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11)
성황의 아이들-111화(111/469)
§ 111. 마물 전담반 (4)
“아주 어릴 적에 서로 형님이라고 우기며 싸우시던 때가 생각나 좋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다툼을 하시는군요. 그건 뭔가 놀이 같은 겁니까?”
마사인의 말에 성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로건을 흘겨보았다.
어른인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어린 모레스랑 그런 싸움을 하셨어?
로건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왜 서로 지브릴 양의 할아버지가 되겠다고 싸우십니까? 실은 두 분 저하 모두 그녀보다 어린 건 알고 계시죠? 저렇게 보여도 지브릴 양은 이미 아카데미를 졸업한 성인입니다만.”
“아니, 그건, 음…….”
“제가 설마 로건 황자님께 나잇값을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로건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고소한 얼굴로 바라보던 성진은 문득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사인 경, 근데 왜 로건에게만 뭐라고 하는 거지?
그러자 마사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 저하께 그런 무리한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
“나잇값을 하신 적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성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마사인 경, 프란시스랑 같이 다니더니 프란시스가 옮았어!
마차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황궁 외곽으로 향했다.
* * *
애슬리 베쳐와 조나단 맥캘핀이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은 황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부속 의료원이었다. 두 사람은 커다란 의료원 건물에서도 한참 구석진 방에 외따로 격리되어 있었다.
아직은 죄수의 신분이기 때문에 입구에 경비가 서 있었지만, 어린 학생들이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경비는 따분한 태도로 멍하니 서 있다가 성진 일행이 다가가자 자세를 바로잡으며 병실 문을 열어주었다.
“…저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병실에 들어서니, 성진의 얼굴을 알아본 소년 하나가 확 밝아진 얼굴로 외쳤다. 조금 동글동글 영리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었는데, 성진은 단연코 처음 보는 인물이다.
너는 누구냐!
그가 침상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다가오자, 움찔 놀란 성진이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반가운 기색이 가득하던 소년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지더니 눈썹이 축 처졌다.
“접니다, 조나단. 그래도 저하께서는 저를 오랜 벗이라 불러주지 않으셨습니까?”
뭐?
“…조나단? 조나단 맥캘핀?”
“네, 저하.”
조나단 맥캘핀. 모레스와 검은 선지자들 모임의 연결고리.
그리고 어쩌면, 모레스의 이적단체 후원을 물밑에서 도왔을지도 모를 공범자.
얼마 전 재판부 감옥에서 끙끙 앓을 때만 해도 오동통하게 살집 많은 녀석이었건만, 대체 며칠 사이에 이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무리 역병 의사들에게 피를 뽑히며 시달렸다지만, 사람이 이렇게 단기간에 홀쭉해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몸을 뭉텅 잘라낸 것처럼 아예 부피가 줄었는데?
“…그게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로건이 뒤에서 조금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뭐. 이쪽은 나름 오러 폭풍에 휘말렸다던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고!
성진은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야, 조나단. 몰라보겠는데? 오래 앓는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괜한 기우였나 봐.”
“이게 다 저하 덕분이지요. 저하께서 그 기생충을 찾아내셨다지요? 덕분에 무시무시한 사혈 치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나단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녀석, 회색 역병에서 회복된 것보다 사혈 치료에서 벗어난 것을 안도하고 있다. 라이오라 역병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래.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야.”
“하하, 사실 역병 이전보다 몸이 훨씬 가뿐한 것이, 건강이 더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조나단이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문제는 애슬리입니다만…….”
조나단이 방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일행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애슬리 베쳐.
또 다른 회색 역병의 피해자는 방구석에 놓인 작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활기차 보이는 조나단과는 상태가 사뭇 달랐는데,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을 보며 앉아 있었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어찌나 살이 내렸는지 피골이 상접해 보일 정도였다.
“쟤는 왜 저러고 있어?”
“정신을 차린 뒤로는 계속 저 모양입니다. 아예 입을 열지를 않습니다. 식사도 겨우 떠 넣어줘야 먹는 정도고요.”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 그런 건가?”
