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3)
성황의 아이들-163화(163/469)
§ 163. 폭풍우 (4)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마.]어쩐지 즐거운 기색이 느껴지는 성황의 말과 함께, 성진의 눈앞에 하얗게 빛나는 뭔가가 나타났다.
매끈한 유선형으로 빛나는 형체가 파드득 꼬리를 치며 따라왔기 때문에, 처음에 성진은 그것이 팔뚝만한 물고기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염상이라 하느니라.] [염상이요?] [의념이 구체화 되면 이렇듯 실체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라. 이런 곳이 아니면 쉬이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구나.]그 물고기 같은 것은 철저하게 성황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 성진의 좌우로 유영하며 관찰하기 좋도록 바짝 붙어오는 것을 보면.
어? 그런데 저 모양은?
[무엇인지 알겠느냐?]그리고 또 다른 물고기가 성진의 발치에 나타난다. 연이어 셋, 넷…….
도합 다섯 마리의 물고기가 흰빛에 둘러싸인 채 그들을 쫓으며 팔딱팔딱 헤엄치고 있었다.
그즈음, 성진은 이 물고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은가시?’
환한 빛에 둘러싸여 바로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이것들이 꼬리처럼 흔들고 있는 것은 분명 제대로 된 모앙의 가드와 힐트였다!
하지만 고개를 힐끔 돌려 바라보니, 본래의 은가시는 제대로 성황의 허리춤에 매여 있었다.
[분명 은가시랑 똑같이 생겼는데? 하지만……!]그러자 성황으로부터 미미한 진동이 전해진다. 마치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게 염상이구나!’
성진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저기서 헤엄치며 따라오는 [염상]이라는 것에, 성황에게 익숙한 사물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것. 그는 지금 은가시 주위로 오러 블레이드가 형성되어 빛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말로 거센 강물을 거스르며 헤엄치는 연어 떼 같은데…….’
그러니까 이 양반의 머릿속에서, 은가시는 이미 한 마리의 참연어라는 거였다.
하도 어이가 없어 파닥파닥 헤엄치는 검들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더니, 성황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제 그 효용이 어떤지를 보려무나.]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섯 참연어… 아니, 은가시들이 일제히 머리를 돌려, 엄청난 속도로 괴물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액!
그것들은 맞부딪히는 모든 공간들을 가르며 날았다. 집무실을 통과할 때는 한줄기의 빛살이, 폭우가 치는 하늘 아래에서는 하얀 뇌전이, 그리고 검은 우주에서는 길게 꼬리를 끄는 하나의 혜성이 되어.
번쩍번쩍.
이 공간 저 공간을 오가며 빠르게 달린 은가시들은, 마침내 기겁하며 몸을 피하는 괴물들의 몸체에 부딪혀 그대로 폭발했다.
콰앙! 퍼엉! 퍼엉!
모든 세계가 통째로 흔들리며 거센 진동을 일으킨다. 거하게 얻어맞은 괴물들이 비명인지 짜증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렸다.
크아아아악!
‘어…….’
아까부터 여기저기서 뭔가 터지고 있었던 게 다 이 양반 짓이었구나!
그렇게 괴물들이 주춤하는 사이, 이내 그들로부터 훌쩍 거리를 벌린 성황이 물었다.
[염상이 만들어지고 움직여, 마침내 작동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알겠느냐?] [음, 대충은요?]성진은 어렴풋이 저 기술의 요체를 알 것도 같았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보다 직관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 해보겠느냐?]흠, 날아다니는 검이란 말이지…….
성진은 마음속으로 호두까기를 이미지화하려 했다. 단단한 강철의 검날과, 그것이 마치 미사일처럼 직선으로 날아가는 광경을.
그러자 일순 눈앞에 흐릿한 회색의 막대기 같은 것이 일렁거리다 사라진다.
음?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하겠는데?
‘좋아. 이런 느낌으로 가보자!’
성진은 최대한 집중하려 노력했다. 곧 괴물들이 다시 허둥허둥 그들을 따라잡았지만, 그쪽은 일절 거들떠보지도 않고.
뭐든 이 양반이 어련히 잘 피해주지 않을까.
휘리릭.
겨우 거리를 좁힌 촉수 다발 놈이 수십 가닥의 다리를 빠르게 내쏘았다.
