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2)
성황의 아이들-162화(162/469)
§ 162. 폭풍우 (3)
탁탁탁.
로건은 암살자의 기척을 쫓아 본궁 정원을 빠른 속도로 가로질렀다.
거센 빗줄기가 정면에서 빈틈없이 들이치며 몸을 때렸지만, 이미 반쯤 실체화된 오러를 장막처럼 두르고 있는 로건에게는 조금의 방해도 되지 못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치며, 그는 수월하게 암살자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본궁에서 멀어지자 신기하게도 그를 괴롭히던 두통과 이명이 가시며, 머리가 한결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겨우 그에게도 지금 상황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일단 거리가 멀어지자마자 몸 상태가 급속도로 회복되는 것을 보면, 이 괴상한 사태의 진원지는 그 집무실임에 틀림없었다.
-황궁에 [틈새]가 열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단지 이번에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던 터라, 폐하께서 채 기도실에 드실 여유가 없었을 뿐입니다.
카트리나가 그렇게 말했지.
그렇다는 것은, 성황이 간혹 기도실에 들 때마다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왜 자신은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매번 호위조차 물리고 혼자 외딴곳에서 밤을 지새운다기에, 그 무슨 쓸데없는 오만함인가 생각한 적은 있지만.
과연, 그에게 가까이 가기만 해도 보통 사람은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겠지. 성황의 가장 튼튼한 방패라는 카트리나 경이 그 지경인데, 기사들이 몇이나 곁에 있어 본들 제대로 된 호위가 가능할 리 없는 거다.
대체 그 틈새라는 것이 뭐지?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길래 사람의 감각을 그리 교란시키고, 종내는 정신을 잃도록 만드는 걸까?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암살자는 온실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대로 제2동문을 통과할 생각인 모양.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지근거리였다.
‘잡았다.’
로건이 거의 그의 검격 내로 따라붙는 순간.
쐐액!
뭔가 위기를 감지한 듯 암살자가 휙 몸을 돌리며 비수를 날렸다.
탱! 탱!
불시에 날아드는 날붙이들을 가볍게 쳐내며 로건은 생각했다.
‘단순 견제인가? 살의는 없이, 그냥 도망칠 셈이군.’
보통의 기사들에 비해 월등하게 넓은 그의 간격을 감지하다니, 제법 솜씨가 좋은 자였다.
게다가 비수에 실려 오는 오러를 보건대, 자신이 공식적으로 내보이는 무력 또한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만일 그가 평소처럼 실력을 숨겨야 했다면 분명 추격에 애를 먹었을 터. 새삼 상대가 누군지 궁금증이 일었다.
스으윽.
비수를 날림과 동시에 상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오러 은폐를 펼쳐낸 것.
그러나 아무리 숙련된 암살자라고 해도, 그 부자연스러운 오러의 움직임을 로건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스륵.
로건은 주변의 오러에 몸을 동조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살수가 될 수 있는 능력. 바로 데카론 나이트의 오러 동조였다.
전생의 깨달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로건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오러 활성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 적당한 수준의 오러 활성을 내보이며 지내온 것이다. 안 그랬으면 어린 시절에 이미 설명이 불가능한 오러 활성으로 의심을 샀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다시 태어나며 월등히 높아진 오러 친화도와, 수련에 전념할 수 있는 여유로운 환경.
그 덕분에 로건은 이번 생에서도 이미 오러 10층의 기사, 데카론 나이트의 경지에 오른 지 오래였다.
그렇게 기척을 숨기고 훌쩍 암살자를 앞지른 로건은, 그의 바로 앞에서 오러 동조를 풀어버렸다.
“……!”
암살자가 경악하며 급하게 숏소드를 뽑아 든다. 그러더니 얼떨결에 최대의 오러를 실어 그를 향해 휘두르는 게 아닌가!
그러나 로건의 반응이 더 빨랐다.
팅!
패링 훅까지 최대한 당겨 잡은 헤네시스 장검이 그의 검을 단번에 멀리 튕겨내 버렸다. 검을 놓친 암살자가 일순 자세를 잃고 비틀거린다.
쐐액.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르쥬나가 그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암살자는 반사적으로 팔을 올리며 가드 했으나, 그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든 아르쥬나의 날은 어느새 그의 턱 바로 아래에 닿아 있었다.
“…….”