마사인의 물음에 조나단이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의원의 말로는 계속 남는 후유증이라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회색 역병이 진행되면, 결국 사람의 머리가 비가역적으로 망가지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비가역적인 후유증.
[염상 결정이야, 이성진.]‘그래.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
브루노 단장만 보더라도, 알을 적출한 이후에도 한동안 염상 결정이 더 늘어나지 않았나. 의식을 차리는 것이 늦어진다 했더니 역시나, 이들도 결정이 생기는 것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것이다.
성진은 곧 마왕으로부터 두 사람의 상태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조나단의 머릿속에는 작은 염상 결정 몇 개가 보이기는 하지만 운 좋게 치명적인 위치는 피한 것 같다고. 그러나 애슬리의 경우에는 전두엽 위주로 제법 많은 결정이 퍼져 있다고 한다.
“사실 저 친구가 저보다 일찍 심문을 받았거든요. 기생충에 더 오래 노출되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짐작합니다만.”
조나단의 설명을 한 귀로 들으며 성진은 천천히 애슬리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퀭한 눈으로 그저 가만히 방구석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애슬리.”
“…….”
부르는 것도 아예 인식하지 못하나.
검은 선지자의 모임 당시, 열정적으로 제국의 부조리함을 성토하던 그의 똘똘한 모습을 기억하는 성진은 조금 애석한 심정이 되었다. 아까운 젊은 인재를 잃어버렸다.
회색 역병을 앓은 사람들이 결국엔 모두 죽는 걸 생각하면, 일단은 늦게나마 알을 적출해서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어딘가 싶지만. 그러나 이렇게 숨만 쉬고 있는 것을 과연 살아 있다고 해도 좋은 것인가.
성진이 말없이 그를 보고 있자니, 로건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래, 조나단이라고 했나. 친구의 일은 참으로 안되었네만, 이렇게 되었으니 자네에게 질문을 좀 해야 될 것 같네. 전담반 조사에 협조해 줄 수 있겠나?”
“로, 로건 황자님? 어째서 두 분이 함께…….”
그제야 로건을 알아본 조나단이, 제대로 된 예를 갖추는 것도 잊고 동그래진 눈으로 성진과 로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체 왜 둘이 같이 있냐는 의문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얼굴이다. 2황자와 3황자 간의 불화설이 유명하긴 했던 모양.
“같은 마물 전담반이라.”
“아, 예…….”
성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조나단이 석연치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드디어 조나단으로부터 이단 재판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정신없이 두드려 맞았습니다. 정말 무서웠던 것은, 심문관들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일단 때리고 시작했다는 거예요.”
아직도 심문 당시의 공포가 가시지 않는지, 그때의 일을 말하는 조나단의 얼굴은 조금 창백했다.
그의 설명으로는 애슬리와 조나단, 두 사람이 처음부터 이단 재판부의 주요 타깃이 되었던 것 같다고 한다. 사건의 주모자였던 케네스 디고리는 당시 중상을 입어 치료 중에 있었고, 다른 세 사람은 제법 고위 관직에 있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
그렇게 두 사람은 다른 죄수들이 가득 차 있는 감옥에 떨어져 수감되었다.
그곳에는 주로 악마 숭배 혐의로 끌려온 죄수들이 있었는데, 이미 혹독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모두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 허공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 모두가 회색 역병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두운 감옥 안이었지만 딱 봐도 안색이 정상이 아니었고, 뭣보다 제정신인 사람들이 없었어요.”
당시에는 그것이 모두 심문관의 고문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조나단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일들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애슬리 베쳐가 끌려 나가더니 곧이어 그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말한 조나단은 잠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애슬리를 조금 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로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그때 이미 기생충이 심어진 상태였으리라 생각되지만, 곧이어 제가 끌려갔기 때문에 그를 자세히 살필 정신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연이어 끌려간 조나단은 심문관 앞에 도착하자마자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심문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어느새 조나단은 눈물 콧물을 다 짜내며 그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마도… 저하께서 해주신… 그, 후원…….”
조나단은 갑자기 말을 흐리며 힐끔 성진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그 도움… 에 관해서도… 아마도 다 말했던 것 같습니다.”
