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9)
성황의 아이들-149화(149/469)
§ 149. 전야 (4)
타운하우스에서 사교 모임이 있던 날 밤.
리카르도는 어찌 된 영문인지 피투성이가 된 채 후원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그의 주위에는 족히 수 리터가 넘어 보이는 다량의 혈흔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공자의 몸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에, 그 피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았다고.
‘…설마?’
처음 다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성진의 머릿속에는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상처 치료는 물론 손실된 혈액까지 실시간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인간.
‘에이, 아니겠지. 그 양반은 그때 본궁에 있었는데…….’
어쨌든 그날 저녁부터 리카르도는 심한 정신착란을 보여 의원들의 집중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진 또한 카드모스를 신경 쓰랴 탄신연을 준비하랴 이래저래 바빴기 때문에, 놈을 족치는 일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던 터.
그렇지만.
-난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우리 꼬맹이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게 만든 놈을,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에휴. 네 아버지가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도, 왜 매번 너는 이런 돌발 상황을 만드는 거야?]기척을 죽인 채 타운하우스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데, 마왕 놈이 푸욱 한숨을 쉬며 주억거렸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이건 어디까지나 상정 범위 내라고. 어쩌면 지금이 가장 완벽한 타이밍인지도 모르거든.’
[엥?]자. 생각해 봐라, 마왕아.
큰 행사가 시작되기 하루 전, 이렇게까지 모두가 한 가지에 정신 팔고 있는 날이 흔하겠냐?
다들 탄신연 준비에 한창이거나 개인적인 사교모임 중이라고. 지금도 스카르차피노 본가를 포함해서, 황도 여기저기에는 비정기적인 연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을걸?
[…어어?]성진의 예상대로 주요 요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경호가 집중되면서, 오히려 타운하우스로 향하는 길목은 평소보다 경계가 한산한 편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이성진 주제에!]뭐라는 거냐. 전에도 말했지만 난 준비성이 꽤 철저하다고.
그간 시간이 없어서 그랬지, 언제든 리카르도 놈을 족칠 준비는 하고 있었지.
물론 이따금 성진 일행과 비슷한 차림의 밤손님을 몇 번인가 마주치기도 했지만.
“저희 쪽 요원입니다.”
다샤는 어둠 너머로 수신호를 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흠, 어째 정보부를 통해 직통으로 성황에게 보고될 것 같다는 느낌이.
‘아냐, 그 양반이라면 우리가 황궁을 나섰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 같기도…….’
[아까부터 아렌쟈로 추정되는 영혼 단말 두 개가 따라오고 있어.]‘어, 과연.’
하지만 괜찮다. 나는 오늘 사고를 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이게 사고가 아니라고?]그러는 동안 이리저리 신호를 보내고 응답하느라 바쁘던 다샤가, 곧 빠르게 성진의 뒤를 쫓아오며 울상을 지었다.
“저하. 설마 얼마 전 스카르차피노 가의 경호 체계에 관해 조사하라고 하신 것이 다 오늘을 위한 일이었나요?”
“뭐, 겸사겸사.”
현재 조사 중인 사안들이 어지간히 민감해야 말이지. 결국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이렇게 밤에 몰래 돌아다니는 방법밖에 없다고 짐작하고 있긴 했다.
양지에서 멀쩡하게 영업하는 밀로 상단이나, 대부호로서 튼튼한 입지를 갖추고 있는 스카르차피노 가문을 공권력을 이용해 무작정 쑤셔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다 공권력이 과연 순순히 성진의 편을 들어줄지도 미지수.
리카르도 놈이 실은 암흑 교단과 결탁했고,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날려 보내기도 한다고 하소연해 보라. 정작 성진이 조사를 위해 당장 이단 재판부로 소환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도 경비대를 이끌고 서이서를 잡으러 갔던 때가 좋았지.’
공권력이 내 편이 되는 느낌이 참 짜릿했는데.
타운하우스의 스카르차피노 저택.
본격적으로 잠입하기 직전, 성진은 벨트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약병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가 최근 다샤에게 사용법을 배운 약품들이었다.
이쪽이 자백제, 이쪽이 수면제, 이쪽이…….
성진이 하는 양을 가만히 보고 있던 다샤가 질린 얼굴을 했다.
“저하, 그것들을 쓰실 겁니까? 대체 거기서 뭘 하시려고요?”
“아냐, 걱정 마. 그냥 평화로운 대화를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라고.”
놈이 정말 정신착란을 보인다면 좀 골치 아프겠지만.
혹시라도 추궁을 피하기 위한 연극을 하고 있다면, 아마 오늘은 제대로 탈탈 털리게 될 거다.
“아쉽다. 나한테도 신성력이 있었다면, 내키는 대로 마음껏 패준 다음 감쪽같이 치료하고 또 때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렸더니 다샤가 기겁을 한다.
“무려 스카르차피노가의 공자입니다, 저하. 나중에 필시 문제가 될 겁니다!”
