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0)
성황의 아이들-140화(140/469)
§ 140. 성황의 관 (2)
“그 목걸이의 보석은 오라클에게 있어서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이정표요?”
“그래. 깨어지고 산산이 부서져, 이것이 그의 예지가 아닌 현실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성황은 자신이 오라클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거기다 성진에게 꽤나 자세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 주기까지.
평소에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한데 깨어졌으나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은 쓰임이 다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터. 그것이 네 손에 들어간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성진은 조금 뜸을 들인 후 물었다.
“그것은 제가 다음 대의 오라클이기 때문입니까?”
“…….”
오라클의 이정표라는 것은 아마 오라클의 손에 있을 때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일 터.
성황은 잠시 물끄러미 성진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 역시 그자에게 들었을 테지. 바로 그러하다.”
어째 이 양반치고는 제법 시원하게 설명해 준다 싶었지.
아마 성진이 시구르트 시구르슨으로부터 이미 꽤나 많은 정보를 들은 뒤였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 개망나니 모레스가 정말로 오라클이라고?
아니, 명색이 예지자라는 놈이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내일 없이 인생을 막살 수 있는 거지?
“그 말씀대로, 차원의 이야기꾼은 제가 다음 대의 오라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성진은 잠시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저는 열병을 앓기 전의 저와는 다릅니다. 제게는 예지능력 같은 것은 없어요.”
[나]는 당신의 진짜 아들이 아니다. 그러니 아마도 오라클이 아니겠지.그런데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신이 왜 내게 이 보석을 맡기는 거지?
“그것을 아느냐? 모레스.”
성황은 조금 깊어진 눈으로 성진을 응시했다.
“코른시임 일족은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미래를 예지하곤 하느니라. 혹은 뚜렷한 예지능력이 아니더라도, 약간이나마 미래를 가늠하는 일종의 예감을 가지고 있지”
“…….”
“실은 일족의 전체가 예언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족 전체가 예언자라고? 그렇다면 왜 그들에게 오라클이 그리도 특별한가.
어째서 뚜렷한 예지능력이 없는 모레스가 그들을 제치고 다음 대의 오라클이 될 수 있지?
“오라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의외의 말에 성진이 눈을 끔벅거렸다.
“예지가… 아니라고요?”
“그래. 오라클이란 미래를 보는 자가 아닌, 미래를 살아가는 자이다. 그가 생각하고 밟아나가는 길이 곧 그가 선택한 미래가 되는 것이다.”
언뜻 이해가 갈 듯하면서도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래를 예지해야, 제대로 선택해서 그대로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자 성황은 손깍지를 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그래. 예를 들어보자꾸나. 얼마 전에 그를 만났을 테지? 리브가, 아렌쟈의 수장을 말이다.”
브루노 단장에게 빙의했던 그때를 의미한다면.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는 꽤나 강한 예지를 하는 자이지. 간혹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을 빼면, 제법 쓸 만한 능력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다.”
아, 저런.
리브가는 성황에게 들킬까 봐 그렇게 몸을 사렸는데, 어차피 이 양반은 다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어떻더냐? 그의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더냐?”
“흠…….”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역시 그렇지 않을까?
그는 성진이 찾고 있던 실종자 중 두 사람이 밀로 상단에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또 리카르도와 대면하기 전에 성녀를 미리 만나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지.
‘어라? 그런데 잠깐.’
그가 물어다 준 정보가 어땠더라? 다샤에게 그들을 감시하라고 일러두긴 했지만, 지금 당장 파고들 만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그가 해준 조언의 경우는 또 어떤가? 어쩐지 귀찮아져서 그냥 무시해 버렸는데, 예정에 없이 성녀가 그를 찾아오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잖아?”
성진이 황당해하며 뇌까리자, 성황이 재차 묻는다.
“네가 그저 너의 삶을 사는 데 있어, 네 스스로의 의지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더냐?”
“…….”
“거기에 네가 오라클인지 아닌지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더냐?”
그 질문에, 얼마 전 성황이 그에게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거라. 네가 그 부조리함을 바로잡길 바란다면 그리될 것이다.
그저 원하는 것을 행하라.
중요한 것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고자 하는 의지일 테니.
