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3)
성황의 아이들-133화(133/469)
§ 133. 미궁 (2)
“자네가 왜 여기 있어?”
성진이 황당함을 숨기지 않자, 오르덴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반문했다.
“그건 제가 여쭙고 싶은 말입니다. 대체 여기가 어디입니까?”
“나도 몰라. 왜 그걸 나한테 묻나?”
“제가 저하를 쫓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저하께서 제일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날 쫓아왔다고? 왜?”
성진의 물음에 오르덴 놈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야, 위층에 잘 있던 사람의 기척이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니 찾아보지 않고 배깁니까?”
“…….”
요컨대 시구르트 시구르슨이 결계를 발동했을 무렵, 아래층에 있던 오르덴에게는 성진의 기척이 갑자기 뿅 하고 사라져 버린 듯 느껴졌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왜 황자가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2층에 있는지 영 신경 쓰이던 찰나에, 멀쩡하던 사람의 기척이 없어져 버리니 찾으러 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런데 막상 2층에 도착하니, 저하께서 뭔가 나비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계시더군요. 그래서 그쪽으로 달렸는데 갑자기 몸이 어딘가로 떨어져,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인 겁니다.”
“아…….”
이놈, 정말 쓸데없이 참견하다 엉뚱하게 일에 말려들게 된 거구만.
성진은 혀를 찼다.
“그냥 내버려 두지 그랬어.”
그 말에 오르덴 놈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야 저는 당연히!”
“응?”
“당연히…….”
성진이 빤히 쳐다보자 놈이 말끝을 흐리더니 슬쩍 시선을 옆으로 피한다.
“…저하께, 빚을… 갚아야 하니까요.”
성진은 잠시 눈을 깜박거렸다.
어, 혹시 이놈. 내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나름 도우려 했단 말인가?
“마음만은 감사히 받지. 그런데 자네까지 여기 같이 떨어져 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리카르도 쪽을 어떻게든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그리고 이건 알아둬. 만약 내 덕분에 여기서 나가게 되면, 자네 나한테 또 빚지는 거야. 알겠지?”
“……!”
울컥하는 저 얼굴을 보니 좀 웃기긴 하네.
[고리대금업자냐? 왜 빚을 갚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원금이 늘어나는 느낌이지?]‘그럼, 이 몸에게 진 빚을 그렇게 쉽게 탕감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뭐, 그래도 이왕 같이 왔으니 제대로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 보라고.
성진은 피식 웃으며 오르덴 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rd□10 님께 파티□ 신□하시겠□니까?〛
〚수락 / □절〛
부서진 텍스트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엥?
성진이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르덴이 긴장하며 물었다.
“왜… 뭐가 있습니까?”
“응? 자네한테는 이게 안 보이나?”
“뭐가 말입니까?”
“흠…….”
성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를 향해 팔을 내밀며 말했다.
“쳐봐.”
“…네? 그게 무슨…….”
“내 팔을 한번 쳐보라고.”
“……?”
오르덴이 미심쩍은 눈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 점 거리낌 없이 해맑은 성진의 표정에,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손을 내밀어 툭 하고 그의 옷소매를 건드린다.
그리고.
“…이게 뭡니까?”
드디어 오르덴의 눈앞에도 그 텍스트 창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막상 성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나 당사자만 읽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수락… 뭐라고?”
놈의 수락이라는 말과 함께 성진의 눈앞에는 또다시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아마도 오르덴은 그나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깨어지지 않은 텍스트를 읊은 것이겠지만.
〚%rd□10 님께서 ■■■ ■■ 님께 파티□ 신□하셨습니다. 수락하□겠습니까?〛
〚수락 / □절〛
뭐랄까. 이거 정말 게임 같은데.
“…수락.”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말하자.
〚%rd□10 님과 파티□ 맺었습니다.〛
오, 정말 되는구나. 그렇다면?
성진은 조금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외쳤다.
“시스템!”
“……?”
