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87)
성황의 아이들-187화(187/469)
§ 187. 참회목 (4)
“…저하!”
갑자기 마사인 경이 부르짖는 소리에, 한창 나뭇가지와 씨름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그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모레스 황자가 무려 마계수 위를 달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가지들을 베고 피하면서. 간혹 적당한 높이에 있는 가지가 날아들면, 훌쩍 뛰어올라 가지를 건너 타는 묘기를 보이기도 하면서.
그 모습은 마치 빠른 속도로 나무를 타고 다니는 한 마리의 다람쥐를 보는 듯 지독히도 비현실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자가 잠시 몸에 닿는 것도 꺼림칙한 검은 마기의 안개 속을, 겁도 없이 헤집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저 미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칼멘이 저도 모르게 불손한 욕을 내뱉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그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황자가 하고 있는 짓이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이 없었으니까.
“대체 저게 무슨!”
사색이 된 일마 경이 서둘러 황자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껏해야 두어 번 가지를 옮겨 타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데카론 나이트에 근접한 오러 운용으로, 황자보다 훨씬 높은 거리를 단번에 뛰어오를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나무둥치 아래로 달려온 마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하게 요동치는 나무 위에서는 움직이는 것이 여의치 않았음은 물론, 항상 다음 발판이 되기 적절한 위치에 나뭇가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뿐인가. 사방에서 무작위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야 했고, 마기에도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결국 두 사람은 더 이상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 나무의 절반 정도를 타고 올라간 황자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마 경이 중얼거린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저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저러다 혹여 충격으로 발을 헛디뎌 떨어질까, 오러 폭사 따위의 거친 공격은 엄두에도 낼 수 없었다. 마사인은 날아드는 가지를 미스라로 깔끔하게 베어내며, 이제는 훌쩍 멀어진 황자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저하…….”
한편, 성진의 머릿속에서는 마왕 놈이 기겁하여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야, 이성진! 다짜고짜 이러면 어떻게 해!]‘그럼, 어쩌라고? 멀리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성진은 뚱한 얼굴로 대꾸하며, 마침 타이밍 좋게 옆에서 날아오는 가지 위로 뛰어 올랐다.
툭.
그러자 가지가 파도처럼 요동치며 성진을 떨구려 했다.
발밑이 세차게 흔들렸지만. 호두까기로 가지를 갈라내며 주르륵 얼마간을 미끄러져 내린 성진은, 중심을 완전히 잃기 전에 발을 박차고 다음 가지 위로 뛰어 올랐다.
파앙.
그리고 착지한 순간, 섬뜩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더니.
쐐애애액!
뒤쪽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가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무 쪽에서 오는 공격뿐 아니라, 본체로 회수되는 가지 또한 성진을 노리는 거다.
“…후우.”
성진은 참았던 호흡을 내쉬었다.
정말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몸속에서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통에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데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하지만.
‘…할 만하다.’
사방팔방에서 쉴 새 없이 가지들이 날아들긴 했지만, 결국은 그 하나하나가 지극히 본능적인 생물의 움직임일 뿐이다.
인간처럼 페이크를 쓴다거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일 없이, 그저 목표물을 향해 내지르는 정직하기 그지없는 물리력.
마물들이 뿜어내는 화학물질이나 음파 공격처럼, 타이밍과 피해 범위를 다양하게 상정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니지.
그렇다면 계산해야 할 동선은 더더욱 단순해지는 거다. 물론 나무가 뿜어내는 마기까지 고려해야 했다면, 조금 더 힘들었겠지만.
끼이이이!
마계수의 움직임이 점점 빠르고 거칠어진다. 하지만 성진 또한 서서히 시야와 인식이 확장되며, 잊고 있던 예전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검처럼 옆을 스치는 가지와, 망치처럼 위에서 내리찍는 가지, 그리고 채찍처럼 공기를 할퀴며 날아드는 가지.
이것들이 얽히고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그 짧은 빈틈과 찰나의 이어짐을 놓치지 않고, 성진은 위로, 위로 계속해서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순조롭던 등반도 마계수의 중반을 지날 때쯤 되어서는 결국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상하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래쪽 가지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위쪽에서 내려찍듯 움직이는 나뭇가지들은 성진이 좀처럼 위로 올라갈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속도는 점점 더뎌지고, 상대적으로 공격에 노출되는 횟수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진작 활쏘기라도 배워 둘 걸 그랬나?’
잠시 그런 후회가 일었지만.
뭐, 배웠다고 한들 보이지도 않은 표적을 맞출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어. 최대한 가까이 가서 베어내는 수밖에!’
콰직!
