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12)
성황의 아이들-112화(112/469)
§ 112. 마물 전담반 (5)
황실 의료원 한가운데서, 생에 다시 보기 어려울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날 방해할 셈이야! 네놈들이 정녕 죽고 싶으냐?!”
“어설픈 술수 부려도 소용없다, 이 막돼먹은 놈아!”
“네 하찮은 짓은 통하지 않는다, 이 고약한 놈아!”
애슬리 베쳐는 펄펄 날뛰며, 혼자서 화내고 혼자서 조롱하고, 그야말로 침상 위에서 발광을 하고 있었다.
검을 뽑아 들고 초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사인이 로건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악마… 입니까? 저하?”
아닌 게 아니라 애슬리, 아니, 애슬리의 형상을 빌린 그것의 얼굴은 마치 악마와 같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찌나 눈을 부릅뜨고 있는지, 실핏줄이 다 터져 흰자위가 핏빛이 되었을 정도.
지옥에서 막 기어 올라온 원한에 찬 악마의 형상이 딱 저러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진중한 눈으로 그의 모습을 살피던 로건이 고개를 저었다.
“악마의 마기와는 무언가 다릅니다.”
“그 말씀은?”
“오히려 또 다른 영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여러 악령들이 저 학생의 몸속에서 싸우는 듯 보이는군요.”
일행의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던 조나단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어서 퇴마를…….”
“그래야겠지. 한데 악령치고도 그다지 삿된 느낌이 들지를 않아, 신성력에 타격을 입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들의 심각한 대화 한가운데서 성진만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어… 이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저 애슬리 베쳐를 지배하고 있는 악령들 중 일부는 헤르나와 가데스, 그 쌍둥이들인 거 같은데?
어떻게 걔들이 여기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그냥 퇴마하게 둬도 괜찮은 건가?
“크아아악!”
“끄으으윽!”
이제 애슬리 베쳐는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며 신음을 흘리고 있다.
입술이 시퍼렇게 질리며 눈이 하얗게 까뒤집힌 것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성진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와, 살벌하다…….’
공포 영화도 아니고, 저렇게 혼자 발광을 하니 어째 등골이 다 오싹한데?
그러자 마왕 놈이 기가 차다는 듯 주억거린다.
[허, 너는 너 자신이 모레스에 빙의한 악령인 주제에 저게 무섭냐?]‘…닥쳐!’
꺼림칙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주먹질이 통할 상대도 아닌데!
게다가 같은 취급은 좀 곤란하지. 악령이라도 이쪽은 무려 성황에게 공인받은 악령이라고!
“저, 저하! 부디 서둘러 주십시오! 이러다 저 친구가 정말로 죽겠습니다!”
울음 섞인 조나단의 애원에 로건이 뭔가 결심한 듯 얼굴을 굳혔다.
그는 아르쥬나의 손잡이를 놓고 천천히 애슬리 베쳐를 향해 다가갔다. 신성한 흰빛에 감싸인 손을 애슬리를 향해 뻗은 채로.
“나는 정식 구마 기사는 아니지만, 어설프게나마 엑소시스트의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사인 형님, 혹시 모르니 제가 시간을 끄는 동안 엑소시스트의 지원을 요청해 주시겠습니까?”
마사인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애슬리 베쳐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지, 목을 조르던 자세 그대로 데굴 눈동자만을 굴려 로건을 쏘아 보았다.
“주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어서 그를 놓아주고 네가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
로건의 손에서 빛을 더해가는 신성력에 가만히 눈길을 주던 애슬리가, 순간 입꼬리를 쭉 찢으며 짙은 비웃음을 흘렸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기묘한 노란 안광이 번들거린다.
“크크크크, 멍청한 것! 이곳의 그 잘난 주신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러나 로건은 동요하지 않고, 한 걸음 더 그를 향해 나아가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의 권능이 곧 그가 세계에 임하신 증거이자 그분의 이름이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이름이 없는 자의 의지는 공허하여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주신의 의지는 그의 대리자를 통해 분명하게 실재하는 것. 길 잃은 불쌍한 악령아, 사라져라!”
“크으…….”
애슬리가 이를 갈며 로건을 노려본다.
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성황이 말하길, 델크로스의 주신은 인격신이 아니라더니 심지어 이름조차 없는 건가?
언젠가 신학 개론 머리말이라도 정말 읽어보기는 해야겠다고, 그는 조금 뒤늦은 결심을 했다.