“괜찮아, 다샤. 우리 정체를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니까.”
“…맙소사!”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다샤가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진은 준비한 물약 중 하나를 쭉 들이키고는 복면을 얼굴 위로 끌어올렸다.
“이제 날 저하라고 부르면 안 돼, 알겠지?”
휴우. 다샤의 긴 한숨 소리를 뒤로하고 성진은 당당하게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최근 일취월장한 오러 은폐 덕일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하품을 하는 호위기사들을 가볍게 지나친 성진은, 곧 리카르도의 방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이놈 보게…….”
정신착란을 일으켰다더니, 자고 있는 놈의 얼굴은 생각보다 편안해 보인다.
이 새끼가. 꼬맹이한테 그런 마음고생을 시킨 주제에 지금 발 뻗고 잠이 오냐?
다짜고짜 놈의 멱살을 움켜진 성진은, 오러를 이용해 손쉽게 그를 휘익 들어 올렸다.
“뭐…….”
그리고 리카르도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푸욱!
얼굴부터 다시 침상 위로 세게 내리꽂았다. 덕분에 졸지에 숨통이 막힌 리카르도가 버둥거리며 억눌린 비명을 지른다.
“커억……!”
그 소리가 다 새어 나오기 전에 머리통을 베개 위에 깊이 내리누르며, 성진이 놈의 귓가에 나직하게 명령했다.
“조용히 입 다물어.”
“……!”
“네놈 덕분에 우리 교단은 정보부에 꼬리를 밟혔다. 책임질 각오는 돼 있겠지?”
현재 성진의 목소리는 뻑뻑하게 쉬어 있었다. 다샤에게서 받은 목소리 변형 약물 덕이다.
일시적으로 성대가 부어오르는 원리 같은데, 코가 찡하고 눈물이 자꾸 나는 걸 보면 어째 급성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약물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설마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거나 하지는 않겠지?
“소리 지르면 네놈은 바로 죽는다. 하지만 일을 제대로 수습하기만 한다면 목숨은 살려 주지.”
“…….”
리카르도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조용히 눈알을 굴린다.
어째 자신이 꿈의 마왕이라고 큰소리칠 때와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맥박이 미친 듯이 올라가네. 정말로 겁먹은 눈치야.]‘흠.’
성진은 놈을 붙잡고 잠시 관찰했지만, 또다시 푸른 나비가 날아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시구르트 시구르슨, 정말로 아바타를 이대로 버려두고 내뺀 건가?
잠시 후 반항을 멈추기에 슬그머니 머리를 놓아주니, 리카르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교단에서 오셨소?”
오르덴에게 암흑 교단의 표식을 보냈다길래, 뭔가 아는 게 있겠거니 싶어 던진 블러핑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놈, 교단과 직접 내통하고 있었어?
“네놈과는 할 이야기가 없어, 어서 그 이야기꾼 놈을 불러라.”
“뭣… 당신은 대체 누구요? 설마 대주교가 [인형사]에 대해 아무에게나 언급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이야기꾼 놈을 [인형사]라고 지칭하는구나.
아바타를 인형처럼 조종하는 놈인 걸 생각하면 꽤나 어울리는 별명이다.
“설마 그가 그대로 상단주와 결탁하기로 한 거요?”
아마도 밀로 상단의 상단주를 말하는 것 같다.
“글쎄. 네놈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그러자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던 리카르도가, 순간 냅다 침상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방문으로 달리려 했다.
물론 진작 놈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던 성진이 손쉽게 발을 걸었지만.
쿠당탕!
놈이 대차게 바닥을 구르며 꽤나 큰 소리가 났지만, 가만히 기감을 돋워 봐도 주위에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예정대로 다샤가 제대로 손을 써 준 모양.
“끄으으으…….”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진 리카르도가 선혈이 흐르는 코를 움켜쥐고 바닥을 뒹군다.
그러는 동안 성진은 천천히 침상 앞에 놓인 티테이블로 걸어가, 그 위에 준비해 온 약병들을 늘어놓았다.
달그락, 달그락.
그 소리에 뒤늦게 고개를 든 리카르도가 몸을 떨며 물었다.
“뭐, 뭘 하려는 거요?”
뒤를 이어 다양한 길이의 작은 비수들과, 끔직한 용도로 사용되리라 짐작되는 쇠꼬챙이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데굴 눈동자만 굴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리카르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겁니까? 교단에서도 이미 알다시피 [인형사]는 나를 떠났소! 모든 계획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단 말이오!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놈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는 날 그대로 버리고 사라졌소. 이 거대한 우주에 홀로 던져 버렸단 말이오! 어떻게, 어떻게 그가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놈이 지금 겁에 질린 건지, 버림받아 서글픈 건지 갈피가 잡히질 않는다.
‘마왕아?’