“미니맵! 월드맵! 상태창! 스테이터스! 파티! 퀘스트! 로그아웃! 로그아웃!”
안타깝게도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왕의 설명대로 부서진 세계라서 그런지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 모양.
하다못해 맵이라도 떠줬다면 이곳을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저하? 대체 지금 무슨…….”
갑작스러운 황자의 기행에 당황하던 오르덴의 얼굴에서, 잠시 후 뭔가를 깨달은 듯 이해의 빛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였다.
아, 이놈 원래 개망나니로 유명한 놈이었지. 역시 제정신이 아니구나. 뭐 이런 거 아닐까.
[왜 부끄러움은 늘 나의 몫인가!]마왕 놈이 탄식했다.
어쨌거나 성진은, 괜히 자신의 일에 휘말려 들어 잔뜩 혼란스러워하는 오르덴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도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우릴 이곳으로 보낸 자는 바로 스카르차피노 소공자다. 그자가 내게 뭔가 알 수 없는 술수를 부렸어.”
오르덴에게 이곳이 다른 차원이라는 말을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 그래서 성진은 일단 이 일을 저지른 놈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의 기세가 대번에 거칠어졌다.
“스카르차피노!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놈, 쭉 스카르차피노를 밀로 상단의 배후로 의심하고 있었다고 했던가.
일전에 오르덴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이사벨라를 협박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참 자신감 하나만 가지고 사는 막 나가는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최근 몇 번 놈의 얼굴을 마주하고 드는 생각은, 오르덴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식적인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리카르도, 그자가 암흑 교단의 표식을 가지고 절 협박해 올 때부터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 수상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정작 본인이 암흑 교단 관계자라는 방증이 아닙니까? 그런 자가 뭔가 사특한 술수를 부렸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평소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 오르덴이 이번에 초대에 응한 것도 다 조사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특히 그자의 여동생, 이사벨라는 더 수상쩍습니다. 밀로 상단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실제 스카르차피노 가에서 그들과 거래하기 위해 주로 왕래하는 사람이 바로 이사벨라, 그 여자라는 겁니다.”
“그래?”
“네. 그런데 막상 그녀에게 밀로 상단을 포함한 이런저런 일에 관해 넌지시 흘려도,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뻔뻔하게 구는 겁니다!”
…그건 의외인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저택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는데 어땠는지 아십니까? 그날은 그렇게 겁먹은 척 아멜리아 황녀님의 동정을 산 주제에, 또 오늘은 일전의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는 겁니다. 정말 꺼림칙한 여자입니다!”
“…….”
확실히. 그건 좀 이상하군.
성진은 팔에 시침핀을 꽂은 채 팔짝팔짝 뛰어다니던 이사벨라를 떠올렸다.
흠, 딱히 뭔가를 능숙하게 숨길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성진에게 의혹을 토로하며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오르덴이 아까보다 조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뭐, 일단 출구를 찾아야겠지.”
리카르도를 족치든 이사벨라를 조사하든, 일단은 델크로스로 돌아가야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성진은 오르덴과 잠시 의견을 교환한 후, 그가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뒤늦게 딸려온 오르덴이 좀 더 출구에 가까운 곳에 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처음 있던 곳에 시체가 하나 있었습니다. 얼핏 본 것이라 확실치는 않았으나, 황궁 근위대의 정복을 입은 듯 보였습니다.”
그 역시 가까워지는 성진의 기척을 감지하고 빠르게 달리느라, 미처 시체를 제대로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되돌아가 좀 더 자세히 조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물론 오르덴은 이를 예사롭게 생각하는 듯했으나, 이곳이 델크로스 본상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진에게는 그 시체가 시사하는 의미가 컸다.
‘황궁 근위대라고 한다면, 이전에도 델크로스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사람이 있었다는 의미겠지?’
[응. 아마 차원의 이야기꾼이 우릴 그냥 무작위로 이동시킨 건 아닐 거야.]꽤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놈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곳으로 그들을 날려 보내지 않았겠냐는 거다.