마침 휘익 하고 날아온 나뭇가지 하나에 호두까기를 힘껏 박아 넣은 성진은, 그대로 검에 매달려 가지와 함께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끼이이익. 기괴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얼마간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저하!”
저 아래에서 기겁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 걱정시켜서 미안, 마사인 경.
그래도 오래 안 걸릴 테니까.
푸욱.
옆에서 후려치는 가지 하나에 겨우 검을 꽂아 넣은 성진은, 요동치는 가지에 매달리기 위해 팔에 잔뜩 오러를 집중했다.
우두둑.
졸지에 혹사당한 팔에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거 조금만 잘못하면 관절이 아작 나겠는데?’
성진은 이를 악물고 버티다, 가지가 사선 위로 튀어 오르는 타이밍에 호두까기를 뽑으며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큭!”
무방비하게 공중에 떠 있는 동안 가지 하나가 그를 후려친다.
그러나 충격을 대비하고 오러를 집중한 성진은, 가지에 검을 마주 휘두르며 얻어맞은 힘을 이용하여 몸을 한층 더 띄워 올렸다.
그리고 몸이 완전히 튕겨 나가기 전에, 다른 가지 하나에 겨우 호두까기를 찔러 넣었다.
결과는 더욱 격렬해진 로데오. 말초로 밀려난 만큼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무시무시한 낙차가 발생했다.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없어. 최대한 빨리 올라가야 해.’
그렇게 아슬아슬한 곡예를 수차례 연이어 한 후.
마계수의 3/4 지점을 지나치자, 성진은 위쪽을 향해 뻗어있는 나뭇가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위태롭기는 해도 겨우 디딜 만한 가지 위에 두 다리를 내려놓은 성진은 안도했다. 혹사당한 다리 역시 통증이 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모든 충격을 양팔로 버티던 때보다는 한층 편해진 것이 사실.
하지만 몸의 운신이 수월해진 만큼 마계수 꼭대기로부터 뭉게뭉게 피어나는 검은 마기 또한 한층 짙어져, 성진은 가지에서 가지로 이동하는 데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 성장핵이란 건 어디 있어?’
겨우 최상부라고 할 만한 곳에 도달한 성진이 마왕에게 물었다.
[정중앙에 있는 가지야. 위로 자라고 있는 가지 꼭대기!]정중앙의 가지.
그 대답을 들은 성진은 인상을 썼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중앙 가지라고 해도, 눈에는 안 보이는데?’
그러니까 마계수 최상부 중심은, 짙은 마기로 이루어진 시커먼 구름에 감싸여 아무것도 분간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기는 성장핵 가운데에서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 같아. 그러니 마기 한가운데를 잘 노려보면 되지 않을까?]‘핵의 크기는?’
[대략 네 주먹만 한 것 같아.]적어도 반경이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구름 속을, 성진은 조금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디를 겨냥하고 찔러도 빗나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데.
‘일단 핵을 벨 때까지는 무작위로 계속 검을 휘둘러 볼 수밖에 없나…….’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나뭇가지의 공격은 뜸해졌는데, 아마도 바깥으로 가지를 뻗치기 좋은 구조 때문인 듯했다.
성진은 한결 여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둥글게 중앙을 향해 접근해 갔다.
그리고.
쐐액!
기회를 노려 구름 안으로 몸을 날려, 가장 넓은 횡 베기 범위를 자랑하는 바나하스 2식 2형을 펼쳤다.
후욱.
호두까기가 스친 자리의 공기가 극도로 희박해지며, 일시적인 마기의 단절이 일어난다.
[이런! 거기보다 조금 아래쪽이야!]구름 속에서 빠져나오자 마왕 놈이 아쉬운 듯 외쳤다.
성진은 때마침 그를 향해 날아오는 가지 하나를 베어내며 물었다.
‘얼마나 빗나갔지?’
[위치는 얼추 근접했어. 하지만 거기서 적어도 머리 하나는 더 아래로 가야 해!]뭔가 애매하다.
성진은 가지와 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다시 한번 핵의 위치를 가늠했다.
이왕이면 좀 넉넉하게 아래쪽을 겨냥하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두 번째로 중앙을 향해 뛰어들었을 때.
성진은 조금 둔탁한 손맛을 느끼며 낭패한 얼굴로 구름을 빠져 나왔다.
[…아! 약간 빗맞았어! 조금 사선으로 스치는 바람에 가지를 비껴갔어!]마왕이 탄식했다.
그리고 그 순간.
퍼억!
부지불식간에 구름을 뚫고 날아온 가지가 성진을 세차게 후려쳤다. 막 구름에서 빠져나오느라 미쳐 가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반사적으로 호두까기를 대고 막았지만, 성진의 몸은 이미 나무에서 멀찍이 튕겨나간 후였다.
