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4)
성황의 아이들-194화(194/469)
§ 194. 지그스문트령 (3)
다음 날 아침, 성진은 오르덴과 헤르만을 불러 다음의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회수한 물품들은 엄연한 밀로 상단의 소유이니, 지그스문트 백작령에서는 물품의 대금을 빠짐없이 상단에 지불할 것.
-물론, 물건을 수습하고 회수하느라 고생한 기사단의 수고비와, 이를 백작령까지 옮겨준 운송비는 적절히 제해야 할 것.
잠자코 듣고 있던 오르덴 놈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이 이치에 맞는 듯하군요. 그리 이행하겠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헤르만이 작게 헛기침을 한다.
야야, 설마. 상단이 전멸했다고 생각하고 모조리 날로 먹을 셈이었나?
“외람되오나, 저하. 밀로 상단주의 행방이 아직은 묘연한데, 대체 누구에게 대금을 지급해야 할지요? 거기다 자코모 밀로는 현재 악마계약자의 혐의가 있는 상태입니다. 증거를 잡기만 하면 저희 영지에서 바로 체포하게 될 것입니다만.”
즉, 지그스문트 백작령에서 그를 체포하면, 그의 재산 또한 자연히 영지에서 압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었다.
표면적으로 이단 재판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교회가 있으며, 교회의 재산은 대부분 이를 사비로 운영하는 영주의 것이었으니까.
“쯧쯧, 헤르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성진은 혀를 차며 젊은 행정관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첫째. 자코모 밀로는 대공자에 의해 마물 전담반에 정식으로 고발되었다. 수사권을 가진 전담반 소속의 인퀴지터와 엑소시스트가 이미 수사에 착수한 상태지. 따라서 그는 엄연한 황도의 관할이다.”
“네? 하오나 단순한 수사는 저희 쪽에서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닙니까? 그를 체포하여 재판하는 것 역시 영지에서…….”
“아니, 그의 재판은 황도에서 진행하게 될 거다. 재판부와 이단재판부 양쪽에 제출할 고소장이 이미 준비되어 있어. 그가 지그스문트 영지로 도착하는 즉시 제소할 수 있도록.”
“…넷?”
설마 너희들이 그보다 빠르게 재판을 준비하지는 못할걸? 아직 변변한 증거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고, 상단주가 나타나야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할 거잖아?
”그러니 그는 황도 관할의 죄수다. 재산 또한 황도에서 압류할 테지. 이에 지그스문트령에서는 그자를 체포하는 즉시 황도로 이송할 의무가 있다.”
대체 어느 틈에?
헤르만이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성진은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다샤가 조사해 둔 자잘한 비리들과 오르덴이 제출한 메달을 증거로, 상단주를 소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슈미트 지부장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재판부 압수수색의 근거를 만들었지.
오직 필요한 것은 그가 악마계약자라는 증거뿐이었는데, 이번에 나타난 마계수 덕에 그 문제도 해결되었다.
설사 마계수를 소환한 것이 상단주가 아닐지라도, 동행했던 성기사들의 증언만으로 이단재판부에는 그를 체포해 조사할 이유가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어. 자코모 밀로는 상인 연합의 소속이다. 자네가 가입 조건을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로는 이미 시작부터 그의 재산 중 많은 부분이 상인 연합에 담보로 걸려 있어.”
“상인 연합…….”
“아마 그가 체포되고 나면 엄청난 액수의 위약금까지 물어야 할 텐데, 상인 연합이 과연 그걸 누구에게 청구하리라고 보나? 아무리 재산을 압류한들, 모조리 그들에게 빼앗기고 말걸?”
“…….”
아마 이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
성진 역시 물류 중계소에서 슈미트 지부장에게 들은 말이었다.
물론 위약금과 담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부장 선에서 힘써주겠다며 한 말이었지만, 저 순진한 젊은 행정관을 겁주는 데는 이걸로 충분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있지.”
정적이 감도는 마차 안에서, 성진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자는 삿된 것과 연관되어, 성황가의 일원을 큰 위험에 빠트렸지. 난 그에 대한 보상 또한 톡톡히 받아내야겠어.”
그러니까 결론은.
“돈은 나한테 줘.”
“…예?”
“전부 나한테 주면 되는 거야. 내가 상인 연합을 상대해 줄 테니, 뒷일은 너무 염려하지 말고.”
