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82)
성황의 아이들-182화(182/469)
§ 182. 파블로프의 칼멘 (3)
황도를 떠난 이후, 자코모 밀로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견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한동안 수급이 불안정하던 [차]의 원료가 오랜만에 넉넉하게 확보되었다. 어설프게 사업장을 들쑤시던 지그스문트 대공자 또한 최근에는 잠잠해졌고.
물론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상단을 바짝 따라오는 집요함을 보였으나, 상행에 울프 기사단이 동행하면서 생기는 이점을 생각하면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코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자신을 에워싸며 서서히 조여오고 있는 듯한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오랜 상행을 통해 다져진 일종의 감 같은 것이었다.
[슬슬 나를 소환하라, 자코모. 이제 황도에서 충분히 멀어졌으니, 더는 걸릴 것이 없지 않은가?]그런 점에서 그와 계약한 악마, 샐로스는 영 미덥지 못했다.
고위 악마로서 제법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자의 특권인 무신경함 역시 훌륭하게 겸비하고 있었던 것. 때문에 그는 대체로 인간사에는 무지한 편이었다.
지금도 돌아가는 상황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빨리 자신을 소환해 달라며 무턱대고 조르는 중이었다.
[새로 고용한 자들이 의심스럽다 했었지? 나 역시 그렇다. 분명 이 근처 어디선가 암흑 교단의 냄새가 난다!]아닌 게 아니라 자코모는 고용인들이 휘말린 사고가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간섭이 거의 없는 물류 중계소에서, 악마의 도움을 받아 새 고용인들을 판별할 속셈이었지.
아마도 콜린스 이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었다면, 진작 의혹을 해결하고 마음 편히 상행을 이어갔을 터였다.
[자, 어서 날 불러라! 내 직접 놈들의 영혼을 감별해 주마. 뭔가 숨기는 놈이 있다면 단번에 때려죽여주지! 영혼조차 남지 않도록 갈기갈기 찢어 주리라!]그 과격한 언사에 자코모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샐로스. 근처에 성기사들이 있습니다.’
[성기사? 왜 그런 놈들과 함께 다니는 거냐?]‘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모레스 황자 일행과 함께 이동하는 중이라고요.’
[으음? 아아, 그랬지. ‘예비 된 자’가 곁에 있다고 했던가.]샐로스는 3황자를 일컬어 ‘예비 된 자’라고 칭했다. 언젠가 자코모가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평소 부주의하게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는 샐로스가 드물게도 말을 아꼈다.
-고위 마왕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는 사항이다. 우리로서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
대체 신성 제국의 황자가 고위 마왕들과 관련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전부터 여러 가지 나쁜 소문을 몰고 다닌다 생각하긴 했지만, 여러모로 관련되기에 꺼림칙한 황자였다.
‘그나저나 샐로스. 리카르도 소공자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까?’
리카르도 스카르차피노.
그는 악마학에 무지한 자코모가 샐로스라는 고위 악마를 소환하는 데 크게 일조한 자였다. 그 덕에 별 볼 일 없는 중소 상인이었던 자코모 밀로는, 몇 년 만에 북부에서 손꼽히는 거대 상단의 상단주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리카르도는 쭉 황도에서 지내온 신분 높은 귀공자임에도 묘하게 악마학에 능했다.
또한 자신이 밟아본 적도 없는 오르토나 땅에서 득세하고 있는 암흑 교단과 깊은 연줄을 가지고 있었지.
참회 교단의 영향 아래에 있는 지그스문트령과의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중재를 한 것이 바로 리카르도였다.
