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7)
성황의 아이들-137화(137/469)
§ 137. 미궁 (6)
“소공자의 함정이라니, 대체 그게 뭡니까? 혹시 저하께서 갑자기 번쩍 하고 나타나신 것과 연관이 있는지요? 뭔가의 장치 같은 것입니까?”
“나도 그놈이 뭘 어떻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 오르덴과 함께 어딘가에 갇혔다가 겨우 빠져나왔으니까. 일단 자세한 건 그놈을 찾아서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네가 스카르차피노 소공자에게 뭘 했기에 그가 그런 짓을 한 거냐?”
“야야, 내가 하기는 뭘 해? 난 억울하다! 글쎄 들어봐, 사실 리카르도 그놈이 처음부터…….”
한창 열을 올리며 설명하고 있는 모레스 황자를 오르덴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부하 헤르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오르덴 님?”
평소 그다지 충직하지 않은 부하의 얼굴에는, 대공자가 이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방치했다는 미약한 죄책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터다. 최대한 이번 모임에서 정보를 얻어볼 테니, 별도의 지시가 없으면 그대로 대기하라는 명이 있었으니까.
거기다 오르덴 정도의 무력으로, 한갓 사교 모임에서 위험해질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랬는데 설마 저 어린 황자님에게까지 맞고 다니실 줄은…….”
“그건……!”
오르덴은 입을 달싹거렸으나, 결국 별다른 대꾸는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차원으로 튕겨졌다 돌아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리카르도가 저지른 일이 보통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 아님은 이해했다. 암흑의 교단, 혹은 악마종의 개입이 의심스러운 상황.
대부호 스카르차피노가의 자제가 그런 삿된 것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황도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터였다.
그래서 밀로 상단과의 연결 고리가 확실해질 때까지, 당분간 그곳에서 있었던 자세한 일들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모레스 황자와 말을 맞춰둔 뒤였다.
오르덴은 잠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다음 물었다.
“…리카르도 스카르차피노는?”
“그는 모임 중반부터 쭉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집사의 말로는 급한 볼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답니다.”
“급한 볼일이라?”
“네. 물론 저희 쪽 사람들이 빈틈없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그가 저택을 떠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만.”
그리고 헤르만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사람을 시켜 좀 더 조사해 볼 테니, 오르덴 님은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 제대로 치료를 받으십시오. 지금 꼴이 정말로 말이 아니십니다.”
“그래, 그러지.”
그렇게 대답한 오르덴은 고개를 들어,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성황가 사람들 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동생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아멜리아 황녀의 얼굴을.
“…그런데 헤르만.”
“네, 오르덴 님.”
“그거 아는가? 아멜이… 아멜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여…….”
“…어휴.”
헤르만은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는 진중함이 지나쳐 무뚝뚝할 정도인 자신의 상사가, 어째서 저 황녀님의 일만 되면 이렇게 얼간이 같이 구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 그들의 시선을 느낀 듯, 아멜리아 황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오르덴이 바짝 얼어붙어 있는데.
“지그스문트 대공자.”
이윽고 가까이 다가와 그를 내려다보는 아멜리아의 시선은 전에 없이 누그러져 있었다.
“모레스에게 들었어요. 그 애를 도우려고 했었다죠?”
오르덴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과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대가 내 동생을 위해주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거기까지 말한 황녀는 살포시 입매를 휘었다. 비록 희미한 미소였지만, 일순 헤르만조차 잠시 숨을 멈추었을 정도로 주변의 공기가 화사해진다.
“정말 고마워요, 대공자.”
“……!”
아마도 그로서는 난생처음으로 받아보는 황녀의 호의적인 반응.
오르덴이 저도 모르게 울컥, 복받치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성황가 일원들의 성진을 향한 타박은 계속되고 있었다.
“너도 은근히 사고를 많이 치는구나. 매번 아멜리아 누님이 걱정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뭐, 인마?”
성진이 발끈하자, 옆에서 마사인이 눈썹을 찡그리며 쯧쯧 혀를 찬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하튼 저하는 도무지 방심할 수 없게 만드십니다. 제가 기껏 따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눈을 뗀 그 사이에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십니까!”
“아니, 마사인 경. 그러니까 경은 왜 매번 뭐든 내 탓을 하는 거야?”
물론,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과거 모레스가 저지른 일들 때문이겠지.
이러나저러나 성진은 억울했다.
“아무튼 여기서 이러지들 말고 일단 황궁으로 돌아가자고. 난 말씀드릴 것도 있고 해서, 잠시 본궁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성진이 걸음을 옮기는데, 로건이 재빨리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전에 잠깐만. 너 일단 여기 좀 앉아봐.”
“…응?”
“간단하게 치료해 주겠다. 너도 꽤 다쳤잖아?”
어? 성진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야 다리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떻게 눈치챈 거지?
“아니, 이 정도는 조금 쉬면 나을 거…….”
“모레스.”
등 뒤에서 말을 자르는 아멜리아의 서늘한 목소리에, 성진은 쭈뼛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며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저 회색 눈동자가, 어째 성진이 잘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다리를 절고 있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니?”
아니, 정말 그게 보인다고?
이런 눈썰미 좋은 사람들 같으니!
“누가 봐도 지금의 넌 심각한 부상자란다. 당장 로건이 시키는 대로 하렴.”
“…넵.”
괜히 무서워진 성진이 얌전히 바닥에 주저앉자, 로건이 그의 옆에 검을 내려두고 다리에 손을 올린다.