[이성진!]엄청난 속도로 몸이 추락한다.
재빨리 눈을 뜬 성진이 근처에 디딜 만한 나뭇가지를 찾았지만, 도통 보이지 않았다.
‘어어……!’
멀리 튕겨나간 성진을 완전히 털어버렸다고 인식했는지, 나뭇가지의 공격이 뜸해진 것이 문제였다.
공격이 없으니, 몸을 디딜 발판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거, 운 나쁘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성진은 머리부터 떨어져 내리며 혀를 찼다.
8층 건물 이상의 높이에서, 자유낙하도 아니고 아래로 힘차게 내리꽂히게 된 거다!
최대한 머리와 목을 오러로 보호하려 애쓰며, 성진은 떨어져 내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닥을 살폈다.
오러 폭사 같은 기술이 있었다면, 아래로 공격을 날리는 것만으로도 속도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성진은 문득, 아래쪽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바로 마기로부터 몸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성진을 향해 달려오는 마사인 경이었다.
“어어, 비켜! 마사인 경!”
이 속도로 부딪히면 둘 다 죽는다고!
차라리 되든 안 되든 낙법이라도 시도해 보는 게 나을 텐데?
그러나 저 고집 센 기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낙하지점에 자리를 잡고는 성진을 향해 팔을 벌렸다.
‘…이런 젠장!’
하는 수 없이 성진은 호두까기에 오러를 실어 세차게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검을 던진 반동이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길 희망하면서.
콰앙!
오러 실린 검이 흙바닥을 깊게 패며 박혀 들었다.
“이런!”
저쪽에서 브루노 단장이 성진을 향해 손을 뻗는다.
휘잉.
단장으로부터 날아온 작은 바람이 성진의 몸을 감싸 돌았다.
데카론 나이트의 오러 실체화. 그러나 낙하하는 소년의 속도를 줄이기에는 너무 미약한 오러였다.
‘…충돌한다!’
마사인의 처참한 부상을 예감하며 성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후욱!
어째서인지 성진의 몸이 갑자기 위로 훅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
그러나 의아한 것도 잠시, 큰 충격과 함께 성진과 마사인이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탕!
“저하!”
“마사인 경!”
브루노 단장과 울프 기사단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저하!”
“저하!”
반짝. 성진은 눈을 뜨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사인 경!”
충격으로 조금 어지러웠지만,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어디 한군데 부러진 곳이 없다.
놀랍게도 마사인 경은 성진을 제대로 받아낸 것이다!
심지어는 마사인 경 역시 별다른 상처는 없는 듯 보였다. 뒤로 넘어가며 머리를 바닥에 찧는 통에 가벼운 뇌진탕이 온 것 같았지만.
성진은 내심 이 기적적인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끄응.”
멀쩡하게 몸을 일으킨 마사인이 뒤통수를 문지르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어릴 때 부웅 연습을 한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부웅 연습? 그게 뭐야?
어쨌든 재빨리 몸을 일으킨 성진은, 마사인을 향해 냅다 잔소리를 쏟아냈다.
“지금 죽으려고 작정했나, 마사인 경? 추락에 말려든 건 그렇다고 쳐! 또 마기는 어쩌자고 그렇게 함부로 뒤집어쓰는 거야? 지금 제정신이야?”
그러자 마사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진다.
흉흉함을 더해가는 그의 기세에 성진이 움찔 놀라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마사인은 성진을 향해 떽! 하는 호통을 쳤다.
“지금 그걸 아시는 분이, 마기가 가득한 곳으로 달려드십니까!? 대체 어쩌려고 갑자기 그런 짓을 하신 겁니까?”
“아니, 나는…….”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저하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찔끔 놀란 성진이 시선을 피했다.
이번에야말로 그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은 성진은 열심히 변명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하지만 마사인 경! 저 꼭대기에 마계수의 핵이 있어!”
“…핵이요?”
“응, 저 나무를 계속 자라게 하는 원동력이라나 봐.”
이미 성진과 두 차례에 걸쳐 마물을 잡아 본 경험이 있는 마사인은 금방 이해했다.
“그러니까 그걸 부수면 마계수를 잡을 수 있는 겁니까?”
조금 누그러진 그의 태도에, 성진은 붕붕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의 벨 뻔했는데, 아깝게 놓쳤지. 내가 괜히 그런 거 아니야! 진짜야!”
“…….”
“아까는 미처 의논할 시간이 없었어. 이제 멋대로 그러지 않을게! 정말 미안!”
성진이 완전 저자세로 나오자, 마사인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잠시 이마를 짚었다.
그러더니 곧 깊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물었다.
“…그럼, 저걸 어찌 부수면 되겠습니까, 저하?”
오, 좋아. 화가 빠르게 식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