미궁이란 곳은 그리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아마도 놈에게는 델크로스와 미궁을 연결하는 손쉬운 수단이 있는 듯 보이며, 보통 그런 단축 경로의 경우는 일정한 장소로 특정 지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마왕 놈이 조금 밝아진 기색으로 말했다.
그렇게 해서 성진은 오르덴과 함께 터벅터벅 캄캄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지 않냐?’
[뭐가?]‘시구르트 그 자식 말이야. 신성 제국의 황자를 자기 저택에 초대해 놓고는, 거기서 대놓고 황자를 없애 버리려 하다니…….’
무엇보다도 성진이 저택에 들어가는 것을 빤히 목격한 마사인 경이 있지 않은가.
다른 차원으로 날려 버리며 황자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다 해도, 결코 그 실종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극히 충동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리카르도 스카르차피노의 입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흠. 어쩌면 차원의 이야기꾼이 리카르도라는 아바타를 완전히 버리기로 결심한 걸 수도 있지.]‘이렇게 간단하게?’
[그놈에게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성진의 도발이 예상과 달리 놈에게 치명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극히 여유롭던 놈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성진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걸 원한다면? 그래서 아버지께 네놈을 제대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드린다면?
설마 겨우 그걸로?
[그것이 네 아버지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그때도 ‘겨우’라고 할 수 있을까?]‘…그건 그렇지.’
잠깐, 이거 혹시.
브루노 단장의 일도 그랬지만, 내가 내리는 결정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고 보니 샤론 경이 그런 말도 했었지 않나.
-앞으로는 저하의 일거수일투족이 우리 마물 전담반의 행보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성진은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 좀 대단한가? 어쩌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걸지도?’
그러자 마왕 놈이 코웃음을 쳤다.
[부모 잘 만난 대다수의 꼬맹이들이 그런 착각을 하지.]‘…뭐, 인마?’
[게다가 넌 원래 평범과는 광년 단위로 거리가 멀었어. 이 사이코패스야.]‘닥쳐!’
그렇게 오르덴의 인도로 얼마나 걸었을까.
쭉 일자일 것만 같던 통로는 의외로 갈림길이 있거나 모로 크게 꺾여 있기도 했다. 가면 갈수록 석벽의 이끼들이 옅어지고, 어쩐지 주위가 점점 밝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방향을 제대로 선택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나저나 제법 구조가 복잡한데, 자네는 잘도 왔던 길을 기억하네.”
그러자 오르덴이 여상하게 대답했다.
“갈림길이 나오면 그냥 가운데 길로만 달렸습니다.”
“…….”
은근히 단순한 놈이라니까.
“저 모퉁이만 돌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거대한 공동 앞에 다다랐다. 입구가 열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입구의 주위는 섬세하게 조각된 부조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짐짓 예사롭지 않았다.
“저는 이 안에 있었습니다.”
오르덴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입구로 다가갔다.
성진이 슬쩍 공동의 안쪽을 살폈지만, 지나치게 어두컴컴하여 정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려웠다. 단지 빈 공간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공기의 울림으로 미루어, 안이 제법 넓은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하는 성진을 돌아본 오르덴이 재차 그를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아까는 주위에 시체 한 구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음, 그래.”
그렇다면야.
뭔가 찜찜한 예감을 뒤로 하고 성진은 오르덴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막상 그와 함께 입구를 넘어가는데, 성진의 눈앞에 갑자기 삑 하는 알림음과 함께 텍스트 창이 튀어 올랐다.
〚파티□ □입을 인식하였습니다. 라이□□로프 로드가 리젠□니다.〛
“…엥?”
뭔지 몰라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닌데?
오르덴 또한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춘 것을 보니, 아마 놈에게도 같은 창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그리고 성진과 오르덴은 동시에 바짝 긴장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크르르르르…….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공동.
그 깊은 곳에, 초저주파의 으르렁거림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두 개의 붉은 광망이 어둠 너머에서 형형한 빛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