곧 환한 신성력이 쏟아져 내리며 다리의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마사인이 묻는다.
“심각합니까, 저하?”
“일단 응급 처치는 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무리하지 말고 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마사인이 성진을 향해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방금 로건 황자님의 말씀을 들으셨겠지요? 어딜 또 그 몸으로 본궁까지 가신다고 그러십니까? 진주궁까지는 제가 업어드릴 테니, 오늘은 아예 그 다리로 직접 걸을 생각을 마십시오.”
“뭐어?!”
성진은 기함했다.
아니, 이 사람들아. 벌써 완전 멀쩡해졌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뭘 그렇게 사람을 아기 다루듯 하는 거야?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하. 내일 하루는 수련 금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마사인 경? 나는 정말로…….”
성진이 무어라 항변하려 하는데, 양쪽에서 동시에 남매의 타박이 쏟아졌다.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들으렴!”
“수련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마라!”
“어…….”
성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이거 뭐지? 왜 내가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구박을 받는 거지?
[쯧쯧. 인성이 그렇게 파탄이 나니, 타인의 심정에 대한 이해가 극도로 떨어지는구먼. 가족으로서 널 걱정하는 걸 모르겠냐?]최근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마왕이라는 놈이 어떻게 된 게 쓸데없이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아니, 하지만 걱정치고는 너무들 지나치잖아?’
[그러게 말이다. 이 지랄 맞은 놈이 뭐가 그리 예쁘다고 극성들인지 원…….]‘…….’
성진은 멍하니 남매와 마사인을 올려다보았다.
각기 다른 삼색의 눈동자가, 마치 물가의 어린아이를 보듯 똑같은 걱정의 기색을 띠고 그를 마주 보고 있다.
“하하…….”
하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서일까, 이상하게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인류 최강의 헌터 이성진이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단지, 네 주위에는 이렇게 많은 혈육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성황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당시에는 그것 참, 신경 쓰이고 번거로운 관계들이구나 싶었는데.
어째서일까, 막상 그들과 부대끼는 느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성진은 문득 생각했다.
* * *
스카르차피노 소공자는 늦은 밤이 다 되어서야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마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노집사가 사용인들을 소집하여 온 저택을 수색한 결과였다.
그는 후원 한편에 쓰러져 있었는데, 당시 그의 주위로 심상치 않은 양의 유혈이 낭자했다.
덕분에 처음에 사용인들은 공자에게 무언가 변이라도 생겼을까 기겁을 했으나, 정작 소공자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하인들에 의해 방으로 옮겨진 리카르도는 늦은 밤이 다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연결이… 연결이 끊어졌다! 아, 안 돼!”
그리고 리카르도는 눈을 뜨자마자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으아악! 나는 끝이야! 이제 모두 끝이란 말이다!”
놀란 사용인들이 발작하는 그를 붙잡았다.
“리카르도 님! 공자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수호자가! 그가 내 정신을 죽였어! 나를 위대한 흐름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했다!”
“리카르도 님, 그게 대체……?”
“시구르트! 시구르트! 그는 어디에 있지? 제발 내게 그를 불러다오!”
늘 온화하고 고상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소공자답지 않은 모습.
덕분에 대기하고 있던 의원들이 달려오고, 새파랗게 질린 노집사가 재빨리 치유 사제를 호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리카르도의 발작은 그로부터 한참을 이어졌다.
그리고 새벽 무렵이 되어, 겨우 진정한 그는 이불을 푹 덮어쓰고 침상에 웅크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역시나 그리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던지라,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퀭한 눈을 하고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양새.
보다 못한 이사벨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리카르도 오라버니?”
리카르도는 이불을 꽉 여민 채로 이를 딱딱 맞부딪혔다.
“아아, 두렵다. 너무나 두렵구나, 이사벨라.”
“무엇이 그리 두려우신가요?”
“고결한 정신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마침내 위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연결이…….”
그렇게 뇌까리는 리카르도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도 명확하던 모든 것들이, 마치 두터운 베일에 덮이고 만 듯 이리 모호하기만 하다니…….”
“오라버니.”
“한낱 인간의 정신이란 이렇게도 보잘것없는 것이었더냐. 이 세상은커녕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니, 마치 눈뜬장님과 같지 않으냐!”
“…….”
“아아, 이사벨라! 어찌하면 좋겠느냐? 나는 이제 이 우주에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거대한 흐름과 맞닿은 지류로서 위대한 규칙의 한 축이 되었어야 할 내가, 지금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로 영략하고 만 것이다!”
붉게 충혈된 리카르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광경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이사벨라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붙잡고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렇군요.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
“위대한 질서로부터 갑작스럽게 퇴출되다니. 아마도 그건, 무척 커다란 상실감이겠죠. 오라버니의 마음을 저는 다 이해해요.”
아름다운 청록색의 눈동자가 깊은 연민의 빛을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사벨라?”
묘한 여동생의 반응에 리카르도가 고개를 돌려 이사벨라를 응시했다. 이상하리만치 온화하고, 또 평화롭기만 한 여동생의 얼굴을.
그녀는 전에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감히 위대한 질서의 일부가 되다니, 한낮 인형에 불과했던 오라버니에게는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답니다.]꽃처럼 붉은 입술이 천천히 다가와, 그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인다.
[애초에 없었던 것이니 오라버니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겁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그러니 이제 모두 잊고 편히 쉬세요,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