그러자 헤르만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어느 간 큰 놈이 성황가에 위약금을 청구한다는…….”
“뭐?”
“아니, 아닙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재빨리 머릿속으로 손익을 따져본 행정관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항복했다.
공으로 영지 예산을 대폭 아꼈다며 하루 종일 기뻐했을 테지. 시무룩하게 처진 헤르만이 조금 딱해서, 성진은 약간의 인심을 쓰기로 했다.
“울프 기사단의 도움으로 마계수를 퇴치했으니, 그에 대한 비용 또한 적절히 제해 주겠네. 나머지 대금은 준비되는 대로 나한테 가져와.”
“와, 알고 보니 완전 도둑…….”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하.”
그러다 문득 성진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묘한 시선들을 느꼈다.
기감을 곤두세워 보니 헤르만뿐만이 아니라, 오르덴과 마사인 경, 그리고 브루노 단장까지 말없이 성진을 응시하고 있다.
기척만으로도 그들의 떨떠름한 심정을 눈치챈 성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뭐? 왜? 뭐?
* * *
어쨌든 그날 하루도, 또 다음날도. 성진의 순조롭고도 답답한 여정은 계속되었다.
슬그머니 안대를 벗어보려 하면 조용하던 마왕 놈이 갑자기 왁왁거리고, 몸이라도 풀까 싶어 마차를 벗어나려 하면 어디선가 마사인이 나타나 떽떽거린다.
회복되기 전 상태가 그렇게까지 심각했었나 싶을 정도.
‘내가 진짜…. 해놓은 짓들이 있어서 이번만 참는다…….’
하지만 앉아서 명상하기도 하루 이틀이지, 종일 마차 안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하루 단전에 쌓여가는 오러와 함께, 인내심도 차곡차곡 늘어갔다.
그리고 그즈음이 되어,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간혹 마차 문이 열리면,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송이가 날려 들어와 성진의 볼에 닿기도 했다.
“슬슬 마경의 영향권에 들어서 그렇습니다.”
방한용으로 준비한 두툼한 망토를 둘러주며 마사인이 말했다. 옆에서는 또 에디스가 성진의 양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워주고 있다.
“마사인 경이랑 에디스는 괜찮은 건가?”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보건대, 두 사람 모두 아직은 평상시의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예, 저하. 괜찮습니다. 오러를 운용해서 한기를 막고 있으니까요.”
에디스의 대답에 성진이 슬쩍 미간을 구겼다.
‘오러 층으로 따지면 나도 이제 슬슬 에디스를 넘어서고 있다고. 왜 나만 애 취급이야?’
그런 성진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마사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하께서 너무 급격하게 오러 층을 쌓으셔서 그렇습니다. 보통은 입문에 들기 전후에 한 주기의 계절을 거쳐가며 자연히 ‘오러 항상성’을 체득하게 되죠.”
“흠…….”
“몸 전체에 오러를 골고루 퍼뜨리는 일이라, 운용하는 오러 양이 적을 때부터 천천히 층을 쌓아가며 적응해가는 겁니다. 하지만 저하께는 아직 그런 운용을 가르쳐 드린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 어렵지는 않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적응하시면 됩니다. 마사인은 그렇게 성진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을 닦달해가며 자세한 설명을 들은 성진은, 이내 별다른 시범 없이도 오러를 온몸에 퍼뜨려 열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었다.
‘…너무 쉬운데?’
성진은 순식간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너무 쉽다 못해 수련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오러를 운용해서 지속적으로 몸을 덥힌다는 말은, 즉 추운 날씨에 계속 몸을 움직이며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잖아?’
집중해서 층을 쌓는 건 성취감이라도 있지, 무턱대고 오러를 소모하기만 하는 건 재미도 없고 귀찮다고.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린 성진은, 두툼한 망토를 여미며 당장 오러 운용을 멈춰버렸다.
‘계속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가. 어쩐지 만사가 귀찮고 잠만 쏟아지네.’
물론 사무치는 추위는 여전했지만, 성진에게는 나름의 대안이 있었다.
장갑 안에 넣어 둔 납작하고 작은 돌멩이. 출발하기 전 시슬레가 건네주었던 마법의 돌이었다.
따끈따끈.
참으로 적절히 전해지는 온기를 음미하며 성진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꼬맹이가 제법 선견지명이 있어. 이거 은근히 따뜻하단 말이지.’