그러자 성진에게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아렌쟈의 수장은 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성진은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려 오라클의 대행을 자처하는 자다. 아마도 그 역시 그러한 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럼에도 굳이 브루노 단장에게 빙의까지 해 가며 성진에게 접촉하다니, 심히 그 의도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자, 성진에게 시선을 맞춰오는 성황의 눈에서 일순 희미한 은빛 안광이 스친다.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너는 왜 그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상단의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느냐?”
“네? 그거야…….”
괜히 별 볼 일 없는 실종자를 찾아내겠다고 밀로 상단을 들쑤시면, 정작 중요한 것들이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 그랬을 테지.”
성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보자꾸나. 네가 순순히 그의 조언을 들어, 성녀를 만나고자 했다고 가정해 보거라. 너는 어떤 방법을 썼을 것 같으냐?”
“흠. 우선은 만날 약속을 잡자고 편지라도 보내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지. 한데 네가 그랬다면, 지금도 황도 인사들의 모든 초청 서신을 물리고 있는 그 경계심 많은 성녀가 과연 순순히 너를 만나려 했을 것 같더냐?”
“어…….”
“리브가, 그자가 그것을 정녕 몰랐을까? 그가 정말로 네가 성녀를 미리 만나기를 원해 그런 조언을 했을 것 같으냐?”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싸한 기분이 든다.
성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데, 성황이 담담히 그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이를 잘 기억해 두거라, 아들아. 코른시임 일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다. 내가 그들을 황궁에 두고 중용하는 것은, 그들의 재주가 유용함과 동시에 위험한 까닭이다.”
“…….”
“코른시임 일족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은 모두가, 미래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인 것이라. 따라서 그들이 하는 모든 말에는 명확한 의도가 담겨 있고, 하나도 남김없이 거짓인 것이다.”
코른시임 일족은 모두가 거짓말쟁이다.
성황은 그렇게 말했다. 고저 없이 너무나도 평온하다 보니, 오히려 화가 난 듯 느껴지기도 하는 목소리로.
문득 성진의 눈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부서진 펜던트에 닿았다.
하지만 아버지. 그렇다면 조모님은?
코른시임 일족이었던 당신의 어머니는?
* * *
“집에 가고 싶다아!”
우렁찬 외침과 함께, 육중한 바르샤 전사의 몸이 모랫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쿠웅!
일순의 정적.
그리고 곧이어,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저자가 그 오웬인가? 제국인치고는 제법인데?”
“그는 분명 뛰어난 전사이지! 하지만 바르샤식 씨름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처음이면 어떤가? 그는 지금까지 전승이야! 그리고 다음 상대는 바로 작년 씨름의 우승자, 아주타르쿠라고!”
볼란타 부족의 젊은이들이 흥분한 어조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씨름판의 열기에 한껏 취한 그들의 시선은, 모래사장 중앙에서 유독 돋보이는 한 남자에게로 쏠려 있었다. 체구가 제법 큰 바르샤 전사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훤칠한 키의 청년이다.
델크로스의 오웬.
부족장의 아들이자 강한 전장의 전사인 그는, 샌님 같은 델크로스의 전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었다.
거북이처럼 딱딱한 철갑으로 몸을 꽁꽁 싸맨 제국의 겁쟁이들과 달리, 청년은 언제나 가벼운 경갑 차림으로 전장을 종횡무진했다.
갓난아기의 배냇머리처럼 짤막한 머리를 한 제국의 애송이들과 달리, 청년은 마치 바르샤의 전사처럼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말을 달렸다.
지금도 질끈 묶여 있는 그의 밝은 구릿빛 머리에는, 벌써부터 화려한 전적을 나타내는 여러 개의 가마우지 깃털이 장식되어 있었다.
“저것이 단 며칠 만에 쌓아 올린 전적이라고 믿을 수 있겠나? 그는 훌륭한 전사야! 아무리 강한 적을 마주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지!”
그 말대로 거칠 것 없이 굳건한 오웬의 눈동자는, 새로 모래판에 올라온 험악한 인상의 바르샤 전사를 흔들림 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 소리.
“집에 가고 싶다아아아!”