“나, 나는…….”
로건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애슬리 베쳐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듯 보였다.
그는 목을 조르던 손을 놓고는 침상 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비틀거렸다.
“나는, 나는 한낱 악령이 아니다! 하찮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야! 나는 악마다!”
그러나 그 주장에는 성진도 의구심이 들었다.
본인이 악마라고 말하지만, 정작 놈은 로건의 손에서 점점 빛을 더해가는 신성력에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신성력이라면 기겁을 하는 마왕 놈과 비교해 봐도 확연하게 다른 모습.
로건이 그를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바로 신성력을 쏟아붓지 않고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주신의 권능을 빌어 명한다. 이 자리에서 사라져라, 악령아.”
“악령이 아니야아아아!”
일순 애슬리가 찢어지듯 소리를 질렀다.
그 거센 포효에 순간 화악 하고 방 안에 강한 충격파가 일었다. 침대보가 휘날리고 창문이 벌컥 열려 덜컹거린다. 기겁을 한 조나단이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뒹굴었다.
무엇이 그리 거슬렸는지, 애슬리는 매우 분노한 눈으로 일행을 노려보며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이 몸은 모든 마계를 아우르는 위대한 마왕이다! 꿈의 마왕이자 언젠가 위대한 이야기가 될 자다!”
“…….”
“네놈들이 아무리 날 없애려 발악을 해도, 악령이라는 그런 작은 염상 속에 갇힐 내가 아니다!”
순간 성진은 번뜩, 과거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이야기의 마왕이 되고자 하는 꿈의 마왕.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던 한 가면의 인형사.
[뭐? 꿈의 마왕?]그의 말에 반응한 것은 성진뿐만이 아니었다. 마왕이 분기탱천하여 소리친다.
[이성진! 혹시 저놈이 네가 말한 인형극의 그놈이야?]‘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야, 야! 잠깐!’
성진이 뭐라고 말리기도 전에, 마왕의 기척이 그의 머릿속에서 뿅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움찔하고 한차례 몸을 떤 애슬리 베쳐의 움직임이 더욱 기괴해졌다.
“끄으으으…….”
이제 그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멱살을, 그리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죽어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너냐? 네놈 새끼가 나한테 그런 하찮은 공격을 날린 거냐?”
“이놈은 또 뭐야! 악마가 왜 신성 결계를 두르고 있어?”
“오냐, 너 이 자식! 오늘 나랑 끝장을 보자!”
“아, 네놈이냐? 너무 하찮아져서 몰라볼 뻔했네! 죽지도 못한 것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냐!”
“뭐, 이 새끼야? 너 나 알아? 너 정체가 뭐야?”
아아, 애슬리의 입으로 떠드는 놈이 하나 더 늘었다.
심지어 이제는 저희들끼리 뚜렷하게 편이 갈라져 패싸움 중이다.
“이야! 잘한다, 우리 빨강이!”
“우와! 힘내라, 우리 빨강이!”
“누가 빨강이냐아아아!”
그야말로 다시없을 혼돈의 카오스였다.
다행히도 그 난장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쩐지 갑자기 병실의 온도가 조금 내려간 게 아닌가 싶어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히익!]마왕 놈이 무엇을 봤는지 잔뜩 겁에 질려 성진의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부들부들 떨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폼이, 어째 낯설지가 않다. 설마?
로건 역시 이상한 기운을 느낀 듯했다. 그가 고개를 위로 들며 미심쩍은 듯 말했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신성한 기운이?”
물론 애슬리 베쳐 역시 이변을 눈치챘다.
그는 혼잣말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계까지 커다랗게 뜨인 그의 두 눈에 처음으로 공포의 감정이 어린다.
“너… 너는!”
커억.
그 순간, 애슬리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 * *
쿨럭쿨럭.
어두운 지하실 안에서 한 남자가 몸을 웅크리며 기침을 토했다. 바닥에 비릿한 쇠 냄새와 함께 점점이 작은 핏방울이 튀긴다.
“…이것은 그야말로 제대로 자멸하는 꼬락서니로다.”
남자가 바닥에서 기는 꼴을 보고 있던 소녀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10세가 채 되었을까 싶은 작은 소녀였는데, 양 갈래로 땋아 내린 긴 금발이 대단히 앙증맞았다.