“…….”
“죄송, 죄송합니다, 저하! 함구해야 한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 저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찔끔 눈물까지 보이는 놈을 보니 탓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아니, 이런 미친 이단 재판부 같으니. 얼마나 애를 무식하게 때렸으면 파릇파릇한 어린 학생이 이렇게 기가 팍 죽는 거냐.
“저는, 두 번 다시는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작은 눈물 한 방울을 떨군 조나단이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모레스 황자님께 더욱 감사하는 겁니다. 저하의 믿음을 배신한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물을 잡을 때 그 이단 재판부까지 완전히 박살 내 주셨다니, 이 은혜를 제가 어찌 갚아야 할지…….”
“…어?”
옆에서 로건과 마사인의 시선이 느껴진다.
뭐? 왜? 뭐?
잠깐, 오해야. 그건 내가 부순 게 아니라고!
아니, 왜 마사인 경까지도 그런 눈으로 나를 봐? 당신, 그날 그 자리에 같이 있었잖아?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뒤에서 기묘한 목소리가 울린 것은.
“모레스 황자…….”
약간 갈라지는 듯한, 그러면서도 기이하게 주위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목소리.
성진과 일행이 뒤를 돌아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멍하니 앉아 있던 애슬리 베쳐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초점이 맞지 않던 그의 눈동자가, 지금은 명확한 적의를 담고 똑바로 성진을 쏘아보고 있다.
“애슬리! 정신이 들어?”
조나단이 반색을 하며 다가가려 했지만 성진이 재빨리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알고 지낸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성진의 감각은 애슬리에게서 뚜렷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 눈빛은 절대로 애슬리 베쳐의 것이 아니다!
로건 역시 뭔가를 느꼈는지 허리춤의 아르쥬나에 손을 가져가며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애슬리는 그런 로건에게 힐끔 시선을 주고는 다시 성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이단 재판부를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너라는 말이지…….”
애슬리로부터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적의에 순식간에 병실 내 기압이 잔뜩 올라간 듯 무거워졌다. 심지어는 일순, 그의 눈에서 묘한 노란색의 안광이 스쳐간 듯도 보였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때 마왕이 퍼뜩 성진에게 일렀다.
[채널이야, 이성진! 상당히 불안정하지만, 누군가가 저 애를 매개로 채널을 열었어!]‘…채널?’
성진의 안색이 변했다.
어쩐지 아렌쟈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브루노 단장을 통해 조심스럽게 의향을 전달하기는 했으나, 아직 성진에게 직접 접촉을 시도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회색 역병 환자에게 염상 결정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 채널링을 한다?
그렇다면.
‘회색 역병 사태에 관여했거나, 어쩌면 델크로스에 마물을 끌어들인 원흉!’
성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호두까기에 손을 가져가는 것을, 애슬리는 가만히 눈으로 따라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재차 그를 향해 입을 연다.
“네가 모든 것을 망쳤다. 너는 대체 뭐냐?”
“…내가?”
“그래, 수호자의 새로운 말이여. 너 자신이 누구의 무대에서 누구의 손에 놀아나는지 알고는 있는가?”
“…….”
“어리석은 것!”
애슬리는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웃는 듯 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일순.
뭔가에 감전된 양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혼자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는구나! 이런 조그만 놈들이!”
“……?”
“네놈들 또한 마찬가지야! 지금 누구를 돕고 있는지는 알고나 있느냐!”
성진 일행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데, 이제 애슬리는 아예 비틀비틀 침상에서 일어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혼자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꺼져라!”
“방해하지 마라!”
“꺼져라!”
“이놈들이 그래도!”
마치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는 듯, 혼자서 소리치고 혼자서 대답하는 모습이 참으로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언제까지 이럴 셈이냐!”
“황궁에서 썩 꺼져라, 이 나쁜 놈아!”
“황궁에서 멀리 사라져라, 이 못된 놈아!”
“……?”
성진은 순간 눈을 깜박거렸다.
어?
이 묘하게 비슷하게 반복되는 말투, 어딘가 익숙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