“정체를 밝혀라. 누구의 사주를 받고 황궁에 왔지?”
로건이 코끝까지 올려 쓴 놈의 복면을 검날로 툭 건드리며 물었다.
상대에게 이쪽에 대한 살의가 없다면, 로건 역시 그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신원을 밝히고 무사히 근위대로 연행할 뿐.
물론 황궁에서 누군가에게 살기를 보인 시점에 이미 죽은 목숨일지도 모르겠지만.
암살자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해 봐도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윽고 순순히 복면을 끌어 내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캄캄한 밤이었지만, 번쩍! 하고 때마침 내리친 번개에, 암살자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그리고.
“……!”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로건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눈에 익었던 탓이다.
분명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얼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로건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베니시오?”
아아.
이것이 꿈이라면 참으로 끔찍한 악몽이리라.
* * *
지독한 현기증 속에서 겨우 눈을 뜬 성진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또 뭐야…….’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둥둥 떠 있었다.
박살 난 거울이나 유리 조각들로 사방이 메워진 듯, 주변은 만화경 내부처럼 이런저런 상이 뒤섞여 어지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는 검은 하늘과, 울창한 숲. 이따금 보이는 집무실의 전경. 그리고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과 성운들.
‘나, 또 영혼만 빠져나온 건가?’
거의 중력을 느낄 수가 없었기에, 그는 얼마 전 경험했던 임사체험을 떠올렸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자신은 연회복을 입은 모레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실체가 있는 몸이 확실히 만져지는 걸 보면, 또 영혼만이 튕겨 나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만 제대로 몸을 다 가지고 이곳에 왔는지는 조금 애매했다. 간혹 조각조각 상이 겹쳐 보이는 집무실의 광경 중에는, 분명 소파 바로 아래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집무실과 이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
대체 이게 뭔 괴상한 현상이지?
‘야, 마왕아?’
이 상태를 제일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놈을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놈의 존재감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이, 잔뜩 당황하여 방방 날뛰는 마왕의 영혼이 또렷하게 느껴졌던 것.
분명 머릿속에서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는 거겠지. 단지 뭔가가 어긋나거나 일종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 성진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제대로 놈의 사념을 수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쿠르르르.
풍경 중 보이는 푹풍우 탓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원인이 있는 건지. 이따금 공간 전체가 충격으로 인해 간헐적으로 들썩인다. 아무래도 썩 오래 있을 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분명 여기 어딘가에 그 양반이 있다는 거겠지? 찾아서 빨리 이곳을 나가야…….’
그런데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성황을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확 일그러지더니 멀리 보이던 상들이 마치 밀려들 듯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전에 성진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반트라 모스 애벌레의 채널에 빨려 들어가, 차원의 경계까지 단숨에 날아갔을 때.
당시는 그저 빛보다 빠르게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빠르게 움직인 것이 아니야……!’
오히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들이 마구 구겨지면서 성진의 몸을 저 너머로 휙휙 밀어내는 중이었다.
임사체험 당시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면, 신기하게도 지금은 풍경이 어떤 식으로 일그러지며 자신을 빠르게 튕겨내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날아왔을까.
쿠쿠쿵!
간간이 흔들리던 진동이 점점 거세지고 빈도 또한 잦아졌다. 이제는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거의 무너질 듯한 충격파가 인다. 분명 이곳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잠시 후.
성진은 뭔가 거대한 그림자 같은 것들과 대치 중인 작은 신형을 하나를 발견했다.
흩날리는 하얀 법복과, 머리 위로 빛나는 금빛의 관.
성진은 저도 모르게 힘껏 그를 불렀다.
[아버지!]튀어나간 것은 소리가 아닌, 일종의 사념파에 가까웠다. 그에 성황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쿠콰콰쾅!
또 한 번 세계가 흔들렸다. 그렇게 시야가 마구 어지러워지더니, 성진의 몸은 순식간에 그림자들로부터 훌쩍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왔는지, 성황이 그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고 있었다.
[이곳에 왜 네가 들어와 있느냐, 아들아!]성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어라? 분명 성황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그의 말이 평소와 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하나의 문장이 통째로 머리에 때려 박히듯, 첫음절과 끝음절이 동시에 머리에 들어왔으니까.