[음. 기억이 없다는 말은 사실 같아. 정말 다 지우고 튄 거 같은데?]아쉽다. 이놈이 시구르트 시구르슨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한숨을 내쉬며 성진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네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러자 리카르도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 그럼 그것들은 다 뭐…….”
“이론만 배우다 보면 때론 실습이란 걸 해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지. 안타깝게도 너한테는 이것들을 쓸 필요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무슨……?”
“뭐, 네가 그 개자식과 어울려 지낸 응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뚜두둑. 양손의 관절을 번갈아 꺾으며 성진이 말했다.
“안심하라고. 다행히 난 네놈을 그리 오랜 시간 들여 고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어. 그래서 그냥 흠씬 패 주기만 할 거야.”
“히익!”
바닥에 주저앉은 채 뒤로 몸을 빼던 리카르도가 탁 하고 벽에 부딪힌다.
그 겁에 질린 얼굴을 잠시 관찰하던 성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도구들 중에서도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꼬챙이 하나를 집어 희미한 달빛에 비춰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걸 옆구리에 콱 찔러 줄 생각이지. 오러를 실은 채로 네놈의 내장을 몇 번이고 휘저어 줄 거다.”
“…허억?”
“그럼 겉으로는 별 상처가 없겠지만, 망가진 장기 덕에 뱃속에서 천천히 피가 고이겠지? 몸 밖으로 피가 흐르지는 않아도, 아침이면 네놈은 분명 과다 출혈로 죽게 될 거다. 그리고 사인은 오리무중에 빠지겠지.”
“……!”
“너는 장이 꼬이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못한 채 아침까지 천천히 죽어갈 거야.”
극도의 공포로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놈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성진이 입꼬리를 쭉 끌어올렸다.
“자, 선택은 네놈이 해. 간이 좋냐? 비장이 좋냐? 신경 좀 써 주면 신장도 같이 건드려 줄 수 있어. 전부 혈관이 풍부한 장기들이니까.”
번쩍. 빛을 반사하는 꼬챙이를 응시하고 있는 리카르도는 이제 거의 정신이 나갈 것처럼 보였다.
쏴아아. 일순 근육 긴장이 풀렸는지, 놈이 지린 소변으로 바닥이 흥건해졌다.
“죄, 죄송… 전 그저 그자의… 인형… 크흑! 절대, 절대 교단에… 폐를 끼칠 생각은! 흐읍!”
벌벌 떨리는 턱은 차마 제대로 된 말을 뱉어내지 못했다.
“자, 마지막 기회다. [인형사]는 지금 어디에 있지?”
“딸꾹! 으흑! 아마, 아마 다른 인형에게로 가… 갔을 겁니다!”
“그 다른 인형은 또 누군데?”
“전… 전 모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끄윽끄윽. 뭔가에 목이 졸린 듯 억눌린 소리로 울부짖는 놈을, 성진은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정말 아쉽다.
이놈이 그놈이었다면, 나는 분명 천천히 죽음으로 향해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놈에게 생생하게 느끼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퍼억!
“컥!”
가볍게 턱주가리를 걷어차자, 벽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친 놈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다.
“끄윽! 아는 걸 다 말했는데, 대체 왜?”
왜긴 왜야?
말했잖아? 처음부터 네놈을 때려주는 게 진짜 목적이라고.
그 뒤로는 그저 질펀한 매타작이었다.
쿠억! 켁! 크엑! 우헉!
성진이 놈을 두드려 팰 때마다 찰진 비명이 방 안을 울린다. 점점 그 폭력의 강도가 높아지는 듯 보이자, 결국은 밖에서 사방을 경계하던 다샤가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저……!”
하마터면 저하라고 외칠 뻔한 그녀는, 목소리를 죽이며 소곤거렸다.
“아까는 분명 폭력은 쓰지 않으신다고……?”
“내가 언제?”
원활한 대화를 위한 수단을 준비한다고 했지. 대화가 끝난 후에도 때리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작신작신 얻어터진 리카르도는 완전히 떡이 되어 바닥에 뻗어 있었다.
“이 사람은 스카르차피노의 자제입니다! 이대로라면 분명 문제가 커질 거예요!”
“걱정 마. 내가 다 준비해 온 게 있어.”
성진은 품속에서 작은 메달을 하나 꺼냈다.
조잡한 거미가 새겨져 있는 구리 메달. 오르덴으로부터 넘겨받은 암흑 교단의 표식이었다.
“이놈이 설마 암흑 교단의 잔당에게 습격당했다고 대놓고 떠들어댈 리는 없겠지.”
아까 놈이 하는 말을 듣자 하니 교단과 밀로 상단, 그리고 스카르차피노가 현재 서로 눈치싸움을 하는 모양이던데.
혹시 이 일로 자기들끼리 의심해 주면 더 좋은 일이고.
그렇게 메달을 고이 리카르도의 머리맡에 올려준 성진은 입꼬리를 쓱 비틀며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이런 사악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