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5)
성황의 아이들-135화(135/469)
§ 135. 미궁 (4)
크워어어엉!
거대한 짐승의 포효가 공동을 가득 채운다.
처음의 그 어정쩡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 저놈이 뿜어내는 위협적인 기세는 가히 마경 깊숙이 숨어 있는 글래쳐 트롤과도 비견될 만했다.
오르덴은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거대 라이칸슬로프를 경계했다.
이미 그는 몇 차례인가 저 짐승을 검으로 베어냈다. 그러나 놈의 거죽이 워낙 두터워서인지는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이다.
분명 썰어내는 손맛이 있었건만, 도무지 이런 결과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콰아앙!
잠시 생각할 여유도 없이, 거대한 태도가 또다시 그를 노리며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석재가 산산조각 나며 돌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 공격을 꽤 아슬아슬하게 비껴 피해낸 오르덴이 라이칸슬로프의 옆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놈이 틀어박힌 검을 뽑느라 잠시 주춤하는 틈을 이용해, 오러를 실은 검을 재빠르게 놈의 다리에 찔러 넣었다.
푸욱!
그러나 짐승은 움찔하는 기색조차 없이 그를 향해 곧바로 주먹을 휘둘러 왔다.
“…전혀 반응이 없다고?”
급하게 몸을 피하며 오르덴은 눈을 크게 치떴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가? 그러나 분명 그의 검이 대퇴부를 깊게 파고들었건만, 어째서 저놈에게는 약간의 상처도 남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는 동안 그들 사이로 훌쩍 뛰어든 모레스 황자가, 바닥에 깊이 박힌 태도를 딛고 놈의 두터운 팔뚝 위를 내달렸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띄워 올리더니 그대로 호두까기를 아래로 길게 그어 내린다.
촤아악!
길쭉한 회색의 검 날이 놈의 경동맥을 깊게 베어 들어갔다.
‘이번에야말로 치명타다!’
오르덴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놈은 조금의 타격도 받지 않은 듯 멀쩡한 모습으로 황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검이 닿았던 목덜미에는 여전히 상처는커녕 출혈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라이칸슬로프는 곧장 황자를 향해 반대편에 쥐고 있던 태도를 거세게 휘둘렀다.
“…저하!”
의외의 반격이었으나 다행히도 이를 미리 예상하기라도 한 듯, 황자는 놈의 어깨를 박차고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 오르덴의 곁에 안정적으로 착 내려서며 말했다.
“급소 판정은 없는 것 같은데? 정말로 정직하게 데미지만이 반영되는 것 같군.”
그 무미건조한 평가에 오르덴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저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저 라이칸슬로프는 마치 트롤처럼 몸을 자체 재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급소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데 이놈의 속 편한 황자가 그를 향해 고개를 기우뚱거리는 것이었다.
“어? 아냐. 자네의 이번 공격은 제법 괜찮았어. HP가 꽤 많이 깎였는데?”
“…네?”
“저놈 머리 위에 생명력을 표시하는 HP 바가 있거든. 자네도 보이지?”
머리 위?
그제야 오르덴은 짐승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긴 막대기가 처음에 비해 조금 줄어들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뭔지 몰라서 그냥 무시하고 있었는데.
“…저게 저놈의 생명이라고요?”
“응. 상처나 출혈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꽤나 옛날 게임에 가까운 규상세계인가 봐.”
“옛날 게임… 뭐요?”
“아니면 우리가 미성년자라서, 미성년 보호 모드가 발동되어 있거나?”
황자가 하는 말의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
“여기서 성년이 되지 않은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오르덴이 울컥하며 외치자, 황자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가?”
“…아니, 저는…….”
“…온다!”
오르덴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황자가 나직하게 외쳤다.
곧이어 훌쩍 다가오는 거대한 몸체.
붉은 안광이 긴 잔상을 그리나 했더니, 휘잉! 놈의 태도가 길게 횡으로 베어진다.
엉겁결에 몸을 숙여 피해냈지만, 머리 위를 스치는 풍압만으로도 온몸이 저릿해질 지경.
그렇게 오르덴이 바닥을 구르며 가까스로 거리를 벌리는데, 어느새 황자는 또다시 저만치 멀리 몸을 뺀 후였다.
간격을 충분히 넓게 잡고 소소한 공방을 이어나가는 폼이, 저런 거대한 짐승을 한두 번 상대해 본 솜씨가 아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으며 오르덴은 생각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경의 해수들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나 있던 천재 검사였지만, 지금의 이 이상한 전투는 유독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저 거대한 짐승은 무게 중심이 매번 변하기라도 하는 듯, 그가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기 일쑤였다. 관절의 가동 범위 역시 보이는 모양과는 조금씩 어긋나는 데가 있었고.