게다가 그는, 교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일부 품목을 밀로 상단이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대가로 리카르도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바로 암흑교단이 제조하고 있던 [약차]의 유통이었다. 처음에는 구색으로 일부를 받아 거래했을 뿐이나, 최근에는 점점 거래량이 많아져 이제는 상단에서 직접 원료를 공수해 작업장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자는 왜?]샐로스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계약의 주체가 아닌 이상, 악마에게는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그가 암흑교단의 습격을 받았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탄신연 전날, 리카르도가 알 수 없는 괴한의 습격을 받았고 이후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소식이었다. 덩달아 그의 심부름으로 종종 상단을 오가던 여동생, 이사벨라마저도 앓아누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미확인 정보에 따르면 습격의 현장에서 암흑 교단의 메달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대부분 밀로 상단간과 암흑 교단과의 직거래가 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처음 거래를 성사시킨 장본인의 일이다 보니, 그의 안위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이제는 그의 개입이 더는 필요 없다고 여긴 암흑 교단에서, 리카르도를 깔끔하게 제거하려 한 것일까?
[흥! 그자야 보나 마나 다른 인형을 찾아갔겠지. 빤한 거 아니냐. 그보다 지금 네가 그자를 느긋하게 걱정할 처지는 아닐 텐데.]‘예?’
자코모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데, 샐로스가 혀를 찼다.
[만약 정말 암흑 교단이 손을 썼다면, 놈들이 인형사 하나만을 노리고 저지른 일은 아닐 거라는 말이지.]그리고 이어진 샐로스의 말에, 순간 자코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까부터 참회의 교단이 상단을 미행하고 있다. 그 말인즉, 놈들이 너 역시 노리고 있다는 말 아니겠냐? 내 분명 이 근처 어디선가 암흑 교단의 냄새가 난다고 했거늘! 이래도 날 소환하지 않을 테냐?]* * *
쓴 차 먹이기 계획은 전면 폐지되었다. 정신을 차린 칼멘 경이 한사코 차 마시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에이 씨! 차라리 그냥 절 치십쇼! 네?”
한층 반항기가 강해진 그의 눈빛을 본 성진은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끈기 없는 놈…….’
거기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본래 칼멘 경의 체면을 생각해서 몰래 시행하려고 고안한 벌칙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의 대부분이 이 ‘똥개 훈련’에 관해 알게 된 것이다.
다들 하나같이 뛰어난 오러 유저였던 터라 소리를 완전히 숨길 수 없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쨌든 성진은 훈련의 방법을 조금은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가벼운 체벌 정도로 타협을 보기로 했다.
빠른 응징!
가혹하지 않은 강도의 타격!
그러면서도 뇌리에 확실하게 박힐만한 충격!
‘역시 딱밤뿐인가!’
성진은 슬슬 어깨를 풀며 생각했다.
‘거기다 나, 어쩐지 엄청 요령껏 잘 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데.’
머리 전체에 균일한 충격량을 전달하여, 국소적인 조직 손상을 줄이면서도 통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아마 누군가에게 제대로 맞아봤기 때문이리라.
“자, 준비.”
성진의 신호에 칼멘이 옅은 비웃음을 흘렸다. 브루노 단장에게 얻어맞은 것에 비하면 딱밤 정도는 우습다 싶은 모양이었지만.
“욕!”
“꼽냐? 이 X 같은 자식아!”
그리고 이어진, 야영지를 울리는 커다란 타격음.
따악!
“커억!”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칼멘 경이 뒤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이마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듯한 강렬한 충격!
그런 칼멘의 모습을 팔짱을 끼고 담담히 지켜보던 성진이, 그가 잠시 진정되길 기다려 입을 열었다.
“자, 일어나, 칼멘 경. 다음 욕을 해야지.”
“……!”
“어서. 우린 시간이 별로 없다고.”
그 말에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난 칼멘 경의 눈에는, 이제 누가 봐도 명백한 공포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자, 다음.”
“…X자식…….”
왜 또 이렇게 소심해졌어? 성진은 혀를 차며 손을 올렸다.
이에 칼멘 경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며 자꾸 뒤로 물러났지만.
따악!
한순간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성진으로 인해, 또다시 죽어라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아아악!”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울프 기사단 단원들이 품평했다.
“방금 뭔가 엄청 불길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설마, 겨우 딱밤인데?”
“아냐. 뭔가 심상치 않다고. 보면 알겠지만 저하의 저 손가락의 각도, 튕기는 타이밍, 그리고 반동을 흡수하는 손목의 스냅! 그 모든 것들이 일점 타격을 위한 극도의 효율로 움직이고 있잖아?”
