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58)
성황의 아이들-158화(158/469)
§ 158. 사도 (2)
“그 이야기 들었나? 글쎄, 우리 아기 성녀님께서 실은 주신의 사도셨다는구만.”
“뭐? 세상에!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그 사도란 게 정확히 뭔데?”
“그러니까, 주신께서 친히 내려주신 성녀님이라는 거지.”
“근데 성녀님도 본래 주신이 내려주시는 은총 아닌가?”
“그게, 조금 다르다는구먼. 이제는 성기사단 소속의 성녀님이래.”
“뭔지는 몰라도 그거 대단하군!”
소문은 대단히 빨랐다.
시슬레의 선언이 워낙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지라, 어젯밤의 사건이 황도에 순식간에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임시 성회가 끝난 직후에 이미 온 황도 시민이 [사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실은 정보부에서 미리 손을 쓴 탓이 컸다. 조금의 비난거리가 생기기도 전에 민심을 잡아둘 작정인 것이다.
덕분에 그 소문은 베르트랑 거리를 지나가던 로메인의 귀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사도?’
그는 접선 장소로 향하며 생각했다.
분명 어제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레오 님이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시겠지.
그러나 막상 창고에 도착하여 그를 대면했을 때 로메인은 깨달았다.
‘…글렀구나.’
어디에 정신을 빼두고 있는지, 레오나드가 상기된 얼굴로 헤벌쭉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로메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도? 그게 뭔데?”
“…….”
대체 황궁에서 뭘 하고 다니기에, 온 황도 신민이 다 떠들고 다니는 이야기를 혼자 모르고 있나.
로메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왕자가 저렇게 넋을 빼고 있다면 십중팔구 여인에 관한 일이리라.
생각보다 황녀가 그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지. 거기다 꽤나 좋은 분위기가 되어 가고 있는 눈치가 아닌가.
“아 참, 좋은 소식이 있다, 로메인. 모레스 황자가 널 만나겠대.”
“그랬습니까? 조금은 몸을 사릴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그래? 본인은 암흑 교단 관계자라는 것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던데? 흔쾌히 약속을 잡자고 하더군.”
아니면 내 인상이 꽤나 믿음직했나 보지.
그렇게 떠들어대는 왕자의 헛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로메인은 반가면 아래로 드러난 턱을 문질렀다.
왜지? 뭔가 찜찜한 것은 기분 탓일까?
“그나저나 참 신기하군. 왜 멀쩡한 신성제국 황자가 암흑 교단의 일원을 자처하는 거지? 로메인, 넌 또 어떻게 그 황자의 비밀을 알게 된 거냐?”
로메인은 잠시 레오나드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는 계획의 핵심 멤버이니 이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겠지.
“레오 님. 그자는 아마 진짜 모레스 황자가 아닐 겁니다.”
“…뭐?”
“모종의 이유로 진짜 황자는 죽은 거겠죠. 어쨌든 지금 그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암흑 교단이 불어넣은 악령입니다.”
멍청히 입을 벌리고 있던 레오나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농담이지?”
그러나 반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일전에 불완전한 씨앗과 채널링을 하며 그의 영혼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날 로메인이 본 것은, 제대로 된 형체 없이 몸과의 연결이 극도로 희미한 영혼이었다.
안식의 세례를 받은 게 아니라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라니우스식 설명을 빌자면, 아마도 바이온에 해당하는 부분이 약한 겁니다. 바이온은 영혼과 몸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서히 만들어지니까요. 그것이 바로, 그 영혼이 갑자기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안식의 교단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그러나 그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드는 잘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바이온?”
“…설마, 레오님. 영혼 3원설을 모르십니까?”
“아아. 그거 신학 관련 이야기야?”
레오나드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신학 교사인가, 뭔가 그리운 느낌인데?”
하도 잔소리를 지껄이기에 단칼에 푹 쑤셔 줬어. 지금은 궁 후원에 고이 매장되어 있지.
“…….”
“그나저나 의외로군. 성황, 그 무서운 작자가 황궁 내에 악령을 내버려 두다니.”
“그가 제법 쓸모 있는 말이라는 거겠죠.”
실제로 그 가짜 모레스 황자는, 성황 대신 로메인의 파종 계획을 성공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해도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자기 아들인데?”
“바꿔 말하면, 아들의 몸을 차지한 악령까지 이용해야 할 정도로 그가 궁지에 몰렸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반가면 아래의 입술이 자신만만한 호선을 그린다.