거기다 마치 어깨 관절이 빠졌다 돌아오기라도 하듯,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팔을 뻗은 길이가 묘하게 달라진다. 놈의 몸집이 몸집이다 보니 이 차이가 꽤나 큰 간격의 변화를 초래했다.
그러한 불편한 간극들이 끊임없이 오르덴의 신경을 갉아먹는 것이다.
“후우…….”
거기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오러.
스카르차피노가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 이곳에서는 소모한 오러가 좀처럼 회복되질 않는다.
“그렇게 조바심 낼 것 없어. 작은 공격으로도 데미지는 착실하게 쌓이고 있으니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오르덴의 곁으로 다가온 모레스 황자가 넌지시 주의를 준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고 오러를 좀 아껴두라고. 이곳의 공기는 오러가 극히 희박해서 여간해서는 회복이 힘들어.”
오르덴은 조금 어이없는 심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지? 저 지나치게 침착한 눈은.
분명 황궁을 거의 떠난 적 없는 온실 속 응석받이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황자는 마치 평생을 해수 토벌로 보낸 지그스문트 영지의 노장과 같지 않은가.
그때였다.
쿠웅. 그들을 향해 한 발을 내딛은 라이칸슬로프의 기세가 더욱 무거워진다 싶더니.
삐빅. 날카로운 경고음이 귀를 찌른다.
〚라이□□로프 로드가 크□ 분노합니□다!〛
크와아아아아!
비틀거리던 짐승이 갑자기 몸을 뒤로 크게 젖히며 무시무시한 포효를 내질렀다.
* * *
넓은 공동 안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저 멍멍이 놈이 양손의 태도를 마음껏 휘두르며 공동을 무너뜨릴 기세로 실컷 날뛰었기 때문이다. 둥근 벽면이며 석재로 된 바닥이며, 성한 곳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지경.
그 와중에도 내부를 밝히는 횃불이 하나도 상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타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허억, 허억.”
성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바로잡는 오르덴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보스몹을 상대로 용케 버티는 걸 보면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다 싶긴 하지만. 계속된 전투 중 이미 몇 차례인가 라이칸슬로프의 공격에 빗맞은 덕에, 옷이 찢어지고 몸 여기저기 피가 흘러내린다.
그뿐인가. 오러의 대부분을 소모한 듯 이따금 비틀거리기까지.
‘아무래도 시간을 오래 끌지는 못하겠는데…….’
반면에 성진은 제법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애초에 거대 마물을 상대하며 간격을 넓게 잡아 피하고, 기회를 봐서 깊이 파고드는 습관이 잘 먹혀든 까닭이다.
게헤나의 마물들이 워낙에 기상천외하게 움직였어야 말이지.
예를 들어 반트라 모스의 애벌레만 해도 그랬다. 가변성이 지나치게 좋은 그놈들의 외피에서 위족이 뻗어나가는 범위가 얼마나 다채로웠던가.
‘그나저나 보면 볼수록 블라타 멘티스의 움직임을 닮았다니까…….’
아, 물론 외양은 빼고.
적어도 저놈은 다리 수가 4개를 넘어가지 않는 귀여운 멍멍이 아닌가.
게헤나의 마물은 일부 두족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절지동물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보통은 다리의 개수가 6개를 넘어간다는 말이다.
블라타 멘티스 역시, 사마귀처럼 강력한 두 앞발을 휘두르는 거대한 곤충형 마물이었다. 하지만 시커먼 각질로 뒤덮인 그 유선형의 외형은 사마귀보다는 오히려 바퀴벌…….
‘…어, 생각을 말아야지. 또 입맛 떨어진다.’
그놈을 상대한 날에는 초인부대 전원이 며칠간 식욕부진에 시달리곤 했지.
[괜찮겠냐? 네가 자꾸 그 마물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지만, 블라타 멘티스는 꽤 강한 축에 드는 마물이었어.]‘떼거리로 몰려오는 게 아니라면, 한 마리 정도야.’
물론 성진 역시 전성기에 비하면 능력치가 형편없이 하락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저놈을 상대로는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틀려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쩐지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게 느껴졌던 것.
‘나도 참 속 편한 성격이 되었네…….’
헌터 시절 성진의 성격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의 그는 전투에 임하는 데 있어서는 꽤나 철두철미한 편이었으니까.
최대한 적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투 인원을 구성하고 작전을 입안했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날뛰는 녀석들을 혐오하는 편이었는데.
[눈 돌아가면 제일 미쳐서 날뛰는 놈이 무슨 헛소리야?]‘그거야 어쩔 수 없었을 때의 일이지. 난 준비성은 꽤나 좋은 편이었다고.’
