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
성황의 아이들-16화(16/469)
016. 오러의 행방 (2)
“자연스럽게 몸을 타고 흐르는 오러를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것과, 그것을 몸 밖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마사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연무장 한가운데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성진이 내민 손을 그가 왼손으로 받쳐 들고, 오른손 중지와 검지를 들어 마치 맥을 짚듯 손목 위에 얹은 채였다.
그는 그 자세로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소량이라고 하더라도 외기를 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의념을 오러에 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외부로 발출되는 오러는 여간해서는 부드러울 수 없고, 필히 외부에 강한 파괴력과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
“특히 타인의 몸에 외기를 흘려 넣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그 몸에 찔러 넣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설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성진의 불안한 마음이 커져간다.
마사인 경. 왜 꼭 당장이라도 남의 손에 오러를 흘려 넣을 것 같은 자세로 이런 설명을 하는 거지?
“물론 오러 운용이 대단히 노련한 자라면 아무런 피해 없이 타인에게 오러를 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러에 실은 의념이 자유로우니 미치는 영향 또한 자연스러우며, 이를 극도로 섬세하게 운용하면 마치 타인에게 본인 본연의 오러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요.”
마사인 경의 말로는 그의 숙부가 그러한 경지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좀처럼 오러 운용에 감을 잡지 못하는 둔한 조카를 위해, 손수 외부에서 오러를 흘려 일일이 그 변화를 몸에 체득시켜 주었다고.
물론 당시의 어린 마사인은 그 과정이 그렇게 위험한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저 수련에 진척이 생겨 희희낙락했다나.
“숙부의 경지까지는 요원하나, 저도 나름 데카론 나이트를 앞둔 상급 기사입니다. 오러 운용의 섬세함이라면 기사단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몸. 절대 안전할 것이니 저하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아니 잠시만,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습니까?
혹시 긴장하고 계십니까, 마사인 경? 네?
성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저… 그럼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신체가 오러로 헤집어지겠죠.”
끄아아아악! 나한테 뭘 하려는 거야? 이 도른 자야!
다행히 성진의 손이 갈가리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는 일은 없었다. 마사인 경이 장담한 대로, 그는 제법 대단한 경지의 오러 유저였던 것이다.
마사인의 손가락과 닿아 있는 손목을 통해, 잔잔한 모래알 같은 것들이 따끔거리며 팔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소량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구별되는 이질적인 기운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마사인은 오러를 흘리던 것을 멈추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생각보다 정신력 소모가 컸던 듯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제 경지가 미천하여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모래가 흘러들어 오는 느낌이었어.”
“평소와는 다른 기운을 느끼셨군요?”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확실한 기운을 왜 나 혼자서는 전혀 느끼지를 못하지?”
마사인 경의 얼굴이 환해졌다. 수일간의 삽질 끝에 마침내 보인 미미한 성과였다.
“제가 운용한 오러의 질감까지 파악하신 것을 보니, 어쩌면 저하의 입문도 머지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몸에서 오러를 운용해도 이런 느낌인가?”
“실제 본인의 오러가 흐를 때는 느낌이 조금 다를 겁니다. 더 약하고 더 부드럽게… 그러니까 물이 흐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사람에 따라서는 약하게 쥐가 나는 것처럼 저릿저릿 하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흐음…….”
뭔가 뜬구름 잡는 것 같던 오러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마물의 정기를 흡수해서 몸을 강화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흡수한 힘을 이용해 근육의 움직임에 맞추고, 외부의 충격을 차단하고, 무기에 엮어 넣어 더욱 날카롭게 만드는 것.
예전의 성진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던 일들이다.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 보니, 마사인이 자세히 풀어서 설명했던 1식의 오러 운용이 이전의 성진이 비슷한 동작을 했을 때 마물의 정기를 근육에 운용하는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밝아진 마사인과는 반대로 성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오러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성질의 힘이므로 그 양상도 전혀 다를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몸속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그저 둔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뿐.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난 수십 년간 온몸에 이질적인 기운을 동화시켜 가며 싸워 온 성진이었다. 이렇게 확실한 차이가 있는 힘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성진이 재차 몸 상태를 관조해 봤지만, 여전히 이질적인 기운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
모레스가 오러를 쓰지 못하는 데에는 좀 더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 * *
몸속에 한 톨의 오러도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오러 연공법을 조금이라도 배운 자라면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할 것이다.