“거대한 파국은 본래 그런 작은 틈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레오 님.”
* * *
성황이 주최하는 전례 의식.
황궁 앞에는 벌써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일반 신민들이 성황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드문 날이니까.
여기저기 작은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눈에 띈다. 허공에도 색색의 꽃잎들이 흩날리는, 명실상부 델크로스 최대의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탄신연은 폐하의 축복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니까요.”
마사인 경이 성진의 정면을 경계하며 설명했다.
탄신연 당일은 신의 대리자가 모두를 축복하는 날이다. 낮에는 델크로스 신민들 앞에 얼굴을 비추고 그들을 축복해 주며, 저녁 연회에서는 또 대륙 각지에서 온 귀빈들을 축복해 주는 날.
‘생일 당사자가 축하를 받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 양반도 좀 딱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한 생일 선물이라도 준비할 걸 그랬나 봐.
[말썽을 조금만 덜 피워도, 네 아버지는 그걸로 충분히 기뻐하지 않을까?]‘…닥쳐!’
그렇게 마왕 놈을 윽박지르긴 했지만, 성진은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이번 꼬맹이 사태도 따지고 보면, 먼저 심지에 불을 붙인 것은 자신이 아닌가.
예정에 없던 전례 행사에 참석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젯밤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는 꼬맹이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조금 걱정이 되었으니까.
“본래는 신민들을 위한 행사입니다. 저하께서 꼭 참석하실 의무는 없습니다만.”
마사인 경의 말대로 따로 귀빈석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성진은 현재 평범한 옷으로 환복을 하고 인파 속에 섞여 있는 중이다.
대신 경호만은 확실해서, 성진의 좌우에는 각각 마사인과 마리아 경이, 그리고 뒤에는 쿠르트 경이 빈틈없이 에워싸고 서 있었다. 상주기사들 중 가장 강한 전력이 총출동한 것.
잘 살펴보면 인파 사이에 간간이 경호 인력으로 둘러싸인 귀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성진처럼 몰래 구경 온 인사들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시작합니다, 저하.”
쿠르트 경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곧 웅장한 관악기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진다.
연이어 다섯 성기사단이 차례로 도열을 시작했다. 특색이 다른 그들이 예복을 차려입고 일사불란한 군례를 선보이는 광경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정면의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과 성 바스티안 기사단.
하얀 바탕에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의 문양이 새겨진 기사단 정복이, 정문 좌우로 늘어져 꽤나 근사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오! 저기 로건이 있어!”
성진은 그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반색을 했다.
거, 자식. 칼자루 한번 멋들어지게 돌리네.
그렇게 한동안 볼거리를 제공하던 성기사단의 군례가 끝나자, 이번에는 고위 사제들과 성가대가 앞으로 나서며 간단한 미사가 이어졌다.
“시슬레다!”
정면에 사제복을 입고 제법 의젓한 태도로 서 있는 꼬맹이가 보였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성진은 정색을 했다. 바로 옆에서 꼬맹이를 부루퉁한 표정으로 쏘아보는 매부리코 영감이 눈에 띄었던 것.
저 영감탱이가! 눈 곱게 안 뜨냐?
“베니투스 추기경이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근본이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마사인이 성진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달래듯 말했다.
“아마 처음에는 갑자기 직책을 받으신 황녀님과 삐걱댈 수 있습니다만, 원리 원칙에 충실한 자이니 조만간 스스로 납득하고 정리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래?”
성진은 마사인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성황 알현을 위해 본궁에 갔을 때, 추기경과 마사인 경 사이에 어딘지 묘한 기류가 흐르지 않았던가?
“마사인 경은 그를 꽤나 잘 아는 듯하군.”
그러자 마사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아니겠습니까. 베니투스 추기경은 예전에 제 후견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예전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잔소리를 하려 들지요.”
그러고 보니 마사인 경, 어제 연회에서도 베니투스 추기경을 위시한 고위 사제들에게 붙들려 있었지.
-마사인 님.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멀쩡한 근위대장직을 사퇴하고 엉뚱하게 별궁 경호대장이라뇨! 마사인 님은 성황가의 적장자이십니다! 언제나 이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어젯밤 그가 한 잔소리들을 떠올리며 마사인이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성진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알 만하네. 경더러 결혼하라고 성화구나?”
“…네?”
마사인의 얼굴이 미묘해졌지만, 성진은 이해심 가득한 얼굴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내가 잘 알지. 이 시기의 영감님들이 하는 잔소리가 다 그거 아니야?”