[흠, 그래? 혹시 이런 거 아닐까?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네 아버지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그런가?’
성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확실히 그 양반을 생각하니 뭔가 납득이 되는 것도 같고?
‘응, 그러게.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꽤 신기한 기분이었다.
본래 부모가 있는 놈들은 다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갑자기 삐빅 하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라이□□로프 로드가 크□ 분노합니□다!〛
그와 동시에 멍멍이 놈이 뭔가에 감전된 듯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점점 강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데, 갑자기 놈이 허공을 향해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를 내지른다.
크와아아아아!
놈을 경계하고 있던 오르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식간에 라이칸슬로프의 푸른 털이 보랏빛으로 물들며 몸이 꿈틀꿈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던 것.
단순히 근육에 힘을 주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갑자기 몸의 부피가 저렇게 늘어나다니?
경악한 오르덴과는 달리, 이번에도 성진의 감상은 단순했다.
‘어, 보스몹 페이즈 2인가 봐.’
[…속 편해서 좋다.]‘뭐, 좋게 생각해. 그래도 남은 생명력을 봐서는 페이즈 3까지 가지는 않을 거 같거든.’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몸집이 족히 1.5배는 거대해진 보라색 멍멍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르…….
하얗게 돌출된 긴 송곳니. 더욱 길고 뾰족해진 주둥이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른다.
성진 일행을 응시하는 붉은 안광은 밝아지다 못해 숫제 눈이 불타고 있는 듯 흉흉했다.
“…이게 대체.”
오르덴이 헛숨을 들이켜며 입을 여는데, 라이칸슬로프의 귀가 꿈틀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야! 조심……!”
콰앙!
경고할 틈도 없이 오르덴의 몸이 석벽에 처박혔다. 보랏빛의 짐승이 엄청난 속도로 태도를 휘둘러, 칼등으로 그를 힘껏 날려 버린 것이다.
“크윽…….”
공성추처럼 석벽 깊이 틀어박힌 오르덴이 나직하게 신음을 흘렸다.
그 와중에 오러를 둘러 몸을 보호한 듯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으나, 워낙에 충격이 크다 보니 당장 몸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크르르르…….
그리고 저주파를 울리며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가는 멍멍이를 보며, 성진은 마음을 굳혔다.
‘…어쩔 수 없나.’
조금만 무리해도 워낙 성황의 눈치가 보이는 터라, 이번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해치우려 했는데.
한숨을 내쉰 성진은 다리에 오러를 두른 후 파앙, 하고 바닥을 박찼다.
흠칫 놀란 라이칸슬로프가 반응하기도 전에 놈의 등으로 날아간 성진이 호두까기를 휘두른다.
사아악. 넓게 놈의 등을 가르고 지나간 그는, 짐승이 몸을 돌리기 전에 이미 석벽에 발을 딛고 놈의 다리를 향해 재차 몸을 날리고 있었다.
최아악! 뒤로 꺾인 무릎 관절부를 호두까기가 깊이 파고들어 휘젓는다.
놈이 재빨리 태도를 사선으로 휘둘렀지만, 착 하고 바닥에 붙다시피 몸을 낮춘 성진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끼며 바닥을 찼다. 연이어 뱃거죽을 길게 가르는 검 날.
크아아악!
성진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짐승이 신경질적으로 태도를 휘둘러 댄다.
그리고 성진은 이제 놈의 머리를 찍은 호두까기를 지지대로 삼아 몸을 돌린 후, 어느새 거대한 짐승의 한쪽 어깻죽지를 깊게 그어 내리고 있었다.
“…….”
오르덴은 석벽 앞에 주저앉은 채, 온몸을 찔러오는 격통조차 잊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광경이었다.
단순히 보면 치고 빠져나가는 자잘한 공격들일 뿐이었지만, 황자는 그 퇴로로 빠지는 움직임 하나조차 허투루 쓰지 않고 놈에게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그 증거로 라이칸슬로프의 남은 생명력은 착실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황자의 간격.
처음 그와 대치했을 때 오르덴이 느꼈던 것은, 그의 간격이 검격에 비해 무척이나 좁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오르덴은 여태까지 자신이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자의 간격은 단순히 거리로 표현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튕겨져 나간 석벽이 그대로 그의 발판이 되고, 짐승이 내려찍어 만들어진 고랑이 곧바로 그를 보호하는 장벽이 된다.
황자의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그의 영역이다.
이미 온 사방이 황자의 간격이었다.
“후우…….”
그리고 마침내 황자가 바닥에 내려앉아 참았던 긴 날숨을 내쉬었을 때.
쿠웅!
도무지 방법이 없을 것 같던 그 육중한 괴수의 몸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