“확실히 한 점 타격의 진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 심지어는 아름다울 지경이야!”
그렇게 두어 대를 더 맞은 후.
칼멘 경의 이마는 심상치 않게 부풀어 올랐고, 결국엔 구스타프 사제가 치료를 위해 불려 나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울프 기사단의 단장, 일마 경이 브루노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척 열심이군요.”
“예, 저 녀석도 고치려는 의지는 가득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브루노 단장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연민의 빛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감정을 갈무리하고, 기사단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되먹지 못한 제자의 무례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마 경.”
얼마 전 칼멘이 울프 기사단의 부단장에게 시비를 거는 통에, 한동안 황자 일행과 울프 기사단 사이에서 험악한 기류가 흘렀었다.
자칫 기사단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었던 사건. 만일 단장인 일마 경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간단한 사과만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개를 숙인 브루노의 모습을 잠시 살피던 그녀가 말했다.
“경은 저 기사를 자식처럼 생각하시는군요.”
“확실히 자식처럼 오래 봐온 제자지요.”
그렇게 대답한 브루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자식이라고 여기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머리가 조금 굵어졌다고, 이제는 좀처럼 제 말을 들어 먹질 않습니다.”
그러자 일마 경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해합니다. 저도 비슷한 또래의 딸이 하나 있으니까요.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곤 잠시 입을 다물고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깊어졌다.
“외람되지만 브루노 경. 제 남편을 아십니까?”
“예. 십여 년 전 악마종 토벌 당시에 뵌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경비대장이신 세바스티안 경이 아니십니까?”
“네. 부끄럽지만 결혼 당시, 저와 남편은 지그스문트령에서 가장 유명한 한 쌍이었답니다.”
일마와 그녀의 남편 세바스티안은 젊은 시절부터 울프 기사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기사들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의의 경쟁을 시작했고, 그렇게 오랜 기간 부대끼며 지내온 라이벌 사이에서 피어난 것은 전우애와도 가까운 사랑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자각한 이후로 결혼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일마는 젊은 나이에 이미 울프 기사단의 단장으로 내정되었고, 세바스티안 또한 영지의 치안과 마경의 경계를 책임지는 경비대장이 되어 있었다.
즉 그 결혼은, 지그스문트령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의 결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고대하던 아이가 생겼을 때, 영지의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아이 또한 부모의 재능을 뛰어넘는 걸출한 검사가 되리라는 것을.
“하지만 딸아이는 검에 조금도 소질이 없었습니다. 그이의 얼굴을 쏙 빼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조부모로부터 자신의 손녀가 아니라는 폭언까지 들었답니다. 어릴 때는 고분고분하고 착한 아이였지만, 비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더군요.”
늘 바쁜 부모와, 자신을 홀대하는 조부모.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딸 루이제는, 그렇게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침울한 딸아이를 달래주는 것은 백작가에서 기르던 사냥개 ‘막스’뿐이었답니다. 아마도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던 그 애에게는 막스만이 진정한 가족이었을 거예요.”
가족이‘었’다.
브루노는 그 이야기의 결말이 어떠할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마경의 마수들이 백작령을 빈번하게 침입하는 시기가 되어도, 루이제는 여전히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막스를 데리고 무턱대고 바깥을 돌아다녔죠. 위험하다고 야단을 치고, 여러 차례 매를 들어도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 경계조 하나가, 멀리 산등성이에서 마수에게 쫓기고 있는 루이제를 본 것 같다고 보고한 것은.
소식을 들은 부부가 헐레벌떡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다행히 루이제는 무사했다. 그러나 그들이 동시에 발견한 것은 혈흔이 낭자한 바닥과, 마수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 개의 사체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딸아이는 한 번도 통금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답니다.”
따악! 커억!
또다시 야영지를 울리는 타격음.
바닥을 구르는 기사를 잠시 바라보던 일마는, 브루노를 돌아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딸아이의 경우를 보고 알게 되었답니다. 주관이 뚜렷한 젊은이가 스스로 행동을 바꿀 때는, 보통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서 지독히 후회하는 경우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