멀리서는 해수에 잠긴 말미잘 촉수처럼 한들한들 부드러워 보였는데, 가까이 날아오니 그 한가닥 한가닥의 굵기와 강도가 마치 거대한 통나무를 연상시킨다.
닿아오는 공간들을 모조리 찢어발기며 날아오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지만, 성황은 가뿐하게 몸을 움직이며 그 많은 다리들을 피해냈다.
크와아앙!
그때 이리저리 달리며 기회를 노리던 검은 짐승이, 그 틈을 이용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시커먼 마기가 뚝뚝 떨어지는 놈의 송곳니는 거의 성진의 키에 육박했는데, 거기에 몸이 걸리는 순간 형체도 없이 찢어발겨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성황은 성진을 매단 채 훌쩍 공간을 도약했다. 일순 그들 주위로 폭우가 치는 검은 하늘이 펼쳐진다.
따악!
짐승의 주둥이가 쫓아오며 살벌하게 턱을 맞물었으나, 여유롭게 그 송곳니를 피한 그들은 어느새 조용한 별하늘 아래를 날고 있었다.
그 후로도 아슬아슬한 거리의 회피가 이어졌지만, 이 모든 과정이 성황에게는 그저 단순한 실습의 현장이었다. 그는 성진이 뭔가를 깨닫기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거다.
[반드시 무기가 아니라도 좋다. 그저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익숙한 것을 떠올려 보려무나.]흐릿한 막대기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의미 없이 반복되자, 성황이 그에게 넌지시 일러 주었다.
흠, 익숙한 것이라…….
성진은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진중하게 턱을 괴었다.
[크아아악! 저거 정말 성가시군!]아래쪽 촉수 일부가 날아간 파종이 허우적거리며 짜증을 냈다. 짐승의 형태를 한 탐욕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지는 몸체는, 다섯 개의 검 중 네 개를 혼자 얻어맞는 통에 꽤 심한 타격을 입었다.
[델크로스의 왕, 역시나 만만치 않은 자다.]방심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음에도, 탐욕은 그들의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수년간 [협정]에 묶여있는 성황은, 인과 부족으로 인해 ‘직접 벤다’는 간단한 행위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본신이 아닌 염상체 화신만으로도 성황을 상대하기 충분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델크로스의 왕은 제법 편법에 능한 자였다. 직접 뭔가를 하는 대신, 염상을 날려가며 간접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그들을 타격했으니까.
염상 자체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은 작은 검의 형태였는데, 마치 의지를 가진 듯 그들을 쫓아와서는 크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물론 그들이 끌고 온 화신의 힘에 비하면 소소한 대미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미미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라도, 한 대도 때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얻어맞기만 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대로 밤이 지나면 결국 누가 승자가 될지 자명한 것.
[게다가, 어쩐지 신경 쓰인단 말이지…….]탐욕은 성황에게 잡혀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소년은 눈을 감고 한창 뭔가를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 참으로 태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소년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져 온다.
[저건 대체 뭐 하는 거지?]회수한 촉수들을 갈무리하며 파종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그 역시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거다.
탐욕이 뒤섞인 차원 중 하나를 힘차게 박차며 외쳤다.
[저자는 예비된 자다! 무엇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아. 주의해라!]그 순간 화르륵. 소년의 앞에 작은 불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것. 떠올리기 쉬운 것.
그러나 적에게 적중시키면 가장 치명적으로 변할 만한 것.
이윽고 눈을 뜬 성진의 앞에는 암적색의 작은 불꽃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꼭 마왕 놈의 작은 영혼 조각 같기도 하고, 어쩌면 게헤나의 불꽃같기도 한.
점점 선명한 실체를 띠고 타오르는 불꽃을 홀린 듯 보고 있는데, 성황이 힐끔 그것에 시선을 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보이는구나.] [하하!]성진은 뿌듯하게 웃었다. 그가 최초로 만들어낸 뚜렷한 염상이었다.
흡족하다. 지금부터 이것을 마왕 2호라고 명명하겠다!
[그럼 그것을 이제 어찌하겠느냐?] [적에게 날립니다!] [그래.]좋아! 날아라, 마왕 2호!
성진은 기세 좋게 불꽃을 향해 명했다.
그러나 처음 상상했던 미사일과는 너무 다른 이미지 탓일까, 성진의 마왕 2호는 성황의 참연어처럼 멋들어지게 날아가지는 않았다.