반면 그녀의 표정은 지나치게 무감각하고 어두워 보여, 마치 세월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치 깊이 쌓인 오랜 퇴적층을 보는 듯했다.
반가면의 남자, 로메인은 한참 바닥에서 바르작거리다가, 이윽고 기침이 멈추자 입가에 흘러내린 핏줄기를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제가 아직은 이 술수에 익숙지 않기 때문입니다.”
“술수라?”
“예. 영혼을 떼어내 단말을 만드는 어느 일족의 비술이지요.”
그가 사용한 것은 영혼을 다루는 데 능통하다 알려진 코른시임 일족의 비술이다.
영혼의 필요 없는 일부분을 떼어내어 단말을 만들고, 이를 통해 채널링을 함으로써 개체의 자아를 보존하는 방법.
자칫 잘못하면 채널링을 하는 마물들이 그러하듯 군집 의식 속에 매몰될 수도 있었던 일족이, 그나마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
애슬리 베쳐에게 빙의했다가 죽어버린 것은, 이 일족을 흉내 내어 로메인이 떼어낸 극히 일부분의 영혼 조각일 뿐이다.
하. 소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답지 않게 망둥이같이 펄펄 뛴다 했더니, 제대로 된 영혼조차 아니었단 말이군.”
“뭐,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것 역시 어설프나마 저의 일부. 저도 젊은 시절 한때는 저렇게 감정적일 때가 있었다는 거지요.”
로메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론 델크로스의 수호자를 속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시선을 조금 분산시켜 볼까 시도했습니다만, 채널을 연 것이 저의 본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일언반구도 없이 단번에 단말을 때려죽여 버렸습니다.”
“그자를 속일 생각을 하다니, 담대하다 해야 할지 무모하다 해야 할지…….”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델크로스의 성황.
대체 어떻게 인간들 중에서 그런 자가 있을 수가 있는지 그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거의 성공적으로 대륙을 잠식했다고 여길 때쯤, 그자는 그야말로 갑자기 황도에 나타나 자신의 세력을 모조리 쓸어버리더니 홀로 성황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법 오랜 기간에 걸쳐 델크로스 전체를 그의 영향 아래에 성공적으로 잡아두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전대의 수호자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악력이다.
그의 수호 아래에서 악마종은 델크로스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지금 인간 소녀의 몸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황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눈치만 보고 있었겠는가.
그나마 그녀의 아군이라 할 만한 자 중, 현재 황도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자라고는 로메인, 그가 유일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자이기에 가까이 두기 꺼려지나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파고들 빈틈이 없는 자입니다. 결국 탄신연에서 레오나드 왕자가 제 몫을 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군요. 그가 정말로 황녀라도 확 유혹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로메인은 바닥에서 뒹구느라 지저분해진 로브 자락을 툭툭 털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몇 개월에 걸친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이후 한동안은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마음을 정리한 듯 꽤나 평온한 태도였다.
“그래. 그런데 반쯤 개화한 마지막 씨앗을 써가며 굳이 황궁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는가?”
소녀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애슬리 베쳐는 아마도 그대로 알을 품고 있었다면 언젠가 꽃을 틔울 수 있었으리라. 어설프게 개화한 지금도,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면 분명 다음 계획에서 쓸 만한 패가 되었을지도 모르건만.
그러나 로메인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회색 역병 계획은 성황에게 들통 난 것입니다. 실패한 계획을 이제 와서 다시 실행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적어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동안 이 눈으로 확인할 자가 있었습니다.”
3황자 모레스.
지금까지 성황이 황궁에 꽁꽁 숨겨두고 있던 그 황자의 실체를, 로메인은 방금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반가면 아래에 저도 모르게 자신만만한 웃음이 걸린다.
잠시 그런 로메인을 바라보던 소녀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더니 양손으로 그의 턱을 천천히 감싸 쥐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구나.”
“그것 참, 영광입니다.”
“네 목소리 또한 듣기에 매우 흡족하다. 자, 더 말해 보라, 로메인이여.”
소녀의 작은 앵두 같은 입술이 달콤한 숨을 뿜어냈다.
“적어도 내게는 알려줄 수 있지 않은가? 미궁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 너의 본체는 어디에 있지?”
그러나 로메인은 소녀의 [매혹]을 가볍게 밀어내며 웃어 보였다.
“그것은 우리의 대화가 조금 더 진전된 후에 나눌 이야기입니다. [탐욕]의 군주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