마사인 경의 나이가 벌써 서른에 가까워진다고 알고 있는데.
이 시기의 레퍼토리라면 빤하지. 취직 안 하냐? 애인은 있냐? 언제 결혼하냐? 애는 언제 가지냐?
마사인 경이야 번듯한 근위대 기사이니, 아마도 애인이나 결혼 둘 중 하나겠군.
“아아!”
“저기 폐하시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여기저기 탄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단상 위에 성황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년에 한번 있는 행사라고는 해도, 성황은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단지 자리가 자리인지라, 오늘은 법복을 제대로 여미고 있었지만.
“…….”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그가 그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건만, 일순 세상의 모든 것들의 이목이 그를 향해 집중되는 듯 느껴졌다.
광장에서 일제히 숨을 죽이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그의 머리 위를 곧장 내리쬐는 햇살.
심지어는 약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까지 그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단상에 선 성황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신성력을 사방으로 뿜어냈을 뿐.
그러나 그 단순한 행동의 결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신성력이 아예 전무한 성진도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것을 느낄 만큼 거센 신성력의 파동이 광장을 휩쓸었으니까.
화악.
사람들이 들고 있던 꽃다발의 꽃망울이 일제히 활짝 피어올랐다. 심지어는 바닥에서 이리저리 짓밟히던 꽃잎들마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아아…….”
광장에 있던 온 신민이 경도되어 눈시울을 붉힌다. 일반 사람들도 그럴진대 신성력에 민감한 성직자들은 어땠을까.
크흐흐흑!
여기저기 울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꽤 이국적인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탄신연을 맞아 외국에서 들어온 사제들인 모양.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꼴이 확실히 제정신들이 아닌 모습이다.
이것도 일종의 [매혹]일 수 있다고 마왕 놈이 그랬던가.
-어떤 의미에서는 마기처럼 저항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더 위험할 수도 있지.
그 직후 성황은 곧바로 황궁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지만, 한번 광장을 휩쓴 흥분은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 감격에 겨워 목 놓아 우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진은 생각했다.
‘내가 신성력이 없어서 그런가? 아무래도 사이비 광신도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 아닙니까?”
그렇게 느낀 것은 성진만이 아닌 듯,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일 때문에 오래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간혹 이런 델크로스의 광경이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순간 성진은 그 자리에 리카르도가 서 있는 줄 알았다. 남자의 훤칠한 키나 여유 있는 태도가 그와 판박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곧 그가 리카르도보다 조금 나이 든 티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마사인이 뭐라고 하기 전에, 남자는 점잖게 예를 취해 보였다. 그리 정중하지는 않으나 딱히 흠잡을 데 없는 묘한 태도다.
“모레스 저하를 뵙습니다.”
“그대는?”
“기억이 없으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저는 도미니코 스카르차피노입니다. 종종 모임에서 저하께 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만.”
안녕 너머로 묘하게 냉정해 보이는 눈동자가 빛난다.
“제 동생의 건강을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인사를 드리고자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뵙게 되었습니다.”
그 말대로, 성진은 아멜리아의 조언에 따라 이사벨라의 안부를 묻는 서신을 보낸 터였다.
하지만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왕의 병석이니만큼 그런 서신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그걸 다 읽고 답인사를 할 정도라고?
성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이사벨라는 내 약혼녀인걸. 그나저나 그녀의 상태는 좀 어때? 차도가 있나?”
그녀의 정수리를 찍는 현장에 있었던 터라 이렇게 묻기는 좀 껄끄럽지만. 직접 두드려 팬 리카르도의 안부를 묻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러자 도미니코는 가만히 성진을 살피듯 바라보았다.
이 자식, 뭔가 눈치챈 건가?
“저하께서 심려해 주신 덕에 곧 쾌차할 테지요.”
그렇게 대답하는 남자의 얼굴에서는 감정의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련한 사업가로써 표정을 관리한다기보다는, 본래 감정이 메마른 듯 보이는 건조함이다.
‘어쩐지 만만치 않은 인간…….’
성진은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편한 기분은, 그가 자신의 약혼자랍시고 옆에 있던 여인을 소개했을 때 배가 되었다.
“이쪽은 제 약혼녀인 올리비에입니다.”
쾌활한 인상의 예쁘장한 여인이 드레스자락을 살짝 들어 보인다.
순간 성진은 속으로 기함했다.
‘이 여자 암살자잖아! 이 자식, 대체 뭐하는 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