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84)
성황의 아이들-184화(184/469)
§ 184. 참회목 (1)
“워워, 진정해!”
다샤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비수를 뽑아들자, 올리비에는 얼른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비록 내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우린 서로 적이 아니야. 그렇지?”
그러면서도 슬쩍 두어 걸음 물러서는 것이, 다샤의 공격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한눈에 봐도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어떻게 바로 곁에 저런 자를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지?’
다샤는 비수를 겨누며 날카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어, 아냐! 오해야! 사브리나, 난 널 감시한 게 아니라고!”
믿음을 주고 싶었는지, 그녀가 다샤를 향해 샐쭉 웃어보였다. 안타깝게도 눈썹이 없는 탓에 한층 기괴한 얼굴이 되고 말았지만.
“나도 혹시나 하고 던져본 거야! 숲에 숨어있는 놈들을 눈치챈 거 같길래.”
“…….”
“정말로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어. 너, 기척을 엄청 잘 죽이는구나?”
그것은 다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간혹 긴가민가한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눈썹이 없는 걸 빼면 올리비에가 신규 인력 중에서는 가장 정상인으로 보였으니까.
“솔직히 다른 놈들은 다 의심했지만, 너만은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고!”
“어째서?”
“그거야, 당연하잖아? 설마 너처럼 눈에 띄는 애가 버젓이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 줄 몰랐지! 바르샤인 암살자가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아아. 다샤가 올리비에를 경계선상에서 빠르게 제외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설마 암살자 주제에 눈썹을 박박 밀고 나타날 줄이야. 어느 누구에게든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 분명할진대.
“거기다 생각해 봐. 새로 고용된 놈들이 죄다 첩자질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적어도 한 놈은 제대로 된 고용인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
“…….”
결국은 황도에서 채용한 신규인력 모두가 수상한 놈들이었던 거다. 하도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때 다샤의 눈치를 살피던 올리비에가 슬그머니 제안을 해왔다.
“자, 타협을 하자. 아마 우리 둘이 여기서 결착을 내려면 누구 하나는 분명 죽을 거고, 남은 하나도 그리 멀쩡하진 못할 거야.”
“그럼 어쩌자는 거지?”
“이번만 서로 못 본 척하자. 너도 짐작하다시피 이번 잠복은 완전히 글렀잖아? 그러니 이제 서로 갈길 가자고!”
상단을 뒤쫓는 무리들이 결코 좋은 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 터. 만일 이 충돌에서 살아남는다면, 밀로 상단주는 남은 신규 인력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겠지.
판단은 빨랐다.
“…네 잠입 목적은?”
“‘그걸 순순히 말해줄 것 같으냐!’라고 하고 싶지만, 뭐, 좋아. 만일 목적이 충돌하면 그것도 곤란하겠지.”
올리비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서로 좋게 가자고. 난 그냥 상단주를 밀착 감시하라는 명을 받았어. 너는?”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저 여자가 모레스 황자의 신변을 노리는 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다샤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쪽의 목적 역시 상단주의 감시다.”
“좋아. 그럼 별문제 없겠네.”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천천히 뒷걸음질 쳐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암기가 닿지 않는 선까지 왔다고 판단하자, 그 자리에 멈춰서 작별 인사 대신 잠시 시선을 맞췄다.
“…….”
“…….”
그 순간.
둘은 그대로 몸을 돌리는 척하며, 동시에 서로를 향해 오러가 담뿍 실린 무기를 날렸다!
퍼억!
타악!
다샤의 눈 옆을 지나친 스틸레토가, 바로 옆에 있던 나무를 관통하며 부스러기를 튀긴다.
역시나 올리비에의 목덜미를 스친 뾰족한 대거는, 몇 개의 나뭇가지를 꺾은 후 뒤쪽에 있는 나무둥치에 비스듬히 틀어박혔다.
‘젠장!’
그리고 둘은 최후의 공격이 실패한 즉시, 서로에게 날아온 암기를 뽑아 들고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사브리나, 너어어! 절대 잊지 않겠어! 감히 내 믿음을 배신하다니이이이이!”
올리비에의 긴 외침이 들리나 싶더니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진다.
다샤 역시 나무 사이를 빠르게 달려 나가며 이를 갈았다.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 이 민짜 눈썹아!’
어디 소속된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해치워 주겠어!
* * *
그즈음에 이르러, 밀로 상단에서도 슬슬 이변을 눈치챈 사람들이 생겼다.