힘찬 메치기와 함께 작년 씨름의 우승자가 장렬하게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콰아앙!
우와아아아아!
오롯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환호 소리가 해변의 서늘한 공기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특별 퀘스트 – 해변의 씨름대회에서 5승 이상의 전적을 거두자! (완료)] [퀘스트 등급 : B+] [총평 : 당신은 볼란타 부족 전원에게 당신의 강인함을 효과적으로 각인시켰습니다. 이로써 당신은 호전적인 젊은이들과 완고한 일부 장로들의 호감을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작은 성과는 앞으로 볼란타와의 동맹을 더욱 확고히 하는 초석이 될 테지요. 5승을 넘어 전판 완승의 기록을 세운 당신. 그 모양 빠지는 기합 소리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두 단계는 더 높은 완료 등급을 얻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쉬움을 담아 보너스 캐시를 드립니다.] [완료 등급 : B] [보상 : 4000(+20)P 캐시] [*본 상품은 판게아 클로니클 상점 창에서 사용 가능합니다.]드물게도 보너스를 주나 했더니 쩨쩨하게 20캐시가 뭐야.
입을 불퉁하게 내밀며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웬은 감히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저놈의 시스템은 빈정상한답시고 50%까지도 보상을 깎아먹었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메인 스트림 2 – (진행률 19%)]그래도 이번 퀘스트 덕분에 전체 진행률이 꽤나 올랐다.
한숨을 쉬며 땀을 닦아내는데, 친우인 치쿠단카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오늘은 참으로 훌륭했네, 오웬.”
“뭐, 이게 다 사전에 씨름 방식을 제대로 가르쳐 준 자네 덕분이지.”
오웬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치쿠단카를 향해 몸을 돌리자, 씨름을 하느라 웃통을 까고 있던 그의 목에 유일하게 걸려 있던 선홍색의 보석이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그것을 본 치쿠단카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그 돌은 그대를 지켜주는 부적 같은 건가? 늘 걸고 있군.”
“아, 이거?”
오웬은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꽤 근사하지 않나? 내가 태어나던 날, 대부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셨다고 들었네.”
“델크로스의 부족장이? 그렇다면 과연 범상치 않은 물건이겠는데? 늘 지니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군.”
치쿠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궁금한 것이 있다네. 그대가 매번 외치는 그 주문은 뭔가?”
“…하하.”
오웬은 조금 멋쩍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그거 말인가? 델크로스식 승리의 주문일세. 아주 신통하지.”
그래. 적어도 오웬에게는 무적의 기합이다.
성황과 형제자매들이 보고 싶다 못해, 이제는 슬슬 그놈의 개망나니 모레스의 얼굴마저 그리워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벌써 전사들이 모두 모여 있네. 오늘은 족장의 암양을 잡았으니 자네도 적당히 쉬고 어서 잔치에 참여하게나.”
치쿠단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몸을 돌린다.
가볍게 마주 손을 흔들어준 오웬은, 조금 우울한 얼굴로 오른쪽 시야에 계속 떠 있는 작은 창을 확인했다.
[메인 스트림 1 – 남부 전선을 지켜라! (완료)] [메인 스트림 2 – 볼란타 부족과 동맹을 맺자! (진행율 19%)]그래. 솔직히 퀘스트의 달성이야 어쨌든 오웬은 정말로 델크로스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스템 놈의 악랄함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웬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후 퀘스트를 슬그머니 노출했다는 것.
[메인 스트림 3 – 성□을(를) 구하라!] [메인 스트림 4 – 성□을(를) 구하라!] [메인 스트림 5 – □□□ □□을(를) 무찌르자!]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오웬이 모를 수가 없었다. 저 빈칸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 성황, 아니면 성녀다.
그리고 설마 한 사람을 구하는 퀘스트가 두 번에 걸쳐 나오지는 않을 터.
그 말인즉, 오웬이 늦장을 피우면 피울수록 성황과 성녀 모두에게 위험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마음 편히 델크로스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이런 젠장! 시슬레가 보고 싶어! 애들이 보고 싶다고! 아버님이 보고 싶다아아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해변의 별 하늘 아래, 돌아가지 못해 서글픈 한 청년의 외침이 길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