잘못 던진 공처럼 흐느적흐느적 떨어져 나간 불꽃은, 다행히도 마침 가까이 다가오던 촉수 놈의 너울거리는 머리에 툭 하고 부딪혔다.
너무 작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성황이 날리는 위협적인 검격이 아닌 터라 놈이 방심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외였다.
그 작은 불꽃이 닿는 순간.
화르르륵!
갑자기 거기서부터 암적색의 거센 불꽃이 터져 나오더니, 놈의 상부 촉수들을 향해 빠르게 번지며 놈을 잠식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게헤나의 불길 그 자체인 것처럼.
[으와아악! 이게 뭐야!]쉽게 꺼지지 않는 불길에 당황한 말미잘이 그 자리에 멈춰 헤드뱅잉을 시작했다!
[한심하기는. 빨리 끄지 않고 대체 뭐 하는 거냐!]놈을 지나친 탐욕이 어이없어하며 묻자, 파종이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냐! 이거 뭔가 이상해! 안 꺼진다고! 대체 이게 뭐지?]그는 그렇게 불꽃에 휩싸여 버둥거렸다.
거대한 촉수 다발들이 가닥가닥 타들어가며 환한 불똥을 흩뿌리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 따로 없다.
그 화려한 불꽃 쇼를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자니, 성황이 툭 칭찬의 말을 내뱉었다.
[잘했구나.] [아하하하!]아버지가 보기에도 그렇죠?
성진이 뿌듯하게 웃고 있는데, 성황이 슬쩍 주위를 살피더니 말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꾸나.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남은 놈은 단번에 처리하마.] [단번에요?]이번에는 이 양반이 또 뭘 보여주려나.
성진이 기대로 눈을 반짝이자, 성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덕분에 인과는 충분하니까.]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
성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숨을 멈췄다. 어느새 그들 주위로 나타난 수백, 아니 수천의 물고기가 일제히 그들을 에워싸며 유영을 시작했으니까.
그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에 성진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연어들이 평행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물이 된 듯 보이기도 했다.
혹은 그것들 자체가 은빛으로 빛나는 물결이고, 그들이 그 빛의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잠시 후.
[가라.]짧은 명령과 함께 그 평화로운 광경은 끝이 났다.
쐐애애액!
마치 동시에 쏘아진 수백의 크루즈 미사일처럼, 방향을 돌린 은빛의 검들이 괴물들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그 하얀 빛줄기들이 각각의 의지를 가진 듯, 공간을 이리저리 가로지르고 뛰어넘으며 수백의 궤도를 그려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검은 개와 말미잘을 강타하며 화아악, 눈부신 흰빛을 뿜어낸다.
‘……!’
성진은 눈을 질끈 감고 이어질 충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상했던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폭발음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한 사위.
슬그머니 눈을 떠 보니, 그들은 어느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산비탈에 서 있었다.
놈들에게 수백 대의 미사일을 갈긴 성황이, 그것들이 채 폭발하기도 전에 조각난 다른 공간 너머로 피신해버린 것이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그놈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끝까지 확인하지 않아도?
[적중한 순간 확정된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쯤이면 그것들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나가면 되느니라.]어안이 벙벙한 성진의 얼굴을 확인한 성황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툭, 성진을 바닥에 내려주며 슬쩍 입꼬리를 올린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네 검을 봐주겠노라 했었지.]이단 재판부가 그 꼴이 된 후, 성황은 알현 시간에 검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문제는 그 이후 탄신연 준비니 마물 전담반 일이니, 성황과 성진이 동시에 바빠지면서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는 거지만.
성황은 허리춤의 은가시를 뽑아 천천히 정면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이 또한 좋은 기회가 되겠구나. 지금 이 경로를 머리에 잘 새겨 두거라.]그의 손에 들려 있는 참연어… 아니, 은가시의 검날이 빛에 감싸이더니, 그로부터 빛줄기가 앞으로 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검로는 언제나 가장 단출한 것이어야 하느니라. 하나, 그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경로가 되는 것은 아니란다.]희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는 꼭 호두까기 정도의 길이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성진은 이상하게도 그 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무리도 아닐 것이다.
생각하는 순간 그곳까지 닿는 공간에서, 이 검이 세상의 끝을 겨냥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 경계에 닿아 있는 것이다.
[너는 결국 혼자서도 여기에 닿을 것이라. 그러니 한 번 정도는 미리 경험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그리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심지어는 뭔가 부서지는 소리도 없이.
눈앞의 세계가 단숨에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