“자코모 님! 숲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호위로 고용한 용병 대장이 자코모의 천막으로 찾아와 보고했다.
“놈들의 규모는?”
“약 스물. 별다른 무장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대에 기승하는 도적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물론 자코모는 이미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악마 샐로스가 난리를 치고 있었으니까.
[어서 날 불러라! 암흑 교단이 온다! 그 저주받은 마계목을 기르는 건 암흑 교단 뿐이야! 이 몸이 모두 쓸어내 주마!]그런 샐로스를 적당히 무시하며, 자코모는 용병 대장에게 지시했다.
“일단 이야기를 해보겠네. 단지 언제든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으니, 최대한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기별 없이 다수가 몰려온다는 건, 필시 좋은 의도는 아니리라.
하지만 암흑 교단과 밀로 상단은 암묵적인 거래 관계에 있다. 충돌해서 좋을 것은 없으니 최대한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다.
‘게다가 일이 커지면, 쓸데없이 울프 기사단의 이목을 끌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암흑 교단과의 관계를 들키는 날에는, 샐로스를 온전히 소환해서라도 입막음을 해야 할 테다. 울프 기사단 전원은 물론, 그들과 동행하는 황자 일행까지도.
그런 최악의 사태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자코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막 천막 밖으로 나왔을 때, 때마침 숲 저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다 헤진 검은 수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곧 죽을 듯 비쩍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고목같이 딱딱한 얼굴 가운데, 오직 두 눈만이 형형하게 빛나며 기괴한 인상을 풍긴다.
뿐만 아니라 옷 밖으로 드러난 그들의 얼굴이며 팔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흉터와 상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고행을 거쳐 온 증거. 바로 [참회]의 교단 사람들이었다.
웅성웅성.
용병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동요하는 가운데, 그들은 야영지 바로 앞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자코모 상단주를 만나러 왔다.”
그렇게 말하며 무리의 선두에 나선 것은, 역시나 다 떨어진 수도복을 기워 입은 거구의 여자였다.
온몸이 근육과 상처로 덮인 여인이었는데, 교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깡패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외모다.
“오랜만이오, 벨린다 교구장.”
마른 침을 삼키며 자코모가 입을 열었다.
거래를 위해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으나, 그녀 앞에서는 매번 주눅이 들곤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꽤 좋은 영업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고 여겼는데, 내 생각이 틀렸소이까?”
그러자 여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허, 좋은 관계? 그런 개소리를!”
그 흉흉한 분위기에, 용병들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일단 용건을 말하시오. 여기서 큰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소. 근처에 3황자 일행과 울프 기사단이 있단 말이오.”
“문제로 번지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그쪽의 대답에 달렸지.”
“대답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자 벨린다 교구장이 표정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이봐, 상인 나리. 우리는 음지에 숨어 사는 무식한 자들이라, 상도에 대해서는 잘 몰라.”
“…….”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고 있지. 바로 물건을 받았으면, 제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
그녀의 말에 자코모는 적이 당황했다.
“[약차] 값이라면, 지난번에 분명 치르지 않았소?”
“제대로 쓸 수 있는 어음이었어야지.”
“분명 물류 중계소에서 처리해 주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는데? 혹시 어음대로 대금이 지급되지 않았단 말이오?”
그 말에 벨린다 교구장이 볼을 씰룩거렸다.
“굳이 신원을 세세히 확인하려 들더군.”
“대체 왜?”
“그 이유를 내가 알겠나? 바로 당신이 알겠지! 밀로 상단의 어음은 신원이 확실한 자에게만 지급하라는 지부장의 특별 지시였다던데! 당신이 그에게 뭔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게 아닌가?”
자코모는 충격으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슈미트 지부장이? 갑자기 왜?
물론 이는 성진의 지시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자코모가 그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애써 긴장을 감추며 염소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스카르차피노 가문도 있지 않소? 분명 소공자가 어음의 보증인이 되어 준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라면 기꺼이 나를 대신해서 대금을 지급할 거요!”
초기에 직거래를 트기 전에는, 교단과 밀로 상단 모두가 리카르도 소공자를 통해 물건을 거래했다. 지금도 일부 품목에 한해서는 소공자가 만든 유령 상단의 중계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벨린다의 기세가 더욱 거칠어졌다.
“그래, 잘됐군! 마침 나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 대체 왜 리카르도를 습격한 거지?”