[여기가 대체 뭐 하는 곳이기에 그러십니까?] [이곳은 틈새다. 인간의 몸으로 그리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느니라.]이번에도 역시 ‘이곳’과 ‘못 되느니라’가 동시에 머리에 내리꽂힌다.
꼭 시간 감각이…….
순간 성황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뒤이어.
콰콰콰쾅!
충격으로 몸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시야가 어지러이 이지러졌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성진은 어느새 성황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로 대롱대롱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
엄청난 속도임에도 다행히 목이 꽉 졸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자연히 뒤쪽으로 향하게 된 시선에, 그제야 그들을 쫓는 적의 정체를 확실히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괴물은 둘이었다.
하나는 여섯 개의 다리와 세 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검은 짐승이다. 모양은 꼭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했는데, 실체를 가진 형상인지 아니면 단순한 그림자인지 도통 구별이 되질 않았다. 빛을 아예 반사하지 않는 몸체에서 부피감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더욱 괴상하게 생긴 모양이었다.
위아래로 빽빽하게 뭔가가 잔뜩 돋아있는 것이, 마치 뿌리와 줄기를 구불구불 움직이는 식물 같기도, 혹은 촉수가 잔뜩 달린 말미잘 같기도 했다.
아, 몇몇 촉수 끝에는 녹색의 발광체도 달린 걸 봐서는 기형 해파리 같은 걸지도.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은걸…….’
성진은 꽤나 속 편하게 매달려 가며 놈들을 품평했다.
몸을 사정없이 찔러대는 그 악의로 가득한 시선. 괴물들이 그에게 보내는 시선은, 차원의 경계에서 느껴봤던 고위 마왕들의 기분 나쁜 그것을 닮아 있었다.
단지 압박감이 이전과 달리 참을 만한 정도로 떨어져 있을 뿐.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다니.]검은 짐승, 탐욕이 성진에게 시선을 주며 으르렁거렸다.
[그러게. 설마 어린애에게 공간을 방해받을 줄이야. 근데 저 얼굴, 왜 이렇게 낯이 익지?]암녹색의 촉수괴물, 파종이 의아한 듯 대답하며 위로 솟은 뿌리 다발 같은 것을 통째로 휘휘 저었다. 머리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형상이었지만, 마치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한 제스처다.
그러자 탐욕이 비웃음을 흘렸다.
[당연하지 않나. 직접 그를 예비하고도 알아보지 못하는가?] [아, 그랬나? 그러고 보니 내 사도가 예전에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촉수 다발 한 줌을 구부려 다른 촉수를 긁적거린 파종이 멋쩍은 듯 말한다. 그러더니 이내 듬성듬성 달린 발광체에서 일제히 빛을 뿜어낸다.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왕을 없애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번거로운데 여기서 그냥 같이 없애 버리자!]거리가 가깝다 보니 놈들의 사념이 성진에게도 드문드문 들려왔다.
‘혹시 내가 괜히 와서 이 양반의 짐이 된 건 아닐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딱밤 때려서 돌려보내달라고 할까? 하지만 그 전에, 하다못해 저놈들 중 한 놈에게라도 뭔가 유효타를 날려 주고…….
그렇게 놈들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호두까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더니, 자신을 힐끔 돌아보는 성황의 시선이 느껴졌다.
[또 뭔가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게로구나.]이번에도 그의 말이 시간차 없이 동시에 머리로 흘러들어 왔지만, 성진은 이제 어느 정도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에 적응하고 있었다.
[역시 제가 방해가 된 겁니까?] […….]성황은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침 적절했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인과가 부족하여 시간을 제법 잡아먹을 뻔했느니라.]인과?
[탄신연의 부작용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을 수 없으니, 무던히 인과를 낭비할 수밖에 없는 날이지. 놈들이 오늘을 노린 것도 그 때문이다.]흠.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흔들흔들 매달려 가며 잠시 고민하던 성진은 순간 뭔가 재미있는 것을 떠올렸다.
인과라고 하면, 잘은 몰라도 브루노 단장 때처럼 뭔가 조건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아버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성황이 힐끔 그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부탁.] [네.]그러곤 성진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부디 저기 저 괴상한 놈들 좀 혼쭐을 내주시면, 아니, 아예 없애주시면 안 됩니까?]순간 스르륵. 뭔가 묘한 인력이 성진과 성황을 동시에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성황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전해지는 기류만으로 성진은 그가 미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