창백한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돈다.
“예, 저하.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어중간한 업무로 붕 떠 있어 늘 의욕이 없던 샤론 경이 드물게도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성진은, 아까부터 이상하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빨강머리 인퀴지터를 향해서도 따로 지시를 내렸다.
“발레리 경. 경에게는 이전에 하던 작업을 계속 부탁해도 좋을까? 황도에 나타났던 마물들을 이계 묵시록에서 찾아 분류하는 작업을 지속해 줘.”
“예, 저하!”
발레리 경 역시 싹싹하게 대답하고는 싱글벙글 웃었다. 확실히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젊은 성기사에게는 그 이상 적절한 임무가 없는 듯 보였다.
“흠…….”
그러자 그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로건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냥 자문이라더니, 의외로 부서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데?”
뭐라는 거야?
어디까지나 자문으로서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럼 우리도 슬슬 황궁 의료원으로 움직여 볼까?”
성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로건이 덩달아 일어났다. 당장 이대로 따라나설 기세라 성진이 재빨리 그를 말렸다.
“그 전에 야, 넌 샤워라도 좀 해서 향을 없애고 와. 얼른!”
“어째서? 제법 괜찮은 향 같은데?”
“넌 지금 코가 마비돼서 그렇지, 완전 지독하거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볼 텐데 그게 무슨 민폐야?”
안 그래도 우리 부서가 지금 행정부 내에서는 [마물 전담반]이 아니라 [장미 향수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고!
그러자 지브릴이 억울한 얼굴로 성진에게 항변했다.
“하지만 이 향이 다 저하에게 도움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역병에 걸렸던 환자를 보러 가시는 거잖아요? 이렇게 향기를 두르고 있어야 만에 하나라도 옮는 일이 없을 거라고요!”
“지브릴. 그러니까 역병은 악취 때문에 옮는 것이 아니라니까.”
그러자 지브릴이 발끈했다.
“지금 유서 깊은 저희 라이오라 학파의 가르침을 무시하시는 거예요, 저하?”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진짜……!”
답답해진 성진이 머리를 박박 긁고 있는데, 로건이 지브릴을 향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지브릴 의원. 저희는 오러 유저라 어지간한 역병에 노출되어도 옮을 일이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모레스는 단지, 학생들에게 괜히 경계하는 인상을 줄까 우려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라이오라 역병 의사들의 훈장과도 같은 이런 좋은 꽃향기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죠. 언제나 최전선에서 역병의 악취와 싸우시느라 노고가 크십니다.”
“그, 그런… 그런 거라면…….”
“그러니 크게 걱정 마십시오. 아,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면 역병회에서 새로 발생한 회색 역병 환자 보고가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금방 조사해 드릴게요!”
지브릴이 붉게 상기된 볼을 감싸며 수줍게 고개를 숙인다.
성진이 저도 모르게 쩍 입을 벌렸다.
와, 저거 완전 선수 아니야?
성황을 가장 많이 닮았다더니, 과연 타고난 난봉꾼이 여기 있었네?
로건의 눈짓에 성진과 마사인은 잽싸게 전담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차에 오르기 전, 로건은 놀라운 묘기를 선보였다. 그의 몸 주위에 약간의 산들바람이 감돌더니 장미향이 갑자기 확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희미한 잔향만이 남은 정도로 냄새가 옅어지자, 당황한 성진이 눈을 끔벅거렸다.
로건은 여상한 얼굴로 두 사람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잠자코 나와서 이렇게 흩어버리면 되는 것을, 너는 그게 뭐라고 괜히 일을 만들고 그러는 거냐?”
우와, 여기 마음 가는 대로 오러가 가는 사람이 하나 더 있어!
그렇게 해서 황궁 외곽의 의료원으로 향하는 길, 성진과 로건은 나란히 앉아 쉴 새 없이 입씨름을 했다.
“그거 어떻게 한 건데? 오러를 외기로 흘리는 거랑은 다른 거야?”
“그냥 실체화하는 거다. 실체화를 잘하면 되지.”
“잘하다니, 어떻게?”
“왜 그걸 나한테 묻는 거지? 네가 매번 하는 거잖아?”
“내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명상할 때나 가능하지, 의식적으로 해본 적은 없어. 뭔가 쉬운 방법은 없냐?”
“글쎄, 궁금하면 헤네시스 연공법에 입문하던지.”
이놈이 잊을 만하면 영업을 시도하네?
싫거든? 나는 바나하스 연공법으로 대성할 거니까.
성진의 뚱한 표정을 본 로건이 혀를 찼다.
“그나저나 너도 참 너다. 네 진짜 나이를 생각해, 이성진. 딸 같은 아가씨와 그렇게 싸우고 싶으냐?”
뭐, 인마?
“어디서 은근슬쩍 나이를 깎는 거야? 지브릴은 내 손녀뻘이다! 똑똑히 알아두라고!”
“뭘, 나한테는 증손녀뻘이거든? 딸이나 손녀나.”
“뭐라? 그게 말이 되냐? 나이를 부풀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누가 부풀렸다는 거냐?”
“누구긴 누구야? 무려 칠순에 전장에서 말을 달리신 위대한 로건 님이지!”
한참을 그렇게 소리를 죽여 옥신각신하던 성진과 로건은, 문득 그들을 빤히 쳐다보는 마사인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마사인 역시 상당한 경지의 오러 유저. 두 사람이 아무리 소리를 죽인다고 한들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사인은 이상한 표정으로 한동안 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었다.
“두 분 저하,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