“뭐……?”
순간 자코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게 무슨?”
“지금 장난하나? 소공자를 습격하고, 우리 교단의 증표를 가져다 뒀다며! 그와 우리 교단을 동시에 물 먹이겠다는 심산 아닌가?”
“……?!”
“그건 분명 우리 사업장에서 유출된 메달이었지. 대체 당신이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야? 그 덕분에 최근 우리 구역에서 인퀴지터들이 더욱 날뛰고 있다고!”
물론 이것 역시 사실은 성진이 한 짓이었지만.
어쨌든 그 전말을 모르는 자코모는, 뭔가가 단단히 꼬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뻐금거리는데, 교구장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대체 이게 뭐 하자는 짓이지? 알아서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되니, 이제 교회를 끌어들여 우리 교단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것 아닌가?”
자코모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갑자기 일이 이 지경이 되었지?
그러는 동안에도 교구장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었다.
“참회의 대주교께서 이를 아시고는 매우 노하셨다. 당장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친히 저 [참회목]을 배달해 주라 하셨단 말이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참회의 교도 몇 사람이 커다란 단지 같은 것을 들고 앞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거의 사람의 몸통만 한 단지였다. 속에 검은 흙이 가득 담겨 있어 화분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그 주위로는 형형색색의 불길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다.
[이런! 저것이 움트는 것을 막아라, 자코모! 저게 바로 마계의 나무다! 영혼까지도 잡아채는 저주받은 씨앗이란 말이다!]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샐로스의 필사적인 외침이 들려왔다.
‘움트는 것을 막으라고요? 어떻게?’
[저 마계수의 씨앗에 절대 피가 닿아서는 안 된다!]‘피요?’
참회의 교도들이 그 단지를 벨린다의 앞에 놓자, 그녀는 품에서 작은 단검을 뽑아 들며 비릿한 웃음을 흘렀다.
“자, 그러니 대답해라, 자코모. 지금 당장 대금을 지불하겠나?”
“자, 잠깐! 지급하겠소! 지급할 테니 잠시만 말미를 주면…….”
“말미?”
“그렇소. 상행을 떠나는데 그런 거금을 지참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소! 이번 상행이 끝나는 대로 내 직접 레지나에서 어음을 처리할 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아, 아니면 지그스문트령에 도착할 때까지만 이라도! 내 어떻게 해서든 거기서 돈을 마련해 볼 테니!”
자코모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교구장의 눈은 점차 싸늘하게 식어갔다.
“…….”
“부디 양해해 주시겠소?”
그러자 그녀는 입술을 픽 비틀며 섬뜩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더러운 배교자 놈! 역시나 네놈들을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촤악!
단검을 세게 움켜쥔 손에서 뜨거운 피가 흩뿌려졌다.
* * *
[이성진, 근처에서 뭔가 찜찜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자기 전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왕 놈이 성진을 불렀다.
‘찜찜한 기운?’
[응. 마기는 옅지만, 어딘가 심상치 않아.]성진이 잠시 기감을 곤두세웠지만,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어어? 이거 뭐지? 이성진! 조심해! 갑자기 마기가……!]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쿠웅!
갑자기 커다란 충격파가 일며 마차가 통째로 흔들거렸다.
‘어라?’
놀란 성진이 재빨리 마차의 문을 열고 튀어 나가는데, 때마침 마사인과 발레리 경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하! 일단 몸을 피하십시오!”
“마사인 경?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밀로 상단 쪽에서 뭔가 사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밀로 상단?
그러자 발레리 경이 옆에서 덧붙인다.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저하! 마기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무래도 악마가 소환된 것이 아닌가 하고……!”
바로 그때였다.
끄아아아아!
어디선가 날카롭고도 기괴한 소리가 서늘한 밤공기를 뒤흔들며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람이 아닌, 삿된 것임에 분명한 뭔가가 마치 지옥의 저변에서 울부짖는 비명과도 같은.
야영지의 모두가 기겁하여 숨을 죽이는 가운데.
까아아아아아!
그 불길한 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분명 밀로 상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주신이시여……!”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마사인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어쩐지 며칠간 너무 조용하다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가, 한창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성진을 돌아보며 이렇게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엔 또 뭘 하신 겁니까, 저하?”
“…뭐어?”
그 갑작스러운 물음에 성진은 크게 당황했다.
아냐! 난 억울하다, 마사인 경!
이번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정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