이 세계는 오러의 근본이 되는 기의 흐름이 무척이나 풍부한 세상이었다.
일반인들도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공기 중에서 몸으로 흘러오고 흘러가는 기의 흐름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 기를 몸속에 오러로 축기하거나 운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오러는 사람의 신체에서도 극소량이지만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비록 소량이긴 해도 예민한 자들은 알아챌 수 있는 정도의 양이 체내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있다.
즉, 근본적으로 오러의 농도가 제로에 가까운 사람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착각일 수도 있지 않겠어? 네가 그 힘을 느낀 건 정말로 찰나의 순간일 뿐이잖아?]마왕이 주억거렸다.
[오러는 분명 내게도 생소한 힘이지만. 아무리 내 격이 떨어졌어도 마물들의 왕인 내가 마물의 정기와 오러를 구별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흠…….’
[가끔 네 전담 시녀가 쓰는 걸 보면, 그냥 조금 강한 생명력을 휘두른다는 느낌이었어. 알겠어? 마물의 기와 오러는 근본적으로 다른 힘이야.]성진은 오전 수련이 끝난 후 연무장에서 나와 진주궁 정원을 걷고 있었다.
본래는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궁으로 들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썩 내키지 않았다. 오전 수련을 대부분 오러 연공법을 파느라 체력소모가 거의 없었던 데다 땀도 그다지 흘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오늘은 일주일 만에 성황과의 알현이 있는 날이다.
아침부터 난리 치는 리자베스 황비와 시녀들을, 폐하께서 직접 보내신 선생님과의 수련을 빠뜨릴 수 없다는 명목으로 밀어내고 나온 터였다.
아마도 지금 들어가면 어차피 밥 먹을 시간 없이 그들에게 잡혀 몸단장을 한다고 난리 법석이 날 것이 불 보듯 빤한 일.
도망가자.
그렇게 결심한 성진은 진주궁 밖으로 나와, 궁 밖으로 조성되어 있는 긴 가로수 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가 마물의 정기를 느끼는 데 익숙하다고 해도, 그게 오러를 느끼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야.]‘어째서 그렇지? 외부에서 기를 흡수하여 그걸 쌓고 운용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다른 세계 생물의 이질적인 기운이랑, 원래 이 세계에 있는 생명체 본연의 기운이랑 같냐? 말했잖아? 오러는 생명력의 근원과도 가까운 힘이라고.]‘그러면 하나만 묻자. 네가 느낀 그 생명력이라는 것이 모레스의 몸에는 있어?’
[그건…….]마왕은 잠시 주저했다.
[대단히… 희박하긴 하지만, 그건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역시.’
성진의 의혹은 조금씩 확신에 가까워졌다.
모레스가 오러에 둔감한 것이 아니라, 실은 그의 몸에 감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오러조차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따지고 보면 성진에게는 딱히 오러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운동이야 건강 때문에 시작한 거고. 이전처럼 세계가 위험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무려 황자님이라는 고귀한 신분이 되었다. 굳이 오러 유저가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어쩐지 무척 배우고 싶었다.
재미있어 보인다.
한번 시작했으면 어쨌든 끝을 보고 싶다.
어느새 성진의 눈에서는 뭔가에 꽂힐 때마다 나타나곤 했던 예의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떠오르는 것은, 오러에 통달한 사람을 찾아 그의 현재 상태를 확인받는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방법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사인 경 정도 되는 실력자도 모레스의 상태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으니, 적어도 그보다는 더 강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 마사인이 말한 그의 숙부 정도 되는 자.
타인의 몸에 자신의 오러를 자유자재로 흘려보내도 멀쩡할 정도로 오러 사용이 능숙하고 타인의 몸을 잘 파악하는 자.
그런데 그런 자를 대체 어디서…….
“아……!”
성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있었다.
오러의 경지가 대단히 높으며, 성진이 물으면 잘 대답해 줄 것 같은 사람.
도와달라고 하면 어쩐지 해결해 줄 것 같은 사람.
고개를 들자 가로수 길의 끝에 눈에 익은 황궁대로가 보인다. 아마도 저 길을 일직선으로 쭉 따라가면 넓은 황궁 정원을 지나 곧바로 본궁이 나왔었지.
어차피 오늘 약속은 잡혀 있고,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가 볼까?’