그렇게 돌멩이를 굴리며 잠시 마차에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
문득 성진은 멀리서 누군가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낯선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비록 찰나의 순간으로, 그 시선은 이내 거두어졌지만.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빠짐없이 훑는, 대단히 강렬하면서도 건조한 시선이었다.
‘…야, 마왕아? 넌 못 느꼈냐?’
성진은 찝찝한 기분으로 마왕을 불렀다.
하지만.
[뭐야? 무슨 시선? 피곤하면 엉뚱한 소리 말고 잠이나 자. 난 지금 바빠!]되레 마왕으로부터 따가운 핀잔을 들었다.
거 참, 이상하네.
그나저나 이놈은 뭘 한다고 이렇게 바쁜 걸까?
“시선이요? 저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옆에 있던 브루노 단장 역시 성진의 물음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역시 착각인가?’
전직 데카론 나이트인 단장조차 감지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성진의 착각인 거겠지.
우우우우.
저 멀리 어디선가 늑대 한 마리가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마차 너머로 기감을 곤두세우던 성진은, 곧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따뜻한 망토 속으로 몸을 묻었다.
눈에 붕대를 감은 지 나흘째가 되던 날, 성진은 드디어 답답한 붕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먼저 영지로 출발한 전령이 도착하자, 지그스문트 백작가에서 서둘러 가문의 주치의를 보내온 것이다.
“영지는 겨우 하루 거리에 있습니다만, 최대한 빨리 저하의 용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해, 주치의를 이쪽으로 요청했습니다.”
확실히, 대공자의 초대를 받고 영지를 방문 중인 황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정말 곤란해지는 것은 지그스문트 변경백이 될 테지.
성진 역시 오르덴에게 괜한 수고를 했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붕대를 벗어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의원이 본 성진의 눈 상태는 완전히 정상이었다.
“이제 붕대를 벗으셔도 되겠습니다, 저하. 물론 아직은 너무 밝은 빛을 보거나, 설산을 오래 응시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 고맙네.”
성진은 붕대를 풀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성황이 왔다 갔으니 아마도 멀쩡히 회복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최근에 마왕 놈과 마사인 경의 태도가 심상치가 않아 고분고분 비위를 맞춰 주었을 뿐이지.
그리고 성진은 며칠 만에 다른 사람의 부축 없이 홀로 마차 밖의 땅을 밟았다. 그사이에 풍경은 완전히 변하여, 이제 주위는 온통 눈 덮인 들판과 설산이었다.
후.
무심코 숨을 내쉬었더니 공기 중에 하얗게 입김이 서린다.
“저하! 이제 눈은 괜찮으십니까?”
모닥불 옆을 지키고 있던 클로디아 경이 반색하며 달려왔다.
“응. 괜찮대.”
“걱정했습니다! 정말 걱정했어요!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저희를 두고 홀로 그렇게 달려 나가시면 안 돼요! 네?”
“어…….”
성진은 기쁨과 책망이 한껏 뒤섞여있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지난 수일간, 클로디아 경은 부단히 마차 쪽을 기웃거리며 이쪽을 살피곤 했지.
조금은 맹목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충성심이다. 클로디아 경은 대체 내가 뭐라고 그렇게 마음을 쓴단 말인가.
“어, 씨… 아니, 이제 붕대를 풀어도 됩니까?”
곧이어 땔감을 안고 나타난 칼멘이 입을 쩍 벌리며 그렇게 물어왔다.
너 이 새끼. 방금 또 욕하려고 했지?
“…아니, 아닙니다.”
“…….”
“씨… 진짜 아니라고요!”
그렇게 은근히 칼멘을 면박 주고 있을 때였다.
‘…또다!’
뒷덜미를 타고 흐르는 생경한 감각.
성진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설산에 시선을 주었다.
분명 저 산 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는 절대로 착각이 아니었다.
‘야, 마왕아? 넌 저게 안 느껴지냐?’
마왕 놈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눈치다.
역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나.
무심코 설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성진은, 문득 자신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으로 쫓고 있는 마사인의 감시를 깨닫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 맞다. 완전 과보호 모드에 돌입한 저 양반을 어쩌면 좋다지?
아우우우우.
어제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서, 늑대의 긴 하울링이 들려왔다.