[야, 야……. 왜 이 방향으로 가는 건데? 야, 어디 가는 건데?]마왕의 불안한 떨림을 무시하고, 성진은 기억을 더듬어 성큼성큼 대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길을 헤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예상했던 거리보다는 제법 멀었다는 정도일까.
격식 없는 평상복에 목검 하나를 달랑 허리에 찬 모레스가 본궁 입구에 나타나자, 경계를 서고 있던 황궁 근위대의 기사들은 대단히 당황했다. 그러나 금세 표정을 바로잡고는 검을 바닥에 쿵 찧으며 고개를 숙인다.
“3황자님을 뵙습니다!”
역시 근위대 기사들은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성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사 하나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마왕도 이전처럼 영혼이 신성한 기운에 눌려 죽는다고 앓는 소리를 내는 일은 없었다. 단지 바짝 쫄아서 입을 다물고 웅크리고 있기는 했지만.
때때로 화려한 법복과 높은 모자를 쓴 고위 사제들이 성진을 지나쳤지만, 그들 역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나며 약식으로 예를 표할 뿐이었다. 성황이 만들어 둔 그 결계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성진은 거리낌 없이 본궁 안을 걸었다.
2층 복도 끝에 이르니 몇 명의 행정관과 사제들이 서류 뭉치를 들고 빠르게 오가는 중이었다.
‘바쁜 시간인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느라 집무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사제 몇 명이 빠른 손놀림으로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종장 루이스와 젊은 행정 사무관 세 사람이 성황의 책상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다.
성황은 편한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한창 서류에 무언가를 갈겨쓰고 있었는데, 이내 성진의 시선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냉막한 얼굴이었다.
“모레스 저하!”
성황의 시선에, 그제야 모레스를 돌아본 수석 시종장이 반색을 한다. 순식간에 집무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업무를 멈추고 일제히 예를 갖췄다.
“3황자님을 뵙습니다!”
성진은 그들을 향해 멋쩍게 웃었다.
“음, 제가 좀 빨리 왔죠? 어… 바쁘시면 일들 보세요.”
성황은 잠시 물끄러미 성진을 쳐다보더니,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왼손을 까딱거리며 손짓을 했다.
“도리안.”
책상의 가장 가까이에서 서류 더미를 안고 서 있던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성황은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큼직한 도장 같은 것을 툭 던졌다.
“이건 옥쇄다. 일단 왼쪽에 따로 둔 서류는 놔두고, 나머지는 전부 찍어.”
“예… 예에?”
“오전 중에는 전부 집행부 비서관에게 넘겨라.”
도리안이라고 불린 행정 사무관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어느새 수석 시종장이 하얀 법복을 들고 성황의 곁으로 다가서 있었다. 그의 시중을 받아 대충 법복 소매를 팔에 끼면서 성황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점심은?”
“…연무장에서 바로 오는 터라 아직…….”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한 박자 늦게 깨달은 성진이 대답하자, 성황이 루이스를 돌아보며 지시했다.
“모레스와 함께 후원에서 들겠네.”
“예, 이르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폐하.”
시종장이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린다.
옷깃을 여미지도 않고 성큼성큼 입구로 걸어 나온 성황이, 성진을 지나치며 작게 눈짓했다.
“가자.”
저기, 폐하? 아버지?
도망가자로 들리는 건 제 착각이겠죠?
젊은 행정 사무관의 절절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성진은 몸을 돌려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그대로 빠른 속도로 2층 복도를 걸었다.
“하시던 일은 저대로 두어도 되는 겁니까? 어째 많이 바쁘신 거 같았는데.”
성진이 물었지만 성황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걸음을 내딛는 그의 뒤로, 하얀 법복 자락이 휘날리며 은은한 빛을 뿌린다.
“…잘 알아 두거라, 아들아.”
보폭을 유지하며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는데, 복도 반대쪽 끝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성황이 입을 열었다.
“정사라는 것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태엽장치와도 같다.”
“태엽, 이요?”
이 양반이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걸까.
성진이 어안이 벙벙하여 그의 뒤통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다. 정교하게 돌아가는 시계 장치에 함부로 손을 대면 어떻게 되겠느냐?”
“어… 망가집니다?”
“바로 그러하다.”
성진이 고개를 갸웃 하며 물었다.
“그 말씀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이와 같다.”
“나라, 요.”
“그래. 너는 유능한 신하를 적소에 깔아 두고, 그저 그들이 적절히 돌아가게 내버려 두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
땡땡이치겠다는 말을 대단히 거창하게 하는 양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